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경동]하나님의 세계

2009년 5월 3일 설교자 박종화 목사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아, 하나님께서 왜 어린이 같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못 간다고 하셨는지 2천 년 전과 2천 년이 지난 오늘을 함께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2천 년 전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산에서도 하고 회당에서도 하고 여러 군데서 하셨습니다. 모이는 사람은 다양했습니다. 남자도 있었고 여성도 있었고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참 불행한 것은 예수님 당시에 사람이 모여서 많은 이야기를 듣지만 청중의 수를 셀 때는 제한적이었습니다. 남자 어른만 셈에 포함하고 여성과 어린이는 포함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사회를 구성하는 주도적 구성체 중에 어른 남성만 사회인이고 여성과 어린이는 준사회인, 또는 보호 대상 이렇게 되었을 겁니다. 특별히 어린이는 아직 이성이 발달되지 않아 자주적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부모가 늘 껴안고 자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오라고 해서 품에 안은 어린이도 셈법에 포함시키십니다. 그리고 이 어린이처럼 살지 않으면 이 땅에서는 당신들이 주인이지만 하나님 나라 주인은 이런 아이들이라면서, 어린이를 축복하셨다고 했습니다.

2천 년 지났습니다. 예수께서 오늘 다시 오신다면, 제가 보기에는 어린이를 붙들고 그리고 학부모들을 끌어안고 얼마나 고생하느냐? 잠도 같이 못자고 기러기 가족도 되어야 하고 고생이 많구나, 하실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사정을 보면 정도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안보 문제가 제일 중요하죠? 먹고 사는 경제 문제가 제일 중요하죠. 물론 외형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내적으로 가슴속 깊은 곳에 중요한 것은 뭐냐? 엄마, 아빠 모두에게 자식 문제입니다. 어린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교육시키고, 어떻게 시험 보게 하고, 어떻게 출세시키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어린이 문제, 교육 문제가 최대의 관심사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주시는 축복 중의 하나가 부모와 어린이가 만들어 놓은 가정, 이 가정을 하나님이 인간의 세계라고 보지 않고 하나님의 세계라고 하시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세계라는 설명의 원조는 요한복음입니다. 요한복음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농부처럼 되시고 농부가 포도밭에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포도나무의 줄기는 예수라는 사람이고 줄기에 붙은 가지들은 우리 인간들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농부인 하나님이 포도나무를 심되 포도나무는 줄기와 가지로 구성됩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예수 혼자 누리는 세계가 아니라 예수와 예수라는 줄기에 붙은 가지인 인간과 함께 이루는 세계입니다.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인 된 세계는 인간과 함께 사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예수라는 포도나무 줄기와 예수 줄기에 붙어 있는 모든 인간이라는 가지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무를 심고 가지가 자라게 하고 영양분도 주고 다 주지만 결국 최종 목표는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세상에서는 열매가 축복 받는 하나님의 축복받는 세상 하나님의 세상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아주 중요하게 받습니다. 가지는 줄기에 붙어 있습니다. 가지가 줄기를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줄기가 가지를 만들어냈습니다. 줄기는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아서 가지에 공급하는 역할을 합니다. 줄기가 영양분이 없어서 말라비틀어지면 자동적으로 말라비틀어져서 쓰레기로 불태워집니다. 줄기가 가지를 만들었지 가지가 줄기를 택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가 자식을 만들었지, 자식이 언제 부모를 택했습니까? 자식이 부모를 택하지도 않았고 학교에서 유치원에서 세상에 살면서 어떤 자식이 사회적 지위가 조금 모자란다고 조금 덜 잘생겼다고 더 훌륭한 엄마를 우리 엄마라고 찾아가는 그런 자식 보셨습니까? 세상의 판단과 세상의 모양이 어떻게 가도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 그분을 찾아 가는 것이 아파도 가난해도 힘들어도 가지는 줄기에 매여 있습니다. 줄기를 배반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지 마십시오. 가지는 줄기에 철저하게 의존하여 삽니다. 줄기가 굶으면 가지는 줄기를 절대로 배반하지 않습니다. 기진맥진할 때까지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의 세계 중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뭡니까? 하나님이 신앙으로 우리를 택했습니다. 제가 택한 게 아닙니다. 은혜로 택했습니다. 택함 받은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가지는 줄기를 배반하지 않습니다. 줄기인 예수는 본래 가지를 배반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어린이 같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랬을까? 줄기는 가지를 지키고 가지는 줄기를 떠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부모를 떠나지 않습니다. 맞죠?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면 산다는 겁니다.

