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닐로스 델 카미노(Honillos del Camino)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 5시간 (20.4Km)
카스트로헤리스로 향하는 길에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가 뜨거운 햇살은 가려줬지만 습기를 가득 안고 왔기에 땀이 억수로 흐른다.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안개가 걷히니 길옆으로 난 빨간 양귀비꽃들이 길을 밝혀준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밀과 보리밭 사이로 작은 새 한 마리가 곡예를 펼치고 있다. 오늘은 또 어떤 소식을 전해주려 이토록 지저귀나, 기대가 된다.
어제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 '물집'은 쉬었다 걸을 때 가장 큰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젠 휴식마저 신경 쓰인다. 그래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곳이 까미노이기에 이를 악물고 걸어본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픔마저 익숙해지는 시간이 온다. 발의 감각이 투명해지는 시간. 가끔 이렇게 무덤덤한 시간이 초보 순례자의 고민을 맑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한국 여성분이 호스트로 있는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언어의 불편함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시간이다. 어디 언어뿐이랴. 이국에서 만난 고향 친구는 매우 반가운 법이다. 아주 수월하게 방 배정을 받고 짐을 풀고 있는데, 갑자기 사장님의 인생사가 궁금해졌다. 왜 그녀는 이곳에 와 있을까?
타국 중에서도 멀고도 먼 스페인 그리고 스페인 중에서도 작고 작은 이 마을에 내려와 삶의 터전을 일군 사람. 궁금증을 참지 못해 사장님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랐다. 그녀는 처음 개인적인 고민으로 산티아고 순례를 오게 되었고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한 번 순례를 하게 되는데, 바로 이 두 번째 순례가 계기가 되어 이곳에 터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국내의 이름 있는 회사에서 부족할 것 없이 살던 그녀는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이곳 카스트로헤리스까지 왔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녀를 이곳으로 이끈 힘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문학에서 이와 비슷한 인물을 본 기억이 난다.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한 소설이지만, 서머싯 몸은 그의 책 <달과 6펜스>에서 폴 고갱과 타히티(Tahiti)라는 섬나라를 연관지어 설명해 준다. 고갱은 마치 태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듯 보이는 장소, '타히티'로 이끈 운명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좀 길지만 전문을 실어본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비록 우연에 의해 엉뚱한 환경에 던져지긴 하였지만 늘 어딘지 모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산다. 태어난 곳에서도 마냥 낯선 곳에 온 사람처럼 살고, 어린 시절부터 늘 다녔던 나무 우거진 샛길도, 어린 시절 뛰어 놀았던 바글대는 길거리도 한갓 지나가는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가족들 사이에서도 평생을 이방인처럼 살고, 살아오면서 유일하게 보아온 주변 풍경에도 늘 서먹서먹한 기분을 느끼며 지낼지 모른다.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 바로 그러한 느낌 때문에 그들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뭔가 영원한 것을 찾아 멀리 사방을 헤매는 것이 아닐까. 또는 격세유전으로 내려온 어떤 뿌리 깊은 본능이 이 방랑자를 자꾸 충동질하여 그네의 조상이 역사의 저 희미한 여명기에 떠났던 그 땅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것일까. 그러다가 때로 어떤 사람은 정말 신비스럽게도 바로 여기가 내가 살 곳이라 느껴지는 장소를 우연히 발견하기도 한다. 그곳이 바로 그처럼 애타게 찾아 헤맸던 고향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여태껏 낯익었던 풍경과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정착하고 만다. 마침내 그는 이곳에서 휴식을 발견하는 것이다."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민음사, p.253-254)
좀 엉뚱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나는 정말 참된 고향에 살고 있나? 우리의 고향은 육신이 태어난 곳, 꼭 그곳만을 말하는 것일까? 처음 간 장소지만 한없는 포근함과 익숙함을 느끼는 그런 장소를 발견한다면 아니, 그러한 장소 한 곳만 알고 있어도 삶은 더 흥미롭게 펼쳐지지 않을까? 앞으로 마주할 많은 시간을 통해 그런 장소 하나를 꼭 찾아낼 예정이다.
하지만 그곳은 어쩌면 저 이역만리(異域萬里)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눈여겨보지 못한 아주 가까운 곳, 익숙한 곳일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혹은 아닐지도. 혹시 아나? 산티아고 순례 중 우연히 마주친 한 마을이 알베르게 한국 사장님처럼 나에게도 그런 곳이 될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