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침례교인들은 무엇을 강조하며 믿고 있는가?(IV)

김승진 목사(침례신학대학교 명예교수)

[편집자 주] 이 글은 침례신학대학교 교수논문집인 『복음과 실천』 제59집(2017년 봄)에 실린 논문 "침례교신앙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필자가 대폭 수정하고 보완하여 기고한 것이다. 자유교회 전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침례교회에서는 무엇을 특별히 강조해서 믿고 있는지를 독자들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며 5부로 나누어 연재한다.

3. 중생한 자들로 교회회원을 삼는 교회

침례
(Photo : ⓒ Pixabay.com)
▲예수의 침례

침례교회에서는 교회를 우주적 교회와 지역교회로 설명한다. "우주적 교회"(Universal Church)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예수를 믿은 모든 신자들을 의미하고, "지역교회"(Local Church, 개교회)란 일정한 시대와 지역에서 의도적으로 모인 예수 믿은 신자들의 지역적인 공동체를 의미한다. 양자 모두 예수 믿어 거듭난 신자들이다. 지역교회는 교회 앞에서 침례를 통해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신자들을 회원으로 삼고 있다. 침례교인들은 "신자의 침례에 의한 신자들의 교회"(Believers' Church by Believer's Immersion Baptism)가 신약성서가 말하는 교회라고 믿고 있다.

깔뱅과 개혁교회는 교회를 "비가시적인 교회"(Invisible Church)와 "가시적인 교회"(Visible Church)로 구분하는데, 그 기본개념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God's Elect)이다. 그런데 누가 "택함받은 자들"(The Elected)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택하심"은 하나님의 고유한 영역이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아실 수 있을 뿐, 인간은 누가 택함받은 자인지 분명히 알 수가 없다. 침례교회에서는 예수를 진정으로 믿고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나는 택함받은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한다.

교회를 "택함받은 자들"(Those who are elected)로 정의하는 개혁교회에서는 "택함받을 자들"(Those who are to be elected)까지도 교회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필자는 <한국크리스천신문> 제114호(2015. 10. 29.)에서 어느 깔뱅주의자 논설위원장이 쓴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Q&A 란에서 어떤 성도가 이런 질문을 하였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교회에 가는데, 교회란 무엇인가요?" 논설위원장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교회의 근본적인 의미는 '창세 전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기로 작정된 모든 자들'이예요. 이것은 과거, 현재, 미래 전체를 포함하는 의미로서 선택받은 모든 자들을 가리켜요. 즉, 이미 구원받은 자들, 현재 구원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 앞으로 믿게 될 자들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지요...."

"앞으로 믿게 될 자들"이나 "장차 택함받을 자들"은 아직 예수 믿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불신자들이요 죄인들이요 그래서 전도대상자들이다. 교회를 "택함받은 자들의 공동체"로 정의하면 교회의 개념이 모호해져 버리고 예수를 믿지 않은 불신자들까지도 교회에 포함시키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불신자들까지 포함되어 있는 교회는 신약성서적 교회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서에서 처음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시면서 "교회"(ecclesia, church)를 언급하셨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여기서 "이 반석 위에"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거의 모든 프로테스탄트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를 자신을 향한 베드로의 신앙과 그의 신앙고백 위에 세우시겠다고 공언하신 것이다. 신앙고백을 할 수 없는 갓난아기나 어린 아이에게 뱁티즘을 베푸는 것은, 신앙고백에 근거한 교회를 세우고자 하셨던 예수님의 의도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침례교회는 "중생한 자들로 교회회원을 삼는 교회"(Regenerate Church Membership)이다. 중생한 자, 즉 거듭난 자는 회개하고 예수를 믿은 신자이고, 그가 교회 앞에서 침례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후 교회회원이 된다.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2000)는 "지역교회"의 개념을 선명하게 정의하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성서적 교회는 침례받은 신자들의 자치적이고 지역적인 회중이다"("A New Testament church of the Lord Jesus Christ is an autonomous local congregation of baptized believers," Blount and Wooddell, ed., 212).

