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해년', 그러니까 돼지의 해가 저물고 있다.
올 연초만해도 황금돼지의 해라며 분위기는 한껏 들떴다. 그러나 1월 구제역, 9월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등으로 돼지는 유독 수난을 당했다.
특히 아프리카 돼지 열병의 영향은 심각해서, 약 40만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 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쯤되면 황금돼지의 해란 의미가 무색할 지경이다.
구제역·광우병·조류 인플루엔자 등 동물 관련 역병이 창궐할 때면 돼지, 닭, 소 등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가축은 생매장 '처리' 되기 일쑤다. 동물들의 고통은 인간에게도 이어진다. 살처분을 담당하는 이들은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가축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곤 한다.
살처분 말고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살아 움직이는 생명을, 감염된 것도 아니고 감염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파묻는 건 생명에 대한 도리는 아닐 것이다.
기해년을 보내는 마지막 주일인 29일 오후 서울 동숭동에서는 올해 생매장 당한 돼지의 넋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렸다.
정의당 동물복지위원회가 주최한 추모식엔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자유연대 등 동물보호 단체는 물론,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불교환경연대 등 종교계 시민사회도 참여했다. 생명 존중은 개신교, 불교 등 고등 종교가 강조하는 원리이기에 종교계 단체의 참여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런 행사가 열릴 떼면 '사람 살기도 팍팍한데, 무슨 동물권이냐'는 볼 멘 소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동물을 학대해 본 사람이 다른 사람도 죽인다.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연쇄살인범 유영철과 강호순에겐 동물학대 전력이 있었다.
더 나아가 동물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가 사람 목숨도 경시한다. 우리 사회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숨을 갈아 넣는 사회 아니던가?
그나마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돼지를 위해 눈물 흘리는 이들이 있어 우리 사회는 여전히 희망이 남아 있다.
돼지야,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