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부활주일 설교] 살리는 말씀, 살아난 열정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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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느헤미야기 8장 5-12절, 누가복음서 24장 32-35절

설교문

[영원한 신비인 부활]

세상의 많은 종교가 있지만 부활을 말하는 종교는 그리스도교가 유일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모든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고,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이 지니는 죽음의 한계도 극복하시는 분임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는 요한계시록에 근거하여 이전의 하늘과 땅은 모두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도 이루어질 것(계시 21:1)을 믿는 종교입니다. 이런 믿음의 밑바탕에는 바로 창조주 하나님 신앙이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또 생명 또한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부활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그것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부활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우선 성경은 분명 몸의 부활을 말하는데, 그것이 이전의 몸이 다시 그대로 재생되는 소생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의학적으로 사망 판정을 받고도 다시 살아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부활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비밀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다 잠들 것이 아니라, 다 변화할 터인데,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에, 눈 깜박할 사이에, 홀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은 썩어 없어지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51-52) 바울은 우리가 마지막 때에 부활할 것이라 말하면서 부활한 몸은 썩어 없어지지 않을 몸이라고 말합니다. 이전의 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파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마가복음서 12:24b-25)

죽었다가 다시 소생한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지만, 부활의 몸은 다시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또 부활의 몸은 시집 장가가는 이 땅의 질서와 무관하게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은 몸이 됩니다. 그래서 부활한 예수님을 보면 사방의 문이 닫혀 있는데도 홀연히 나타나셨다가 홀연히 사라집니다. 육신의 몸 그대로라면 제자들이 알아보아야 하는데 예수님을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무덤가에 있던 마리아가 그랬고, 엠마오 마을로 가던 두 제자가 그러했습니다. 이렇게 부활은 우리에게 신비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부활절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찍었다면 과연 예수님이 카메라에 찍혔을까요? 꼭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모든 유대인과 로마 당국자들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부정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눈으로 못자국을 보고 손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만져야 믿겠다는 도마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보이시며 만져 보라고 하시고, 누가복음서에서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하시면서 자신은 유령이 아니라 분명 몸을 가진 살아 있는 분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사건은 믿는 자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두고 논쟁이 생겼습니다. 심지어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고, 부활했다고 거짓 소문을 낸 것이라는 말도 떠돌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부활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여전히 신비로 남아 있습니다.

[부활의 가장 뚜렷한 증거]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것,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묻는다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자들의 변화입니다.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이전 제자들과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겁 많고, 의심 많고,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을 두려워하며, 무식하고, 용기 없던 제자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체포당했을 때 모두 도망갔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모두 바뀌었습니다. 이제 완벽하게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베드로의 변화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유대의 지도자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베드로를 위시하여 제자들을 불러 심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대 당국의 권력자들은 다시는 예수의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합니다.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말합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 판단해 보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소."(사도행전 4:19-20)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는 온데간데 없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경험한 베드로는 이제 새롭게 탄생하는 그리스도교의 지도자가 되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스도교가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이제 제자들처럼 우리 또한 용기 있고 담대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 사건이 악의 세력에게 패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오히려 로마 제국과 그들과 결탁한 유대 기득권자들의 죄악을 만방에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는 부활을 통해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이기기 위해 인간의 죽음을 경험하시고, 인간의 가장 깊은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처절한 고난을 몸소 체험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알게 된 것입니다.

[세 종류의 부활 이야기]

성서가 말하는 부활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죽음을 극복하시고, 모든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세상에 알리는 선포입니다. 부활 체험을 한 사도들은 세상에 외쳤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다." 세상 권력을 쥔 로마와 유대지배자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 십자가에 처형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예수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예수님이 옳았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지금도 세상과 맞서서 예수님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예수님만이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입니다.

