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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칼럼] 하나님의 나라와 기독교 왕국의 혼동

콘스탄틴 대제와  프란시스 성자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려고 진리의 목소리를 발했던 종교개혁 기념주일이  들어있는 10월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는 대표적 기독교국가라고 자임하던 미국에서부터 발생한 금융위기가 온세계 지각을 뒤흔들고 있다. 경건과 세계적 교회부흥을 자랑하던 한국교회의 대표적 큰교단 안에서는 두명의 총감독이 등장하여 세상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전자는 이 세상의 경제계의 일이고, 후자는 한국의 기독교계 일이지만 깊이들여다 보면 그 근원인은 ‘하나님의 나라’와 ‘기독교왕국’을 오해하거나 혼동한데서 발생하고 있다.
 
갈릴리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그 실현을 위해 온 생명을 바쳤지만,  그 뒤에 이어진 사도들과 기독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그의 왕국실현을 위해  십자군적 행군을 지속해온 역사였다고 저명한 신학자가 재치있게 갈파했다.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깨닫는 일과  ‘예수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일은 깊은 관계가 있음을 기독교인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기독교적 왕국’을 동일시하거나 혼동하는 것은 비복음적이요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처음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교인들은 복음이 주는 생명력과 그 신선한 선물에 감동하여 한국이 하루 빨리 기독교국가가 되기를 염원한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기독교국가가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는 것이 아님을 금방 알수 있다. 국민의 대다수가 그리스도인으로 세례받고 교회다니던 중세기 신성로마제국 시대에 피비린내나는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같은 이단재판이 200년간 지속되었다. 국민의 90% 이상이 세례받고 교회에 등록되고 종교세까지 당연하게 잘내던 독일국가에서 히틀러의 제3제국이 출현하여 4,000 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서양 역사과정에서  기독교를 국가종교에로 승격시켜 잘 대우하고, 이어지는 로마제국과 신성로마제국이 기독교국가시대가 되도록  기초놓고 공헌한 대왕이  콘스탄틴 대왕(280-337)임을 안다. 그의 지원아래 최초의 세계공의회인 니케야공의회(325)가 열렸고, 박해받던 ‘카타곰의 종교’가 당당이 지상으로  나올 뿐만 아니라 ,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지는 제국의 종교가 되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갈릴리의 싱싱하던 생명의 종교는 정치권력과 야합하고 그 하수인의 되는 ‘콘스탄틴적 기독교’로 변질되어갔다. 기독교왕국 종교로서의 특징은 획일성, 권력지향성, 공격성, 무한경쟁성, 우월성, 그리고 남보다 높아지고 강해진 것을 자랑으로 알고 축복으로 생각한다.

국가종교로서의 기독교의 피해를 절감하고, 다시 갈릴리의 복음정신으로 돌아가려는 운동이 일어났고 그 대표적 사례가 앗시시의 성자  성 프란체스코(1182-1226)의 수도원운동이었다. 프란시스 수도회 정신 속에는 콘스탄틴적 기독교의 냄새가 없다. 갈릴리 나사렛 그분을 닮고 그 뜻을 체현하려는 청빈, 비움, 겸손, 노동, 사랑의 봉사,  자연친화적인 평화가 꽃핀다. 힘과 다산(多産)을 숭배하는 바알적 기독교적 국가 실현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예수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감각적 눈으로 볼수 있게 임하는 것도 아니고, 공간적으로  여기나 저기에 있다고도 못하며, 오직 ‘너희 안에 있다’(눅17:21). 그 특징은 사도 바울의 경험에 의하면 오로지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이다(롬14:17).

