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미가서 6:6-8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높으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번제물로 바칠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가면 됩니까?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 줄기를 채울 올리브 기름을 드리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가? 내 허물을 벗겨 주시기를 빌면서,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아멘.
요한 1서 2:15-17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속에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은 모두 하늘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도 사라지고, 이 세상의 욕망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아멘.
마태복음서 18:18-20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거듭 너희에게 말한다. 땅에서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 아멘.
설교문
여러분, 찬송이 어디서 들립니까? 하늘에서 목소리가 내려옵니까, 아니면 먼 곳에서 들려옵디까? 아니면 땅 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옵니까? 스스로 생각하고 결단하면 방향을 아실 겁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오늘 여러분한테 들리면 그 음성이 어디서 나오는 것 같습니까?
이제 추수철이 되었지요? 우리 농민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가꾸고 길러서 곡식을 내고 열매를 맺고 감사하면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 예물을 드립니다. 우리는 이미 추석 때 추수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이제 추수감사예배를 드릴텐데 농사짓는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알고 있는 지혜를 담은 말이 있습니다. “땅을 파면 팔수록 하늘이 나타난다.” 동의하십니까? 땅을 파면 팔수록 하늘이 나타납니다. 서양 사람들 속에 땅 파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땅 위에 하늘이 있고, 땅 위에 땅에 붙어사는 사람이 있고, 땅 밑에는 또 다른 연계(삼청천)가 있다”고 말을 했는데 대개 부정적으로 말했습니다.
한국 농민들은 땅을 파면 팔수록, 깊이 파면 팔수록 그 속에 또 다른 땅이 있는 게 아니라 하늘이 있는 것을 압니다. 그 하늘이 열매를 맺어서 오늘 우리한테 곡식이 되어 옵니다. 그러기에 하늘을 향해서 감사하지요. 땅에서 온 걸 왜 하늘을 향해서 감사하십니까? 농사짓는 사람들의 지혜만이 아니라 사실 우리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 땅에서 받은 모든 것은 하늘이 주신 것, 하늘이 내려와서 우리한테 풍성하게 해주는 것, 그런 느낌이 우리한테 다 있습니다.
제가 땅을 파보겠는데요, 우리나라 땅과 물과 산, 이런 것을 다 말씀하시는 분들이 풍수지리하는 분도 있고, 또 거기서 나와서 땅의 모양, 특성, 그걸 말한다고 해서 ‘형국’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그걸 다 따질 수는 없으나 우리나라 동양에 있는 사람들이 땅을 파는 이야기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위에는 대기권이 있습니다. 그리고 땅 제일 위에 사는 것이 식물들입니다. 그래서 식물계가 있고, 식물을 보고 삽을 들고 땅을 파 나갔더니 흙이 있습니다. 흙을 자꾸 파내려 가면 더 깊게 암석이 있습니다. 암석을 더 캐내고 들어가면 물이 흐릅니다. 수맥이 흐르지요. 물이 흐르는 곳을 더 파고 내려가면 불이 있습니다. ‘화’입니다. 우리의 생태학적 지혜 가운데 불인 가장 마지막 단계를 파고 더 깊이 들어가면 보이지 않으나 힘, 능력, 이런 것들이 꽉 차 있는데 그것을 우리 지혜로 ‘기’라고 불렀습니다. 기가 막히면 땅에서 식물도 잘 자라지 않고, 기가 통하면 쫘악 기가 올라와서 식물도 자랍니다.
땅은 살아있습니다. 살아있기에 나무가 자라지요. 살아있기에 온갖 재화가 올라오지요. 살아 있기에 숨도 쉬지요. 땅도 살아있고, 사람도 살아있고, 하늘도 살아있지요, 땅을 보고 쥐어보고 밟아보고 느껴보는 우리가 반대로 방향을 바꿔서, 하늘도 살아있습니다. 태양도 살아있습니다. 모든 하늘에 있는 것이 다 살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공간을 이야기하는 것을 조금 바꿔서 저의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살아 있다고 하면, 저를 지배하고 저를 다스리고 있는는 위에 있는 모든 세계도 살아있습니다. 이렇게 두고 우리나라의 좋은 이야기를 읽어보았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떻게 될 것 같냐고 하니까 땅 이야기, 풍수 이야기, 형국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는 연꽃 모양의 꽃과 같다, 그렇게 써 놓은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한반도가 연꽃의 암술이 피는 장소고, 연꽃의 잎사귀가 양쪽으로 열려있는데 북쪽에서 바라볼 때 우쪽으로 열려있는 꽃잎이 중국하고 인도 쪽으로 열려있고, 좌쪽으로는 일본, 아메리카 대륙이 있고, 그래서 암술이 있는 연꽃이 피는 나라, 기분 좋으시죠?
