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향린] 갈릴리에서 만나자

조헌정 목사 ㅣ 2008년 10월 12일

세계성찬주일 평화예배 (파주 무건리에서)


성경본문
이사야 2장 3-5절, 마가 14장 22-28절


설교문

        오늘 우리 향린공동체 세 교회는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곳 경기도 파주에 모였습니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부활하신 주님은 천사를 시켜서 무덤을 찾아온 여성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먼저 갈릴리로 갈터이니 너희도 그리 오너라.”

 


[오늘의 갈릴리는?]

 


        왜 골고다 무덤에서 직접 부활의 몸을 보여주시지 않고 갈릴리로 오라는 것입니까? 그 이유를 알려면 먼저 갈릴리가 어떤 곳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천년 전 갈릴리는 어떤 곳이었습니까? 이스라엘 북쪽 끝의 지역으로 그곳에는 예루살렘에서 사는 지주들로부터 소작을 치던 농민들과 하루하루 품을 팔아 살아가야 하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농민운동이 가장 많이 일어났던 곳입니다. 마카베오스 가문에 의한 무장 독립운동이 치열하게 펼쳐졌던 곳입니다. 2천 년 전 한 마을에서는 어린아이 여성을 포함하여 2천여 명이 한꺼번에 십자가에 처형당해 묻혔던 무덤이 발견된 곳입니다. 말하자면 당시 정치군사적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이기도 하거니와 사회경제적으로도 가장 밑바닥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갖고 있는 남한 땅에 있어 갈릴리는 어디일까요? 정치군사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사회경제적으로 착취를 당하는 민중들이 사는 곳은 어디일까요? 그 장소는 바로 이곳 파주의 무건리와 오현리입니다. 남한의 경제구조에서 지금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먼저 희생 받는 사람들은 농민들입니다. 평생을 땅과 더불어 살아왔지만, 더 이상 땅과 더불어 살아갈 수 없어 젊은이들은 모두 농촌을 떠났고, 나이 드신 어버이들만 남아 힘겹게 한해한해 살아가고 있는 곳이 오늘의 농촌입니다. 이제 저분들마저 돌아가시면 대부분의 농촌은 폐허가 되고 말 것입니다.

 


        정치군사적으로 본다면 이곳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군사 훈련장으로 점령당해 대포소리 탱크소리가 그치지 않은 곳입니다. 물론 남한 땅에는 이곳 말고 미군기지는 수십군데가 더 있습니다. 그러나 포사정거리가 길어졌으니 더 많은 땅을 필요로 하는 미군들의 요청에 의해 대대로 살아온 농민들이 다시금 쫓겨날 운명에 처해 있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6년 전 이곳에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던 미군 장갑차에 의해 효순미순이가 압사했습니다.

 


        그러기에 바로 이곳이 오늘 남한의 갈릴리인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위해 오늘 우리는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는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는 주민들에게 힘을 더하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왔지만, 신앙으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그 부활의 몸을 나누기 위해 왔습니다. 세계성찬주일은 단지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함께 성찬을 나눈다는 종교예식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계시는 갈릴리 현장의 장소에서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성서 말씀에 있는 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성찬예식을 행하셨습니다. ‘나를 기억하라’는 부탁과 함께 세상 마지막 그날까지 행할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마가복음 말씀을 보면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잘 들어두어라 하느님 나라에서 새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나는 결코 포도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겠다.” 여기서 새포도주는 어떤 포도주입니까? 10월에 딴 햇포도 열매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기서 새것이란 질적으로 다른 새포도주를 말합니다. 포도로 만들어진 포도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만들어진 포도주를 말합니다. 우리가 먹는 성찬의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새포도주의 피는 누구의 피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제자들의 피를 말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한 그들의 고난과 순교의 피를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고난과 순교로 이루어진 새로운 포도주를 마시기까지 포도로 빚은 포도주는 마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부활하신 주님이 갈릴리에서 만나고자 하시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교회의 위기는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가 사회로부터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는 종교 안의 어떤 분파 싸움이나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이 아닙니다. 그것은 두 번째 세 번째 이유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민족이나 사회 문제에 대해 행동으로 대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회 밖으로 나아가서 몸으로 행동으로 힘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기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문제들은 모두 신에게 맡겨버리고 자신과 가족들의 안위와 평안만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자비라는 이타적인 생명의 진리들이 모두 이기적인 축복으로 탈바꿈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교회는 사회문제나 정치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서를 읽어보면 성서 안에는 결코 그런 가르침이 없습니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사회 정치문제가 대부분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어떠합니까? 예수님은 성전의 벽을 허물고 사회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에 들어가 채찍을 휘둘러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행위였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은 종교인들에게서만 미움을 받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이려고 계획했던 일당들은 단지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인들만이 아니라 당시 현실 정치에 깊숙이 관여했던 사두개파와 헤롯당원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대제사장으로부터만 재판을 받았던 것이 아니라 로마의 총독 빌라도로부터 재판을 받았고, 최종 십자가 처형 판결은 로마의 총독이 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사회 정치문제에 깊이 개입하셨습니다. 아니 그것이 정치든 종교든 민중의 삶에 관련한 문제라면 어디든 개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헤롯왕을 여우와 같은 사람으로 비난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국가보안법인 율법이 들어가지도 말라고 금을 쳐 놓은 사마리아 지역을 들어가셨고, 만나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마리아 여인과도 깊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오늘 이곳 오현리와 무건리는 맟 예수 시대 사마리아와 같이 사람들이 들어오기를 꺼려하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많은 교회들이 가르치는 율법은 말하기를 우리가 이곳에서 드리는 예배는 참 예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말합니다. 오히려 저들의 율법적 가르침이 예수님의 삶을 따르지 않는 것이라고. 왜냐하면 복음은 세상과 교회의 벽이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대부분의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단지 머리로만 기억할 따름이고 입술로만 고백할 따름입니다. 행동이 없습니다. 실천이 사라졌습니다. 헌신과 봉사가 교회 안에서는 있지만, 교회 밖에서는 거의 없습니다. 그것도 민족과 사회 문제에 관련해서는 전혀 없습니다. 신앙의 위기입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가 당면한 위기입니다.