4. 지역교회의 독립성과 자치권, 그리고 협동

침례교회에서는 지역교회는 독립성(independence)과 자치권(autonomy)을 가진다고 믿는다. 각 지역교회는 상호 독립적이다. 동시에 각 지역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며 자치적으로 운영된다. 19세 이상의 침례받은 교회회원들로 구성되는 사무처리회(Business Meeting, 사무총회)가 지역교회의 최고의사 결정기관이다. 지역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에서 "스스로"(autos) "규범"(nomos)이 된다. 각 지역교회는 "스스로 통치하는 유기체"(a self-governing organ)이다(김승진, 『영·미·한 침례교회사』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2016], 70).

사실 신약성서시대에는 오늘날의 지방회, 노회, 총회, 연회 등과 같은 연합회가 존재하지 않았다. 1세기 당시에 지상에는 예루살렘교회, 안디옥교회, 에베소교회 등과 같은 지역교회들(local churches)만 존재하였다. 교회역사가 진행되면서 지역교회들 간의 교제와 상호협력 그리고 치리를 위해서 지역교회들을 묶어주는 연합회가 생긴 것이다. 신약성서적인 교회를 이상으로 하는 침례교회에서는 지역교회 밖에 있는 영향력 있는 개인이나 단체(지방회, 노회, 총회, 연회 등)가 지역교회의 문제에 개입하거나 간섭하거나 통치할 수 없다고 믿는다. 지방회나 총회는 지역교회를 돕기 위해서 존재하는 기관이지 지역교회 위에 군림하는 상위기관이 아니다. 지방회나 총회에 참석하는 대의원은 지역교회의 대표가 아니라 개인자격으로 참석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남침례교에서는 대의원을 "심부름꾼, 사신, 소식전달자"을 의미하는 "메신저"(messenger)라고 부르고 있다. 비록 지방회나 총회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졌다고 하더라도 참석자가 개인자격으로 참석하여 표결을 한 것이기 때문에, 그 결정이 지역교회를 당연히 구속(拘束)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 결정을 수용할지의 여부는 최종적으로 지역교회의 사무처리회가 결정하는 것이다.

침례교인들은 지역교회의 정치와 행정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민주적 회중주의"(Christ-centered Democratic Congregationalism)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사람들만의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전체 교회회원들이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면서, 교회의 중요한 사안들을 다수결 투표(majority voting)에 의해 결정하고 운영해야 한다고 믿는다. 교회는 인본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신본"(神本), 즉 하나님의 뜻을 어떤 방법으로 찾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교황이나 감독이나 당회회원들이 기도하며 찾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19세 이상의 침례받은 교회회원들 전체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 "신본"으로 여기는 것이 침례교회의 "지역교회자치주의"(autonomy of the local church)요 민주적 회중주의(democratic congregationalism)이다. "침례교 신앙과 메시지"(2000)는 제6조항 "교회"에서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각 회중은 그리스도의 주님되심(Lordship) 아래에서 민주적인 과정들을 통해서 운영한다. 그러한 회중에서 교회회원 각자는 주님 되신 그리스도께 의무를 다하며 책임을 진다(responsible and accountable)"(Blount and Wooddell, ed., 212).

동시에 침례교인들은 "협동하는 사람들"(People of Cooperation)이다(김승진, 『영·미·한 침례교회사』, 71). 침례교인들은 지역교회 하나의 능력이나 자원으로 감당할 수 없는 대규모적인 사역(교회개척, 해외선교, 신학교육, 구제활동 등)을 위해서 지방회나 총회를 통한 협동사역에 자발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믿는다. 침례교인들은 지역교회의 "독립"(independence) 및 "자치"(autonomy)와 지방회나 총회를 통한 지역교회들의 "협동"(cooperation)은 상호 배치된다고 보지 않는다.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2000) 제14항목에서 "협동"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백성들은 상황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큰 목적을 위하여 최선의 안전한 협동을 이루어 내기 위하여 지방회들과 총회들을 조직한다. 그러한 기관들은 조직들 상호 간에 혹은 지역교회들 위에 군림하는 권위를 갖지 않는다(Such organizations have no authority over one another or over the churches). 그것들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우리 교인들의 에너지들을 이끌어 내고 연합시키고 지도할 목적으로 구성된 자발적이고 보조적인 기관들이다. 신약성서적 교회들의 회원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확장시키기 위하여 선교적, 교육적, 구호적 사역들을 추진하기 위해 서로 협동해야 한다(Members of New Testament churches should cooperate with one another in carrying forward the missionary, educational, and benevolent ministries for the extension of Christ's Kingdom)...." (Blount and Wooddell, ed., 222)

