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생일이다
68년 동안
그 어린 핏덩이가
인생의 황혼
할아버지가 되었다
거짓말 같다
꿈을 꾼 걸까?
아직도 나는
대광고등학교 운동장에
책가방 내던지고
공차며 뛰어다니던 모습
그대로인데
이화대학 축제 때
그 학교 문 앞
서성이며
혹시라도 누구
아는 사람 만날까
외롭게 아프게
가슴 설레던 때가
엊그제인데
모진 군대 생활
서럽고 아픈 기억 뒤로 하고
부대 정문을 나서던 날
그 차오르던 기쁨
세상 다 얻은 것 같던 희열
세상 그 어떤 일도
다 할 수 있으리라던
희망으로 가득했던 날이
언제였던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이루이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고 소중한 아들을 얻어
살아온 68년!
안양 덕천마을 시장 2층
고물상 옆
"우리교회"를 세우고
병원 갈 돈이 없어
지하 셋방 홀로
탯줄을 자르고
우유 대신 라면 국물로
갓난 아기를 키운
혜원이 엄마는
지금 어디서 무얼하는지
아프게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그 어디 하나
그 어느 순간도
아프고 외롭고
서글프지 않은 적은 없으나
나 혼자인 적도 없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한 사람 한 영혼 모두
하늘이 보내준 선물이며
보물인 것을.
68년 동안
천사같은 선물들이
내 곁에 있어
오늘 내 생일이 빛나고
영광스럽습니다
이 벅차오르는 희열과
눈물겨운 축복을
어찌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권영종 목사(이수교회)-
『어느 노숙인과 함께 한 시, 이야기』(정석현·권영종 지음/ 도서출판 우리와누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