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 페스트는 16세기 사람들의 치가 떨릴 정도로 무서운 죽음의 전염병이었다. 당시 약도 없을 때, 한 번 흑사병이 도시를 쓸고 가면, 인구의 반 이상이 무참히 죽어가야 할 정도였으니, 가공할만한 죽음의 검은 사자였다. 1519년 8월 츠빙글리가 사는 취리히에도 페스트가 퍼지기 시작했다. 요양 휴가를 마치고 취리히 목회지로 돌아왔던 츠빙글리는 1519년 9월 초에 이 무서운 전염병 페스트에 감염되고 말았다.
몇 개월 사경을 헤매던 츠빙글리는 다행히 1520년 초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 무시무시한 죽음의 병에서 살아나온 츠빙글리는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기억하면서 음악적 재능을 살려 하나의 찬송을 썼는데, 그 곡이 1520년 중순으로 추측되는 "페스트의 노래"였다. 1522년 취리히 찬송가는 이 찬송을 "흑사병의 공격을 받은 츠빙글리를 통해 만들어진 교회 찬송가"라고 설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찬송을 "종교개혁 시대에 발표된 가장 뛰어난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며 동시에 교회음악이라는 좁은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창작물 중에 하나"라고 평가하며, 특별하고 창조적으로 츠빙글리의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준다고 격찬하였다. 물론 츠빙글리는 이 작품에 앞서 1510년 '처음 황소이야기', 1516년 '미로에 대한 교훈시'로 시인의 재능을 보였다.
츠빙글리는 '페스트의 노래'에서 종교개혁자로 부름 받은 후 자신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시련 극복을 그 무서운 죽음의 전염병 흑사병으로부터 이겨내는 과정과 비교하며 비유적으로 묘사한다. 츠빙글리는 흑사병으로부터 천만다행으로 살아난 후, 하나님이 자신을 종교개혁자로 부르셨다는 확신을 가졌다. 츠빙글리는 페스트로부터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을 이기신 오직 그리스도의 치유 때문인 것으로 고백했다. '페스트의 노래'는 그러기에 츠빙글리의 신앙고백이며, 츠빙글리의 경험신학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페스트의 노래'는 하나님의 위로와 도움이 주제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갈망하며 부르는 찬송이라 할 것이다. 아울러 승리한 자의 감사의 찬송이기도 하다. '페스트의 노래'를 부분적으로 소개하되, 1552년 발행된 콘스탄츠찬송가에 실린 가사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주 하나님, 위로하소서. 이 질병에서 도와주소서. 죽음이 문 앞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여, 죽음과 싸워주소서. 당신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당신에게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생략) 이제 마지막이 가까이 왔습니다. 내 혀는 굳어졌고 더 이상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제 감각은 완전히 굳어버렸습니다. 이제 당신이 저를 위해서 계속해서 싸울 시간입니다.(생략) 저를 회복시켜주십시오. 주 하나님, 저를 회복시켜주십시오. 제가 다치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 땅에 있는 저를 죄의 불꽃이 더 이상 사로잡지 못할 것이라고 믿으실 때, 내 입술은 항상 그렇듯이 순수하고 숨김없이 당신을 향한 찬양과 당신의 가르침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이 선포할 것입니다. (생략) 저는 이 세상의 폭압과 폭력에 맞서서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천국에서 받을 상을 바라보면서 당신의 도움만을 의지하여 참을 것입니다."
※ 이 글은 주도홍 백석대 명예교수(기독교통일학회 명예회장)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