부활에 관한 두번째 이야기는 빈 무덤을 발견하고 확인하는 이야기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무덤은 죽음의 상징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리고 한 번 일어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인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그래서 죽음은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실패, 낙망과 좌절, 무기력함과 고통, 불가능을 상징했습니다. 그런데 성서는 다른 가능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 이야기는 무덤의 문이 열려 있고, 어떤 무덤도 예수님을 잡아둘 수는 없었다고 말합니다. 무덤이 비었다는 상징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것이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creatio ex nihilo)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서의 부활 이야기 세 번째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여인들에게, 베드로에게, 열 한 제자와 오백여 형제들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신약 본문에 의하면 엠마오로 가던 또 다른 두 제자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사도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자기에게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는 각각의 이야기마다 전달하고픈 내용들이 서로 다릅니다.

여기 모인 우리도 하나님 만나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저마다의 사연들이 있는 것처럼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의 이야기는 부활에 대해 제각기 겪은 체험들이 녹아 있습니다. 오늘 누가복음서에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서로 이렇게 말합니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때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언제 눈이 열렸나? 또 언제 마음이 뜨거워지는가?]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언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까?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아주 짧은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습니까?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람이 되려면 스스로의 열정을 불태웠던 자신만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저 세상이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내 생각을 가지고, 내 스스로 내 삶을 불태운 경험들이 있어야 하는데, 여러분은 언제 마음이 뜨거워졌던 적이 있나요?

제 인생을 돌아보면 저도 눈이 뜨이고 제 마음이 뜨거워진 적이 있습니다. 요즘 '달목한목의 명랑목회 이야기'를 통해서 조금씩 풀어 놓았습니다만, 몇 가지 에피소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일종의 간증이 될 수도 있겠네요!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3학년 때였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산수 시간에 배운 어떤 문제를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엄마 또한 그 문제를 풀 수가 없었습니다. 문제를 가만히 보시던 엄마가 갑자기 부엌으로 들어가시더니 삶은 고구마 두세 개를 싸 주시면서 "옆 마을에 가면 공부 잘하는 영규 형이 있으니 가서 물어보고 오너라!"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눈이 열렸습니다. "아! 우리 부모가 모르는 게 있구나! 앞으로 내 문제는 내가 풀어야겠다!"

중학교에 올라갔습니다. 첫 국어 수업 시간 국어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더니 출석도 안 부르시고 칠판에 한자로 크게 세 글자를 쓰셨습니다. "승어부(勝於父)" 그대로 직역하면 "아버지를 이겨라."라는 뜻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나아야 그 집안이 잘 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너희들 모두는 너희 아버지보다 나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이 잘 이해가 되었고, 나는 이미 아버지를 이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하셨는데, 나는 이미 중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제 부모보다 내가 더 많이 배운 사람이니 제게는 부모보다 나은 선생님이 필요했습니다.

