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이화대학교회 장윤재 담임목사] 가을의 기도

2025년 9월 14일 주일예배 설교

jangyoonjae
(Photo : ⓒ베리타스)
▲장윤재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대학 기독교학과, 이화여대 대학교회 담임목사)

성경본문

예레미야 29:11-13, 베드로전서 1:22-25, 마가복음 6:45-47

설교문

아침과 저녁에 선선한 바람이 붑니다. 더 이상 밤새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저는 다시 걸어서 학교를 오가기 시작합니다. 가을입니다. 가을이 왔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신비 앞에 서게 됩니다. 계절의 변화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세밀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경영입니다. 그 앞에서 인간의 마음은 겸손해지고, 동시에 경이로움으로 가득 찹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계절은 그것을 가르쳐 줍니다.

저는 가을이 참 좋습니다. 하늘은 더없이 높고, 빛살은 한결 맑아집니다. 나뭇잎은 불타는 듯 물들고 어느새 우리의 마음도 물들어 갑니다. 풍요의 계절, 결실의 기쁨이 있는가 하면 떨어지는 낙엽처럼 삶의 유한함도 드러납니다. 그래서 가을은 한편으로는 넉넉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쓸쓸해서 깊이가 있습니다. 가을이 좋은 까닭은 아름다움과 허무함, 풍요로움과 쓸쓸함이 한꺼번에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가을을 대표하는 한국의 시는 역시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입니다. 1913년에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난 시인은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 신앙의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연희전문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지요. 한국전쟁과 여러 시대의 아픔을 겪으면서 신앙적 시 세계를 확립했습니다. 197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신과 인간, 존재의 고독, 구원의 빛을 주제로 꾸준히 씨를 썼습니다.

김현승 시인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잘 알 수 있는 시는 사실 '눈물'입니다. 인간에게 눈물은 무엇입니까?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더러는 /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자...... // 흠도 티도, / 금가지 않은 /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 더욱 값진 것으로 / 드리라 하올 제, //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인간에게 눈물은 무엇입니까? 시인에게 눈물은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입니다. "흠도 티도, 금가지 않는 [자신의] 전체"입니다. 신 앞에 이보다 더 값진 것으로 드리려 해도 그가 지닌 가장 나은 것은 눈물뿐입니다. 시인은 그 눈물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고 말합니다.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꽃은 시들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한 자연의 순환을 신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시인은 인간의 '웃음' 다음에 오는 '눈물' 역시 하나님이 제정한 자연의 순환이라고 말하는 중입니다. 눈물은 덧없는 인간의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인간에게 내리신 마지막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요즘 남몰래 눈물 흘리는 분들이 계십니까? 나도 몰래 자꾸 눈물이 나는 분들이 계십니까? 내 인생이 슬프고 세상이 아픈 분들이 계십니까? "새벽 강에 나가 홀로 / 울어본 적이 있는가 // 늦은 것이 있다고 / 후회해 본 적이 있는가 // 한 잎 낙엽같이 / 버림받은 기분에 젖은 적이 있는가 // 바람 속에 오래 / 서 있어 본 적이 있는가."(천양희, '오래된 가을')

눈물은 영혼을 지키는 방패입니다. 과학적으로도 눈물은 눈을 지키는 방패입니다. 눈물의 대부분인 물은 눈을 촉촉하게 유지하고, 먼지나 이물질을 씻어냅니다. 눈물 속의 염분은 삼투압을 조절해 세포가 손상되지 않게 합니다. 눈물 속의 기름 성분은 눈물의 증발을 막아 각막을 보호합니다. 이렇게 눈물은 과학적으로도 눈을 지키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눈물에는 물이 있어 메마른 영혼을 적십니다. 소금이 있어 인생의 짠맛을 기억하게 합니다. 지질이 있어 쉽게 메마르지 않게 지켜 줍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감싸주시듯 눈물은 치유의 막이 되어 우리를 덮어 줍니다.

