해마다 퀴어문화축제·퀴어퍼레이드가 열릴 즈음이면 보수 개신교계를 중심으로 동성애 반대 운동이 벌어진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15일 오후 퀴어축제가 열리는 서울광장 건너편 대한문 앞에선 보수 대형교회 신도들이 주축이 되 ‘동성애 퀴어 축제 반대 국민대회'가 열렸다. 또 광장 반대편 조선호텔과 광화문으로 통하는 도로에서도 보수 개신교계 단체의 집회가 열렸다.
목회자들의 성소수자 혐오 발언 역시 수위가 예년과 다르지 않았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전명구 감독회장은 이날 국민대회에 참석해 "퀴어 축제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이자, 타락한 욕망에 사로잡힌 것이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허용, 배려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 역시 영상 메시지를 통해 "동성애는 개인의 성적 취향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심각한 국가적 문제"라며 반대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확연히 예년 같지 않았다. 집회 시작 수시간 전부터 신도들이 북적였던 지난 해와 달리 오후 1시가 되도록 덕수궁 대한문 앞은 한산했다. 1시가 넘어 신도들이 모이기 시작했지만, 수천 명 수준에 그쳤다.
반면 퀴어 문화축제가 열리는 서울광장엔 시간이 지날 수록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마침 오후 2시를 넘어가면서 세찬 빗줄기가 내렸지만 축제열기는 꺾이지 않았다. 이날 축제엔 정당대표로선 처음으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참석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동성혼 합법화 방침을 밝혔다. 이 대표는 "중요한 것은 국민의 눈높이가 아니라,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고 시대의 변화를 따르는 제도의 개선"이라며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족 제도를 인정하는 동반자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고,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는 도심 행진이 예정된 시각인 오후 4시가 되자 그쳤다. 행진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행진이 시작될 즈음 한 남성이 행진을 막고자 뛰어들었지만 주최측과 경찰이 신속하게 대처했다.
행진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보수 개신교 단체들의 집회는 넘쳐나는 인파에 압도당하는 듯한 광경이 연출됐다. 주최측은 참여인원을 약 7만 수준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A 목회자는 "확실히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느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미국, 독일 등에서 이뤄진 동성애 합법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엔 시기상조라는 생각을 밝혔다. A 목회자는 "오히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일 수 있다. 가톨릭 역시 동성혼 법제화에 부정적이어서 개신교와 (동성혼)법제화 반대에 공동전선을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