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글은 침례신학대학교 교수논문집인 『복음과 실천』 제59집(2017년 봄)에 실린 논문 "침례교신앙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필자가 대폭 수정하고 보완하여 기고한 것이다. 자유교회 전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침례교회에서는 무엇을 특별히 강조해서 믿고 있는지를 독자들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며 5부로 나누어 연재한다.
7. 비신조의 사람들(신앙고백의 사람들)
침례교인들은 대체로 공적인 예배에서 "사도신경"(Apostles' Creed)을 암송하지 않는다. 한국기독교계에서 한 때는 침례교인들이 공예배에서 사도신경을 암송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침례교회를 이단시하기도 했었다. 침례교인들은 기본적으로 신조를 배격하는 "비신조의 사람들"(Non-creedal People)이다. 침례교인들은 66권의 구신약 성경만을 최종적인 권위로 여기고, 인간들이 만들어 낸 신조(Creed, 신경)에 대해 무오성과 영원성과 최종성 등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침례교인들은 "신앙고백의 사람들"(People of Confessions)이다. 침례교인들은 각 시대와 각 지역에서 자신들의 믿는 바를 "신앙고백"으로 제작하여 공표해 왔다. 기본적으로 신조는 "지시적"(prescriptive, 명령적, 규범적)이고, 신앙고백은 "설명적"(descriptive, 묘사적, 진술적)이다.
"신조" 혹은 "신경"이란 "너희는 이렇게 이렇게 믿어야 한다"고 당위(must)를 규정한 강제성 있는 글귀이다. 고대교회 교부들이 약 4세기경에 지중해 연안에서 만들었다고 간주되는 사도신경이, 성경처럼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오늘날 대전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을 구속한다는 것은, 구신약 성경만을 유일한 권위로 믿는 신앙을 훼손하는 것이다. 내용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글귀에 대해 영원하고 무오하고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는 것으로 여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복음의 내용과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해서 잘 요약해서 진술한 글귀이긴 하지만, 사도신경은 성경도 아니고 성경과 대등한 권위를 가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발명품(human invention)일뿐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도의 모본으로 가르치신 "주기도문"(Lord's Prayer)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사도신경"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글귀일 뿐이다.
"신앙고백"이란 "우리는 이러 이러한 것들을 (강조해서) 믿는다"라는 인간적인 신앙진술(human statement of faith)이다. 따라서 그것은 그 당대에 그 지역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믿는 바를 진술한 것인데,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 따라서 추후에 수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침례교인들은 자신들이 공표한 신앙고백이 신조나 신경으로 사용되는 것을 경계해 왔다. "침례교인 신앙과 메시지"(2000) 서문(Preamble)에서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2) 우리는 그것들(신앙고백들-필자 주)을 최종성(finality)과 무오류성(infallibility)의 성격을 가지는, 우리 신앙의 완전한 진술(complete statement of our faith)로 간주하지 않는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지만, 침례교인들은 어느 때에라도 현명하고 적절하다고 생각될 때에 자신들의 신앙고백을 수정할 자유를 가진다.
(5) 그것들(신앙고백들-필자 주)은 성경으로부터 이끌어낸 종교적 확신의 진술이며, 생각의 자유나 삶의 다른 영역들에 대한 탐구를 방해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Ibid., 196-7)
신앙고백은 무오류성, 영원성, 지역적인 보편성, 강제성 등을 주장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침례교인들은 오직 구신약 성경 66권만이 신자들의 신앙과 삶의 최종적인 규범이라고 믿으며, 신앙고백은 단지 성경해석을 위한 안내자 역할을 할 뿐 신자들의 양심을 지배할 권위를 가진다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침례교인들에게는 "그 책의 사람들"(People of THE BOOK)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2000)에서는 18개 항목들 가운데 "성경" 항목을 맨 앞자리에 놓음으로써 침례교인들의 신앙과 삶에서 차지하는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거룩한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씌어졌고 인간을 향한 그분 자신의 계시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교훈의 완벽한 보고(寶庫)다. 저자는 하나님이고 기록된 목적은 구원이고 내용은 어떠한 오류도 섞이지 않은 진리(truth, without any mixture of error)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성경은 전적으로 참이고 신뢰할만하다....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인데, 그 분 자신은 거룩한 계시의 초점이시다." (Ibid., 199-200)
침례교인들은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인 66권의 성경(Scriptures) 안에서 그리고 그 권위 아래에서 자유를 향유하지, 인간들이 만들어낸 신조(Creed, 신경)나 교리(doctrine)나 신학(theology)에 의해서 자신들의 영혼이 속박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침례교인들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님(Lord)으로 믿으며,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1b-32)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자 한다.