평생을 의지하며 배울 수 있는 분! 진정한 스승은 어디에 계신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늘 맴돌았고, 그러던 중 고등학교 2학년 어느 가을밤에 평생을 함께 할 스승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주일학교 교사를 했는데, 처음에 2년은 유치부 교사를 하였고, 나중에는 유년부, 초등부 교사에 학생회 임원에, 성가대까지 교회의 온갖 일을 도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그러니까 1989년, 문익환 목사님께서 방북하셔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던 그해 여름 성경학교 주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였습니다. 당시도 주일학교 교사였던 저는 담임목사님에게 마가복음서 주석서 한 권을 빌렸습니다. 이 주제를 더 깊이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자율학습 시간에 마가복음서 주석서를 열심히 읽고 있는데, 그때 올챙이라는 별명을 가진 고3 수학 담당 선생님이 자율학습 감독을 하시다가 입시 관련 공부를 하지 않고 다른 책을 보고 있는 저를 발견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오라고 하더니, 쓸데없는 짓 한다면서 뺨을 한 대 후려치셨습니다. 그때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당시 제게 가장 중요하고 깊은 물음은 "예수는 나에게 누구인가?" 였고, 그 질문 속에서 저는 제 평생 예수와 동행해도 좋겠다는 다짐과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평생 예수님을 위해 교회봉사를 하려면 어떤 직업이 좋을까를 생각하다가 교사가 되면 주일에 쉬고, 방학도 있으니 더욱 예수님을 잘 따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대전에 있는 목원대 국어교육과에 지원하였습니다. 고전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청유학당이라는 곳에서 한문을 배우게 되었는데, 거기에 다니던 충남대 학생들이 목사들의 수준이 형편없다는 얘기를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비난과 비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당시 목사도 아니었는데 굉장한 수치심을 느꼈고, 예수님을 위해서라도 실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 방학마다 동양고전 강의를 하시는 도올서원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 신청을 했습니다. 1996년의 일입니다. 첫 수업 시간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선생님의 첫 수업은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가 자유자재로 나오면서 칠판에는 한문들이 즐비했습니다. 당시 제 실력으로는 도저히 필기를 할 수 없었는데, 옆 자리에 있던 제 비슷한 또래들은 열심히 필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면서 다시 한번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쌓았나?" 그때 배운 책이 노자의 도덕경이라는 고전이었는데, 도덕경은 우리말로 하자면 "길을 내는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의 길을 쌓아 왔습니다. 도올서원에 왔던 친구들은 학문적 언어의 길을 만들어 온 것이지요. 그때 저는 또 한 번 눈이 열립니다. "이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내가 걸어온 신앙의 길을 이들에게 소개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길을 걸어보아야겠다." 이 다짐을 하고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신학의 길로 접어들었고, 지금 이렇게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

오늘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성경을 풀이하여 주시고, 구약에 나온 모든 말씀이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빵을 떼며 식사를 할 때 눈이 열려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았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외모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밥을 먹고, 성경을 풀이하여 준 사람은 육체적으로 보았을 때 전혀 예수님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육안으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육안으로 예수님을 알아차리는 그 순간 그 사람은 사라져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누가 이들과 함께 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였을 때 예수님의 현존을 느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누가복음서 저자는 예배를 할 때 예수님의 현존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매 주일 모입니다. 여기에 모일 때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같은 신앙을 가진 교인들입니다. 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사람들입니다. 부족하고 나약하고 넘어지기 쉽고, 실수하는 존재들입니다. 목사도 그렇고 장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해 오신 분들도 때때로 인간적인 욕망과 옛 습관들이 튀어 나옵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모여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새로운 체험을 합니다.

예수님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육신의 예수가 계신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현존이 체험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하루를 보낼 때, 상사의 잔소리, 협력하는 외부 업체들의 요청과 처리해야 할 업무들에 짓눌려 있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예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들 뒤치다꺼리하고, 쉴 새 없이 설거지에 청소도 하고, 이웃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거나, TV 드라마에 푹 빠져 있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 말씀이 마음속에서부터 들려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민족의 구원을 기대했으나, 십자가 처형으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이제 엠마오로 되돌아가는 제자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일상을 다시 살게 하면서, 그 일상을 또 넘어서게 하는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합니다. 이 제자들은 엠마오로 가는 두 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처형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모든 사람들, 예수님에게서 삶의 희망과 존재의 의미를 발견했는데, 예수님이 이제 죽고 난 뒤 무슨 힘으로 살아갈지 몰라 헤매던 모든 제자가 겪은 것입니다. 이들은 다시 성경을 집어 들었고, 읽었고 깨달았습니다. 모세와 율법서와 시편이 말합니다. 모든 성공에는 반드시 고난이 따른다는 것,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길은 언제나 실패와 좌절과 장벽이 있다는 것! 그러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넘어설 때 더 단단하고 굳센 삶이 펼쳐지고 더 나은 삶이 보장된다는 것을 성경을 펴들고 읽으면서 깨달았던 것입니다. 실패는 그 자체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이들은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엠마오로 가던 발길을 돌려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의 눈이 열린 것은 예수님과 함께 나누던 식탁이 재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인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2000년 유대 땅에서 활약했습니다. 2023년 4월 9일 서울 도봉구에서 역사적 인물인 예수를 만날 수는 없습니다. 그때 거기와 지금 여기는 너무나 떨어져 있고 너무나 긴 시간, 먼 거리입니다. 우리는 그저 첫 제자들의 증언을 믿고 간접적으로 체험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함께 빵을 떼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구약의 말씀을 보십시오. 율법에 대한 설명을 들은 하나님의 계약 백성들이 배우 바를 밝히 깨닫고 나서 먹고 마시며 없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면서 크게 기뻐합니다.

