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연세 신학, 4.3의 기억을 만나다

연세대BK21 종교 교육연구팀, 제주 현장 워크숍 통해 종교의 공적 역할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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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대 제공)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4단계 BK21 어깨동무사업팀(팀장 임성욱 교수)이 최근 제주 4·3 현장 워크숍을 진행했다고 28일 밝혔다.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4단계 BK21 어깨동무사업팀(팀장 임성욱 교수)이 최근 제주 4·3 현장 워크숍을 진행했다고 28일 밝혔다. "종교, 역사와 지역사회를 다시 잇다: 폭력, 트라우마, (초)연결"을 주제로 진행되는 이 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번 행사는, 제주 4.3 유적지를 탐방하고, 북촌희생자유족회 고완순 전 회장을 만나 증언을 듣는 한편, 제주대 대학원 "제주 4· 3 연구융합" 전공팀의 이소영 교수(사회교육)와 백영경 교수(사회학과)의 강연 및 토론을 통해 제주 4.3과 종교의 참여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소영 교수는 『용서의 (불)가능성과 사과의 수행성』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화해와 용서의 문제와 관련된 윤리적 조건을 다루었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용서할 수 없는 것의 용서'라는 역설적 개념을 중심으로 용서가 단순히 정치적 화해 수단이 아닌, 역사와 법의 통상적 질서를 흔드는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임을 강조했다. 또 용서가 실현되지 않더라도 반복되는 사죄의 발화는 윤리적 의미를 지니며, "용서하지 않을 권리"와 "용서를 구하는 윤리"는 병존할 수 있음을 논의했다.

『4·3과 현재: 트라우마의 전승인가 뜻의 계승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한 백영경 교수는 제주 4·3을 둘러싼 기억 계승과 지식인의 역할을 중심으로, 개인과 공동체가 트라우마에 영속적으로 갇혀 있는 대신 그 고통의 기억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계승하여 공동체 성찰과 변화로 연결시킬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제주 4·3의 기억이 단순한 애도나 치유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사회적 책임과 연대의 문제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4.3 유족인 고완순 전 회장은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들을 통해 어린 시절 겪은 참혹한 기억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그는 고인이 된 언니들의 젊음을 회상하며 그들의 아름다웠던 모습을 떠올렸고, 아홉 살 무렵 엄마 등에 업혀 있던 세 살배기 동생이 군인의 몽둥이에 머리를 맞아 숨진 일을 기억해냈다. 마치 동생의 죽음이 비명을 질러 동생을 따라 울게 한 자신의 잘못이라도 되는 듯, 그는 그 기억 앞에서 울음을 멈추지 못하며, "4.3 사건을 많이 알려달라"는 간절한 당부를 참여자들에게 전했다.

BK21팀은 증언을 들은 뒤, 위령제단, 위패봉안실, 봉안관 등이 있는 제주 4.3 평화공원, 너븐숭이 4·3 기념관, 위령비, 애기무덤, 옴팡밭 등 주요유적지를 답사하며 학살의 현장을 직접 마주하고 제주도민의 고통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강요배 화백의 그림 '젖먹이', 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 초판본, 학살 진상 관련 역사 자료들을 통해, 4.3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비극적 사건인 북촌리 학살의 실상을 생생히 접했다. 1949년 1월 17일, 군경 토벌대는 마을주민 300여명을 무차별 학살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참여자들은 강연, 증언, 현장 체험을 바탕으로, 4.3의 역사적 맥락을 종교적, 정치적, 국제적 시각과 연결하며, 4.3의 책임 범위와 용서 가능성, 4.3 연구와 신학의 연결 등에 대해 성찰했다. 참여자들은 제주 4·3을 기독교의 '용서'나 '사랑'이라는 단순한 도식으로 접근하는 것을 넘어, 역사적 맥락과 구조적 복합성을 반영한 신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이 모아졌다. 민중신학이 주목해온 '한'의 정서를 4·3이 남긴 고통과 트라우마와 연결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동시에 이를 제주 사회의 다층적 관계망을 고려한 융합연구로 확장시켜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제기됐다.

이번 워크숍은 아픈 역사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생존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예술과 기록을 통해 고통의 기억을 되새기는 과정을 통해, 종교의 공적 역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종교가 역사적 고통의 기억을 공동체와 함께 짊어지고, 연대와 치유의 실천에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능성을 모색한 이번 워크숍은, 단순한 도식적 접근을 넘어 융합적 연구의 필요성과 종교와 신학, 사회학, 법학 등의 학제간 협력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는 사회적 책임과 연대에 기여하는 한국 미래 종교교육을 위한 중요한 전제이자 방법론적 제안으로 이어진다.

워크숍을 기획한 임성욱 교수는 "이번 여정을 통해 연세의 신학이 제주 4.3의 아픔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의 고통을 기억하고 역사 속에서 행동하는 신학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며 "제주에서의 생생한 경험은 워크숍에 참여한 연세 신학 공동체에게 단순한 학문적 탐구 이상의 가치를 안겨주었습니다. 삶의 현장에 기반한 신학 교육이 앞으로 신학의 새로운 방향을 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제주 여정은 단순한 학문적 활동을 넘어, 현실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신학의 길을 모색하는 중요한 발걸음이었다"고 전했다.

이민애 theworld@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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