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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
김진호 목사(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이사, 민중신학 연구자)가 2030 청년 세대의 정치 참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탄핵정국을 분석하며 증오의 정치를 펴고 있는 "극우주의가 패배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김 목사는 19일 발표한 '윤석열 폭정종식 그리스도인 모임 제21차 시국논평'에서 이 같이 밝히며 "호혜의 정치는 다수 시민의 지지를 받을 만큼 설득력 있는 행위를 폈는데, 증오의 정치는 범보수를 분열시켰고, 스스로를 고립시켜 버렸다. 이것은 오늘의 한국 사회가 파시즘으로 귀결되기보다는 더 호혜적인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기회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탄핵정국에서 청년 세대의 정치 참여 유형을 '증오의 정치'와 '호혜의 정치'로 분류하고 전자의 패배를 예상한 그는 이어 "이는 수많은 나라에서 청년 대중이 극우주의에 기울어져 사회를 퇴행시키고 있는 것과는 다른 경로를 보여준다"며 "해서 오늘의 한국 사회는 일단 전 세계적인 모범적 사례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세계적 추세와는 다른 길로 갈 가능성을 예시해주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김 목사는 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 없다. 당장은 극우가 한 걸음 물러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흑백 K-데몬스트레이션이 격하게 대립하고 있는 오늘의 지형에서 극우가 시민사회의 더 큰 지지를 받는 퇴행국면이, 윤석렬 정부의 등장과 같은 그런 암울한 국면이 다시 도래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끝으로 그는 "우리는 냉철하게 오늘을 살피고, 대중의 절망과 한숨을 해석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다"고 덧붙이며 논평을 마쳤다. 아래는 시국논평문 전문.
윤석열 폭정종식 그리스도인 모임 제21차 시국논평
흑백, K-데몬스트레이션 시대, 읽어내기
2024년 12월 21~22일의 '남태령', 그리고 2025년 1월 19일의 '서울지방법원', 그때 거기에선 두 범주의 정치적 대중이 있었다. 이 두 장소에서 벌어진 대중의 사건은 어쩌면 21세기적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이들 중 다수가 청년이라는 점에 사람들은 적잖이 놀랐다. 한데 청년이라는 것이 놀랄 일인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청년들은 언제나 결정적 역할을 하지 않았던가. 1940년대 말, 일제 식민통치가 종식되고 새 국가가 극우체제로 귀결될 당시 청년은 정치변동의 핵심이었다. 또 1980년대 말, 장기간 계속된 군부독재 체제에서 민주체제로의 전환의 변곡점이 되었던 이들도 청년이었다.
한데 최근, 청년의 정치적 행위가 사회변동에 유의미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일단 숫자가 다른 연배에 비해 너무 적다. 또 각기 너무 개별화되어서 집단적으로 세력화되기도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문화적 열정에 비해 정치적으로는 무관심했고 무지해 보였다. 하지만 지난 두 달 사이, 이런 요소들은 여전히 별로 변한 것이 없는데, 사회는 그들의 정치적 행위의 효과에 적잖은 영향을 받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뉴미디어의 막강한 영향력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특히 청년은 뉴미디어가 창출한 세계의 가장 열성적 일원이다. 이런 뉴미디어가 깊이 개입되어 있는 세계 안에서 청년 대중은 많은 것을 체험하며 살아간다. 특히 팬덤과 인터넷게임은 21세기에 가장 많은 청년 대중이 연루되어 있는 세계다. 특히 한국은 이 두 온라인 기반의 문화 현상이 가장 활발한 곳이다. 주목할 것은 팬덤 문화에 가장 활동적인 대중은 여성 청년이었고, 인터넷게임은 남성 청년1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이 두 다른 체험은 다른 방식의 행위능력을 강화시킨다. 게임문화는 대체로 경쟁과 파괴의 감수성을 강화시킨다. 그것을 위해 상대방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도발적으로 수행하는 창의력을 개발하게 한다. 한편 팬덤 문화는 사랑의 감수성을 강화시킨다. 팬덤 대중이 추앙하는 스타는 착함을 연기하고, 대중은 스타의 그런 모습을 모방한다. 하여 그들도 착함을 연기하는 자가 된다. 또 팬덤 대중은 스타를 옹호하고 홍보하는 데 적잖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설득의 기술을 연마하게 한다.
그런데 인터넷게임에 열을 올리던 남성 청년의 일부가 가상현실 밖으로 나와서 자신이 발달한 감수성으로 현실에 개입하곤 했다. 그런 이들은 극우주의와 좀 더 친숙한 경향이 있었다. 적이 필요했고, 그자들을 파괴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반면 여성 청년들의 일부는 정치적 현실에 개입할 때 약한 타자를 포용하고 그런 사회를 위해 시민사회를 설득하는 데 더 친숙했다. 물론 극우적 남성 청년 못지않게 호혜적 남성 청년의 수도 많다. 또 포용적 여성 청년과는 달리, 비대칭적 젠더 현실에 분노하면서 증오를 자가발전시키는 여성 청년도 적잖다. 이런 성향들을 옳고 그름으로 단순이분화할 수는 없지만, 타자를 설득할 언어를 포기하는 순간, 정치적 경합의 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윤석렬의 계엄 사태 이후 많은 청년들이 정치적 주체로 행위하게 되었고, 특히 남태령 사건의 여성 청년은 타자를 포용하고 연대하는 정치적 행위를 보여주었으며, 서부지방법원의 남성 청년은 파괴와 공격성을 과시했다는 사실이다.
이 두 행위는 각기 다른 정치적 주체가 되어 활동하는 이들과 접속했다. 한편은 증오의 정치로, 다른 한편은 호혜의 정치로 말이다. 과연 이 두 사건 중 사회적 승자는 누구일까. 일단 극우주의가 패배할 것으로 예상된다. 호혜의 정치는 다수 시민의 지지를 받을 만큼 설득력 있는 행위를 폈는데, 증오의 정치는 범보수를 분열시켰고, 스스로를 고립시켜 버렸다. 이것은 오늘의 한국 사회가 파시즘으로 귀결되기보다는 더 호혜적인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기회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수많은 나라에서 청년 대중이 극우주의에 기울어져 사회를 퇴행시키고 있는 것과는 다른 경로를 보여준다. 해서 오늘의 한국 사회는 일단 전 세계적인 모범적 사례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세계적 추세와는 다른 길로 갈 가능성을 예시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 없다. 당장은 극우가 한 걸음 물러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흑백 K-데몬스트레이션이 격하게 대립하고 있는 오늘의 지형에서 극우가 시민사회의 더 큰 지지를 받는 퇴행국면이, 윤석렬 정부의 등장과 같은 그런 암울한 국면이 다시 도래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해서 우리는 냉철하게 오늘을 살피고, 대중의 절망과 한숨을 해석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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