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고 속이는 세상입니다. 권모술수가 가득하고, 너무나도 많은 속임수가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멀쩡히 두 눈을 뜨고도 당하는 세상입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세상 속에서도 속고 속이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두고서는 얼마나 많은 속임수가 있겠습니까? 당장 확인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속입니다.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오로지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함으로 상대방을 기만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칩니다. 그러다보니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일로 인해서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고, 진실이 아닌 거짓을 진실로 알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그러면 가장 많이 속이고 속는 일은 어떤 일일까요? 종교입니다. 우리나라에 사이비 종교는 얼마나 많이 있을까요? 그 수를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교세가 상당한 기성종교 안에서도 윤리적이지 못하고, 도덕적인 헤이가 가득한 종교인들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을 속이는 데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성전입니다. 성전에서 행해지는 장엄한 의식과 화려하고 현란한 연출입니다. 또한 능력이 있는 사제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위엄을 주기 위해서 학력을 세탁하고, 거짓으로 사람을 속이는 경우는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 거짓을 덮기 위해서 또 다른 거짓을 말을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화려함과 웅장함에 혀를 내두릅니다. 빈수레가 요란하듯이 진리가 아닐 수록 더 많은 장식이 필요하고, 믿음의 대상이 헛될수록 더 많은 겉치레와 허례허식이 요구되어 집니다. 이런 장식과 겉치레, 그리고 허례허식은 더 많은 타락을 부추기게 됩니다. 본질을 담기에 부적절한 형식과 모양은 끝내 부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거짓된 종교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어 타락하게 됩니다.
이런 일들이 비단 오늘날의 일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들 속에서도 이런 거짓 종교의 음모와 술수는 가득했습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위해서 거짓 서원을 하고, 거짓으로 감사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필요한 것을 자신이 만든 존재에게 빌고 또 빕니다.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돈을 위해서는 맘몬이 필요했고, 비를 위해서는 바알이 필요했으며, 풍요로운 결실을 위해서는 아세라가 필요했습니다. 다 사람이 만든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광야에 세웠던 회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동할 때마다 거두고 세우기를 반복했던 회막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화려한 성전이 들어서면서부터 신앙의 본질이 하나님 중심에서 성전 중심으로 옮겨갔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가 아니라 성전 위에, 하나님 위에 군림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제사는 어떠했고, 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사람의 눈에 보기에 좋은 것들, 화려한 것들,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을 즐겨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이런 성전 파괴를 예언하십니다. 그리고 참된 성전은 예수님이고, 진정한 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교회이고, 우리가 성전입니다. 참된 신앙은 성전에 매이지 않습니다. 구별된 온전한 삶만 존재할 뿐입니다.
※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http://www.cbooknews.com) 편집자칼럼에 게재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