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사랑방교회의 백미는 뭐? “공동식사와 교제”

[탐방]사랑방공동체를 찾아서

1호선 의정부역에 내렸다.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를 더 가서 입구에 도착하고 보니 오후 1시였다. 포천시 소흘읍 무림리. 행정구역상으로는 포천에 속하지만 의정부에 맞닿아 있는 최외곽 지역이라 의정부역에 내려서 가는 편이 수월했다. 버스 정거장 맞은편에 있는, 참외를 팔고 있는 젊은 부부의 하우스 그늘로 뙤약볕을 피해 들어가 사랑방 교회의 행정 사무장에게 전화를 했다.

“사무장님, 무림리입구에 방금 내렸습니다.

“아, 베리타스 김기자님. 도착하시기 전에 전화를 미리 주시지 그러셨어요?”

금세 봉고차를 몰고 마중 나온 이용신 사무장과는 구면이다. 지난 주 수요일에 사랑방 교회 정태일 목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필자를 안내했던 이가 바로 이 사무장이었다. 한 3분이나 지났을까. 차는 잘 정돈된 밭들을 지나 사랑방 공동체가 있는 터에 도착했다. 다시 봐도 좋은 풍경들이었다. 하지만 사랑방 교회 문턱에 다다르자 기자에게 밀려오는 것은 기대 보다 우려였다. 이번 탐방이 이방인인 기자에게 이벤트성 짙은 이른바 ‘체험 삶의 현장’에 그치지는 않을까. 그 이상이 될 수는 없을까.  

그러나 기자가 기독교 신앙을 믿고 있는 것은 의외로 상당한 효력을 발휘했다. 적어도 사랑방 교회 사람들은 기자를 이방인 대하듯 하지 않았다. 이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사람인 양 편하게 기자를 바라봤고, 대해줬다. 때문에 기자 역시 이방인이 아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밀착 취재를 할 수 있었다. 기독교 시민권이란 게 이 외딴 작은 나라에서도 통하는 모양이었다.

▲사랑방 공동체 터로 들어가는 입구(교육관)

 
실제로 그 시민권은 도착하자마자 점심 대접을 받는 것으로 효력을 발휘했다. 유기농 채소로 이루어진 비빔밥을 대접받았는데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맛이 깔끔하고 부담 없이 소화되는 느낌이었다. 유기농 채소 비빔밥은 취재와 기사 업데이트에 쫓기며 컵라면과 김밥으로 식사를 때우기 일쑤였던 기자에게 구별된 호사였을 뿐 아니라 기념할만한 소화(小話, 消化)였던 것이다.

▲코이노니아 공동체의 점심 공동식사


정태일 목사는 손녀딸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오늘 저녁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여름 공동체 생활 준비 때문인지 지난 번 만났을 때와는 달리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낌새를 알아채고 눈치도 같이 넣어 비벼 먹으며 애써 이용신 사무장하고만 이야기하고 있는 기자에게 식사를 마칠 때 쯤 되어서 한 마디 건넸다.

“이번에는 내가 시간을 내 드리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지난번 방문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역시 이용신 사무장과 동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기자는 정태일 목사의 말을 듣고서야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물어야 하겠구나’하고 생각했다.

이제야 사랑방의 문지방을 넘었다는 생각에 식사를 마치고 이용신 사무장에게 공동체 생활에 대해 물었다. 이용신 사무장은 이미 무엇을 물어볼지 알고 있었다는 듯이 여름 공동체 생활 책자를 펴며 왜 여름 수련회가 아니라 여름 공동체 생활이라고 하는지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거기 읽어보면 이렇게 쓰여 있죠? ‘사랑방 교회는 평소에 추구하던 공동체적인 삶을 여름에 집중하여 다듬는 시간으로 활용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여름 수련회가 아니라 여름 공동체 생활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겁니다. 저희 교회는 무슨 프로그램을 많이 하는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함께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가운데 공동체 교회의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2009년 여름 공동체 생활 책자를 펴고 설명하고 있는 이용신 집사

생활시간표를 뒤져봐도 사랑방 교회에서 늘 해오고 있는 성서일기쓰기와 휴식, 공동식사 등의 비중이 높았다. 저녁 시간에 있는 코이노니아 순서의 찬양과 말씀, 기도와 교제를 일반적인 프로그램이라 본다면 특기할 만한 것은 ‘한국 교회의 본질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행해질 특강 정도였다.

필자의 기억에 의하면 수련회는 무언가 특별한 기간이었다. 평소에 할 수 없는 신앙적 체험들을 위해 집중적으로 노력하는 기간이었고, 열정을 비롯하여 무언가를 회복하거나, 평소에는 하기 힘든 특별한 영적 체험들을 추구하는 기간이었다. 그러나 사랑방 공동체 생활은 특별한 기간이라기보다는 연장선상에 있었다. 비약의 기간이라기보다는 함께 모인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중요한 기간으로 비쳤다.