 


        예수께서 명령하신 빛과 소금의 역할은 교회 안에서가 아닌 사회 안에서의 역할을 말합니다. 진정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손을 모으고 무릎으로 기도하는 일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두 손을 모은 상태에서 일어서서 세상 안으로 나아가는 것이 참 기도입니다.

 


[세상 권세자들이 외치는 거짓 평화]

 


        오늘 우리 민족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평화의 문제입니다. 전쟁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숙제입니다. 국민소득이 3만불 5만불이 넘어간들 전쟁이 한번 일어나면 모든 것이 끝장입니다. 평생을 수고하여 값비싼 아파트를 구입하였다 하더라도 전쟁이 한번 일어나면 모든 것은 잿더미가 되고 맙니다.

 


        전쟁을 막는 것이 우리들의 최우선과제입니다. 전쟁을 막으려면 우리 백성들이 평화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전쟁을 유발시키는 모든 원인들을 하나하나 찾아 이를 없애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백성들은 세상 권력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의해 속아살고 있습니다. 신무기로 무장한 막강한 군사력이 평화를 보장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북한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미군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군사력을 계속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난 60년동안 외쳐온 얘기입니다. 아니 이 소리는 인류역사 6천년동안 세상 권력자들이 외쳐온 소리입니다. 무기가 우리를 지켜준다고. 그래 이제 공장은 단지 우리 생활에 필요한 생활용품만 생산하지 않습니다. 무기를 생산하는 군수공장이 가장 큰 산업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은 겉으로는 평화를 말하지만 실제는 전쟁 전쟁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무기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사람들이 전쟁으로부터 자유롭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십건씩 총기로 인한 살인과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911의 테러로 한순간 수천명이 죽었습니다. 미국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큰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무기가 개발되면 그 신무기가 전쟁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전쟁의 위협을 더 크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군사력이 커지면 이 군사력은 어딘가로 표출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폭발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래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서는 지난 수년 동안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아시아나 남미나 아프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국지전에 미군이 직접 참여하지는 않고 있다 할지라도 미국제 무기가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러시아제 중국제 프랑스제 한국제 군사무기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직접 전쟁에 참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이름으로 만들어진 탱크와 미사일이 지금 세계 어딘가에서 무고한 어린이와 여인들의 생명을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지 에서 못합니다.

 


        무기와 군대가 결코 평화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남과 북이 평화를 유지하려면 서로 만나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군축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군들도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합니다. 현재 미군은 결코 남한의 평화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군이 필요했던 시기는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세계 7,8위에 해당하는 남한의 군사력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지금은 미군주둔이 오히려 남과 북의 평화공조를 깨고 있고 동아시아의 평화 구축에 걸림돌이 되어 있습니다.

 


[참 평화는 향하여]

 


        진정한 평화는 군대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 평화는 군대를 없앰으로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기쁜 뉴스를 하나 들었습니다. 늦긴 하였지만, 부시정권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블랙리스트)에서 삭제하기로 한 것입니다. 한반도에 평화기운이 임하는 첫 신호입니다. 이제 이를 기점으로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고 평화협정은 군축협정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통일협정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영세중립국 선언을 통해 살생을 목표로 하는 군사무기가 영원히 이 땅에서 사라지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나라들이 군대를 없애는 저 진정한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서를 통해 이미 우리 인간들에게 이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2천 5백년 전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그가 민족 간의 분쟁을 심판하시고 나라 사이의 분규를 조정하시리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민족들은 칼을 들고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그는 누구입니까? 그는 우리 자신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이 말씀이 실현되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군사훈련이 있는 곳에 직접 가서 평화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다니엘은 왕의 명령에 거부하여 자신의 민족을 향해 하루 세 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로 인해 그는 사자 굴에 갇혔습니다. 그의 기도는 현실도피적인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에 대한 불복종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본훼퍼목사님은 교회 기도실에서 시간을 정해놓고 무릎 꿇고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히틀러의 암살단에 가입하여 몸으로 악을 막아내기 위해 나섰습니다.