또 어떤 분은 한반도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이 모양이 무슨 모양이냐 하면 짐을 가득 싣고 막 떠나려고 하는 배와 같다. 그 이름을 ‘행주’ 그렇게 말합니다. 행주산성도 그런 모양인가 봅니다. 무얼 실을 거냐? 부, 문화, 정신, 모든 것을 배에 가득 싣고 세계 무역에 나서서 우리를 부강국으로 만듭시다. 떠나고, 다시 데려오고.
이런 꿈, 땅의 생긴 모양, 바다가 생긴 모양, 다 필요가 없습니다. 그걸 잘 받으면 복되게 살 수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연화꽃이라고 하건, 행주라 이름하건 그 속에 살아 꿰뚫고 움직이는 기가 용솟아납니까? 이 땅에는 진실로 기가 있습니까? 이 한반도에는, 이 땅에는 바다 밑 저 밑에서 흘러나오는 살아 움직이는 기, 살게 하는 요동치는 기가 우리한테 꿈틀 거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기가 살아있습니다. 그 기를 먹고 살아갑니다. 기가 없는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고, 기가 없는 백성은 허물어집니다. 기가 없는 문명은 잠시 꽃피다 사라져버립니다. 세계 문화, 문명, 모든 국가를 보면서 사실 사그라진 문명의 주인은 기가 소진되었을 뿐입니다. 우리 다 알고 있습니다.
뉴욕에서 불어오는 금융위기, 돈이 없습니까? 재화가 없습니까? 금융이 없는 겁니까? 있습니다. 뭐가 없어서 그렇습니까? 믿지 않습니다. 신뢰가 떨어져 버렸습니다. 많이 있는데, 이 많은 것을 확실하게 지켜줄 ‘기’가 소진한 것 같습니다. 이 땅의 모든 것, 아픔, 슬픔 다 있는데 기가 없으면 아무리 많이 쌓여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은 갖지 못합니다. 금융의 극복 방법은 제가 신앙적으로 말하면 믿음의 회복입니다. 신뢰의 회복입니다. 그리고 희망을 다시 건설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금융만 그렇습니까? 우리 개별적인 개개인의 일상은 어떻습니까? 가정에서, 사회에서, 저 자신 속에서 제가 저를 믿지 못하면 저는 기가 빠져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 구성원들끼리 믿지 못하고 불신하면, 맡길 수 없으면 그 가정이 난리가 나지요. 나라도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오늘 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땅 속 깊이 있어서 땅을 움직이고 바다를 움직이고 불을 내고, 그래서 기가 통하는 것을 기라고 하는데 오늘 성경말씀은 이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은 기의 원천인 창조주라 이름하는 바로 그분이다. 하나님은 뭐냐? ‘기’다. 하나님은 모든 힘을, 입김을 ‘기’, ‘영’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늘 신앙으로 다시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만드시고, 이 땅을 풍성하게 하시고,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자기 백성으로 만들고 부어주신 축복이 하나님의 영, ‘천기’ 그 영을 우리는 성서적으로 ‘성령’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성령을 하늘에서 받으면 이 땅은 복된 땅이 됩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들여다보면요, 하늘에 있는 영이 이 땅에 임한다, 그게 아니라요, 하늘에 있는 영이 이 땅에 와서 이 땅의 영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천지조화의 비밀입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요, 하늘에 계셔서 땅에 편지하셔서 그냥 계시는 분이 아니고, 그 하나님은 땅에 오시면 땅이 되고 땅 속에 움직이면 땅을 움직이는 기 속에 오셔서 성령이 되고, 인간 속에 오시면 신이 아니고 인간의 모습을 입은 인간화된 하나님이 되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부 와서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인간화.