8. 영혼구원과 선교의 사람들
거의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영혼구원과 선교에 헌신하고 있지만, 특히 침례교인들은 "영혼구원과 선교의 사람들"(People of Soul-winning and Missions)이라고 불린다. 침례교인들은 영혼구원(전도)과 선교를 지역교회와 신자들이 감당해야 할 가장 우선적이고 긴박한 사명이라고 믿는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셨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사실 16세기 주류종교개혁가들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운동으로 로마가톨릭교회를 개혁하면서 유럽 내에서 일정한 세력과 영역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들을 지키고 확산시키고 프로테스탄트 신학체계를 형성하는 일에만 주력하였지, 유럽 밖의 잃어버려진 영혼들(lost souls)에 대한 선교에 대해서는 별로 적극적이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지상명령(마28:19-20)은 1세기 사도시대에 이미 성취된 것으로 여겼다(김승진, "1. 16세기 주류 종교개혁운동의 한계," "제9장 아직도 미완성인 종교개혁," 『종교개혁가들과 개혁의 현장들』, 329-30).
프로테스탄트들에 의한 세계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792년 10월에 영국 침례교 목사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에 의해 최초의 본격적인 프로테스탄트 해외선교단체인 "침례교선교협회"(Baptist Missionary Society)가 결성되면서부터였다. 그는 같은 해 봄에 『질문서』(An Enquiry into the Obligation of Christians to Use Means for the Conversion of the Heathen)라는 책을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근대선교운동의 대헌장"(Magna Charta of Modern Missionary Movement)이 되었다. 윌리암 캐리에게는 "근대선교운동의 아버지"(Father of Modern Missionary Movement)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고, 실제로 그는 그 이듬해인 1793년 초에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캘커타(Kolkata) 지역으로 가서 일평생 선교사역에 주력하였다. 그의 선교활동이 알려지면서 비로소 영국과 미국에 있는 각 프로테스탄트 교단에서 각종 해외선교단체들이 만들어졌고, 미국에서는 "해외선교를 주목적으로 한"(for foreign missions) 최초의 침례교 전국총회인 일반선교총회(GMC, General Missionary Convention)가 1814년에 결성되었다. 윌리엄 캐리의 선교활동은 19세기를 "프로테스탄트 세계선교를 위한 위대한 세기"(The Great Century for the Protestant World Mission)가 되게 하는데 직접적인 촉매의 역할을 하였다(김승진, 『영·미·한 침례교회사』, 193-221).
윌리암 캐리는 1792년 봄에 노스햄프턴 침례교지방회 예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들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들을 시도하라"(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는 주제로 설교하였다(Ibid., 199). 또한 1834년에 독일 땅에 최초의 침례교회를 세웠고 스위스와 네덜란드 등 유럽의 인근 국가들에 복음을 증거하고 침례교회를 세웠던 요한 게르하르트 옹켄(Johann Gerhard Onken)은 "침례교인은 누구나 선교사이다"(Jeder Baptist Ein Missionar, Every Baptist A Missionary)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김승진, "Johann Gerhard Oncken과 19세기 유럽침례교운동을 위한 그의 기여," 『복음과 실천』 제55집 [2015년 봄]: 163-92).
"침례교인들의 성경귀절들"(Baptists' Phrases)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요한복음 3:16과 마태복음 28:18-20을 가리킨다. 침례교인들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님의 유언(The Great Commission, 지상명령)을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침례교인들은 "지상명령의 사람들"(People of the Great Commission)이라고도 불린다. 동시에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요 나의 주님"(My Savior AND My Lord)으로 믿는 침례교인들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영생을 얻도록 하는 사역을 가장 시급한 급선무라고 여긴다. 근대선교운동의 문을 열었던 윌리엄 캐리와 요한 게르하르트 옹켄 같은 사람들을 신앙적인 선배로 모시고 있는 침례교인들은, 영혼구원을 향한 열정으로 충만하여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침례교인들이 자랑하는 많은 교리적인 정체성(doctrinal identity)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침례교인들은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들, 선교하는 사람들"이라는 별명에 큰 자부심과 함께 중차대한 책임감을 가진다.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2000) 제11항목의 제목이 "전도와 선교"(Evangelism and Missions)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민족들을 제자삼기 위해 힘쓰는 것(to endeavor to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들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들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인간의 영이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태어났다는 의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민족들(all nations)에게 복음을 설교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으로 뒷받침되는 구두의 증언에 의하여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과 조화를 이루는 여러 다른 방식들에 의하여,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시켜 그리스도께로 지속적으로 인도하는 것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의 의무(duty)이다." (Blount and Wooddell, ed., 218-9)
V. 나오면서
이상에서 우리는 침례교인들이 전 세계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과 그리고 16세기 주류 종교개혁가들(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과 상호 공유하고 있는 신앙에 대해 살펴보았다. 침례교인들만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들인 것처럼 다른 그리스도인들과는 전혀 무관한 유아독존적인 사람들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19세기 중반에 미국 남부지방에서 소위 말하는 지계석주의자들(Landmarkists)이 "침례교회 전승설"의 역사관을 맹종하면서 지극히 배타적이고 고립적인 태도를 취했었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이들과 유사한 신앙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침례교 목회자들과 침례교인들이 전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입장은 침례교회를 "비역사적인 교회"(ahistorical church)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중세 1,000년의 기독교 역사나 종교개혁운동 이후에 등장했던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의 역사도 부정하게 되고, 오직 침례교회만이 예수님 이후 지금까지 이들의 역사 밖에서 지속적으로 존속해왔던 참 기독교회라는 아집에 빠지게 된다. "침례교회 전승설"은 역사적이고 문헌적인 증거에 근거한 역사관이 아니다. 역사이해와 역사서술은 주관적인 믿음(subjective faith)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들(objective facts)에 근거하여야 한다.
