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해 연하장을 받았는데, 한자로 네 글짜, 송구영신(送舊迎新) 그리고 근하신년 (謹賀新年) 이라고 만 적혀 있었다. "송구영신"이라는 한문은 중국에서는 "송고연신 (送故迎新)이라고 적고, 관가에서 구관이 다른 곳으로 떠나 가고, 신임 사또를 영접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송구영신"이라고 하여 옛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 한다는 뜻으로 보다 넓게 사용한다. 사람 만이 가고 오는 것이 아니라, 낡은 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는 뜻으로 확대 해석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낡은 것은 보내 버리고 새것을 맞이하라 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다시 한번 더 나아가서 구습(舊習), 즉 낡은 숩관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習慣)을 만들자 라는 뜻으로도 받아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그동안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웠는데, 새해에는 담배를 끊겠다는 결심을 한다든지, 저녁 식사 때 소주 한 병 정도는 마셔야 했지만, 새해에는 소주를 끊고 맥주 한 잔으로 반주해야겠다는 약속을 혼자 하거나 식구들 앞에서 공개하는 것도 "송구영신"일 것이다. 지난해까지 해 오던 나쁜 습관이나 생활 패턴이 있었다면, 모두 버리고 새로운 습관, 새로운 생활 패턴으로 "새 사람"이 되어 보겠다는 결심을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송구영신"을 말로는 하기 쉽고, 글씨로 써서 대문짝에 붙이는 일은 쉽지만 행동에 옮기기란 말 만큼 쉬운 것이 아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 약속한지 3일도 못돼서 옛날 하던 식으로, 지난해 까지 하던 나쁘거나 해로운 생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오던 대로, 하던 대로, 편하게(?) 살게 된다.
올해 2022년 3월 9일에는 앞으로 5년 동안 대한민국의 운명을 맡게되는 대통령을 선거하게 된다. 정치적으로 우리 국민이 송구 送舊 (임기를 끝내는 대통령을 보내고), 영신 迎新 (새 대통령을) 맞이 하게 된다. 야당 대통령 후보는 "정권교체"의 구호와 깃발을 높이 들고, 새 정치, 새 세상, 새 역사를 만들겠다고 소리지르고 있다. 그런데 귀를 기우리고 자세히 듣고 보면, 야당이 보수정당일 때, 그 야당이 말하는 정권교체는 새 정치, 새 정책이라기 보다는 낡은 정치, 이미 지나간 정권이 했던 대로 되돌아가고, 역사를 뒤로, 옛날 하던 대로 돌려놓겠다고 한다. 이건 송구영신이 아니라, 영고영구(迎故迎舊) 옛날 하던 대로를 환영하고, 옛것을 환영한다는 것으로 들린다.
여당 대통령 후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정권을 창출 한다고 소리지르지만, 무엇을, 어떤 정책을 보내 버리고, 어떤 새로운 정책을 세우고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한마디로 무엇이 새롭고, 어떻게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따져보면, 결국 그동안 실책이 있었다면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면서 뚫린 구멍을 땜질하는 식으로 하고, 대충 하던 대로 하면 무난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하려는 것 같다. 지난 정권이 2017년 겨울의 광화문 춧불 혁명의 산물이라는 걸 강조하면서도, 촛불 혁명은 잊어버린지 오래고, 그 촛불을 새로 들어 올릴 생각은 전혀 안 하거나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송구영신---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세계적인, 세기적인 역병을 보내 버릴 수 있는가? 그리고 영신---새로운 생태친화적인, 죽어 가는 자연과 지구라는 행성을 다시 살리고 새로운 자연세(自然世)의 역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가?
송구---열전과 냉전의 낡은 역사를 청산하고, 영신---평화로운 지구촌에서 평화롭게 살게 되고, 핵무기와 핵탄두와 핵전함과 핵잠수함이 없는 새로운 세상을 두 손 들고 환영할 수 이겠는가? 새해에는 정말, 우리 한반도에서 핵무기니 원자력 발전소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되고, 70여 년 동안의 "휴전" 상태를 끝내고, 남과 북이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여, "영구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평화 통일의 새 역사를 만들어 가는 길에 들어 설 것인가? 정말, 전쟁과 평화의 "송구영신"이 우리 눈앞에 전개될 것인가?
2천년 전 유대 땅 요단강에 나타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친 세례 요한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리고 로마제국의 식민지 노예로 죽지 못해 살아가는 백성들을 향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젊은 예수는 외쳤다. 로마제국의 식민지 압정과 차취로부터 해방되는 혁명의 역사를 외친 것이다. 우리 말로 "송 구 영 신"이었다.
우리 땅 한반도에, 한 세기 전에도 "송구영신가' 송구영신의 노래가 있었다고 한다. "송구영신의 노래"는 "꿈을 깨고/시운(時運)이 어떠한지를/살펴보고/ 시절이 봄이니/때를 잃지말고/농사를 지을 것과/시운에 맞추어서/동학이 일어났으니/그 가르침을 따라/순수천리(順隨天理)하라 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옛날 유교도, 서학(西學)도 뒤로하고, 우리 땅에서 일어난, 새로운 동학을 영접하여 새 역사를 이룩하자는 "혁명가"였다. (naver.com)
근 하 신 년 (謹 賀 新 年), 송 구 영 신 (送 舊 迎 新)--- 맑은 정신, 새로운 마음으로 호랑이의 새해를 맞이한다.
(서 광 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철학과 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