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기생충' 이야기를 하니 나까지 거들 필요는 없을 듯한데, 그래도 생각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있어 몇 자 적는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은 축하할 일이다.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고 있는 나도 큰 기쁨과 감격 그리고 자부심을 느낀다.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사와 페북 글들을 읽는데, 생뚱맞게도 "그렇다면 이 영화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상을 받았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던지는 아픈 메시지를 뼈저리게 받아 들이는 것이다. 이 영화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눅 16:19-31)의 현대판, 한국판 서사라고 할 수 있다. 나를 포함하여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 영화를 보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통해 던진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된 것이다.
그렇다면 계층 간의 단절과 괴리의 문제를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여기고 각자도생을 위해 분투하는 우리의 삶의 태도에 이 영화는 어떤 변화를 주었는가? 혹은 어떤 변화를 앞으로 만들어 낼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깨달은 바를 따라 자신의 삶의 태도를 돌아 보고 고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감격스러운 수상 소감으로 피날레를 장식한 CJ 부회장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자기 자신에게 던져 보았을까? 그는 자신의 저택 아래 반지하에서 사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기나 할까? 이 영화로 모아들인 수입 중에 이 영화가 던진 사회적 문제에 대해 쓰일 몫이 있을까? 오히려 이 영화의 성공으로 인해 몇몇 사람들은 계단을 더 높이 올라가 더 많은 것을 누리는 것으로 결말 지어지지 않을까?
영화에서 느낀 것보다 더 참담한 현실을 임홍택의 <90년생이 온다>에서 읽는다. 이 희망 없는 현실에 어떤 변화를 주지 못한다면, 이 사건도 그냥 지나가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누가 그랬더라? 오늘의 예배당은 영화관이고, 오늘의 설교는 영화이며, 오늘의 설교자는 감독이라고. '기생충'의 영화적 성공을 보면서,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작지만 진정한 회심의 사건은 존 웨슬리의 경우처럼 다 낡고 허름한 예배실에 모인 지리멸렬한 모임 안에서 더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 회심이 '기생충'에서 그린 것과 같던 당시 영국 사회에 깊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 이 글은 김영봉 목사(와싱톤 사귐의교회 담임)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