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역이 유아성장의 한 과정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일 것이다. 간염은? 미하엘은 15살의 가을 어느 날 간염으로 인한 구토로 괴로워할 때 한나를 만난다. 그리고 그 만남은 한나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야 했던 역사라는 대의와 그 안에 숨겨진 한 개인의 진실을 찾아 떠나는 긴 항해의 시작이었다.
영화 홍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영화가 관객을 끄는 표면적인 모티브는 스물 한살의 나이차이가 나는 남녀의 사랑일 것이다. “그 비밀집회를 여는 집단은 피를 나누어 마시는 의식에서 집회를 시작한대!”라는 식의 얘기가 비밀집단의 성격을 더 내밀하게 만들듯이 그들에게도 사랑전의 의식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책읽기와 목욕이다. 목욕이라면 모를까 책읽기는 왜? 더구나 <오디세이>나 <전쟁과 평화>같은 문학작품들이 그 목록이라니.
그 의식이 시작된 것은 한나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고 한나에게 빠져있는 15살의 미하엘에게 그 의식의 의미나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 설명 없이 한나가 사라진다. 몸과 마음의 기억 속에 남은 한나는 시간의 바깥쪽으로 밀려나는 듯 보이지만 미하엘에게 있어 그녀는 어떤 여성도 대신할 수 없는 시간의 정지이기도 했다. 그리고 법대생 신분으로 나치과거사 재판에 참석한 미하엘은 법정에 선 한나를 다시 봄으로써 그들의 사랑의 의식이었던 책읽기의 의미에 대해 비로소 질문을 시작한다.
법정에서 숨죽이며 한나의 얘기를 듣고 있는 미하엘. 나치 친위대의 전력에 대해 이유를 묻는 판사에게 한나는 오히려 되묻는다. "판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어요?"라고.
우리는 영화 “어 퓨 굿맨”속에 등장하는 대령이나 “닉슨 대 프로스트”의 닉슨에게서 권력의 최고지점에 있다가 용의자나 불의한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자신들에게만 적용되는 면죄부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언술을 보게 된다. 즉 그들에게만 불의가 정의로 적용되는 왜곡된 사고체계의 구도를. 위에 언급한 한나의 되물음 역시 나를 죄인으로 몰아세우는 당신들 역시 나치가 있었던 시대를 함께 산 사람들이거나 국민이 아니었냐는 공범의식을 일깨우는 공격적 언술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녀가 보이는 태도는 체화된 당당함이 아니라 어리둥절함 그것 자체였다.
그녀의 다소 직설적이지만 재판정에 피고의 신분으로 서있는 자신을 세상이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상황파악을 못하는 유아적인 그래서 한편으로 순수하게까지 들리는 이 반문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재판정에 참석한 어떤 사람에게도 적용되지 않지만 오직 한나에게만 적용되는 문맹에 대한 치명적인 인식이었다.
한나가 대문자적인 인류애의 가치에 앞서서 알게 된 것은 글자를 모름에 대한 공포였으며 문맹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당연히 누리는 삶의 영역가운데 한 부분을 박탈당한 한나가 선택한 생존의 우선순위는 문맹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삶의 영역을 한정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문맹인 자신에게 다행스럽게 주어진 일을 누구보다 잘해내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것이 나치의 친위대로서의 역할이었을지라도.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에 그녀가 관여할 수 없는 것처럼 나치의 결정은 그녀의 영역 밖의 일이었다. 오히려 조만간의 죽음이 내정된 강제수용소의 소녀들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란 단 며칠간이지만 따뜻한 잠자리와 먹을 것을 주면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게 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목소리 속에서 그녀 역시 냉혹한 현실 속에서 잠시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누군가가 책을 읽어준다는 것은 일종의 사랑의 방식이었으니까.
그러나 나치의 통치는 끝이 났고 다시 문맹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찾아 살고 미하엘을 만나 사랑하고 그리고 떠나야 했던 그녀는 별안간 나치통치의 주체가운데 하나로 법정에 서게 된다.
따라서 한번도 세상의 주체일 수 없었던 그녀에게 주체로서의 역할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재판관에게 다시 되묻는 “판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어요?”라는 그녀의 질문은 자신의 이해의 한계에 대해 도움을 구하는 솔직한 질문인 것이다.
그러나 나름대로 생존이라는 문제에 당당한 의지를 갖고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던 그녀는 이송 중 화재사건의 책임자를 가려내는 과정에서 요구된 필적감정에서 갑자기 모든 의지력에 손을 놓아버린다. 그리고 문맹을 밝히는 일 대신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자신이 했다고 거짓 증언을 함으로써 무기징역을 언도받는다.
이제 미하엘은 그녀의 말하지 못한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기억의 연인의 선택에 대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놓고 번민에 빠지게 된다. 그 번민은 미하엘이 한나의 면회를 위해 나섰던 길을 되돌아 역사의 장소인 강제수용소로 향하는 선택으로 마무리된다.
