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본부장 박진탁 목사 ⓒ이지수 기자 |
46년 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고려대학교병원 원목을 맡았을 때만 해도, 평생 ‘목회’를 하고 살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그의 곁에는 충성스러운 신도가 아닌, 수십 만 명의 건강한 일반인과 수만 명의 환우가 있다. 그 둘 사이를 ‘물보다 진한 피’의 관계로 이어주는 역할을 그는 하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박진탁(74) 본부장, 혹은 목사.
그에게 있어 생명나눔은 ‘선교’다.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내어주신 주님을 따라 사는 삶이 선교적 삶이라면, 이웃을 위해 내 몸의 일부를 내어주는 것이야 말로 아름다운 선교의 행위가 아니겠냐는 것. 올해 생명나눔운동 40주년을 맞아 이 운동을 시작한 당사자이자, 여전히 이 운동의 중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생명나눔운동을 시작하신 지 올해로 40년을 맞으셨다. 감회가 어떠신지.
사람 살리는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도록 건강 주시고 어려울 때마다 지혜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아직도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엄청난 축복으로 여겨진다.
고려대학교 병원 원목으로 활동하시다 1969년 4월부터 헌혈운동에 전적으로 헌신하셨다. 헌혈운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처음 헌혈을 했을 때 내 도움으로 인해 누군가 살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으로 다가왔고, 이 기쁨을 국민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던 중 헌혈운동을 내 사명으로 인식하게 됐다. 바울 사도가 ‘내가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지어다’고 말했듯 헌혈운동은 내게 그런 것,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었다.
당시 매혈문화는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약하고 가난한 이들의 피가 몇 푼 돈으로 환산되고, 또 이것이 특정한 이들의 돈벌이가 되는 반인류적인 모순이었다. ‘국립혈액원’이 개원했었지만, 온 나라 사람들이 가난과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는 터에 피를 내어줄 리가 없었고, 피를 존엄시하는 유교적 전통도 걸림돌이 됐다. 병의원 누구나 혈액원을 둘 수 있었는데 특별한 시설 규정이 없어 혈액의 질적 저하가 초래됐고, 이에 더하여 비밀 혈액원까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헌혈문화 정착이 꼭 필요한 시점이었다.
목사님께 있어서 생명나눔운동과 신앙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
생명나눔은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면서 헌혈 한 번도 안 했다면 진정한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없다. ‘주님이 나를 위해 산 제물 되셨다’고 고백하지 않는가? 나는 요즘도 그렇게 말한다. ‘죽어서 주는 각막도 안 주겠다고 하면, 차라리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라’고. 그러면 십중팔구는 다 서약한다. 헌혈, 기증, 기증서약과 같은 생명나눔 행위가 신앙적이라는 것은 생명나눔을 실천해보면 안다.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고, 일반인들도 ‘내가 참 좋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말하자면 생명나눔운동 자체가 ‘목회’라는 뜻인 것 같은데. 실제로 생명나눔을 통해 삶의 변화를 체험한 사람도 많을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청송감호소 출신의 한 남자다. 나쁜 죄를 짓고, 가정도 풍비박산 나고, 여러모로 어려웠던 상황에서 회개하는 의미로 신장을 기증했다. 그런데 그 때 ‘다시 태어난’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자신도 선할 수 있다는 깨달음… 그 깨달음과 느낌이 지워질까봐 이후 18년 동안 경범죄 한 번 짓지 않고 살았다. 얼마 전에도 찾아와서 기증을 권유해주어 감사하다고 인사하는데, 나 또한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
국내 첫 장기기증자이시면서 최다 헌혈자이시다.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신장을 기증할 때 어떻냐면, 멀쩡한 사람의 옷을 다 벗기고 수술대에 누인 후, 옆구리를 20센티 정도 절개하고 신장을 꺼낸다. 그 모습을 직접 보면 로마서 12장 1절에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된다. 내가 수술 받는 것은 직접 못 봤지만 다른 사람 수술 받는 것 보니까 굉장히 숙연해지더라. 사후 각막 기증도 그렇다. 일생 동안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다가 세상 떠나는 날 이웃에 빛을 주고 가는 삶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는 아름다운 삶 아니겠는가. 또한 이것이 아름다운 선교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생명나눔운동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좀 더 건강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생명나눔운동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헌혈운동은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 이제 장기기증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장기가 필요하면 누구나 쉽게 이식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장기기증과 관련한 국가적인 제도를 만드는 것을 추진하려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난다면, 5-6년이면 될 것이다.
인생의 선배로서 크리스천 청년들과 목회자들에게 조언의 말씀을 들려주신다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계획을 세웠다면, 나중에 하지 말고 ‘당장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낙담하지 않고 끝까지 매진한다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찾으면 찾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한 성경의 말씀처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