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11월 15일(목) 오후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1층 소강당에서 열린 기독교신문 <베리타스> 창립 10주년 기념감사예배에서 서광선 목사(본지 회장,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진리가 무엇이냐"를 주제로 설교를 맡았다. 서 목사는 이 설교에서 거짓으로 치부되었던 예수의 유언비어와 유신 시대의 유언비어를 각각 권력과 진리, 권력과 언론의 관계로 짚어보면서 진리를 조롱하는 권력자(빌라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예수의 말씀과 "하나님 나라"의 선포의 틀에서 찾으며 기독교 언론의 사명을 살펴보고자 했다. 서 목사의 동의를 얻어 설교문 전문을 싣는다.
베리타스 10주년 기념예배 설교
"진리가 무엇이냐?" (빌라도)
오늘 기독교 인터넷 신문 [베리타스] 창립 10주년을 축하합니다. 우리 신문의 이름이 veritas, 라틴어로 "진리"이기에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예수님에게 질문했던 예수시대의 로마 총독 빌라도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예수님 십자가 재판을 기록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등 "공관복음"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유독 요한복음에만 빌라도의 역사적이며 철학적인 질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 성서학자들의 대답은 대개, 요한복음을 기록한 저자는 특히 진리의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오늘 봉독한 요한복음 8장 31절과 32절의 말씀을 봐도, 예수님의 유명한 말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든가. 14장 6절에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더욱이 요한복음 첫 장 첫 마디에 logos 하나님의 말씀의 성육신, 말씀과 빛을 말하고 있는 걸 보면, 요한복음 전체의 주제가 진리, 진리로서의 예수님을 말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된 것은 예수님이 먼저 진리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아무튼, 네가 왕이냐?"하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그건 네가 한 말이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일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 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그러니까 빌라도는 예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으니까, 진리 편에 선 사람이 아니라는 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고발한 제사장들과 유태 민중들은 모두 진리 편에 서지 않았다는 게 됩니다.
로마 총독이란 사람이 죄수로 잡혀 온 예수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하고 질문한 걸 보면, 순진한데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아니 자기도 모르게 그런 엉뚱한 질문을 한 것 같습니다. 하긴 로마 군인이고 유태 총독 정도의 정치인이고 권력자이면, 진리가 무언지 모르고 진리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동안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부에 거짓 보고도 하고, 유언비어도 퍼뜨리고 하면서 그 총독의 자리를 유지해 왔을 터이니, 진리가 무엇인지, 거짓이 무엇인지 가늠하기도 어려워졌을 겁니다. 아니면, 야, 예수라는 이 죄수, 내 앞에서 감히 "진리"운운하고 있네...그래서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나 하는 말이야? 힘과 권력이 뒷받침하지 않는 진리가 진리냐? 진리가 힘이 아니라, 힘이 진리라는 걸 왜 몰라?" 하고 예수님을 조롱하는 것인지도 오르겠습니다.
우리 1970년대 유신 군사 독재시대에는 이른바 "긴급조치, 1호와 4호 그리고 마지막 9호"에는 제일 먼저, "유언비어 살포 금지"조항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른바 당시의 신문에 나오는 "가짜 뉴스"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유명 신문들, New York Times지, Washington Post 나, 주간지, Times, Newsweek에 실린 유신 한국 기사를 읽지 못하게 모두 가위로 질라 내거나 새카맣게 먹칠을 해 읽지 못하도록 해서, 내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미국에 번지고 있는 한국의 "유언비어,"별명으로는 "UB 통신"을 읽어 보려고, 롯데호텔 건너편에 있는 미국공보원을 찾아 미국신문 기사들을 찾아보고 진짜 UB 통신, 유언비어를 퍼뜨렸습니다. 그러면, 친구들이 "그 말 진짜야?" 요새말로, "그거 실화야?" 질문하면서 유신정권의 공식 뉴스는 믿지 않고 유언비어를 더 믿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의 질문은 빌라도의 질문이었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진리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무슨 소리를 들어도 "실화야? 진짜 맞아? 진실이 뭐야?"하며 헤매게 되는 세상이야 말로 암흑의 세상, 어둠의 세상입니다.
1970년대 한국의 신학사상, 민중신학자들. 특히 신약성서학자 안병무 박사와 기독교사회윤리학자 현영학 교수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유언비어였기에, 예수님 자신도 유언비어, 가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나서 하신 말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는 말부터가 유언비어고 유태민중을 선동해서 유태 권력자들과 로마제국의 평화를 교란시키기 위한 요새 말로 "국가안보"를 위험하게 하는 "국가보안법" 위반자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제국이 멀쩡하게 존재하고 있는데, "하나님 나라가 왔다"고 하면, 이건 체제전복 아니면 혁명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유언비어를 기독교는 케리그마, 복음이라고 믿게 했던 것입니다. 예수의 존재 자체가 유언비어였고, 예수의 부활 역시 예수를 따라다니던 여자들이 퍼뜨린 유언비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말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고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진리를 민중이 퍼뜨리는 유언비어에서야 듣고 알게 된다는 요한복음의 아이러니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 인터넷 신문 [베리타스]는 회사 이름대로 진리를 말하고 있는가? 스스로 묻게 됩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한 질문과는 질적으로 다른 질문입니다. 꼭 같은 사건을 목격했는데도, 신문사 기자는 거의 반대되는 기사를 제공합니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사건이란 없는 것이고, 한 가지 사건을 목격한 기자의 주관적인 해석을 기사로 제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이른바 포스트 모던 시대의 진리담론입니다. 그래서 "객관적인 역사는 없다. 해석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진리를 전달하는 기자들의 책임은 제대로 된 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해석의 틀" "사건을 보는 눈"-- "인문학의 틀?" 아니면 "사회과학의 틀"? 무슨 틀로 이 세상을 보고, 사건을 보고 해석을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가령, 근본주의 신학의 틀에서 오늘의 역사를 보고 해석하는 것과, 자유주의 정치신학의 틀로 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할 때 그 둘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 됩니다. 나아가서 "힘 있는 자, 갑 질 하는 자의 진실"과 "힘 없는 자의 진실, 갑 질 당하는 자의 진실" 역시, 엄청 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유언비어는 갑 질 당하는 민중의 진실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의 이야기를 기사화 할 때, 목회자의 시각에서? 아니면, 평신도의 시각이나, 여성과 청년의 시각에서 보고 쓰고 있는가? 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문들은 예수님의 하늘나라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일, 우리를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하는 진리 편에서 그 사명을 다하고 있는지, 깊이 반성하면서 오늘 우리의 지난 10년을 반성하고,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각오를 하게 됩니다.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요한 17:17)"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