눈 내리는 회색의 하늘아래 펼쳐진 강제수용소를 향해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고 강제수용소 내부를 꼼꼼히 살펴보는 동안 한나는 면회소에서 이제나저제나 미하엘이 나타날까 기다리다 면회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간수의 목소리에 희미한 전구가 빛을 비추는 좁은 교도소의 통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한나와의 열정적인 사랑 속에서도 드러나지 않게 조금씩 한나를 배신해왔던 미하엘만이 알고 있는 지난 시절의 방식이었으며 한나가 그렇게 떠나지 않았다면 결국은 미하엘이 먼저 한나를 버렸을 것이라는 마음 깊은 곳의 죄의식을 역사라는 대의를 통해 덜어보려는 내면의 행동이기도 했다. 미하엘은 그렇게 반만큼만 한나를 이해하고 사랑했다. 아니 좀 더 정직하게 말하면 소년시절 추억 속 자신의 사랑은 지키고 역사의 죄인은 단죄하는 셈이었다.
그것은 미하엘이 그들 사랑의 의식이었던 책 읽는 일을 다시 시작하고 녹음해서 한나에게 보내주지만 한나가 미하엘의 목소리를 따라 단어를 배워가는 방식으로 어렵게 글자를 깨우치고 서툰 글씨로 써 보낸 편지 속에서 답장을 기다리는 그녀의 간절한 마음을 읽으면서도 끝까지 견지하는 냉정함속에서도 보여진다.
사랑에서 의무만 남은 표정 없는 지난날의 연인을 한나는 출소 전날 비로소 만나게 된다.
이미 흰 머리가 수북히 내려앉았고 지난날의 육감적인 몸매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을 알면서도 한나가 미하엘을 보려고 했던 건 미하엘만은 자신을 이해할 거라는 믿음이 아니었을까?그래서 그녀는 미하엘의 나치의 전력에 대해서 법정에서의 얘기처럼 설명할 것이 없냐는 질문에 “넌 알거야”라는 단정을 담아 비로소 얘기를 시작한다. “나는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누구도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런저런 일을 하게 만들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어. 그리고 넌 알 거야. 너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너한테 해명을 요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야. 그렇기 때문에 법정 역시 나한테 해명을 요구할 수 없었어. 하지만 죽은 사람들은 내게 그것을 요구할 수 있어. 그들은 나를 이해하거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법정에 있을 수는 없었지. 하지만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면, 그들은 나를 특히 잘 이해했을 거야. 이곳 교도소에서 그들은 나하고 자주 같이 있었어. 그들은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매일 밤 나를 찾아왔어” 미하엘은 이미 반 이상의 마음을 역사라는 대의에 주어버렸고 한나는 18년만의 해후이자 마지막 재회에서 미하엘의 마음을 비로소 읽게 된다.
그리고 자신에게 죽음을 의미하는 문맹을 밝히는 일 대신 선택했던 18년의 무기징역을 다 치루고 출옥하는 날 동틀 무렵에 자살한다. 그 무기징역의 세월 속에는 한나가 직접 책을 읽을 수 있게 됨으로써 나치 친위대로서 자신의 선택이 무엇이었나를 알아가는 과정도 포함되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그녀는 자신의 분신처럼 아끼던 책을 꺼내 책상위에 차곡차곡 쌓은 뒤 그것을 밟고 올라서 목을 맨다.
나는 어쩐지 한나가 밟고 올라서는 책들이 먼저 간 사람들, 그러니까 한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 거라고 한나가 믿는 유일한 이들을 향해 내딛는 한발 한발의 계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하엘은 15살의 어느 가을 성장통과도 같은 간염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 한나를 만나고 한나는 문맹이라는 고통 속에서 비극적인 역사와 만난다.
두 사람의 이별 후 세월이 흐르고 이제 한나는 교도소에서 어렵사리 얻은 글자 읽은 능력으로 모든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이 가능한 때이지만 자신이 문맹일 때 느껴야 했던 그 벽이 자신 앞에 다시 놓여있음을 미하엘과의 재회에서 알게 된다.
그녀가 한번 더 생존이라는 절대적 의지를 발휘해 문맹을 숨기기 위해 떠났던 것처럼 자신의 나치 친위 전력을 알지 못하는 곳으로 정처 없는 유랑의 길을 떠나야할까? 한나는 그녀가 갈 곳을 비로소 알았고 그것은 정처 없는 유랑의 마지막 정착지였다.
자신이 교도소에서 모은 재산은 이송 중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가운데 한명인 유태계소녀에게 남기고 미하엘에게는 안부 인사를 남기고. 이제 그녀의 진실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은 그들의 몫으로 남은 것이다. 미하엘이 만난 중년의 여인이 된 유태계 소녀는 한나가 모은 돈은 거부하고 자신의 기억이 담긴 상자만을 받는다.
너무 늦게 한나의 진실을 알아버린 미하엘은 한나의 죽음 뒤 우리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읽어준다. 그것은 문맹인 한나에게 닫혀있는 한 세계를 책을 읽어줌으로써 알게 해주었듯이 대문자로서의 역사, 정의의 잣대에 의해 마음 안에 등을 돌린 채 돌아서지 않는 우리에게 한 인간의 진실에 그만 몸을 돌려 귀 기울여 듣자는 초대이기도하다. 이 진행형의 초대에 몸 돌려 귀 기울이는 이들은 모두 한나처럼 미하엘의 청중일 것이다.
ⓒ 웹진 <제3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