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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과 초점(8)] 역지사지(易地思之) 할줄 아는 감성능력

숨밭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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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지유석 기자)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역지사자(易地思之)라는 한자어휘를 우리는 알고 있다. 상대방의 입장이나 관점과 바꾸어서 바꾼 그 자리와 형편에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우리시대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역지사지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거나 무시하고 그런 인간의 마음 본성을 업수이 여기는 점이 아닐가 자꾸 무서운 생각이 든다.

요즘 우리사회나 교계문제 그리고 신문과 방송등 대중매체들의 논조들을 잠시 냉정하게 돌이켜 보자. 대화는 완전히 단절되고 흑백논리, 진영논리, 심지어 머리숫자 수량논리에 우리가 완전히 갇혀있는 형국이다. 국제관계에서 북미관계, 한일관계, 정치권에서 여당과 야당관계, 경제계에서 노사관계, 종교계에서 진보와 보수 사이의 공공성 윤리 시시비비 가리기 등에서 '역지사지' 해보자는 말을 꺼내기만 해도 "무슨 시대착오적인 귀신 씨나락 까먹는 한가한 소릴 하는가?"라고 비난을 받을 것이고, 양편으로부터 뭇매 맞고 왕따 당하기 알맞은 형국이 되어 두렵기만 하다.

그러나, 역지사지는 흔해빠진 중도론이나 양비론이나 양시론을 권장하는 덕목사항의 재탕논리가 아니다. 자기 개인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입장과 주장을 정당하고 분명하게 주장하되, 동물집단간의 단순한 힘의 논리나 독선독단적 이념논리에 빠지지 않고 최소한의 대화와 인간적 '대화소통 공간 여백'을 만들기 위하여 '역지사지의 감성능력'은 피차가 절대 필요하기 때문이다.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역지사지 할 줄 아는 감성능력은 지구상에 각양각색 생물종들이 출현한 이후,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인류종에게서 처음 영글어 피어난 신비하고도 귀중한 인간성의 핵심본질이기 때문이다. '자기희생적 사랑'이라는 생명현상도 신비하고 숭고하다. 그러나, '역지사지'하는 감성능력은 단순한 지성이나, 도덕성이나, 심지어 종족보존하려는 자기희생적 사랑의 행위를 한단계 넘어선 인간현상의 특성인 것이다.

남극대륙의 혹한 눈보라 속에서 암컷과 수컷의 팽귄새 부부는 어린 새끼 부화를 위해서, 그리고 갓 깨어난 어린 새끼가 얼어죽지 않게하기 위해서 영하의 눈보라를 견디며 자기 발등 위에 올려놓고 자기 희생하는 모습을 '동물의 왕국' 다큐멘터리에서 보고 감동한다. 그러나, 우리는 팽귄에게서 '역지사지하는 감성능력'이 있다는 증거를 아직 본적이 없다. 역지사지하는 감성능력은 인간이라는 생명종에게서 꽃피어난 고귀한 능력이자 본성인 것이다. 그 능력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맹자가 말하는 측은지심은 물론 자기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비판능력과 자기 것을 수정하거나 취소하는 자기부정의 용기까지 포함한 인간의 영성능력인 것이다.

진실로 '역지사지하는 감성능력'을 얼마나 가졌느냐 못가졌느냐, 그 능력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가 그 사람의 인격과 참된 지성과 윤리성, 그리고 심지어 종교적 영성을 판가름할 수 있는 진짜 척도가 되는 것이 아닐가? 그 사람의 지식이 아무리 박학다식하더라도, 그 사람의 도덕적 책임성과 청교도적인 근면성이 아무리 진지하더라도, 그 사람의 종교적 신비체험과 정통신학 귄위가 아무리 높더라고 '역지사지하는 감성능력'이 없다면 그 모두는 울리는 꽹가리 소리요 결국은 쓰레기일 뿐이다.

우리는 이제야 깨닫는다. 왜 중세기와 근세까지 종교계에 마녀사냥이 복음진리 수호라는 명분을 내걸고 횡횡했는지. 신앙자유를 찾아 신대륙을 찾아가간 청교도 주류들이 근면성실 했으나 왜 그들은 흑인 노예들을 인간이하로 여기고 흑인노예 해방에 앞장서지 못했으며 극소수 퀘이커 교도들이 그 일에 앞장 섰는지. 왜 기독교문명권의 선도국가라고 자부하는 영국과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 무신론적 인간살해와 억압, 그리고 그런 문명에 저항하는 해방 혁명운동이 일어났는지 이제야 깨닫는다.

그리고 우리자신들을 다시 성찰하게 된다. '역지사지하는 감성능력'을 마비시키고 냉혹한 인간군상으로 만드는 3대 마악은 정치권력이 만드는 정치적 이념의 절대화, 경제권력이 만들고 추동하는 황금 우상숭배, 그리고 문화종교 권력이 만들어내는 교리적 허위의식과 맹목적 패거리 근성이라는 점을 성찰하게 된다. '역지사지하는 감성능력'의 회복만이 우리사회가 인간다운 얼굴을 되찾고 인류가 구원받을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다른 길은 없다. 공멸과 두려운 인류문명의 멸망마저 초래할 수 있는 무서운 정신적 역병인 것이다.

하늘이 청명하고 청량한 바람이 부는 이 가을, 우리가 잃어버린 '역지사지하는 감성능력'을 다시 회복하여 사람다운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와 인류공동체가 되어가야 하겠고 교회란 그런 운동하라고 불러모인 공동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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