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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칼럼] 왜 종교에서 영성으로인가?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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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지유석 기자)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종교와 영성, 그 두 어휘의 차이와 관계

요즘 지구촌 어느곳이나 종교학자, 신학자, 영성가, 목회자들의 최첨단의 화두는 '영성'. 한국종교학계의 원로이며 대한민국 학술원 위원이신 길희성 교수의 최근의 역저도 『종교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이다. 영성이라는 화두가 한국 개신교계 안에서 회자 된지도 여러 해가 지났지만 왜 종교라는 어휘보다 영성을 강조하는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문명비평가들은 말하기를, 거시적으로 보면 현대는 '탈종교시대'라고 주장한다. '탈종교시대'란 말은 특정기간 시대를 지배하거나 큰 영향을 끼치던 종교의 기능과 의미가 약해지거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그 자리에 다른 시대사조 예들면 자연과학이나 세속적 휴머니즘의 영향력이 점증해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탈종교시대'라 해서 종교가 아예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이 인간인 이상 불가피하게 삶과 인간 활동 의미를 묻고, 일상을 넘어선 '궁극적 관심'(틸리히)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종교'(宗敎)라는 한자는 기와집 지붕의 맨 위 끝 마루 같은 가르침이란 뜻이다. 인류가 깨닫고 가르치는 진리 중에서 가장 높고 숭고한 가르침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한자어는 라틴어 '레리기온'(religion) 단어의 본래적 참 뜻을 잘못 번역한 결과다. 예들면 존 칼빈의 유명한 명저 『基督敎 宗敎의 綱要』혹은 줄여서 『基督敎 綱要』라고 번역한 본래 책이름은 라틴어로 『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인데, 이것을 정확히 원저자 칼빈의 뜻대로 번역하면 『그리스도적 경건성의 구조』정도로 번역되어야 옳다. 핵심은 '레리기온니스'라는 단어가 어떤 조직적 교리의 집합체 같은 개념이 아니라 신자의 심령 속에서 살아 숨쉬는 역동적인 경건성, 신앙, 혹은 영성이라고 번역해야 옳다는 말이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의 느낌과 받는 인상에서 '종교'라는 단어와 '영성'이라는 단어가 확연히 다른 개념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종교엔 흥미를 잃어가서 점차 탈종교화 과정이 진행되어가기 때문에 '종교'라는 개념이 본래적 의미인 '경건성 혹은 영성'과 달라지고 심지어 갈등관계로 이해되고 있다. 종교와 신앙을 구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고전적 가치가 있는 책은『종교의 의미와 목적』(길희성 옮김, 분도출판사, 1991)이다. 이 책 저자는 윌프레드 켄트웰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인데, 그는 종교와 신앙(또는 영성)을 다음과 같이 구별하여 보자고 제안했다.

종교에는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 개인적인 면과 집단적인 면, 보이지 않고 설명하기 어려운 신령한 경외감과 보이고 설명하는 경전 및 교리체계가 있다. 전자를 살아있는 신앙(faith)이라 한다면 후자는 축적된 전통(cumulative tradition)이다.

신앙과 축적된 전통, 영성과 종교외 불행한 괴리

역동적이고 살아 숨쉬는 종교에서는 스미스교수가 구별한 '신앙'과 '축적된 전통'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함께 각각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유하자면 '축적된 전통으로서 종교'가 좋은 인삼을 재배하고 육성하는 고려인삼밭이라 한다면, 신앙, 경건성, 영성은 그 좋은 인삼 밭에서 재배되어 나오는 6년근 명품 고려인삼인 것이다. 인삼밭 없이 좋은 인삼 뿌리가 생산될 수 없듯이 '축적된 종교'이지만 그 종교텃밭 없이 좋은 영성가, 역동적 신앙, 신자의 경건심이 바르게 영글어가기는 현실적으론 어렵다.