침례교회는 "역사적인 교회"(historical church)다. 침례교운동은 교회역사, 더 나아가서 세계역사 속에서 태동한 역사적인 기독교운동이었다. 1525년 1월 21일에 신자의 뱁티즘을 행함으로 시작되었던 성서적 아나뱁티스트운동과 매우 유사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물론 차이점도 없지 않다), 침례교운동은 1609년에 영국의 분리주의자들(English Separatists)인 게인즈보로교회 교인들에 의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지구상에 최초로 태동하였다. 따라서 침례교회도 종교개혁기(1517-1648)에 종교개혁운동의 일환으로 역사 속에 등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와 중세 교회들의 그리스도인들이 믿어 왔던 신앙의 내용과 전통도 부분적으로 공유하고 있고, 주류종교개혁가들이 강조해왔던 개혁적인 신앙의 내용도 일정 부분 수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침례교운동은 일종의 대중운동이었다. 루터교회나 개혁교회(장로교회)나 감리교회가 루터나 멜랑크톤, 쯔빙글리와 깔뱅, 그리고 존 웨슬리 같은 위대한 개혁가나 개혁신학자나 부흥설교가에 의해 창도된 개혁운동이었다면, 침례교회는 신약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도하셨던 참 교회의 모습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17세기 당시에 회복 혹은 재현하려고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대중적인 개혁운동이었다. 그들이 암스테르담으로 피신을 와서 유럽대륙에서 발생했던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메노나이트들)과 접촉을 했고 신앙적인 교류를 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었지만, 그 이전에 이미 영국에서는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c.1494-c.1536)에 의해 번역된 영어 신약성경(NT, 1525)이나 마일즈 카버데일(Myles Coverdale, c.1488-1569) 의해 편찬된 "위대한 성경"(The Great Bible, 1539)이나 제임스 1세 왕(King James I, 1566-1625)의 주도로 번역된 킹 제임스 버전 영어성경(KJV, 1611)이 지성인들 사이에서 두루 읽혀지고 있었다. 신약성경에서 계시된 교회와 당시의 영국국교회의 모습을 비교해 보고,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영국국교회를 떠나 독립된 교회를 이루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된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침례교회는 지상에 탄생하게 된 것이다.
침례교회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종교의 자유(Religious Freedom for All)와 교회와 국가의 분리(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를 기본원칙으로 삼고 있다. 교회는 어디까지나 "신자들의 영적인 몸"(Spiritual Body of Believers)으로서의 공동체여야 한다는 확신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네덜란드 아나뱁티스트들의 영향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신약성경에서 발견해낸 신앙원리였다. 교회와 국가가 긴밀하게 결탁되었던 로마가톨릭교회의 유산인 유아세례 전통을 초창기 침례교 개척자들은 과감하게 배격하였고, 교회는 세속국가나 권력기관과는 무관한 신약성서적 교회, 영적인 출생을 경험한 거듭난 신자들의 공동체로서의 교회, 다시 말하면 콘스탄틴 황제의 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 313) 이전의 순수했던 교회를 회복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침례교회는 국교체제의 교회를 배척하는 자유교회 전통(Free Church Tradition)에 속하는 교회로서 독특한 신약성서적인 교회론과 민주적 회중정치 원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 한국의 침례교인들은 이러한 침례교신앙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깨닫고 침례교인됨의 긍지를 가져야 한다. 동시에 침례교회와는 다른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조금 다른 신앙을 견지하고 있는 건전한 기독교회의 그리스도인들과는 열린 마음으로 주님 안에서 믿음의 형제자매로서 교제하고 협력할 수 있어야 하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