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균진 연세대 명예교수(혜암신학연구소 소장)의 신간 『헤겔의 역사철학』(새물결플러스)이 출간됐다. 이 책은 삼위일체론과 메시아니즘의 지평에서 헤겔의 방대한 철학적 체계를 반추하려는 시도다.
저자는 헤겔 전문가답게 종횡무진 원전을 분석하며 인류의 정신사에서 인식론적 형이상학을 통해 관념주의 철학의 완성을 보여준 헤겔의 사상이 남긴 학문적 유산, 역사철학을 관통하는 개념이기도 한 변증법적 사고 체계의 밑바닥에 그리스도 중심의 깊은 영성이 깔려 있다는 독창적 해석을 내놓는다.
저자에 따르면 헤겔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성육신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발견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정신의 개념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체계를 세운다. 삼위일체론을 통해 헤겔이 자신의 독특한 변증법적 사고 방법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특히 헤겔의 변증법적 사고에서 등장하는 '부정적인 것의 부정'에 주목하면서 이러한 부정의 원리가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 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유와 욕망에 관해서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한다.
우리사회 속 곳곳에 부정성이 "독버섯처럼 곳곳에 숨어있다"고 지적하는 저자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은 부정되어야 한다"며 "부정적인 것이 부정되어야 긍정적인 것이 나올 수 있다. 좌절과 포기는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헤겔 철학의 부정의 원리는 부정적인 것의 부정을 통해 "정신의 개념에 일치하는" 세계를 지향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동시에 이성보다는 욕망이 지배하는 오늘의 시대상을 반추하면서 저자는 헤겔의 부정의 원리가 "욕심과 정욕의 무한성이라는 이 "부정적인 것"의 노예가 되지 않고, 우리 자신을 절제하면서 이성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도 밝힌다.
물질만능주의 시대 인간의 자유와 가치의 의미가 실종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자유 문제를 중시한 헤겔의 철학 사상이 지니는 의의를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인간으로서 자유롭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무한한 가치를 가진다"는 헤겔의 명제는 인간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고 돈 가치에 따라 평가되는 우리 세계의 타락한 가치관을 지적한다.
이 밖에도 코로나19 팬데믹 한복판에서 헤겔의 역사철학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는 "오늘 우리의 세계는 미래가 없는 것 같다. 일찍이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얘기한 대로 오늘 우리의 세계는 나침반이 고장 난 상태에서 대양을 표류하는 한 척의 선박처럼 보인다. 헤겔의 역사철학은 "정신의 개념과 일치하는" 세계, 곧 하나님의 자비와 정의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미래의 세계에 대한 기다림과 희망의 정신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서술한다.
총 780페이지에 이르는 신간 『헤겔의 역사철학』은 헤겔의 기본 전제가 되는 신학적 이해를 무시하는 한계에서 탈피해 그의 철학적 사고의 모판이 되는 "신학적 배경과 이해"를 중심으로 그리고 헤겔의 원전들과 여러 해외 학자들과 국내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헤겔의 사상을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인 가치를 지닌 대작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저자 김균진 연세대 명예교수는 부산상업고등학교(현 개성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목회소명을 받았고, 한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한 후에 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M. A.), 독일의 튀빙겐 대학교에서 몰트만 교수의 지도로 신학박사 학위(Dr. theol.)를 받았다. 1977년부터 연세대학교 신과대학과 연합신학대학원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명예교수로 있으며 초대소장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의 뒤를 이어 혜암신학연구소 2대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