그런데 '축적된 전통'으로서 종교의 그 경향성은 신성시하는 제도와 종교법, 각종 신조와 교리와 신학체계, 공의회나 총회와 기독교연합 기관, 교회당 건물과 전문적 성직자, 교세와 사회정치적으로 끼치는 영향력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종교를 "살아있고 성장해가는 나무로서가 아니라 귀중한 보석을 창고에 보관하고 관리하고 있는 궁궐처럼"(함석헌)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종교의 경향성에 대조해서 보면 살아있는 생생한 신앙, 경건성, 우리가 요즘 갈급하는 영성의 특징은 인간 심령 내면에서의 신비한 빛과 진리 체험, 경외감,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인 신령한 것에 대한 직감적 느낌, 다른 생명의 고통과 아픔에 대한 연민의 측은지심, 봉사하고 사랑하고픈 정열, 때로는 홀로 있고 싶은 고독함과 말없는 묵언수행에 대한 갈증을 특징으로 한다.

길희성 교수의 최근 역저 『종교에서 영성으로』는 다름 아니라 이러한 '축적된 전통으로서 종교'를 절대시하고 우상화함으로서 도리어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는 종교의 '물상화'(物像化)에 저항하고 종교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포함하여 어떤 종교이든지 진리를 가리키는 손가락인 것이요 상징체계인 것이지 그것 자체가 절대자처럼 자기과대망상에 빠지는 오류를 경고하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코로나19 이후시대 한국 기독교의 관심과 방향전환은 기존의 성공적이었던 '기독교라는 종교의 교세회복'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갈급하고 관심 갖는 '그리스도교적 영성회복'이라야 한다.

참다운 의미에서 말하는 인간의 '영성회복'이란 요즘 상담심리학자나 목회상담자들이 생각하는 개인이 갖고 있는 감추어져 있고 억압되어있던 재능을 발견개발하고 실현하는 일과는 다른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자아실현, 자기 개발, 영재 교육 등은 그것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영성함양은 우리 안에 이미 와계신 초월적 실재와 만나거나, 위나 밖으로부터 오시는 '기이한 빛'(벧전2:9) 혹은 '은혜와 진리'(요1:14)를 향하여 내 존재를 개방하고, 그 초월적인 영(靈)에 접하여 내 영혼(靈魂)이 영성적으로 고양되어 "공감, 연대, 봉사하는 자유인"으로 변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영성은 인간의 3가지 정신 능력 곧 지성, 덕성, 감성을 포용하고 온전케 하지만 영성엔 능동성과 수동성이라는 역설적 동시적 체험이 존재한다. 영성 함양이나 훈련은 내가 노력하고 정진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내게 오는 선물이요 은혜라는 말이다.

영성 함양, 영성 훈련을 위한 몇가지 제안

첫째, 작은 신도모임(10명 내외)에서 '조용히 성경 읽고 묵상하기'를 권고한다. 일체 기존의 신학적 교리나 정통 신학 이론 등 선입관을 내려놓고, 신학자나 목회자 없이 참여한 신도들의 심령에 들려오는 미세한 음성과 영적 감화를 각자 원하는 대로 짧게 표현하여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눈다.

둘째, 혼자서, 단독자로서, 잠들기 전 거실에서나 이른 새벽에 광대무변의 대우주를 맘 속에 그려보고 그 안에 있는 먼지 같은 나의 존재를 직시한다. '생각하는 갈대'(파스칼)임을 확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시는'(시8:5)' 창조주의 솜씨를 묵상한다. 특히 주위에서 흔히 보는 생명현상의 신비( 꽃잎, 비둘기 날개의 색상과 문양, 고양이 눈동자, 아기의 앙증맞은 다섯 손가락등)에 주목한다. 종종 죽음현상도 직시하고 묵상한다.

셋째, 성경만 아니라 시시 때때로 이웃종교의 경전과 고전(반야심경 , 도덕경,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을 읽어보고, 기독교신앙에 충실하되 기독교 울타리에 갇히는 "꼰대신자"가 되지 않도록 개방적 자세를 갖는다. 생명과학에 관한 과학서적도 읽고 이해지평을 넓힌다. 종파를 초월한 종교시, 문학, 음악 등 예술을 통하여 굳어진 감수성을 부드럽게 해야 한다.

이민애 admin@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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