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맑고 환한 밤중에 뭇 천사 내려와
그 손에 비파 들고서 다 찬송하기를
평강의 왕이 오시니 다 평안하여라
그 소란하던 세상이 다 고요하도다
찬송가 112장 <그 맑고 환한 밤중에> 가운데 1절 노랫말이다. 이 곡은 소박한 노랫말과 잔잔한 가락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특히 성탄절 즈음에 자주 불리기도 하는 곡이다.
그런데 이 곡은 굉장히 강한 사회적 함의를 담고 있다. 이 곡의 원제는 'It came upon a midnight clear'로 작사자는 에드먼드 해밀턴 시어스 목사(1810~1876)다. 이 곡은 시어스 목사가 메사추세츠주에서 목회하던 당시 성탄절을 맞아 쓴 곡으로 알려져 있다.
시어즈 목사의 생은 신생국 미국이 남북으로 갈려져 내전까지 겪은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남북 전쟁 발발 즈음한 시기, 미국은 전쟁이 불가피해 보였을 정도로 갈등이 심했다. 링컨 같이 연방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없지 않았지만 말이다. 더구나 시어스 목사가 활동하던 북부는 산업화에 따른 부작용이 불거지고 있었다.
시어즈 목사는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이 곡을 썼다. 불안과 갈등으로 점철됐던 시대상황 때문이었을까? 노랫말 중에는 '소란하던 세상', '괴롬 많은 세상', '슬픔 많은 세상' 등 다소 비관적인 대목들이 자주 눈에 띤다.
그러나 시어스 목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2절 노랫말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시어스 목사의 바람이 선명히 드러난다.
뭇 천사 날개 펴고서 이 땅에 내려와
그 때에 부른 노래가 또 다시 들리니
이 슬픔 많은 세상에 큰 위로 넘치고
온 세상 기뻐 뛰놀며 다 찬송하도다
소란한 세상, 낮은 곳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
2018년 대한민국도 참 소란하고 슬픔이 가득하다. 성탄절인 25일 사측을 향해 고용 보장과 단체협약 등의 약속을 지키라며 75m 굴뚝으로 올라간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인텍 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의 고공농성은 409일째를 맞았다. 409일간 고공 농성은 세계 신기록이라고 한다. 보다 못한 시민사회가 해결을 위해 나섰다. 지난 18일 송경동 시인,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박승렬 목사, 나승구 신부가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도 사측은 꿈쩍도 없다.
한편 태안서부발전에서 일하다 참변을 당한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는 25일로 사고 2주째를 맞았다. 이날 충남 태안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추모문화제에 참여한 고 김씨의 동료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손에는 추모의 의미를 담은 국화가 손에 들려 있었다. 마침 이날 추모문화제엔 고 김씨의 부모인 김해기씨와 김미숙씨가 참석했다. 고 김씨의 유족이 지역 집회에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고 김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잘못되어가는 사회를 바로잡는데 힘 써달라"고 당부했다.(고 김씨의 부모는 인사말을 마친 뒤 곧장 서울로 향해 'JTBC뉴스룸'에 출연했다)
성탄절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다. 그러나 땅에 발붙일 곳이 없어 굴뚝으로 올라간 두 노동자의 농성은 세계 신기록을 쓰는 중이고, 산업현장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서울과 태안을 오가며 아들과 같은 비극을 막아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참으로 슬프기만 한 성탄절이 아닐 수 없다.
이토록 슬픔이 넘치는 세상에 평강의 왕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이 시대 아픔을 당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기를 기도한다. 분명, 예수께서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굴뚝 농성 중인 두 노동자와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의 곁에서 넘치도록 큰 위로를 주시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