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곳은 다 들춘다. 코로나로 인해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고통과 일상의 큰 불편은 크나, 역설적으로 코로나가 드러내 보여준 것들이 너무도 많다.
인간이 자연을 계속 파괴하면 자연이 어떻게 자신을 지키는지, 어떻게 인류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 우리가 멈추고 돌이키기만 하면 자연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우리 모두를 회복할 은혜로 가득한지, 코로나가 우리 눈앞에서 확증하고 경고하고, 기회를 주고 있다.
선진국이란 무엇인지 그 실상도 밝히 보여주었다. 빈부격차가 그렇게 나면, 그래서 가난하고 취약한 계층이 먼저 죽어나가면, 벽을 쌓고 그 담 뒤에서 누구도 안전하게 살 수 없다는 것, 다 함께 무너져 내린다는 것, 그래서 함께 나누고 공존해야만 한다는 것.
무분별한 개인주의적 서구사회도, 무차별하게 획일적인 전체주의도, 코로나는 그것이 결코 다음 시대의 지구 위를 살아갈 공동체의 모습, 개인과 집단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살아 있는 공동체의 모습이 아님을, 확진율과 사망률로 비쳐주었다.
'신천지'도 빛 가운데로 끌어냈다. 희망을 잃은 청년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이 얼마나 강력하게 먹혀들어갈 수 있는지를. 그래서 그 동안 교회가 얼마나 세상에 갇혀 있었는지를, 얼마나 종말과 신천신지(新天新地)의 복음을 외면해왔는지를, 번영의 우상을 섬기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 계층들을 외면해왔는지도, 대조적이고도 날카롭게 들추어내었다.
노인들이 몰려있는 요양원들이, 젊은이들이 몰려있는 클럽들이, 얼마나 취약한 곳인지를, 얼마나 주목해야 하는 곳인지를, 마치 '여기를 보아라'하고 코로나는 돌아다니며 우리의 아픈 곳마다 샅샅이 드러내고 있다.
교회가 얼마나 건물에 집착해 왔는지, 얼마나 사역자들에게만 매달려 왔는지를, 성도들 자신이 성전이며, 그들이 교회 안에서나 세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제사장들일 수 있고, 또한 그래야 함을, 신학자보다 더 강렬하게 코로나가 드러내 보여주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 세상은 얼마나 위태한 곳인지, 교회는 얼마나 소중한 희망인지, 복음은 얼마나 위대한지, 코로나가 다시 조명해주었다.
코로나가 지나가고, 이 모든 것이 일어나지 않은 듯,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또 다시 와서 들추고, 보여주고 돌이키도록 경고할 것이다. 같은 고난을 반복하지 않고, 이전 보다 나은 새 길을 찾는 지혜가 백신이다.
※ 이 글은 채영삼 백석대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