예수께서는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마태 5:4, 새번역)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눈물 흘리는 사람을 위로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슬픔이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경험하는 자리임을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깊은 상실을 겪은 사람이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릴 때, 그 눈물은 '주님, 제 마음을 아시고 저를 위로해 주세요'라는 눈물의 기도 한 방울이 됩니다. 그 순간,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화가 찾아와 쓸쓸함과 허무함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을에는 /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김현승, '가을의 기도') 했습니다. '가을의 기도'는 먼저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리는 기도입니다. 한때 푸르렀던 낙엽은 생명을 다하고 땅에 떨어져 이제 흙으로 돌아갑니다. 조급하지 않고 자연의 질서와 하나님의 때를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가을의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겸손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가을의 기도는 또 겸허한 모국어로 채우는 기도입니다. '겸허한 모국어'가 무슨 뜻입니까? 억지로 꾸미지 않은 기도, 화려하고 부풀린 말이 아니라,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기도가 바로 겸허한 모국어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예수께서도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마태 6:7, 새번역)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가을에는 어린아이의 말처럼 단순하고 진솔한 기도를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셋째로 가을의 기도는 채우는 기도입니다. 낙엽 떨어지듯 나의 교만과 욕망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가 채워지기를 바라는 기도가 가을의 기도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을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예레미야 29:11-13) 하셨습니다.

시인은 또 노래했습니다. "가을에는 /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시인이 원하는 사랑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막연한 호감이 아닙니다. 한 사람을 향해 전 존재를 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한 사랑입니다. 순간의 달콤함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를 살리고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는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위하여 시인은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랑은 그냥 따먹는 열매가 아니라, 비옥한 시간을 가꾸는 수고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관계는 쉽게 메마릅니다. 돌보지 않으면 사랑은 금세 시듭니다. 우리의 사랑은 '지금'이라는 시간을 성실하게 일구어 미래의 결실을 준비하는 책임 있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가을의 기도는 이런 성숙한 사랑을 위한 기도입니다.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저는 학생들의 감성과 취향을 이해하고 따라가고자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꼰대'가 됩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를 않습니다. 먼저 음악을 따라잡아야 합니다. BTS, 아이브, 뉴진스... 이거 다 외워야 합니다. 단순히 이름만 아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대표곡 3곡 이상은 여러번 들어서 감정까지 이해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학생들의 밈과 밈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카톡방에서 쓰는 밈과 이모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교수는 순식간에 디지털 아저씨가 됩니다. 언젠가 "강의 다 끝나면 매워요" 하는 말에 어리둥절한 적이 있습니다. 누가 강의 시간에 몰래 떡볶이를 먹었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맵다'라는 말은 '힘들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나아가 학생들의 패션에도 적응해야 합니다. 힙한 모자, 어글리 슈즈, 애슬레저 룩 이런 거 알아야 합니다. 교수가 학생의 신발을 보고 '그게 운동화야, 슬리퍼야'라고 묻는 순간, 꼰대 인증입니다. 아, 이 시대 교수로 살아가기 너무 힘듭니다. 그래도 학생들이 고마운 건,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교수가 관심과 노력만 보여도 점수가 올라간다는 사실입니다. 여전히 어설퍼도 애쓰면 학생들이 '귀엽게' 보아줍니다. 진심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면 통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가수 가운데 사샤 슬로언(Sasha Alex Sloan)이 있습니다. 화려한 편곡보다는 담백하고 차분한 사운드와 보컬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특히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적어낸 일기 같은 가사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의 노래 가운데 "Older"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나이가 들면서' 혹은 '성숙해지면서'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 사랑과 삶을 노래한 곡입니다.

"엄마는 부엌에서 나에게 소리를 지르면 문을 닫아 버리곤 했지. 음악을 크게 틀고 취해서 듣지 않으려 했어. 사소한 다툼들 말이야. 누구도 옳지 않았거든."(I used to shut my door while my mother screamed in the kitchen. I'd turn the music up, get high and try not to listen. To every little fight, 'cause neither one was right.) 어린 시절의 회상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키워준 부모를 생각하며 노래합니다. "그들처럼 되지 않으리라 맹세했었는데, 그땐 어려서 그랬어. 커가면서 더 많이 알게 됐지. 부모님은 영웅이 아니라 그저 나 같은 사람이라는 걸. 사랑하는 건 어려워. 항상 마음처럼 되지 않아. 그냥 상처받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할 뿐이지. 화가 나 미칠 것만 같았는데, 이제는 알겠어. 가끔은 그냥 흘려보내는 게 낫다는 걸. 아직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는데. 더 나이가 들면서."(I swore I'd never be like them. But I was just a kid back then. The older Iget the more that I see. My parents aren't heroes, they're just like me. And loving is hard, it don't always work. You just try your best not to get hurt. I used to be mad but now I know. Sometimes it's better to let someone go. It just hadn't hit me yet. The older I get.)

