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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캐슬 리뷰] 빈약한 이야기도 힘을 갖게 하는 해석의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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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JTBC 'SKY캐슬' 방송화면 캡처)
▲드라마 'SKY캐슬'이 종방되었음에도 그 여운은 아직도 진하다.

드라마 'SKY캐슬'이 종방되었음에도 그 여운은 아직도 진하다. 곳곳에서 드라마 내용들이 되새김질되면서 각종 패러디로 재생산된다. 드라마가 준 강력한 사회고발적 면모는 시청자들이 다 아는 것이니 차치하고, 이외의 부분에서 필자의 이목을 끈 부분은 시나리오의 허점에 대한 비판들이다. 온라인 게시판에서는 '빈약한 시나리오를 배우들의 열연, 연출 감독과 카메라 감독의 실력, 수준높은 시청자들의 해석이 살려냈다'는 평이 높은 지지를 얻기도 한다.

드라마가 극 중 낮은 개연성과 납득되지 않은 단선적 캐릭터가 극의 몰입을 종종 방해하기는 했다. 이수임은 캐슬에 오자마자 정의감을 발현하며 주민들의 삶에 균열내기를 시도하고, 아이들에 대해서는 높은 공감대를 보이면서도 한서진과의 말싸움에선 한 때 절친이었던 서진의 과거를 모든 이 앞에서 폭로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김주영은 다양한 상황에서 불법을 쉽게 저지르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혜나와의 대결에서는 그가 가졌을 수많은 카드 중 하필 청부살인이라는 극단적 카드를 쓴다.  

가장 납득이 어려운 부분은 15년 이상을 캐슬에서 같이 살았던 영재네 가족의 비극과 영재 엄마의 죽음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캐슬주민들이, 이방인과도 같은 혜나의 죽음에서 변화되고 갱생된다는 설정이다. 한서진 가족이 납골당 혜나의 사진 앞에서 반성과 회개의 대사를 읊고 혜나의 안치단에 자신들의 가족사진을 넣은 것에 대해 '사이코패스'라는 댓글이 적지 않게 달린 것은 납득하지 못한 시청자들의 아우성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교육계는 물론 종교계에 이르기까지 사회 여러 영역에 충격을 주고 자성을 갖게 했다. 스토리의 허점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열연과 감독들의 앵글들은 작가의 텍스트를 자신들의 것으로 소화시켜 입체화시켰고 수준높은 시청자들의 비평은 드라마의 수준을 결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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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JTBC 'SKY캐슬' 방송화면 캡처)
▲한서진 가족이 납골당 혜나의 사진 앞에서 반성과 회개의 대사를 읊고 혜나의 안치단에 자신들의 가족사진을 넣은 것에 대해 '사이코패스'라는 댓글이 수백개 달린 것은 스토리 전개에 납득하지 못한 시청자들의 아우성일 것이다.

이 부분에서 필자는 해석학을 떠올린다. 발신자로부터 수신자로 메시지가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야콥슨의 전송모델은 꽤 오래전 옛 이론이 되었다. 철학자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는 '해석학적 경험이란 전승된 텍스트 형식 속에 있는 전통과 해석학적 지평과의 만남'이라 하였다. 텍스트는 해석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기만 하지 않고 해석자의 세계와 만난다. 가다머는 또 '텍스트의 의미는 저자의 의도를 항상 넘어서고 있다'고 했다. 텍스트가 저자의 손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텍스트는 한 말 이외에 할 말을 갖게 되고, 해석자의 손에 들어갔을 때 해석자의 세계 안에서 또 다른 빛을 드러낸다. 드라마의 시나리오가 빈약하고 허점이 있다 해도 연기자, 연출가, 카메라의 풍성한 해석 속에 텍스트는 또 다른 할 말이 생겼다.

이 시점에서 교회의 성경을 생각해본다. 수천 년의 역사적 시간 속에서의 신과 인간의 관계가 집약적이고 함축적으로 담겨져 있는 이 책을, 교회는 경전으로 삼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성서 앞에 과연 어떤 해석자로서 서 있을까. 교회의 성서 해석의 결과는, 기독교인들의 삶과 그리고 사회에서 교회를 보는 시선 그 자체로 되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과 신의 숱하고 숱한 이야기들 중 엄격한 잣대로 선택되고 전승되고 편집되고 엮어진 이 성서의 이야기들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재생산되지 않고 교회 속에만 갇혀 있다면 이것은 해석자들의 책임이다. 혹시라도 성서를 붙잡고 있는 기독교인 해석자들의 삶에서 성서가 말하는 것들을 찾을 수 없다면, 그 교인은 자신의 세계와 텍스트가 만나는 그 지평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신문사 데스크에서 필진들에게 사회 각계에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 드라마 'SKY캐슬'에 대한 글들을 써보라고 했을 때, 필자가 쓴 글의 방향을 원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칫 명품막장드라마로 떨어질 뻔 했을때마다 그 단선적 스토리를 입체적으로 생동감있게 이끌어낸 중간 해석자들의 해석 능력이, 성서의 텍스트 앞에서 옹졸하고 무기력하고 용기없는 나 자신부터 돌아보게 만들었기에 고백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송고한다.

이민애 theworld@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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