또 하나, 저는 이런 사실을 보면서 예수께서 우리한테 주신 말씀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는 부모를 떠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부모님 앞에서 진실로 울고 진실로 웃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린이처럼 꾸미지 않은 진실 된 모습을 부모가 원하듯이 하나님은 오늘 이 순간에도 가식보다는 진실을 가식된 웃음보다 울음을 원하십니다. 이런 진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꾸미며 살아야 하지만 어린이는 꾸밀 필요도 없고 꾸밀 수도 없고 꾸미지 않아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하나님께 보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영양을 공급하든지 살려주든지 도와주든지 하죠. 하나님으로 하여금 일 좀 시킵시다. 하나님을 교묘히 가리지 말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가슴을 후벼서 속에서 나오는 진실한 사랑을 끌어냅시다. 진실할 때만 가능합니다. 가식으로는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를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면 축복받고 아름다운 사회가 됩니까? 그냥 호소합시다. 있는 그대로 끌어내서 하나님을 움직입시다. 하늘을 움직입시다.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죄짓고 사는 거, 죄를 다 하나님이 알고 계신 것, 죄는 용서 받아야지 쌓아둘 수 없습니다. 허물은 심판받고 용서받고 새사람이 되어야지 그대로 축적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있는 그대로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말하시기 바랍니다.

최근에 어느 우화 비슷한 것을 읽었습니다.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는 말을 요즘 학부모들이 자주 하나 보던데, 두 학부모가 커피를 마시며 앉아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한 어머니가 이야기합니다. 우리 아이가 전체 학년에서 일등을 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아이의 어머니가 짜증이 났는지 그래, 좋겠다. 우리 아이는 평생 일등 못 할 거야. 컨닝하지 못하니까. 이해가 되십니까? 어느 말이 옳은지 그건 여러분이 판단하십시오.

일등을 하는 자녀를 가진 부모의 심정도 훌륭하지만 정말 자기 자식 성적이 일등만이 아니고 인간 깊이에서 일등일 수 있다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적은 우리가 부모들이 내게 할 수 있습니다. 성적을 내는 사람들의 행복의 깊이나 넓이는 우리가 아니고 안 보이는 분이 소박하지만 진실 되게 해주시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보이는 옷매무새 같은 것은, 우리한테 맡기셨습니다. 오늘 고린도후서의 말씀에 보면 눈에 보이는 것만 복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보이지 않는 복은 오히려 영원한 복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보이는 것은 우리 실존의 역사 속에서 보이는 생의 길이와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후손이 얼마나 나올지 아직 보지 않은 엄청난 역사의 지속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이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것이 중요합니까? 내 평생,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내가 쓸 수 있는 내 자신의 실존적인 역사가 얼마 되지 않지만 이걸 가지고 판단하고 싶지 않고, 내 뒤에 오는 수많은 역사들, 수많은 미래의 역사가 아름다워야 할 거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보이지 않는 역사는 그러나 반드시 계속될 역사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 주관해 주실 것입니다. 보이는 것에만 신경 쓰지 마시고 보이지 않는 엄청난 영광을 생각하십시오.

부모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어린이는 보이는 건 관여치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러나 반드시 오는 미래의 주인공들입니다. 이들을 학부모, 부모, 조부모인 당신들에게 선물로 드릴테니 하나님의 뜻대로 사십시오. 살아가면서 고난을 받습니다. 고난 속에 영광의 넓이가 있다는 걸 생각하십시오. 고난이 전부가 아니고 고난이 끝나면 무한대의 영광이 있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보이는 것 끝나면 무한대의 보이지 않는 것이 있듯이, 고난 속에서도 영광이 싹틉니다. 영광의 주인공은 다가올 세대 어린이는 제가 낳은 다가올 하나님이 주관하실 모든 역사, 그리고 그 역사 끝나고 무한대의 영원한 역사에도 있습니다. 오늘 그래서 고린도후서에서 하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이신 여러분이 혹시 낡았다고 생각하면, 낡은 옷을 입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한탄하지 마십시오. 낡은 것 속에서 새것이 움터납니다. 이것이 우리한테 주신 자식에 관한 새로운 진실입니다.