아이들은 부모님을 영웅처럼 여깁니다. 부모가 완벽하고, 삶도 단순하고 이상적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깨닫습니다. 부모님도 결코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나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사랑은 이상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고, 갈등과 실수를 통해 성장한다는 걸 말이지요. 2절에서도 사샤는 이렇게 노래했지요. "나는 왜, 왜 그들이 행복하지 않은지 늘 궁금하곤 했어. 그래고 눈을 감고 새로운 가족을 달라고 기도하곤 했지. 내 것일 것만 같은, 모든 게 완벽한 그런 가족을 말이야. 절대 그들처럼 되지 않으리라 맹세했었는데. 그땐 어려서 그랬어. 커가면서 더 많이 알게 되었지. 부모님은 영웅이 아니라, 나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I used to wonder why, why they could never be happy. I used to close my eyes and pray for a whole 'nother family. Where everything was fine, one that felt like mine. I swore I'd never be like them. But I was just a kid back then. The older I get the more that I see. My parents aren't heroes, they're just like me.)

아직 부모를 용서하지 않은 자녀들이 여기 계실까요? 우리의 사랑은 영웅 같은 완벽한 사랑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며 연대하는 사랑입니다. 자신과 상대를 있는 그때로 받아들이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책임 있는 사랑입니다. 이 가을에는 그런 성숙한 사랑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자매]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베드로전서 1:22)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이 가을 여러분의 마음에 큰 울림이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김현승 시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가을에는 /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 굽이치는 바다와 /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홀로'와 '호올로'는 다릅니다. '홀로'는 고립이고 외로움입니다. '나 홀로 집에 있다'라고 하면 그냥 나 혼자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호올로'는 혼자이지만 고요히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과 마주하는 '깊은 혼자 있음'입니다. 까마귀는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앉았습니다. 얼마나 먼 길을 날아온 겁니까. '굽이치는 바다'는 혼돈과 고통입니다. '백합의 골짜기'는 아름다움과 평화입니다.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는 이 바다와 이 골짜기를 다 거쳤습니다. 삶의 고통과 위로를 다 겪었습니다.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다 보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 모든 일들 다음에 까마귀는 마른 나뭇가지 위에 호올로 앉아 고요히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과 마주합니다. 이 고독한 기도의 자리는 하나님을 깊이 마주하는 은총의 자리입니다. 가을은 그렇게 호올로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오병이어의 큰 기적을 일으키신 후 예수님은 즉시 제자들을 재촉해서 배를 태워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큰 무리와도 작별하신 후에 홀로 기도하러 산에 가셨다 했습니다.(마가복음 6:45-47) 성서를 보면 예수님이 '호올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니라"(마가복음 1;35) 전합니다. 예수께서 병 고치시는 소문을 듣고 수많은 무리가 찾아오니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누가복음 5:16) 전합니다. 십자가의 처형과 인류 구원을 앞둔 그 긴박한 순간에서도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제자들과 떨어져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호올로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 예수께서 호올로 기도하시던 시간은 외로움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영혼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온 세상을 사랑으로 품은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이 가을에는 잠시 혼자서 여행을 떠나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을에는 잠시 여행을 떠날 일이다 / 그리 수선스러운 준비는 하지 말고 / 그리 가깝지도 그리 멀지도 않은 아무 데라도 / 가을은 스스로 높고 푸른 하늘 / 가을은 비움으로써 그윽한 산 / 가을은 침묵하여 깊은 바다 / 우리 모두의 마음도 그러하길 / 가을엔 혼자서 여행을 떠날 일이다 / 그리하여 찬찬히 가을을 들여다 볼 일이다."(박제영, '가을에는')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가을입니다.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에는 기도하십시오. 가을에는 사랑하십시오. 가을에는 호올로 있으십시오. 기도는 하나님께 내 마음을 겸허히 드리는 시간이고, 사랑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 안에서 누군가와 삶을 정성껏 가꾸는 시간이며, 호올로 있음은 혼자이지만 세상과 연결된 내면의 고요한 시간입니다.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인생의 굽이치는 순간, 험하지만 때로는 아름다웠던 그 모든 길 속에서, 내가 혼자 걸어온 것 같으나 사실은 하나님께서 늘 나와 동행하셨음을. 그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서 이 가을에는 기도하고, 사랑하고, 호올로 있는 천국의 기쁨과 행복을 모두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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