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28세 최연소 의원이 연분홍 미니 원피스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발랄하게 국회의사당에 나타났다. 내 보기엔 솔직히 이뻤고 신선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말 저말 말들이 많다. 아니 나쁜 말들이 가슴을 찌른다. 그래 무릎 뚝 튀어나온 양복바지와 유행지난 때꼽장이 묻은 거무틱틱한 양복에 서양 넥타이로 목을 졸라야 그것이 한국의 예의요, 의원다움인지 모르겠다. 의원들이여, 티브에 나올려면 좀 멋지게 폼나게 옷 좀 입을지니! 그거가 예의. 정권욕에 매일 국민들에게 스트레스 쏟아붓는 의원들이 솔직히 얼마나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정치를 권모술수라 정의했나보다.
암튼 옷이야기를 해야겠다. 나는 한때 베스트드레셔였다. 자칭이 아니라, 타칭 그랬다. 그렇다고 잘난 체하려는 마음은 아니다. 물론 인물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지금은 어디서 부르지 않으면, 양복은 내 친구가 아니다. 양복 거기다 넥타이는 솔직히 불편한 상대다. 그렇지만 나 역시 수십 년 양복쟁이었다. 그런데 문제의식으로 가졌던 마음은 왜 동료 복장들이 어둡고 우중충한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장례식 검은 제복을 입는 것 같았다. 차라리 신부처럼 제복을 입으면, 그 나름대로 폼도 날 건데, 이것도 저것도 아니니 문제였다. 의복사를 보면, 독재국가나 어두운 공산국가의 복장은 주로 어둡고 칙칙하고 획일적이고 우울하기까지 한데, 그 자체로 삶을 반영하는 것이다.
어쨌든 베스트드레셔였던 나는 몇 가지 철학을 가지고 옷을 입었다. 1. 상황을 염두에 두었다. 어떤 자리냐에 따라 색과 형태를 달리하려했다. 물론 넥타이와 핸커치프도 함께 따라주었다. 정장을 입든지, 컴비를 입든지 했고, 구두 형태도 달리했다. 물론 양말 색도 고려해야 했다. 허리띠도 함께 고려해야 했다. 그렇게 하면, 시간이요? 그냥 순식간에 이뤄지기에 문제없다.
2. 주위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어두운 분위기가 계속될 땐, 컴비로 입고 밝고 캐주얼하게 폼을 내도록 노력했다. 심지어 소풍까지도 어두운 정장을 하고 나타나는 교수들에게 한 마디를 해줬다. 조금은 그런 이들을 보면, 짜증이 났다. 3. 넥타이를 시도 때도 없이 매고 다니며, 그것도 매치도 되지 않게 촌스럽게 하고 다니는 교수들을 보면 짠한 마음이 들었다. 왜 그토록 넥타이에 목을 매는지. 차라리 매지 않고 그냥 진바지나 입고 티사쓰를 걸치면 더 멋진데! 그래서 내 자신이 솔선수범했다.
4. 그렇다고 이런 내게도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청바지와 컴비를 거기다 멋진 티를 매치시켜 입지 못한 것이다. 편한 신발도 함께 하면 더 좋겠다. 어디서 특강으로 부르면, 용기를 내볼 마음도 있긴한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5. 나의 미 기준은 단순미다. 미의 정점엔 단순성 simplicity이 있다. 솔직히 청자도 곱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조 백자나 옹기를 더 사랑한다. 사치스럽거나 호화롭지 않지만, 품격과 멋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청교도의 미도 단순미로 실용적이었다.
유럽을 가보면, 예배당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거기다 교회음악과 조각과 성화들이 그렇다. 진선미를 초월한 성 holiness야말로 신성을 보여주는 정점에 있다 할 것이다. 나는 그 성을 오늘도 추구하며 산다. 그 거룩함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아름다움 summum bonum이 아닌지!
※ 이 글은 주도홍 백석대 명예교수(기독교통일학회 명예회장)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