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 최신호(7월호) 특집에 안락사, 조력사를 둘러싼 상반된 의견이 담긴 글들이 기고돼 주목을 받고 있다. '나는 죽을 권리가 있는가'라는 특집에 실린 △안락사, 과연 허용 가능한가(이승구)와 △조력사 합법화와 정당성에 대하여 가 그것이다.
이승구 합동신학대학원 교수는 "자발적인 안락사는 결국 자살의 한 종류"라며 "처음에는 지속되는 고통 속에 치유가 불가능한 질병에 한해 여러 장치를 마련하여 생명을 앞당겨 종식하자는 논의에서 시작되었지만, 그렇게 인위적으로 인간 생명을 제거하려는 이유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면 과연 어느 지점에서 이 논의를 그쳐야 할지 모르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저런 이유로 안락사를 정당화하려는 모든 논의는 종국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중단하게 할 수 있다는 논의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자살률이 OECD 가입국 중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데에 "자살에는 여러 이유가 있어서 그 면면을 다 살펴보아야 하지만, 결국 이것은 자신의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 안에 널리 퍼져가고 있는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자발적 안락사가 허용된다면, 우리는 선진국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 1위의 자살률을 현저히 높이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면에서 볼 때 안락사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긍정적인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는 안락사에 대해 "좋은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야만 한다"며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람의 삶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 있을 때 좋은 삶이라고 해야 하고, 죽음마저도 삼위일체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서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죽을 때 좋은 죽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정리하자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죽음이 진정한 "좋은 죽음"(euthanasia)이다"라고 밝혔다.
반면 박충구 전 감신대 교수(생명과평화연구소 소장)는 조력사 반대에 대한 입장을 두 가지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첫째로 그는 "과거의 규범을 고수하려는 자기 확신 혹은 생명권 옹호라는 종교적 신념이나 사회적 규범 및 전통을 고수하려는 태도를 지닌다면 안락사 문제에 대하여 강한 거부감을 드러낼 확률이 높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 전 교수는 "이는 19세기 초에 비해 두 배나 길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수명, 그로 인한 연장된 죽음의 과정, 거기에 수반된 고통의 질 등에 대한 현대적 논의와 이해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며 "생명권 옹호의 관념이 생명 그 자체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서서,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얻으려는 인간의 권리를 존중하는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둘째로 그는 "말기 환자가 처한 정황에 대해 '환자의 입장'에서 면밀하게 이해하고 있는지의 문제"라며 "우리가 그 정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권위주의적 타율의 윤리를 들이대며 맹목적인 규범론을 앞세워 환자의 '자율적인 자기 생명과 삶의 관리 능력'을 부정하고 환자의 자유를 묵살하려는 입장을 강화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박 전 교수는 특히 "과거의 전통만을 규범으로 삼고 지키기 위해 환자를 고통 속에 버려두고 희생시키는 셈"이라며 "우리는 과거의 특정한 규범 윤리를 가지고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노인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고에 달하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서는 존엄한 죽음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가 부족한 탓이라고도 진단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호스피스 병실이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존엄한 죽음을 논의하기는커녕 노인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고에 달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삶과 죽음의 질에 대한 윤리적·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란 참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오리건주나 네덜란드의 입법 사례는 수명이 연장된 오늘의 세계에서 과거의 생명 윤리가 주창하던 생명의 존엄성이나 생명권 옹호라는 형식적 구호로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결과이다"라며 "오늘날 우리는 노화되고 면역력이 저하되어 다가오는 각종 질병을 겪으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사는 위기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고통을 의료적 처치나 고통 완화 치료 혹은 호스피스 제도로 해결할 수 있을까? 현실은 그러한 방안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기에 넉넉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비참한 현실 앞에 놓여 있다"고 박 전 교수는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결국 조력사를 반대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정당성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극심한 고통으로 말살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홀연히 수납하려는 자발적 의지를 두고 비윤리적인 소망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며 "이 소망은 인간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요구하는 생의 마지막 권리이다. 이 권리를 부정할 경우 우리는 고통을 겪는 이들을 계속 그 고통 속에 내버려 두는 비인도적인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