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도산서원은 대유학자 퇴계 이황(1502~1571)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전통 서원은 추석날 가을 제사를 드린다. 도산서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올해 도산서원의 가을제사는 무척 특별했다. 서원 제사인 향사를 이끄는 초헌관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여성 초헌관 임명은 공식 서원 역사 5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이배용 한국의서원 보존통합관리단 이사장. 이 이사장은 10년 동안 우리나라 9개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도록 하는데 기여했다. 도산서원이 이 이사장을 초헌관으로 임명한 건, 그간의 공을 인정한 결정이었다.
유교하면 얼른 보수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실제 제사엔 오랫동안 여성의 접근이 금기시됐다. 이런 유교적 전통을 감안해 볼 때, 도산서원의 여성 초헌관 임명은 실로 파격적이다. 그런데, 속사정을 들어보니 더더욱 신선하다.
MBC <뉴스데스크> 1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 이사장이 초헌관에 임명된 데에는 서원 운영위원장이자 퇴계 이황의 종선인 이근필 옹의 추천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이근필 옹은 <뉴스데스크>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교가) 고집만 자꾸 부리면 안 됩니다. 퇴계 선생께서도 '시종(時從: 시류에 따르다)'을 따라라. 세상을 사는 대로 따라야 한다, 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보수적이기로 말하자면 개신교, 특히 보수 장로교단도 유교 못지않다. 그런데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강석 총회장)은 지난 달 21일 105회기 총회에서 여성안수 불가 결론을 내렸다. "성경에 여성 안수와 관련한 구체적 사례나 언급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게 이유다.
이에 뒤질세라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예장고신·박영호 총회장)도 "여성 안수를 허용하자는 성경관은 동성애를 합리화하는 데도 적용될 것"이라며 여성안수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고신 교단은 협력교단인 네덜란드개혁교회가 여성안수를 허용하자 관계단절을 논의한다고 한다.
여성안수가 성경적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주장은 공허하다. 그런 식이라면 목사라는 직 역시 성경적 근거가 없다. 여성안수를 동성애 합리화로 연결 짓는 데에선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여성안수를 비이성적 반동성애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는 행태에선 분노마저 치밀어 오른다.
여성안수를 바라보는 일부 보수 교단의 행태에 비추어 볼 때, 보수 개신교는 그들만의 게토를 만들고 거기에 갇히기로 작정한 듯 하다. 사회와 소통하며 시대 흐름에 맞춰가야 함에도 말이다. 유교만도 못한 모습이 그저 안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