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 의미 있는 판단을 내렸다. 그 주인공은 평화활동가 시우씨.
시우씨는 2017년 10월 입영 통지서를 받자 종교적·정치적 신념을 이유로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그를 병역법 위반혐의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 판단은 달랐다. 의정부지법 제4-1형사부는 기소 3년 만인 2020년 11월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시우씨의 입영거부 사유가 정당하다고 봤다. 이어 지난달 24일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의 신념과 신앙이 내면 깊이 자리 잡혀 분명한 실체를 이루고 있어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시우씨는 3년 8개월여 만에 길고 길었던 법정 싸움을 마쳤다.
시우씨의 법정 싸움에서 간과해선 주목할 지점은 따로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하면 얼른 ‘여호와의증인' 교파를 떠올리기 일쑤다. 하지만 시우씨는 주류 교단인 대한성공회 교인이다. 그리고 시우씨는 종교적 신념이 아닌 개인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로, 법원에서 처음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판결 직후 낸 보도자료에서 "단순히 기독교 신앙(교리)만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 사건은 기존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 사안과는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주요언론들은 시우씨 무죄판결 소식을 주요하게 다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은 채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시우씨는 그 이유에 대해 "일단 개인보다는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론 노출을 자제하는 편"이라고 했다. 시우씨는 그러면서 한편으론 홀가분하지만, 속상한 마음도 숨기지 않았다. 시우씨의 말이다.
"재판이 잘 마무리되어 홀가분하다. 무죄 확정까지 3년 8개월이 걸렸는데, 2018년 11월 대법원이 종교나 양심을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음을 감안하면 무척 오래 기다렸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을 일일까 하는 생각에 착잡하다. 또 마냥 기쁘지는 않다. 2월 말 병역을 거부했던 동료 두 명이 유죄가 확정되어 수감 중이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경로를 밟아왔는데, 결과는 갈렸다. 무죄 선고를 기대했는데 유죄가 확정되니 속상한 마음이었다."
‘신앙 양심' 검증 위해 위치 추적까지
우리 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검증하기 위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시우씨도 혹독한(?) 검증대에 올랐다. 시우씨는 담담하게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 놓았다.
"선례가 없었기에 어려웠다. 2018년 대법원은 종교적 이유의 병역거부자와 개인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로 범주를 나눠 지침을 냈다. 종교적 이유를 내세운 병역거부자의 절대다수는 여호와의 증인이고 따라서 대법원은 이들의 사례를 근거로 지침을 구성했다.
법원은 지침에 따라 병역거부자가 언제부터 신앙생활을 했고, 가족이나 친구 중 병역거부자가 없는지, 모든 삶의 중심이 (여호와의 증인) 교회에 있었는지 등 여러 사항을 고려한다. 하지만 일반적 신념의 경우 종교적 사례에 준해 처리한다고 했을 뿐 구체적인 지침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1년 여간 위치도 조회 당했다. 검사가 특정했던 곳은 성당이었다. 매주 성공회 성찬례 예식에 참석했느냐를 보기 위해서였다. 수년 간 봤던 영화와 인터넷으로 구매한 책 중에 폭력적인 내용이 없었는지도 들여다봤다."
앞서 적었듯 시우씨는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 출석한다. 그런데 시우씨는 성공회로 오기 전 보수 장로교단 교회에 다녔다.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를 고민하면서 자신이 다녔던 교회를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시우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어린 시절부터 20년 넘게 보수 장로교단인 예장통합 교단 교회에 다녔다. 그러다 2012년 성공회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교단을 옮긴 건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이 이유였다. 대학시절 선교단체에서 생활했는데, 그 시절부터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을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역 교회에서 이런 고민을 나누기 어려웠다. 신앙공동체에서 고민을 나누고 지지와 격려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오히려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군 복무를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담임 목사는 단호했다."
시우씨는 지금 다니는 성공회 교회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다행히 사제님과 교우들이 잘 배려해줬다. 교회 분위기가 개방적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다만, (병역거부를) 고민할 때 가치판단을 유보하고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태도를 보여줬는데 이 자체가 위로가 됐었다. 어쨌든 나의 고민이 완전히 수용되지는 않더라도 나눌 수는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무죄가 확정됐지만 교정시설에서 36개월을 대체복무해야 한다. 이에 대해 시우씨는 " 세계적으로 가장 긴 대체복무 기간인데다 교정시설로 단일화 돼 있어 아쉬움이 없지 않다"는 심경을 밝혔다.
한국 교회, 특히 보수 주류 교단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불온시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시우씨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교회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이들을 품어주기를 바랬다.
"정의, 평화 등은 교단과 관계없이 그리스도교의 근간을 이루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돌봄, 사랑, 평화, 공동체 등은 병역거부를 고민하도록 한 씨앗이었다. 무엇보다 평화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전쟁을 겪었고 군사적 긴장이 높은 지역에서 신앙생활하는 신앙인이라면 예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의 지향은 분명하다는 판단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병역거부를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각자 삶의 위치에 따라 내리는 선택은 다를 수 있지만 이런 의문을 품는 건 중요하다. 이렇게 고민할 때, 교회가 넉넉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 본 인터뷰는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주임사제인 주낙현 신부의 주선으로 이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