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서정주님의 시처럼 한 쌍의 부부가 아름다운 사랑의 정상에 이르기까지에는 수많은 소쩍새의 울음이 있어야만 한다. 그 울음이 어떤 때는 태풍처럼, 어떤 때는 소나기처럼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며칠이고 지루하게 쏟아지는 장마 비처럼 계속되는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과 신뢰가 돈독한 부부는 모두 다 태풍과 소나기의 고비를 훌륭하게 이기고 넘어온 사람들이다. 소쩍새의 울음을 견딜 수 없어하는 부부들이나 태풍과 소나기 속에서 미래의 소망을 잃어버린 부부들은 대개 행복한 부부관계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거나 혹은 성급하게 파괴적인 결단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의 보금자리를 시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행복한 미래는 반드시 거친 파도를 넘어서 온다. 거친 파도와 소나기를 겪지 않고 행복한 미래로 가는 지름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십자가의 고난이라는 파도를 견딘 다음에야 부활의 기쁨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다. 한 쌍의 부부가 아름다운 삶의 꽃을 피워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고난의 고비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위기는 인간관계 안에서 일어난다. 그 관계가 밀접하면 밀접할수록 스트레스와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특히 부부관계는 그 어느 관계보다도 친밀하고 강렬하며 커다란 의무와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극복하기 힘든 위기에 끊임없이 내던져지기 쉽다.
부부관계는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자원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이 능력을 기르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하지만 전문직에 종사하기 위해서도 5년 내지 10년의 교육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간호사나 약사가 되기 위해서는 4년간의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고, 기술자가 되기 위해서도 견습공 생활을 수년동안 열심히 해야 한다.
결혼상담을 하면서 발견한 또 다른 사실은, 위기가 특정한 어떤 사건에 의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조건들이 쌓이고 쌓여서 필연적을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때 부정적인 반응들이 무의식적으로 뒤따르게 됨은 물론이다.
남자와 여자는 결혼에 대한 기대가 서로 다르다. 예비부부를 위한 집단상담에 참여해 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사실을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이때 모든 예비 배우자들이 결혼을 통해서 얻고 싶어하는 상대방의 욕구가 자신의 생가고가 너무 달라서 당황하고 놀라워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가정교육과 자라온 배경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예비부부들은 상대방의 기본적인 관심과 욕구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이 무턱대고 결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상호 교통과 이해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서 커다란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돈 문제로 서로 다투다가 심각한 갈등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부들은 돈이 자기들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 남편이 돈을 충분히 벌어오지 않는다던가 아내의 씀씀이가 너무 헤프다는 등의 그럴 듯한 이유들이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돈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 진정한 원인은 다른 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D씨 부부는 돈 문제로 늘 싸우다가 헤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상담을 통해서 밝혀진 사실은, D씨의 부인이 성적으로 자신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남편에게 늘 불만을 품고 매우 이기적이라는 것이었다. 남편이 그녀의 성적 욕구에 무관심하고 성에 관한한 매우 이기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문제를 놓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그 무렵 부인은 비싼 물건을 마구 사들이는 것보다 남편을 더 화나게 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을 본 남편이 야단을 칠 때마다 부인은 싼 것이 비지떡이라고 응수했다. 게다가 부인은 현금은 조금 내고 나머지는 모두 외상으로 달아놓음으로써 남편에게 될 수 있는대로 무거운 짐을 지워 주었다.
이 사례는 성적인 문제가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에 이를 먼저 해결해야만 금전적인 갈등도 해소될 수 있다. 그때 이로 인해 발생한 위기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혼 교육은 대부분 호르몬 샘의 자극을 받고 성적 충동에 몸을 맡기는 것으로 끝내 버린다. 물론 결혼을 막중 대사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이런 경우에도 부부관계를 공식적으로 신중하게 연구할 수 있는 기회는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필자가 수년 동안 결혼상담을 해오면서 늘 놀라워하는 사실은, 아무 준비 없이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것에 비해서는 의외로 많은 부부들이 별 문제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성격이 부부의 위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성격은 좋다, 나쁘다, 지혜롭다, 미련하다 등 질적으로 평가되기 쉬운데, 여기에서 말하는 성격이란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채고 이해하며, 적절히 반응하는 감정이입 능력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극심한 성격장애로 시달리는 사람은 좋은 배우자가 되기 힘들다. 이런 사람은 배우자에게 좌절이나 실망을 안겨줄 뿐인데, 그 이유는 상대방의 욕구나 필요에 둔감하고 감정을 서로 나누지 못하는 등 인간관계에 대한 기술이 극도로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누군가와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이 불가능하다.
정상적인 사람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인간관계를 갈망한다. 아마도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뿌리 내리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욕구 중 하나가 바로 자기 자신만큼이나 소중한 사람을 만나서 자신의 몸, 생각, 열망, 희망, 공포 등 모든 것을 열어 보여주고 또한 그의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이와 같은 심오한 관계가 가장 찬란하게 꽃피우는 곳이 바로 부부관계이다.
남녀가 엄숙한 서약을 통해서 한 가정을 이루는 결혼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한 몸, 한 마음 그리고 한 영혼이 되고 싶다는 깊은 욕구의 반영이다. 그런 만큼 결혼에 따르는 위험 역시 매우 심각하다. 상대에게 속속들이 열어 보여준 자아가 치명적인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신뢰와 상호의존에 대한 기대가 흔들리거나 무너진 부부는 반드시 위기에 빠져든다.
기나긴 생의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순간적인 사건으로 보는 낭만적인 생각 때문에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는 부부도 적지 않다. 인간은 살아서 움직이며 변화해 가는 존재이다. 인간이 만나서 이루는 결혼도 그래서 정지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해 가는 것이다. 둘이서 함께 나누는 체험을 통해 부부는 각자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된다. 결혼생활에서 주어지는 다양한 영향을 받아서 인격이 변화, 형성되는 것이다.
부부의 위기는 자기 성찰과 성장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위기의 극복을 위해 적응을 하는 동안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자기 실현을 이룩할 수도 있다. 부부가 함께 노력하고 이해함으로써 환상 속에서나 있는 일로 여기고 포기해버렸던 성적 만족의 극치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관심이 서로 일치하는 부분들을 발견하여 부부 공동의 취미를 개발하는 것은 친밀한 부부 사이를 만드는데 있어서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때,보다 풍요롭고 새로운 삶의 영역들에 서는 것을 기뻐하며, 함께 있을 때에도 상대를 얽어매지 않는 성숙한 경지이다.
부부가 함께 살다보면 각양각색의 위기가 찾아오기 십상이다. 그때마다 부부가 합심하여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혼생활이 파경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부부관계는 위기를 통해서 성장할 수 있는 자원과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결혼으로부터 거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이는 경계해야할 태도이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그의 생각대로 초라하고 무미건조한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반면, 결혼을 마치 요술방망이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상대로부터 터무니없이 많은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불행해진다. 우리 대부분은 결혼생활에다 감정이나 이성의 에너지를 많이 쏟아 붓는다. 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면 원만한 부부관계는 물론 삶의 다른 부분에서도 커다란 활력을 얻게될 것이다. 탄탄한 부부관계를 통해서 축적된 자원과 능력은 끊임없이 다가오는 다른 위기들을 멋지게 극복해 낼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
결혼생활은 이렇듯 우리 삶의 일부로서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픈 온갖 경험들을 통해 자아실현을 이루어 가야 하는 소중한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