그래서 어떤 분이 이 땅에 살며 신앙고백을 하면서 신학을 자꾸 연구해 봅니다. 어디 역사하시나? 그랬더니 공중에 있는 하나님은 감이 안 잡히고, 제 삶의 영역을 벗어난 하나님은 너무 현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이고, 제가 경험하고 감사하고 느끼고 지금 만져주시는 하나님은 누굴까, 하고 자꾸 다가가보니까 신학공부는, 하나님 공부는 결국에 가서는 사람 공부다. 전문용어로 신학은 인간학이다. 신학자의 변입니다. 신학 말고, 사람의 문제, 경제의 문제, 사회 문제를 다 검토해 보면서 어떻게 사람이 살까? 사람의 고통, 슬픔, 아픔을 다 보면서 제가 해결할 수 없는, 그러나 고통의 희면에, 세상 모든 역사의 희면 속에서 내가 조절할 수 없는 뭔가 나를 움직이는 힘, 그것을 발견하고, 이 힘이 바로 인간의 힘이 아니라 신의 힘이다. 그 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렇게 믿다 보니, 세상을 연구하고 연구하다 보니 결국 발견한 것은 인간학은 신학이다. 양 쪽 다 가능하지요? 이 두 개는 고백적 언어입니다.
오늘 성경말씀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해 놓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백성들아, 나는 하늘에서 복을 내려주마. 길을 열어주마. 성령을 주마. 복되게 살아라. 복을 받았으면 축복을 받았으면 진실로 감사하면 열매를 거뒀으면 이제 나한테 고맙단 말 한마디 해라.” 그게 뭐냐니까, 예배입니다. 예배란 다른 게 아니라 하늘이 준 성령의 능력을, 천길을, 땅에서 받고 길러서 소득을 거뒀으면 하나님께 하는 보고입니댜. 보고 드리는 것을 예배라 이름합니다. 하늘을 향하여!
예배는 이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구약에 미가가 말씀하십니다. “뭘 가지고 예배할까요? 제가 거둬드린 곡물 가지고 예배할까요? 기른 짐승 가지고 할까요? 아팠다가 나았으니까 건강가지고 할까요? 제 신체 일부를 떼서라도 할까요?”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것은 너희들이 먹으라고 준 것이고, 내가 받을 것은 딴 것이다. 내가 받을 본래의 것, 하나님의 공의,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내가 준 사랑, 내가 동행했다는 진실, 그걸 다시 나한테 바쳐라.” 소득을 바치라는 게 아니고, 물건을 만들어서 바치라는 것이 아니고, 물건의 본성을, 우리가 받은 축복의 가장 진심을, 거죽이 아니라 가장 가운데에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하나님께 다시 보여 봐라.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향하여 드리는 진실된 예배가 있고, 그렇게 예배드리는 사람은 땅을 향하여 하나님이 일하시는 곳,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 하나님이 눈물 흘리시는 그 곳에 가서 봉사의 예배를 드려라. 그 뜻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찬양의 예배를 드리고 동시에 하나님이 땅 속에 인간의 삶 속에 계시므로 기쁜 것으로 향하는 봉사하는 예배, 두 예배를 내가 받고 싶다. 하늘을 향해서 좋은 이야기하면서 땅 속에 들어가서 공의를 실천하지 않으면 예배는 반쪽 예배니라.
