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대한 기억은 어린 시절 중국무술영화를 통해서 본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특히 이연걸 주연의 ‘소림사’라는 무술영화를 통해서 본 중국본토의 풍광은 참으로 신비스러웠다.
깊은 산 속의 기이한 봉우리와 협곡 사이를 누비며 무술연마를 하는 장면을 보며 저 곳에 나도 언젠가 가고 싶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품었다. 그러나 그 때는 중국과 국교수립이 되기 이전이었으므로 공산국가 중국으로 여행을 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막연한 꿈이었다.
중국과의 국교수립 이전에는, 깊은 밤 라디오에서 중국에 계시는 동포들이 가족을 찾는 사연이 흘러 나오곤 했다. 중국의 흑룡강성이니 요녕성이니 하는 말들은 그 때에 들어 본 것 같다. 일제시대에 가족들과 헤어지게 된 안타까운 사연들과 살아 생전에 다시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들의 사연을 듣다 보면 마음이 찡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듯 중국은 우리가 갈 수 없는 머나먼 나라였고 빗장을 걸어 잠근 신비의 나라였다. 지금은 국교수립 이후에 누구나 자유롭게 왕래를 하게 되어 이젠 가까운 옆 동네처럼 되고 보니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이 참 빠르게 변하고 크게 변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기독교인으로 살아 가면서 지켜 보니 중국을 놓고 선교의 마음을 품는 분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느꼈다. 많은 인구와 거대한 영토, 다양한 민족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중국에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여기며 참으로 헌신하는 분들이 주변에 많이 계시다. 나는 신앙을 가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선교가 과연 무엇인지 하도 궁금하여 선교지에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 주변에 계신 목사님들이 선교지에 가신다면 같이 가자고 해서 함께 필리핀을 몇 번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잠깐씩 다녀보아서는 도대체 감이 오질 않았다. 과연 선교를 하려면 꼭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로만 가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선교사님들은 내가 본 것처럼 꼭 힘든 고생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 오히려 의문이 더 많아졌다.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저 분들처럼 할 수 없다면 나만이 할 수 있는 선교의 방법은 없을까 라는 궁금증도 더해갔다. 그러던 중에 중국에 대해 강렬한 선교의 소망을 품고 계신 목사님을 뵙게 되었다. 이 분께서 내게 말씀하시길 중국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집사님도 음악으로 분명히 할 일이 있다고 하셨다. 중국에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보급하는 데에 앞장서면 좋겠으니 다음 번에 기회가 되면 중국에 함께 가 보고 소망을 품어보라고 하셨다. 나는 나의 전문분야인 음악과 녹음이 활용될 수 있다는 말씀에 귀가 번쩍 트였다. 그렇다면 다음에 중국에 가 봐야겠다 라고 마음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목사님께서 날짜를 지정하시며 함께 가자고 하셨다. 자비량선교이니 여행경비는 각자 비용을 준비해서 정해진 날에 여행사로 보내라고 하셨다.
당시 나는 기독교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교인들만이 사용하는 특정단어들을 대부분 모를 때였다. 그 때 처음 듣게 된 단어가 바로 자비량선교 라는 말이었다. 한마디로 자신의 돈으로 모든 경비를 부담하는 선교라는 것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땀 흘려 모은 뒤 그 물질을 선교하는 데에 사용한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좋은 일이었다. 중국의 선교지에 한 목사님과 다녀 올 것이라고 가족과 친척들에게 이야기하자 교회다닌 지 얼마나 되었다고 선교지를 간다고 하느냐며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교회에 다니지 않을 때에는 나보고 교회에 나오라고 그렇게 많이들 권하더니 정작 교회에 다니고 선교지에 간다고 하니까 이젠 거길 네가 왜 가느냐고 하니 도대체 왜 내게 교회에 다니라고 권했었는 지 알 수가 없을 노릇이었다. 거기다가 한 수 더 떠서 비용은 개인부담이라 내가 마련해야 한다고 하자 모두들 펄쩍 뛰며 가지 말라고 하였다. 나는 그 때 비로소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선교에 대해 조금씩 감이 오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중국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것은 1998년의 일이었다. 북경공항에 내리는데 공산국가라고 해서 얼마나 떨리던지… 짧은 중국 방문기간 동안 여기 저기 뛰어 다니며 잠깐씩 선교지의 일면을 엿보게 되었다. 잠깐의 경험만으로 이 커다란 중국 땅에서 당장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으나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하시는 것은 분명 나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어가실 것이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또 하나 배운 단어가 있었는데 그 것은 순종이라는 단어였다. 목사님께서 같이 중국에 가자고 했을 때 나의 여건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 때는 국가적위기인 IMF가 막 시작되었을 때였고 나 역시 경제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을 때였다. 그런 때여서 자비량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나도 부담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중국에서 다니다가 어느 산을 걸어 올라 가고 있었는데 날도 덮고 힘이 들어 잠시 쉬면서 뒤를 돌아 보니 산 아래의 드넓은 광경이 눈에 들어 왔다. ‘아~목사님 따라 오니까 이렇게 좋은 경치도 보네요’라고 하자 목사님께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순간 생각해 보았다. 내가 뭘 순종했나? 그저 중국에 가자고 해서 따라온 것뿐인데 이런 것도 순종일까? 이런 것은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닌데 이런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복을 내리신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조금 죄송스럽게 생각되었다.
나는 조금 더 큰 일을 통해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마음도 더욱 더 커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