오늘의 한국 기독교의 위기발생은 ‘하나님의 나라’가 땅 위에 임하도록 기도하고 노력하는 일은 다름아니라 곧바로 한국에 ‘기독교적 국가’를 실현 일이라고 착각하거나 혼동하는 한국기독교 지도자들의 잘못에 있다. 이 착각과 혼동은 매우 델리케이트한 문제인지라, 오늘 한국 기독교지도자들은, 그 양자가 다름을  알고서도 속고 모르고서도 속는다. 오늘 한국 기독교의 죄는 약함에서 오지 않고 강함에서 온다. 세계를 뒤덮고 있는  시장경제 전체주의 제국 황제의 칙령앞에 모두 무릎을 꿇었다. 그 칙령의 제1조는 “진리란 힘과 성공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는 것이니, 경쟁에서 승리하고 효용성과 실용성을 극대화 하라.”이다.

현대판 공로신앙과 그라민은행의 교훈

10월은 종교개혁의 달이니 한마디 부연한다. 현대 한국 기독교의 영적 위기를 종교개혁 정신의 빛에서 그 핵심을  지적한다면, 한국 개신교 교회들이 중세기 교회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이 말하던 ‘공로신앙’을 현대판으로 재연하려는 덫이 걸려있다는 사실이다. 바울신학 표현으로 말하면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고 여김 받으려는 유혹’, 곧 하나님의 은혜를 뿌리치는 인간의 오만한 경건이다. 입만 벌리면 한국 기독교는  ‘복음적 신앙, 성경중심, 하나님중심’을 말하지만,  실재는 정반대의 신앙을 은폐된 형태와 의식이 자각못하는 무의식적 상태로서 열심히 산다.  실재로는 ‘율법적 신앙, 인간의 말 자랑, 세상중심’을 강변한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 신앙 안에는 그리스도가 주신 참된 평화와 쉼이 없다. 복음이란 또하나의 기독교적 종교가 아니라 모든 종교의 끝맺기라는 사실을 모른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는 명분아래 국내외 선교에 열을 내고, 온갖 대형집회와 교회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한다. 마치 일중독에 걸린 현대 대기업체 중간간부처럼, 쉴틈 없이 하나님과 복음을 위하여 일한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기독교의 열심과  신앙열정이 “하나님을 하나님되시도록!” 도와드리고 지켜드리는 하나님의 친위대라고 착각한다. 전제 군주의 친위대장은 의심받는 주위사람을  경계하고 독살도 서슴치않듯이, 그리스도가 부르신 형제자매를  모함하고 비난하고 정죄하기를 태연하게 자행한다. 양심이 화인맞은 대심문관이 되어버린다. 이것이 현대판 공로신앙의 위기이다.

도리어 우리는 세계빈곤국가 중의 하나인  방글라데시에서 무함마트 유누스 교수가 시작한 ‘그라민 은행’ 기업정신에서 배워야 한다. 미국의 금융위기를 자초한 ‘비우량담보대출’이 아니라, 아무것도 저당잡을 부동산이 없고 오직 대물림한 빈곤현실과 몸둥이 하나만을 지닌 가난한 사람을 믿고, 담보없이 무조건 소액을 대출해줌으로써   자립과 자활을 돕는 은행업이다. 1977년에 창설된 ‘그라민은행’은 대출상환율이 99%이며, 은행자산이 3조3600억원으로 늘었고, 지점망 숫자만도 1175곳이라고 통계는 말한다. 세계노벨평화상이 ‘그라민은행’과 유누스교수에게 주어진 것은 당연하고 시의적절하다. 그 아름다운 이야기의 핵심은, 인간이 지닌 소유를 신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 존재 그 자체를  믿는 용기에 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 목사와 신학자들이  그라민은행 창업주 유누스 교수만큼이라도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용을 갖는가? 아니면 신학적 인간학의 원죄론,  아담의 타락설, 예수보혈의 대속설 교리를 근거로하여 인간의 인간성 그 자체를  ‘부패한 사과’를 보듯이 부정적으로 보고있지는 않는지 성찰 할 일이다. 왜냐하면,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섬기는 갈릴리 예수는 우리처럼 인간을 근본에서 불신하지 않았고, 세상의 사람을 끝까지 믿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들이 기독교국가 만들기의 망상에서 벗어나고, 현대판 공로신앙에서 자유하게 되는 날,  복음의 빛이  이 땅 온누리에 다시 비치게 될 것이다.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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