5. 종교문제에 있어서의 영혼의 유능성

침례교인들은 죄사함 받고 거듭나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구원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절대적으로 공짜인 선물인데, 그 선물은 인간이 의지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선물이다"(Salvation is an absolutely free gift from God, but which is to be wilfully received by man)라고 믿는다(김승진, 『종교개혁가들과 개혁의 현장들』, 165). 선물은 주어졌지만 받는 자가 감사하며 손을 내밀어 받지 않고서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침례교인들은 최소한 인간에게는 "생각할 수 있는 능력," "판단할 수 있는 능력," "결단할 수 있는 능력," 그래서 "복음 앞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반응할 수 있는 능력"(ability to respond affirmatively or negatively before the Gospel)이 있다고 본다. 이를 침례교에서는 "종교문제에 있어서의 영혼의 유능성"(Competency of the Soul in Religion)이라고 말한다(김승진, 『영·미·한 침례교회사』, 68).

"하나님 아래에서 종교문제에 관한 한 인간영혼이 유능성을 가진다는 교리"야말로 침례교인들에게 가장 특징적인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다. 이 교리는 모든 침례교 신앙의 특징들을 떠받치는 기초가 된다. 이것은 "하나님 아래에서의 유능성"(competence under God)이지 "인간의 자기충족성(human self-sufficiency)이라는 의미에서의 유능성"이 아니다(McBeth, "제3장 하나님은 영혼의 유능성과 모든 신자들의 제사장 직분의 원리를 주셨다," Charles W. Deweese, 『21세기 속의 1세기 신앙』, 김승진 역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2007], 110). 필자의 스승이었던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원의 레온 맥베스 박사는 우리가 즐겨 부르는 짤막한 복음성가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의 가사가 이러한 침례교신앙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영어가사를 보면 그 뜻이 더욱 선명해진다: "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 (x 3), No turning back (x 2)."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have decided, 결심, 결단)했다는 고백인 것이다(Ibid., 107).

비록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여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는 없지만,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면 마음문을 여는 결단,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으로 영접할 수 있는 결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는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free will)를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반응할 수 있는 능력(ability to respond)이 없다면 전도는 왜 하는가? 전도대상자로 하여금 결신(decision)을 하도록 하는 것이 전도 아닌가? 회개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지만 인간이 회개하는 것이고, 믿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지만 인간이 믿는 것이다. 그래서 침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라고 외쳤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고 명령하였고 약속하였다. 극단적인 깔뱅주의자들(Hyper-calvinists)은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total depravity of man)에게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동시에 "믿을 능력도 없다"고 주장하는데(Fisher Humphreys, The Way We Were [Macon, GA: Smyth & Helwys Publishing, Inc., 2002], 70), 인간이 믿을 수 있으니까 침례 요한과 사도 바울이 "믿으라"고 명령했던 것이 아닌가? 죄인 각자의 개인적인 결단에 의한 회개와 믿음, 신자의 침례에 의한 신자들의 교회, 지역교회의 독립성과 자치권, 그리스도 중심적인 민주적 회중주의, 지방회와 총회 사역에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동 등이 "영혼의 유능성"을 믿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2000)도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인해 죄인이 되었지만, 동시에 그 자유의지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거듭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 자신의 형상으로 지어진 하나님의 특별한 피조물이다. 그 분은 창조의 지고한 사역으로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 태초에 인간은 무죄하였고 창조주로부터 선택의 자유(freedom of choice)를 부여받았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하나님을 대적하여 죄를 범했고 죄가 인류에게 들어오게 되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이 사람은 그분과의 거룩한 교제로 인도될 수 있고 하나님의 창조적인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 인간성의 신성함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는 사실과 그리스도가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에서 명백하게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 민족의 각 사람은 완전한 존엄(full dignity)을 소유하고 있고 존경과 크리스천 사랑(respect and Christian love)을 받을 가치가 있다." (Blount and Wooddell, ed., 205-6)