요즘 시장에 가면 물건을 줄 때 얹어주는 물건들이 있습니다. 덤으로 주는 것을 공짜라고 하는데 이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은 책을 썼습니다. 공짜 너무 좋아하지 말고, 공짜 좋아하다가 그 물건에 눈이 팔려서 많이 사게 되는데 그냥 값없이 공짜가 없다는 겁니다. 이 공짜가 산술로 말하면 ‘0’입니다. 이 ‘0’이라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인데 바빌론 시대에 바빌론 사람들이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아님, 그런데 뭐가 되는 것 같은, 우리가 ‘제로(zero)`라고 하는데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헬라 철학을 거치면서, 인도의 천문학자 한 사람이 꿈에 제로 앞에다가 1을 붙여서 10이 되게 해 놓고 이것을 십진법이라고 하여 수학의 역사를 발전시켰습니다. 본래 0이라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성경말씀 읽으면서 ‘0’이 갖는 의미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창세기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만드시고 사람을 만들 때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만드셨습니다. 이 ‘무(無)’가 아무것도 없는 공짜인데 오늘 고린도서의 말씀에 보면 공짜 0이라는 게 뜻이 뭔 줄 아십니까? 무, 허공, 아무것도 없음, 그런 뜻이 아니라 그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0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말을 바꾸면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무(無)’에서 창조하셨습니다. 사랑에서 창조하셨습니다. 사랑으로 창조해 놓았습니다. 사랑은 희망을 낳습니다. 사랑은 믿음으로 유지됩니다. 0이라는 말은 사랑입니다. 제가 그 말을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모이신 여러분은 자식을 어떻게 낳았습니까? 흙으로 만드셨습니까, 무엇으로 낳으셨습니까? 나중에 자식을 낳을 때 생물학적으로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생겼다는 그런 설명을 하시겠지요? 그런 말 이전에 부모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단순히 사랑 하나 때문에, 사랑해서 사랑이라는 ‘제로’ 공간 속에서 자식이 태어났습니다. 그 조건 없는 사랑, 값을 주지 않아도 되는 사랑에서 태어납니다. 즉 ‘무(無)’란 사랑을 뜻합니다.

예수님 말씀 다시 들어보세요. 어린 아이 같지 않으면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는 사랑 때문에 조건을 붙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부모, 사랑하는 자식, 사랑으로 맺어진 부자 관계, 모녀관계, 이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 귀중합니다. 다시 하나님 말씀입니다. 무를, 제로를,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규정할 수 없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그리고 셈법에 통하지도 않는 사랑이라 이름하는 삶의 질입니다. 사고의 질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사랑이 지배합니다. 사랑이 아프지만 사랑은 생산해 냅니다. 사랑은 힘들지만 생명을 만들어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사랑이 지배합니다. 오늘 이 땅에 사랑이 없으면 사랑으로 회복하십시오. 사랑은 우리는 복되게 하십니다. 어린이, 지금 보이지만 또 어린이는 안 보입니다. 안 보이는 세계도, 보이지 않는 역사도 사랑의 역사로 계속해 가야 합니다. 사랑이 어린 아이의 현실입니다.

오늘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고자 하셨습니다. 어린이를 내 사랑의 대상으로만 보지 마십시오. 어린이 얼굴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십시오. 어린이는 내 어린이가 아니고 내 삶의 거울입니다. 내 삶의 거울뿐만 아니라 내가 이미 투영되어 있고 나의 사랑, 어린이는 그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진실이면 더욱 좋습니다. 가식이면 어린 아이가 병듭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된 사랑, 그래서 그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세상 죄를 지고 죽어가는 일그러진 자기 얼굴을 보았습니다.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 눈물로 우리를 구원하고 부활의 영광을 주셨습니다. 예수의 얼굴에 비친 하나님의 모습, 우리 어린이들 속에 비친 우리 자신들의 모습, 앞으로 있을 모든 미래 역사 속의 빛을 오늘 우리의 결단의 모습을 하나님은 알고 싶어 하십니다. 모든 것은 사랑으로 가능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세계, 사랑의 세계입니다. 어린이와 만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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