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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칼럼] 조롱당하는 그리스도: 프라 안젤리코

청파감리교회 담임목사

귀도 디 피에트로(Guido di Pietro)는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1455)라는 예명으로 더 잘 알려진 화가입니다. 그는 이십 대 초반에 도미니크 수도회에 들어가 일평생 수사로 살면서 많은 명작을 남겼습니다. 그는 성품이 좋은 수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프라 안젤리코'라고 불렀습니다. '프라'는 '수도사'를 뜻하고 '안젤리코'는 '천사같은'이라는 뜻입니다. '수태고지'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산골 마을에 살고 있던 마리아를 찾아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 결정적 순간을 그는 인상 깊게 표현했습니다.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전하는 천사와 경외하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듣는 마리아의 모습이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고요합니다. 일상과 비일상, 안과 밖, 성과 속의 경계가 어느 순간 무너지고 두 세계가 만납니다. 화면의 좌측에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하와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들은 옛 세계를 상징합니다. 수태고지는 새로운 세계가 열림을 암시합니다. 천사의 두 날개는 안과 밖의 두 공간에 걸쳐 있습니다. 두 경계를 이어주는 것은 좌측 상단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발현된 광선입니다.

오늘 우리가 감상하려는 작품은 프라 안젤리코가 피렌체에 있는 산 마르코 수도원에 있는 수사들의 방에 그린 그림으로 제목은 '조롱당하는 그리스도'입니다. 프라 안젤리코는 작은 공간에 예수님의 수난 내러티브를 가급적이면 많이 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고심 끝에 그는 특정한 상황을 재현하여 보여주기보다는 일련의 도상학적 상징들을 활용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연단 위에는 예수가 진홍색 의자 위에 앉아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의 보혈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새하얀 튜닉과 겉옷을 입은 그리스도의 눈은 가려져 있고, 머리에는 가시관이 씌워져 있지만 그렇게 도드라져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후광이 사람들의 눈길을 끕니다. 그리스도가 입고 있는 새하얀 튜닉은 바닥의 흰 석판과 조응하여 주님의 영광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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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프라 안젤리코의 조롱당하는 그리스도(1440-1441)

예수가 앉아계신 뒷편 벽은 베이지 톤인데, 그 가운데 에메랄드 빛 대리석이 마치 포인트 벽지처럼 우뚝 서 있습니다. 얼핏 보면 영화 스크린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마치 초현실주의적인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장면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프라 안젤리코는 가야바의 집과 빌라도의 법정에서 주님이 당하신 모욕과 수치의 순간들을 한 화면에 다 담아내고 있습니다. 모자를 쓴 군인 한 사람이 예수님께 침을 뱉고 있습니다. 마태는 빌라도의 군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희롱했는지를 상세하게 전해줍니다.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마27:29-30). 그들이 조롱하고 있던 것은 예수만이 아니라 그를 기어코 죽이려 공모한 유대인들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까요?

침을 뱉는 이의 모습을 제외하고는 예수를 조롱하는 이들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다만 손만 등장합니다. 예수의 뺨을 치는 손, 갈대로 예수의 머리를 치는 손, 으쓱 하며 조롱하는 손입니다. 수사학적으로 말하면 일종의 제유법(提喩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집에서 예수를 지키는 이들은 예수의 눈을 가린 후 그의 머리를 때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눅22:64). 사람의 사람됨은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데 있건만, 지배와 피지배, 가해와 피해가 극명하게 갈리는 순간 사람들은 강자와 자기를 합일화함으로 안전을 확보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을 의사도 능력도 없는 사람을 마음껏 조롱하는 것처럼 비인간적인 일이 또 있을까요?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프라 안젤리코가 마음만 먹었더라면 예수를 조롱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모습을 굳이 재현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누구도 정답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유추해 볼 뿐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상당한 역할을 감당했던 아이히만이 전범 재판에 회부되었을 때의 모습을 보고 아렌트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범죄자에게서 악인의 전형을 보아내려 합니다. 하지만 아이히만은 평범하면서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제국의 기계일 뿐이었습니다. 자기 행위를 성찰하지 않는 '무사유'야말로 아이히만의 문제였습니다. 악인과 선인이 존재론적으로 갈리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한 상황 속에서는 누구라도 악인이 될 수 있고, 선인이 될 수 있습니다.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에 등장하는 '손들'을 통해 우리는 바로 그런 암시를 읽습니다. 예수를 조롱하고 때리는 저 손은 '나'의 손일 수도 있고, 내 '이웃'의 손일 수도 있습니다. 악인을 특정하고 나면 우리는 마치 선인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습니다. 수도자였던 프라 안젤리코는 바로 그런 것을 경계하기 위해 이런 도상학적 표현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차별적인 폭력과 조롱이 가해지는 현실 속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너무 평온해 보입니다. 세상의 어떤 폭력도 주님의 고요함을 뒤흔들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시인 김달진은 일찍이 십자가 사건을 두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의 사형! 이때처럼 인간의 잔학성을 보인 일은 아직 인류의 역사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이때처럼 인간의 깊은 사랑과 신뢰를 세상에 보인 일은 역사의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으리라"(<山居日記> 중에서). 예수의 오른손에 들린 갈대는 군인들이 조롱하기 위해 쥐어준 것이지만 왕홀처럼 보이는 것은 그 위엄 때문일 것입니다. 왼손에 들린 커다란 구슬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된 세상입니다. 수난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신적인 위엄을 잃지 않고 세상의 구원자로 고요히 좌정하여 계십니다.

연단 아래에 있는 두 인물은 성모 마리아와 성 도미니쿠스입니다. 두 분의 시선은 예수를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떤 세계를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은 전형적인 명상의 자세입니다. 세상의 소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에 이르기 위해 정진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물론 소란한 세상 현실을 외면한 채 관상에만 잠기는 것이 좋은 영성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유 없이 폭력에 노출되고 조롱받이가 된 사람들의 편에 서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영성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스스로 흔들리지 않는 기둥 하나가 우리 마음 속에 우뚝 서야 합니다. 프라 안젤리코는 조급증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잠시 침묵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물론 침묵이 침묵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 이 글은 청파김리교회 홈페이지의 칼럼란에 게재된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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