6. 교회의 두 의식에 대한 성례전주의적인 해석의 배격

침례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위임하신 "주의 만찬"(Lord's Supper)과 "침례"는 그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거나"(symbolize) "기념하는"(memorialize) 의식이라고 믿는다.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믿는 화체설(Transubstantiation Theory)을 제4차 라테란공의회(1215) 결정 이후 미사의 핵심교리로 삼고 있다.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은 이러한 로마가톨릭교회의 화체설 교리를 비판하였지만 두 예전을 이해하고 해석함에 있어서 그 개혁이 미진하였다. 루터와 깔뱅의 경우 뱁티즘에서 "유아세례" 전통을 견지하였으며 초대교회의 침수례 방식을 회복하지 못하였고, "주의 만찬"에 있어서도 루터는 공재설을, 깔뱅은 영적 임재설을 주장하였다.

"공재설"(Consubstantiation Theory)이란 떡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떡과 포도주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really) 그리고 육체적으로(physically) 임재한다는 주장이었다. "영적 임재설"(Spiritual Presence Theory)은 떡과 포도주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으로(spiritually) 임재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이나 성령은 인격체이신데, 무생물이자 비인격체인 떡과 포도주에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임재하시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무생물이자 비인격체인 떡과 포도주에 육체적이든 영적이든 임재하여 거룩하게 되고 그것들이 영적인 양식이 된다고 믿는 것은, 화체설이 그러하듯 일종의 신앙적인 미신이다.

성령께서는 떡과 포도주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은 신자들에게 임하셔서(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순간부터 이미 임해 계신다), 그 떡과 그 포도주를 나를 위해 십자가상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살과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 "간주"(regard)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의 만찬에 참예하면서 2,000년 전에 십자가상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공재설이나 영적 임재설은 떡과 포도주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전이된다는 "성례전주의"(sacramentalism)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로마가톨릭교회의 화체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성례는 형식일 뿐이고 상징일 뿐이고 기념일 뿐이라는 "성례형식주의"(sacramentarianism)에 입각한 해석이 신약성서적인 것이고 그것이 진정 영적인(spiritual) 것이다. 침례교회에서는 성례전주의를 배격하고 성례형식주의를 따르고 있다. 떡과 포도주 앞에서 성직자가 기도하거나 축사한다고 해서 떡과 포도주 그 자체가 거룩하게 되는가? 한국교회에서는 거룩할 '성'(聖) 자를 붙여서 성만찬(聖晩餐)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성만찬에 해당하는 용어는 신약성경에서 "주의 만찬"(고전 11:20), "주의 잔"과 "주의 식탁"(고전 10:21), "주의 떡이나 잔"(고전 11:27), "주의 몸과 피"(고전 11:27)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주님이 차리시고 주님이 베푸시는 식사이고 주님이 주인이신 저녁식사라는 의미이다. "주의 만찬"(Lord's Supper)이 성경적인 용어다. 성만찬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다.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2000)에서도 침례와 주의 만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상징하고"(symbolize)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기독교적인 뱁티즘-필자 주)은 십자가 죽음을 당하시고 장사지낸바 되시고 부활하신 구주에 대한 신자의 믿음을 상징하는 순종의 행위(an act of obedience symbolizing the believer's faith in a crucified, buried, and risen Savior)이다.... 교회의 의식으로서 그것은 교회회원됨의 권리와 주의 만찬에 참예하는 전제조건이다.

주의 만찬은 순종의 상징적인 행위(a symbolic act of obedience)인데, 이 의식을 통하여 교회회원들은 떡과 포도나무의 열매를 받아먹음으로써 구속주의 죽음을 기념하고(memorialize) 그분의 재림을 고대한다(anticipate)." (Ibid., 213-4)

(계속)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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