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대 김영한 명예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한국신학아카데미(원장 김균진)가 성경적 창조론과 진화론의 관계를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열고, 현대 과학 시대에 창조신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 것인지 논의했다. 발제자 김영한 숭실대 명예교수의 개혁신학적 창조론을 놓고 논평자로 나선 박찬호 백석대 교수, 이신건 서울신대 은퇴교수 등은 역사적 아담과 타락의 신학적 의미에는 주목하면서도,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비판의 타당성과 창세기 해석 방식 등을 두고 서로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9일 서울 안암동 한국신학아카데미 세미나실에서는 '신학적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화'를 주제로 2026 가을학기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김영한 숭실대 명예교수가 '성경적 창조론, 개혁신학적 착상-다윈의 진화론, 신다윈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발표하고, 박찬호 백석대 교수와 이신건 서울신대 은퇴교수가 논평했다.
김영한 교수는 성경이 증언하는 창조신앙과 자연주의적 진화론 및 유신진화론이 조화되기 어렵다는 개혁신학적 입장을 제시했다. 그는 성경의 계시적 권위를 강조하면서도 과학적 연구 성과와 대화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창세기 1~3장의 창조와 타락, 역사적 아담의 실재, 인간의 하나님의 형상됨, 아담과 그리스도를 연결하는 구속사적 구조를 창조론 논의의 핵심으로 다뤘다.
박찬호 교수 "진화론과 진화주의 구분해야"
박찬호 교수는 김 교수의 발제가 창조와 진화의 논쟁에서 개혁신학이 취할 입장을 진지하게 모색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젊은 지구 창조론과 오래된 지구 창조론 가운데 어느 하나를 개혁신학의 유일한 입장으로 절대화하지 않으면서 성경의 권위를 지키고 현대 과학과 대화하려는 시도에 의미를 부여했다.
박 교수는 역사적 아담과 타락을 창조론 논쟁의 신학적 중심에 놓은 점도 중요한 성과로 꼽았다. 지구의 연대나 창조의 날이 몇 시간인지에 대한 논쟁을 넘어, 아담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죄가 인간 세계에 들어온 문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바울이 로마서 5장과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제시한 아담과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가 본질적인 질문이라는 것이다.
▲백석대 박찬호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 자체를 비판하는 과학적 논거는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의 발제가 창조과학 진영의 논의를 상당 부분 활용하면서 현대 진화생물학의 전개를 일면적으로 소개한 인상이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멘델의 유전법칙이 다윈의 진화론을 무너뜨렸다는 식의 해석은 과학사적으로 정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멘델 유전학은 자연선택론과 결합해 현대 진화론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박 교수는 개체의 희생과 이타적 행동 역시 진화론의 치명적인 반례로 단정하기보다 혈연선택과 포괄적합도 등 현대 진화생물학이 이를 설명하기 위해 발전시켜 온 논의까지 살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생물학적 진화론과 이를 세계 전체를 해석하는 원리로 확대하는 '진화주의'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연선택에 관한 과학적 설명을 인간의 사랑과 희생, 종교적 신앙과 도덕적 책임까지 모두 설명하는 철학적 세계관으로 확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박 교수는 기독교 신학이 비판해야 할 대상을 모든 형태의 생물학적 진화 연구로 넓히기보다, 진화론을 인간과 세계에 대한 궁극적 설명으로 절대화하는 자연주의적 진화주의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유신진화론을 신학적으로 비판하려면 진화론 전체가 과학적으로 틀렸다는 점을 먼저 입증하기보다, 역사적 아담과 타락, 원죄, 하나님의 형상, 아담과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관계를 충분히 보존할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과학과 경쟁해 더 나은 자연과학 이론을 만드는 것이 개혁신학의 과제는 아니라고 봤다. 과학적 설명이 세계 전체를 해석하는 형이상학으로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는 동시에, 성경이 증언하는 창조와 타락, 구속과 새 창조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신건 교수 "창조신앙을 과학적 설명과 동일시해선 안 돼"
이신건 교수는 김 교수의 발제가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면서도 문학적·신학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과학과 대화하려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유신진화론을 성경을 과학적 데이터에 맞추려는 타협으로 규정한 데 대해서는 이견을 제기했다.
이 교수는 유신진화론 또는 진화론적 창조론 안에도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하나님의 창조와 자연법칙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부터 진화 과정에서 하나님의 지속적인 창조 활동을 강조하는 관점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신진화론을 하나의 입장으로 단순화해 평가하기보다 각각의 주장과 신학적 전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신건 서울신대 은퇴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그는 오히려 창조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창조과학의 접근이 계시의 차원을 자연과학의 차원으로 끌어내릴 위험이 있다고 봤다. 창조신앙은 과학적 실험으로 증명하는 이론과 동일한 방식으로 다룰 수 없으며, 성경의 창조 이야기를 자연과학적 설명과 직접 대립하는 기록으로만 읽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현대 과학이 제시하는 진화에 관한 증거와 연구 성과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진화론을 단순한 신념 체계로 규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과학적 연구를 존중하면서 성경과 신학의 고유한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를 증언한다는 신앙과 자연 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의 성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반드시 서로 배척하는 관계일 필요가 없다는 취지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를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 교수는 창조의 순간을 직접 목격한 인간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창세기의 창조 서술을 현대적 의미의 과학적·실증적 역사 기록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창조 이야기는 고대 이스라엘의 신앙과 전승 속에서 하나님의 유일한 주권과 창조 세계의 의미를 고백하는 신학적 서술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카를 바르트와 구약성서학자 게르하르트 폰 라트, 클라우스 베스터만 등의 해석을 언급하며 창조 본문을 과학적 진화론과 대립하는 사실의 기록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님과 인간, 피조 세계의 관계를 드러내는 신앙의 언어로 읽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과 과학의 설명이 충돌할 때 언제나 성경의 기록을 과학보다 우위에 두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현대 사회와의 대화가 오히려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김 교수가 제시한 '계속적 창조'와 '새 창조'의 개념에는 성서적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계속적 창조를 자연의 유지와 보존에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고 봤다. 하나님이 만물을 계속 새롭게 하신다는 신앙은 자연의 변화와 진화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이해할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자연 세계에 존재하는 고통과 희생, 멸종과 불의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도 신학적 과제로 제시했다. 창조주와 피조 세계의 선함을 고백하면서도 악과 고통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 원인을 인간이나 하나님 한쪽에 단순하게 돌리지 않으면서 창조의 궁극적 완성을 희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두 논평은 창조신앙을 둘러싼 신학적 논쟁에서 공통된 질문과 뚜렷한 차이를 드러냈다. 박 교수는 역사적 아담과 타락, 원죄와 구속사의 문제를 중심으로 유신진화론을 비판할 수 있다고 보면서도 과학적 진화론과 자연주의적 세계관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 교수는 창세기의 창조 서술을 현대 과학의 설명과 직접 대립하는 역사 기록으로 읽는 데 의문을 제기하며, 성서의 신학적 의미와 과학의 연구 성과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세미나는 창조신앙을 지키는 일이 특정한 과학 이론을 반박하는 데만 머물 수 있는지, 또는 성경이 증언하는 창조와 인간의 의미를 현대 과학 및 사회와의 대화 속에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졌다. 특히 성경 해석의 방식과 역사적 아담의 문제, 진화론과 진화주의의 구분, 하나님의 지속적인 창조 활동에 대한 이해는 앞으로도 신학적 논의가 이어져야 할 쟁점으로 제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