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삶의 양식이며 본질이다. 또한 이야기는 존재를 만들고 채워 준다. 젊은 시절의 꿈에서부터 익숙해진 체험들까지, 가득한 폭로의 소리들로부터 소곤대는 이야기까지, 이야기로 어떤 일을 설명하는 방법은 매우 효과가 크다... . 진실로 이야기 속에서, 말 속에서 우리는 한 자매요 형제가 된다."
미국의 유니온 신학대학의 필리스 트리블 교수가 위와 같이 말하였다. 진정으로 삶의 이야기는 삶의 진실을 전해 주고 살아가는 길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지시해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는 여기에 나의 삶에 가장 뿌리가 되는 이야기, 여태껏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내어 보이지 않았던 내 삶의 깊은 곳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오래 전 여성교회로부터 설교요청을 받고 그 당시 여성교회가 장소를 제공받던 향린교회에 갔을 때였다. 이르게 도착하였기에 조용히 명상을 하고 있는데 그 교회 여자 장로님 한 분이 나를 찾아 오셨다. 그분은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를 자세히 케어 물으신 후 매우 실망하는 빛을 보이셨다. 그분의 이야기는 자기가 <최만자>를 찾고 있는데 혹시 내가 아닌가 하셨다는 것이다. 그 장로님의 이야기는 자신의 따님도 최만자요, 또 다른 두 친구의 따님들도 같은 이름인데 그 중 한 분의 소식을 몰라서 애타게 찾고 계신 중 마침 여성교회에 내가 온다는 말을 듣고 행여나 하는 기대를 가졌다는 것이다. 실망을 드려 미안하였지만 다른 한편 나는 그때 나의 이름과 똑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가졌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최만자'는 모두 만주에서 태어난 '만자'들이었다. 일제의 만행이 극심해 지던 일제 강점 말기에 수많은 우리 백성들은 고향을 등지고 만주 땅으로 이주를 하였다. 우리 가족도 그 이주민 대열에 들어 있었고 그 허허로운 만주 벌판에서 나는 우리 부모님의 네 번째 딸로 태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나를 태어난 지명에 따라 '만자'라고 이름 지으셨다. 아마 다른 세 명의 만자들도 나와 나이가 비슷할 것이고 그들 또한 만주행을 하여야 했던 가족적 상황을 가졌을 것이다. 이름이 '자'자가 붙어 있으면 그것은 대체로 일제 강점기 시대에 지어진 이름들이다. 더구나 '만자'는 고향을 뒤로하고 정처 없는 유랑의 길을 떠났던 식민지 백성의 슬픔이 그대로 베어 있는 이름이다. (계속)
※ 이 글은 새길교회 최만자 선생의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최 선생은 일제 만행이 극심해 지던 일제 강점 말기에 이주민 대열에 합류한 이주민 가족 출신으로 만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해당 글은 1995년 여신학자협의회 출판물에 앞서 게재된 바 있습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총 6회에 걸쳐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