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는 연일 부정축재 공방으로 소란스럽다. 사람이 권력을 쥐게 되면 눈먼 돈의 향배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가 보다. 그런데 권력자가 그것에 약간의 관심만 표시하면 기민한 관계자가 그 관심을 대신 실행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직접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그 관심은 깔끔하게 포장된 선물이 되어 책상 위에 올려져 있게 된다. 처음에는 뭘 이런 선물을 주느냐며 조금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다가도 그런 선물이 잦아지게 되면 사람은 재미를 느끼게 되어 있다. 재미는 욕심으로 이어지고 욕심은 밑도 끝도 없이 깊어진다. 그러면 결국 관계자에게 모든 과정을 소리 나지 않게 처리하도록 요구하게 된다. 이쯤 되면 사달이 나게 되어 있다.
이러한 권력형 부정축재는 우리나라 현대사를 다채롭게(?) 수놓았다. 그리고 알고봤더니 그 당사자가 교회 중책을 맡은 사람인 경우가 꽤 많았다. 이런 보도들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그들이 수행하던 장로나 안수집사나 목사라는 직책이 그들의 종교적 기호의 표현일 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맘몬의 유혹에 취약한 인간적 약점을 감안하더라도 교회의 중책이 신앙의 깊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그리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대형교회의 세습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부자로 사는 것이 문제일 수는 없다. 하지만, 돈을 사랑하는 것이 문제라는 사실을 모른 채 사는 것은 문제이다. 여기에는 개발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소유와 독점의 시대정신을 향유해왔던 습성이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어쨌든 위의 현실은 돈을 사랑하는 세상의 원리대로 살다가 그렇게 사는 대로 돈에 대해서 생각한 결과로 발생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돈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재미있는 예화가 있다. 데이비드 라이닝거(David Leininger) 목사님께서 "천국"(1997.3.30.)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인용하셨다. 한 부자가 임종 석상에서 하나님과 협상을 했다. 자기가 천국에 갈 때 자기 재산을 갖고 가게 허락해달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런 요청이 매우 뜻밖이었지만 이 부자가 매우 신실했기 때문에 여행용 가방 하나 정도는 갖고 올 수 있다고 허락하셨다. 때가 되어 그 부자가 천국의 진주문 앞에 당도했다. 그는 두 손으로 여행용 가방을 끌고 왔다. 그 가방 안에는 금괴가 가득 들어 있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베드로가 말했다: "미안한데, 규칙을 아시지요? 그 가방은 들고 갈 수가 없습니다." 부자가 말했다: "하나님께서 그래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가방 하나는요." 베드로는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에 그 부자를 입장시키려고 하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들어가시기 전에 제가 가방의 내용물을 확인해야만 합니다." 베드로는 가방을 열고는 금괴를 보았다. 그리고 의아한 듯이 물었다: "도로포장재를 갖고 오셨어요?"
천국에서는 인간들이 지상에서 기를 쓰며 모았던 금괴가 도로포장재로나 사용된다는 이야기이다. 재물이 하찮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가치를 영원토록 지니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일러주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천국의 도로는 지상에서 포장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신 것을 환기시킨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이르신 말씀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천국에 가서 내가 걸을 찬란한 금장도로는 지상에서 재물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때 이미 건설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영생을 믿는 사람이라면 재물을 지상에 쌓아두며 자기 배만 두들길 일이 아닌 것이다. 물론,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보물'은 반드시 재물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마음이 가 있는 것이 우리의 '보물'이니까 그 '보물'은 하나님 나라와 연계되어 있을 때 영원한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재물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생각이 먼저 우리 의식 속에 각인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예화 속의 부자처럼 지상의 가치를 영속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영원한 천국의 가치를 지상에서 구현하는 일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프랑스 작가인 폴 부르제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지 않는가?: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결국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천국의 가치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나님 나라를 지상에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며 그 가치를 미화하는 대로 살게 되면 돈을 좇는 생각만을 하게 된다. 바울 사도도 이렇게 일렀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이 세대가 살아가는 방식과는 다르게 마음을 새롭게 해야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부정축재는 이 세대를 본받아 이 세대가 사는 대로 생각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