오늘 엠마오로 가던 제자는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 좌절과 낙망을 이겨냅니다. 실패와 절망의 순간 자신들을 되돌아보며 말씀을 붙들었고, 말씀과 함께 묵으며 더 깊이 말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떡을 나눌 때, 그들의 눈이 열렸습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언제 눈이 열리고 마음이 뜨거워집니까? 저와 여러분에게는 어떤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에 마음을 열고 열정을 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온몸 바쳐 일하는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만약 예수님을 만나시지 못한다면 잘못 구했고, 잘못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얼른 마음을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말씀을 붙드십시오. 말씀은 우리를 살립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다시 열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말씀을 떠난 열정은 화를 불러오고, 말씀이 아닌 곳에서 열린 눈은 헛될 뿐입니다. 그런 성공은 허무함을 불러옵니다. 여러분의 눈이 옳게 열리고, 여러분의 마음이 바르게 뜨거워져서 엠마오가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발길을 돌리는 여러분 되시길 빌겠습니다. 거기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을 만드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거룩하신 생명의 하나님! 우리는 매주 작은 부활절인 주일 아침을 맞이합니다. 주님의 백성들인 우리는 함께 예배당에 모여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말씀을 듣고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눕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주소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해 주소서. 주님의 전에 모일 때 우리가 믿음의 형제자매들 속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만나게 하여 주소서. 세상의 부스러기들을 떨구어내고 진리의 말씀으로 덧입게 하소서. 말씀을 듣고 깨달아 새로운 사명으로 다시 일어서게 하소서. 말씀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우리의 일상에서 녹아나게 하시고, 말씀으로 살아난 우리의 열정이 주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내게 하소서. 늘 우리 곁에서 스승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한결같은 그 사랑, 너무 높아서 하늘에 이르고, 주님의 진실하심, 구름에까지 닿습니다. 주님께서 하늘 높이 높임을 받으시고, 주님의 영광 온 땅 위에 떨치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예물을 드립니다. 일주일 동안 애쓰며 땀 흘리며 산 삶의 결실을 드립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 허락하신 것 감사하며 드립니다. 우리의 예물을 받으시고 온전히 주님만 영광 받으시옵소서. 이 예물들이 하나님 나라 선교 사역에 널리 널리 쓰이게 하여 주소서. 꼭 필요한 일들을 해내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새 희망을 전하는 도구가 되게 하여 주소서. 봄이 왔지만 여전히 추운 겨울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따뜻한 봄 소식이 되게 하소서. 1년 넘게 끝나지 않는 전쟁에 시달리는 백성들에게 힘을 주소서. 기후재앙 속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을 위로하소서. 죽음의 세력이 아직도 판을 치는 곳에서 부활의 소식이 들리게 하여 주소서. 다시 한 번 모든 것이 당신께로부터 온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살리는 말씀을 듣고 살아난 열정으로 뜨겁게 살아가십시오.

* 축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셔서

무지에서 지식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불행에서 평안으로, 오류에서 진리로, 죄에서 승리로 옮기셨습니다.

이제는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과 거룩한 영의 사귐이 부활의 증인이 되어 세상으로 보냄을 받는 생명사랑 가족들에게, 부활의 아침 살리는 말씀으로 새 생명의 기운을 받는 전국의 모든 성도들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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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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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쇠퇴하고 신학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신학 여정을 다룬 '한신인터뷰'가 15일 공개됐습니다. 한신인터뷰 플러스(Hanshin-In-Terview +)는 한신과 기장 각 분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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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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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