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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맥추감사주일 지킴에 관련한 문화신학적 단상(斷想)

김경재 박사(한신대학교 명예교수,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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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한국신학아카데미 제공)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맥추절은 성경에 뿌리를 둔, 한국적 토착 신앙의 귀중한 유산

오늘 칼럼은 한국교회가 초창기 시대부터 지켜왔으나 점점 그 의미를 잃어가는 맥추감사주일을 앞으로 어떻게 되살려 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문화신학적 단상이다. 물론 오늘날도 충실하게 맥추감사주일을 성실하게 지켜가는 교회가 많다. 그러나 보리농사가 맥주회사의 계약 재배를 제외하고 거의 없어졌고, 대다수 교인들 생활이 도시화 되면서 맥추감사주일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맥추(麥秋)는 밀과 보리를 추수한다는 뜻이다. 본래는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목축과 더불어 밀, 보리, 포도, 올리브 등 농산물을 중요한 먹거리로 생산하게 되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는 3대 종교적 축제 절기로서 3가지를 지키라고 엄명되어 있다. 유월절(逾越節, 일명 무교절), 맥추절(麥秋節, 일명 칠칠절), 수장절(收藏節, 일명 초막절)이 3대 절기이다(출34:21-22, 신 17:15-18).

고대 애굽 라암세스 2세 독재자 바로를 비롯한 모든 장자를 하나님의 사자가 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집 문인방과 문설주에 칠해진 어린양 피를 보고 그 집은 "건너뛰어 넘어 갔다"(passover, 출12:13)). 유월절은 이스라엘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해방절 축제의 날이다. 맥추절은 가나안 지역에 건기 봄 농사가 끝날 무렵 특히 밀과 보리의 추수를 감사하고 기억하는 축제이다.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와 룻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그 시절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룻3: 1-18). 수장절은 가을 추수 특히 포도를 수확하면서 초막에서 지내며 포도주를 담고 농산물을 저장하는 축제기일이다.

비가 많이 내려 밭농사보다 논농사 쌀생산을 중요시하던 한민족인데, 한국교회 초창기 신앙 조상들이 6월 중순경(양력)에 있는 보리나 밀의 추수를 감사하면서 맥추감사주일을 지낸 것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성경대로 살려는 성경 중심의 신앙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맥추절을 지키라!"(출34:21-24)는 말씀대로 살려는 신앙적 동기가 마음 바탕에 있었다. 둘째, 국민의 90% 이상이 농사를 주업으로 삼던 산업화 이전 시기에, 교인들이 교회 재정을 충당하는 목돈 헌금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는 오직 보리 추수와 가을 벼농사 추수 때 뿐이었다. 셋째, 늘상 '보릿고개'라고 부르는 어려운 고난의 삶을 살아온 대다수 서민들에게 '보리 추수'는 절량농가에서 곧 생명줄이었고 구원의 양식이었기에, 부자들이 알지 못하는 남다른 애정이 '보리밥'과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보릿고개와 맥추감사절, 유월절에서 무교병과 쓴나물

인류가 보리를 재배하여 식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 역사가 오래였다. 기록과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BC. 3000년경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유럽 북서북에서도 재배되었고, BC. 2000년경엔 중국에 도입되었고, 한반도엔 삼국시대에 이미 재배되었다. 생육기간이 90일 정도면 알곡으로 여물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차가운 흙 속에서 견디다가 5월 말부터 6월 중순경에 추수하는 가을보리를 많이 했다.

일제 식민시대와 해방 후 한국동란 후유증이 극심했던 1960년까지, '보릿고개'라는 말은 요즘 세대가 느끼는 것 같은 단순한 은유적 어휘가 아니었다. 작년에 거두었던 식량은 이미 다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농가나 도시 서민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음력 4-5월경 춘궁기(春窮期)를 '보릿고개'라고 말한다. 우리 부모들은 자식들 생명을 지키려고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생명을 이어 나갔다. 아이들은 학교 끝나서 귀가 중에 배가 고파서 아직 덜 익은 보리 이삭을 논두렁에서 불을 지펴 입 주위가 까맣게 되도록 손으로 비벼 먹곤 해도 어른들은 나무람 하지 않고 못 본 채 지나가곤 했다. 배고픔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에 도리어 맘들은 각박하지 않고 이해하며 살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우리 속담이 있지만, 요즘 시대처럼 쌀이 넘쳐나서 밥이 천덕구리가 될 지경이고, '보리밥'은 체중감량을 위한 다이어트 식품의 특식(特食)이 되어버린 시대에, 교회에서 '맥추감사주일 지킴'이 지속될 수 있을까 염려가 된다.

유대민족이 예루살렘 멸망 후(AD. 70) 온 세계로 흩어져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근 2,000년을 살아왔지만, 오늘날 국민 소득 제1등국 상위급 국가로서 존속하게 된 그 정신적 힘은 어디에서 왔으며, 누가 교육을 어떻게 시켜 왔는가? 그들은 유월절 절기가 오면, "무교병 곧 누룩 넣지 않는 딱딱한 빵과 쓴나물"을 반드시 먹으면서(출12:8, 민9:11) 자녀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의 시절과 하나님의 은혜를 거듭거듭 교육하였다.