이 말씀을 받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땅에 와서 땅이 되셨다. 천기가 토기가 되었다. 그리고 인기가 되었다. 인간의 모든 기본적인 가장 깊은 곳에서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내가 바로 그 하나님의 분신이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이,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당신들 속에 당신의 가정 속에 내가 와서 둥지를 틀고 살았다고 믿으면, 당신들이 매면 하늘 아버지도 맬 것이고 당신들이 풀면 하나님도 풀 것이요. 이제는 하늘과 땅이 연결된 정도가 아니라 하늘과 땅이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 말씀이 “사랑하는 여러분, 두세 사람이 이 땅에 모여서 합심하여 고하면 하늘 아버지가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오늘 이러면서 주시는 말씀의 핵심은 이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홀로 계시지 않고 당신들을 구하려고 이 땅에 머물려고 내려오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아십니까? 그 하나님은 존재의 대상이 아니고 그 하나님은 우리가 경험하는 대상입니다. 그 하나님을 뭐라고 하면 좋습니까?” 하고 물어봤더니 성경말씀이 “그 하나님은 그냥 ‘사랑’이라고 하여라. 하나님은 우리와 사랑하는 이웃 때문에 존재하시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하나님을 그들에게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우리한테 오신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저하고 사랑으로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에 오신 분, 그분을 제가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사랑의 표현이 예수라 이름하는 그분이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싶으시면 사랑하면 됩니다. 사랑이 아닌 동행, 사랑이 아닌 공의, 사랑이 아닌 인자하심, 그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길래 사랑으로 우리한테 오셨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자연과 인간은 공생구조입니다. 공생이라는 말을 사랑이라고 바꿔봅시다. 자연과 인간은 서로 사랑해야 복되게 살아갑니다. 하늘과 땅은 서로 사랑으로 공생 공존해야 복 받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합쳐야 서로 복을 받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늘을 향해서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땅을 향하여 기도를 들어 주시면서 자기의 영을 물 붓듯이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제가 오늘 마지막으로, 어떻게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하는 겁니까? 하나님은 사랑의 존재입니다.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믿는 십자가의 진실을 아십니까? 사랑하는 사람은 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랑 때문에 이 땅에 왔고 십자가를 지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사랑하면 아프죠? 아프십니까? 저도 많이 아파봤습니다. 사랑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십자가는 아프다. 사랑은 아프다.” 십자가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자기 고백입니다. 아픈 하나님을 고맙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걸로 끝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서 부활하신 다음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랑은 기쁘다.” 십자가 사랑 속에서 하나님은 우셨습니다. 부활절 아침 부활을 머금은 하나님은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웃으시는 하나님, 우시는 하나님, 아파서 절망에 허덕이는 사람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병이 낫다고 즐거워서 기뻐하시는 하나님. 그 얼굴을 보셨습니까? 느끼셨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신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한테 다가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세상 속에 사랑이 있음을 깨닫고 삽시다.
그런데 세상 속에 사랑의 원천인 하나님의 사랑을 못 보고 세상을 보면 여러분은 실망합니다. 땅 속에 있는 기만 보고 살다가 하늘의 기가 합쳐진 것을 모르면, 땅 속 기가 요동치면, 큰 혼란이 다가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 자연세계 속에 신기가 들어가서 하나님의 귀하신 축복으로 바꿔준다는 것을 믿으면 울어도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다. 눈물을 흘려도 환한 웃음으로 되돌아 올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신비스럽지만 오늘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총이요,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것을 이렇게 경험하고 사는 것을 사랑이라 이름하겠습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혼자 사는 사람 봤습니까? 사랑은 같이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는데 하나님이 홀로 계시고 제가 따로 있는 하나님 봤습니까? 사랑이신 하나님은 저하고 같이 계십니다. 우는 모습으로, 웃는 모습으로. 배고픈 모습으로, 배부른 모습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모습 속에 하나님은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세상의 사랑, 이 세상의 가치관, 이 세상의 욕심, 이것에 하나님이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세상에 있으나 세상을 넘어서, 우리를 사랑하시나 우리의 사랑의 범위를 넘어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십자가에 죽을 줄 아시지만 부활을 만들어 가시는 방법은, 이 땅에 고통당하는 우리 모두에게 복을 주시면서 생명을 재창출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이 저한테 계시고, 우리한테 계십니다.
의지할 수 있는 건 모든 역사와 모든 현실에 가장 근본인 하나님의 영이시다. 믿으십니까? 그러면 위로를 받으십시다. 그러면 기뻐하십시다. 이렇게 사랑이신 하나님, 움직이신 하나님을 제가 하나님으로 받고 고백하는 사람들, 아름다운 시도 쓸 수 있고 찬송도 쓸 수 있습니다. 이제 곧 우리가 찬송가 하나를 부르려고 하는데 삼절만 인용을 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사랑을 아시는 분은 하늘을 화폭 같은 두루마리로 삼고 무한대의 바닷물을 먹물 삼아서 아무리 감사와 사랑을 써도 모자랍니다. 이 찬송인데요, 제가 하나 덧붙여 보겠습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온 바닷물을 먹물 삼아 온 땅을 붓대 삼아 아무리 써도 하나님의 사랑은 모자랍니다. 지금도 그러셨고, 내일도 그러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