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비 중의 신비

오강남·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

kangnam
(Photo : ⓒ오강남 교수 페이스북)
▲오강남 교수

며칠 전 <새로운 종교, 새로운 기독교>라는 글에서 우리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 공로로 죄 사함을 받는 다는 대속 신앙(Atonement Theology) 대신에 우주에 편만한 신비를 체득하면서 경외심(awe)을 가지고 즐겁고 밝은 삶을 사는 것이 더 훌륭한 신앙생활이 아닌가 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런 글을 쓰면서 가르치려 드는 태도로 비칠까 걱정이 됩니다만, 그냥 이런 생각들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은 우주의 신비 중 어떤 면에서 놀라움과 신기함을 느껴야 할까 한 번 생각해볼까 합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신비해 할 것이 많습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 몸이 "신묘막측"하게 지어졌음을 감탄해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생리 현상은 너무나 신기하고 신비스럽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목해 보고 싶은 것은 우주 만물이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어로 interrelatedness, interdependence라 할 수 있습니다. 상호연관, 상호의존입니다.

상수도가 없으면 하수도가 있을 수 없지만 하수도가 없어도 상수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출발이 없으면 도착도 없지만 도착이 없으면 출발도 없습니다. 계곡이 깊은 것은 산이 높기 때문이지만 산이 높은 것도 계곡이 깊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상품을 만드는 사업가가 없으면 고객도 없지만 고객이 없으면 사업가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음악에 음표가 중요하지만 쉼표가 없으면 음표도 의미 없다는 것입니다. 음(陰)이 없으면 양(陽)도 없고 양이 없으면 음도 없습니다. 이런 쌍들은 서로 배타적이나 반대가 아니라 서로 보완적(complementary)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쓰는 말로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냐냐주의(either/or)"가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하는 "도도주의(both/and)"입니다. 거창한 용어로 하면 라틴말로 "coincidentia oppositorum"(대립의 일치, harmony of the opposites)라 합니다.

조금 복잡한 예를 듭니다. 우리가 먹는 밥이 있기 위해서는 벼가 있어야 하고 벼가 크기 위해서는 땅도, 물도, 공기도, 해도 있어야 합니다. 벼를 기르는 농부도 있어야 하고 농부의 부모와 조상도 있어야 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농기구가 있어야 하고 농기구를 만드는 대장간 사람도, 농기구의 쇠붙이를 캐내는 광부도 있어야 하고, 쇠붙이를 품고 있는 광산도 있어야 하고, 쇠붙이를 녹이는 불도 있어야 하고.... 끝이 없습니다. 그렇게 보면 쌀 한 톨 속에 온 우주가 다 들어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쌀 한 톨 속에 우주가 다 있다면 내 속에도 우주가 다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는 홀로 외로이 떠다니는 부평초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 한 가지만 더 듭니다. 문이 없으면 완전한 집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집이 없으면 물론 문이라는 것도 무의미합니다. 문과 집은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창문이 없으면 집이 없고 집이 없으면 창문도 있을 수 없습니다. 문이나 창문이라는 말 속에는 집이라는 것이 포합되어 있고 집이라는 말에는 문이나 창문이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이 없으면 집이 없고 집이 없으면 창문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문에는 창문이, 창문에는 문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 외에 지붕, 벽 등과도 이와 같은 관계가 성립됩니다. 이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고 서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불교 화엄(華嚴) 철학에서는 이것을 "법계연기(法界緣起)"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모든 것은 서로서로 얼키고 설켜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화엄에서 쓰는 말로 상입(相入, interpenetration) 상즉(相卽, mutual indentification)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도 이 비슷한 세계관을 펼치고 있습니다. 신비 중의 신비(玄之又玄)라고 했습니다.

이런 신비스러운 사실을 깨닫게 되면 나 혼자 잘났다고 독불장군처럼 거들먹거릴 수가 없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이웃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내가 대접받기 원하는 대로 이웃을 대접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않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사랑할 원수조차도 없어지기 마련입니다.

이런 놀라운(awesome) 진실을 깨닫는 사람들이 많으면 이 세상이 그만큼 평화스럽고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경우 humanist들이 말하는 "Can we be good without God?"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 이 글은 오강남 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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