[평화의 촛불을 켜자]

 


        우리는 서독과 동독을 가로막고 있던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그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동독 라이프찌히 시의 성 니콜라이라는 작은 교회에서 모인 작은 촛불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숫자의 사람들이 매주 모여 평화의 촛불을 켰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신앙인들이 점점 모여들었습니다. 교회 마당에 다 모일 수가 없어 교회 밖의 거리를 채웠습니다. 위기를 느낀 정부가 경찰과 군대를 보내 이를 막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번지기 시작한 민중들의 평화의 불을 끌 수는 없었습니다. 이 촛불은 라이프찌히 도시 전체를 채우고 급기야 수십만 개의 평화의 물결이 되어 베를린의 철의 장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저는 우리 향린교회가 그러한 평화의 촛불교회의 진원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21년 전 1987년 6.29의 민주항쟁의 진원지로서 이 민족을 향한 평화의 촛불이 다시금 시작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이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아침 하늘의 명령을 들었습니다. 지금 시작하라고. 다음 주 목요일부터 시작하라고. 그래서 제가 답했지요. 주님 저는 다음 주에 이곳에 없습니다. 미얀마/버마에 가 있습니다. 2주 후부터 시작하면 안 될까요? “야 이놈아! 향린교회에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너만 있는 줄 아느냐? 야 이 어리석은 목사야! 평화의 촛불 기도회는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다. 너는 선포만해라. 말로만 평신도교회 평신도교회 평신도가 주인이 되는 교회라고 하면 되겠느냐? 두려워하지 말아라!” 제가 군대 기합 중 뺨을 맞아 고막이 이상이 생겨 귀가 약간 어두워졌습니다. 그래 잘못 들었는가 하여 두 번 세 번 확인했습니다.

 


        분명 야훼 하느님께서는 오는 목요일 저녁부터 평화의 촛불기도회를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어떠십니까?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하신 분은 이번 주 목요일 8시에 모두 향린교회 성전으로 모이시기 바랍니다. 매주 8시에 모여 함께 평화의 촛불을 드시고 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평화의 노래를 부르십시다. 처음은 미약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촛불들이 향린교회의 마당을 채우고 을지로와 명동을 채우고 시청광장을 채우고 서울을 채우고 그리하여 경기도 강원도를 넘어 저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철책의 장벽을 넘어뜨릴 것입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와 살았던 에스겔은 보았습니다. 광야에 흩어졌던 수많은 마른 뼈들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붙어 몸을 이루고 하느님의 숨을 받아 커다란 무리로 일어서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우리 또한 에스겔을 따라 꿈을 꾸십시다. 저 넓은 들을 보십시오. 소염탄과 박격포탄과 고폭탄과 철갑탄으로 뒤덮인 저 죽음의 땅이 생명의 곡식들로 뒤덮이는 그 날을 꿈꾸십시다. 그리하여 쫓김을 받았던 무건리 오현리 주민들이 모두 모여 춤추며 노래하는 저 축제의 노래를 듣기를 바랍니다. TV에서 떠들어대는 환율과 주식시장의 변동에 나의 영혼을 빼앗기지 마시고 마른 뼈들이 다시금 일어서는 환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경제가 최고라는 오늘의 잘못된 가치관에 대해 두 주먹 부쩍 쥐고 아닙니다! 라고 외치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평화입니다.’ 라고 외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경제가 우리가 따라야 할 생명의 가치입니까? 아닙니다! 두 주먹을 쥐시고 다시 한 번 외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따라야 할 생명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부활과 평화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을 좇아 우리는 지금 남한의 갈릴리에 모였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모두 나를 따라 작은 예수가 되거라. 평화의 사도가 되거라. 이 땅의 어둠의 세력들로 인해 고통 받는 민중들과 더불어 정의와 평화와 생명의 하나님 나라 복음운동을 펼쳐 나가거라. 사면팔방으로 나아가거라. 세상 끝까지 나아가거라.”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견사: 

 


향린공동체 사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편한 길과 반쪽짜리 진리,

피상적인 관계를 불편하게 여기는 심령을 주셔서

마음 속 깊이 침잠하는 삶을 살게 하시길 빕니다.

 


향린공동체 사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불의와 핍박, 인간에 대한 착취에

분노할 줄 아는 심령을 주셔서

정의와 자유,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시길 빕니다.

 


향린공동체 사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픔과 거절,

굶주림과 전쟁으로 고난당하는 이들을 위해

눈물 흘릴 줄 아은 심령을 주셔서

기꺼이 손을 내밀어 세상의 고통을 어루만지며

괴로움을 기쁨으로 바꿀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향린공동체 사도 여러분!

아울러 하느님께서 어리석음의 복음을 주셔서

스스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게 하시길 빕니다.

그리하여 다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행함으로써

모든 아이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정의와 사랑을 가져다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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