칼럼을 쓰는 오늘의 필자가 한국 민족과 한국 기독교가 '맥추감사절'을 되살려 지켜갈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교회 재정 보충과도 상관이 없다. 고난의 시대와 역경을 잊어버리고 흥청망청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의 가치관만 가지고서는 행복한 돼지들의 왕국은 가능할런지 모르나 품격 있는 나라건설은 불가능한 것이다. 교회에서만이라도 '맥추감사주일 날'은 보리밥으로 전교인이 공동식사를 나누며 '보릿고개'를 기억하는 일은 가난을 찬미하거나 과거사 타령하는 노스탤지어 같은 그런 일이 아니다. 그것은 조상들의 영적 자산과 정신을 계승 다짐하는 일이다.

눈 덮인 보리밭은 밟아주면 더욱 강하게 잘 자란다

'보릿고개'와 함께 잊혀지지 않는 추억은, 눈 덮인 보리밭을 학생들이 일렬로 서서 보리밭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밟아주던 추억이다. 가을에 파종한 보리는 한 달쯤 지난 후엔 싹이 트고 겨울을 이겨내는 특이한 농산물이다. 대략 음력 2월 초순 경, 달력은 입춘(立春)을 가리키는데, 잔설은 논밭을 아직 덮고 있는 형국이었다. 얼었던 논밭의 흙이 조금씩 풀리면서 보리 뿌리와 흙 사이에 간격이 생겨 말라죽기 쉽다. 그래서 보리가 말라죽기 전에 흙과 뿌리가 더 밀착되도록 보리밭을 질겅질겅 밟아주는 것이다.

한국 역사의 기조를 '고난의 역사'로 파악한 함석헌 옹은 명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말하기를 "고난은 생명의 원리이다. 고난은 인생과 역사를 정화(淨化) 시키고 성숙(成熟) 시킨다"라고 갈파했다.

쌀, 밀, 조, 옥수수 등 수많은 귀중한 알곡 식물 중에서도 보리를 생각하면 이상하게 '고난 이미지'가 떠오른다. 춘궁기 '보릿고개'의 고난을 마침내 이겨내고 가난한 서민들을 살려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보리가 자라는 과정을 보면 '고난의 역사'를 닮았다. 어쩐지 매우 서민적인 곡물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흰 눈 덮인 겨울을 이겨내고, 사람들과 말이나 소가 질겅질겅 밟아주어도 죽지 않고 도리어 굳게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는다.

잔설 덮인 보리밭을 밟아주고 나면, 교회력 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고난을 집중 명상하는 사순절이 뒤따라온다. 참 종교는 고난을 면제시켜주는 종교가 아니고 이겨내고 극복하는 용기와 지혜와 능력을 주는 종교이다.

1945년에 출생하여 금년도에 80세를 맞이한 존경받는 시인 이해인 수녀도 수녀 생활 60년을 지내는 동안 2008년에 대장암 수술을 받는 고난과 아픔을 겪었다. 그의 투병 생활 중 터득한 고난을 이겨내는 4가지 '투병 4대 지침'이 종파나 종교 유무를 떠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고 있다. 그 4가지 '투병 4대 지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달라는 기도 아닌 감사기도를 드리자. 둘째, 감탄과 감성의 영성을 키우자. 셋째, 나의 약점과 한계와 무력함을 받아들이자. 넷째, 모든 것은 지나가고 끝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위에서 소개한 이해인 수녀의 '투병 4대 지침' 중에서 필자의 맘엔 특히 둘째 번 지침에 마음이 끌린다. 삶 속에서 만나고 경험하는 지극히 사소하고 작은 일에도 '감탄과 감성을 잃지 않는 영성'의 필요성을 요즘 절실하게 느낀다. 예들면, 누가복음서 12장엔 은전 10드라크마를 지녔던 가난한 여자 하나가, 그중 1드라크마를 집안에서 잃어버렸는데, 천신만고 끝에 잃었던 1드라크마를 찾고 나서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눅15:8-10)라고 한 일이다.

한국민과 특히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점점 사라져가는 '맥추감사절'을 되살려 나가자고 칼럼자가 강조하는 진짜 이유가 거기에 있다. 힘들여 찾았다고 도리어 움켜쥐고, 꽁꽁 주머니에 넣어 감추는 삶이 아니라 '함께 즐기자'고 벗과 이웃을 초대하는 작은 기쁨의 축제! 그것이 맥추절이 지닌 진정한 깊은 뜻이다. 수백억 이상 수천억 돈 가진 사람들이 외국으로 자산을 가지고 탈출한다는 보도가 신문에 나온다. 외국에 나가서 수십 명 하녀를 두고 호화생활 한다고 행복하거나 성공한 인생일까? 예수님은 10드라크마 전 재산 중 1드라크마를 잃었다가 다시 찾은 후, 이웃과 작은 기쁨과 축제를 나누는 삶이 더 선하고 옳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을 칼럼자는 '보리밥의 축복'이라 부른다. 우리 삶 자체가, 우리들 생명과 생존 그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보면 "잃었다가 다시 얻었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눅15:24) 탕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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