그렇다면 이렇게 죽 이어오고 있는 프로그램들에 참여해보는 일과 함께 모임으로써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를 직접 체험하고 체감해 보는 일은 대단히 중요해진다. 뚜렷하게 돌출된 일련의 비정기적인 프로그램들로 이루어진 수련회가 아니라면 체험 여부 자체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이용신 사무장이 말한 ‘체험’이란 아마도 ‘삶’을 말하는 것이리라. 삶을 영위하는 것이 곧 신앙이 되는 삶, 신앙이 된 삶, 파편화된 삶이 아니라 하나 된 삶, 이러한 모토를 어떻게 이뤄내는지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고 추체험해볼 수 있는 현장은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 1박 2일의 짧은 기간 동안 ‘공동체적인 가치’까지는 추출해내지 못하더라도 ‘현장성의 재현’만큼은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때마침 공동식사와 집회를 겸하는 장소인 자연예배당 앞에 있는 트럭에서 각종 식재료를 실어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일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교역자들이었다. 사랑방 공동체는 여러 개의 공동체로 나누어지는데 디아코니아 공동체라고 해서 교역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있고 이들이 주로 교회가 있는 무림리 터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그 이외에 상당수 성도들과 그룹들은 외부에서 주거하며 일한다. 솔선수범해서 공동생활의 모범을 보이며 궂은일도 도맡아 하는 교역자들이야말로 사랑방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거들고 싶은데요.”

▲트럭에서 내린 양배추를 실어 나르며

 한쪽에서는 교육관 옆에 있는 작은 못 주변을 정돈하고 있었다. 기자와 함께 호스를 들고 물을 뿌리던 교역자는 중국에서 온 한족(漢族)이었다. 장신대를 졸업했으며 사랑방공동체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중국어도 가르치고 있고 사랑방코이노니아방송에서는 중국어 번역도 도맡고 있다. 기독교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사진 촬영은 할 수 없었지만 유창한 한국말에서 공동체와 함께 해 온 세월이 느껴졌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미국인 원어민 교사와 멋쟁이학교에 다니고 있는 외국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니 이색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일을 마치고 먹는 수박 맛은 시골에서 농활하고 먹는 그런 맛과는 좀 달랐다. 시골도 한국도 아닌 듯한 묘한 풍경에서 먹는 수박 맛은 얼떨떨했다. 묘사해보자면, 전원적 배경과 유기농 식사, 짐 나르고 청소하는 목사, 수박... 그리고 중국인, 서양인...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맛이랄까. 맛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풍경이랄까. 기자는 바로 그 중에 있었다.

▲작업 후 성도들과 수박을 먹으며 ▲왼쪽부터 아만다, 이여빈, 알렉스

저녁이 되자 하나둘씩 교인들이 모여 들었고 자연예배당에서 공동식사가 시작되었다. 도시에 사는 성도들은 휴가를 내서 오는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직장을 마치고 오는 시간을 고려하면 저녁 공동식사 때가 최초 집결이 되는 셈이다. 밥 먹고 시작하는 수련회, 아니 공동체 생활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었다. 그것은 '밥'이 아니라 '공동식사'였다. 그 장면은 다음과 같았다. 보통 중학생~고등학생에 해당하는 멋쟁이학교 학생들이 스스로 상을 꺼내 깔고, 교역자들이 학생들과 함께 음식을 나르며, 온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곁에 앉히거나 무릎에 앉혔다. 두루 분주하게 움직이며 자리잡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어디에 시선을 두더라도 나름 훈훈한 재미가 있었다. 개중에 상을 나르는 서양인 외국 학생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백미(白眉)’였다. 무엇보다 시키지 않아도 누구든 자연스럽게 나서서 일하는 분위기와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인상 깊었다. 대강 자리가 잡히자 정태일 목사의 신호를 받은 학생이 식사에 앞선 좌정(坐定)을 알리는 징을 울렸다. 곧이어 공동식사를 위한 노래가 제창되고 박광희 협동목사의 대표기도 후 식사가 시작됐다.

▲징을 치기 위해 정태일 목사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멋쟁이학교 여학생

▲음식을 서빙하고 있는 멋쟁이학교 여학생 ▲식사찬양 “사랑의 나눔”을 부른 뒤 기도하고 있는 모습

함께 식사했던 김영식 장로의 유기농 식사 예찬에서 공동생활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이런 음식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에 대한 자랑을 통해서 식사 한 끼와 자신들의 미래를 연결 짓는 통찰도 엿볼 수 있었다. 기자 역시 사랑방 공동체를 방문한 이래로 겪은 유기농 먹거리에 얽힌 나만의 사연과 견해, 오늘 하루의 일을 이야기했다. 그렇다. 공동식사란 무엇인가. 밥상머리에 앉으면 무엇을 말하겠는가. 하루를 이야기하며 생각을 이야기하게 된다. 그것은 은혜와 삶을 나누는 원초적인 자리이다. 밥상머리와 밥상머리가 아닌 곳을 구별 짓게 되는 단순한 공간이며 한 끼의 식사를 앞에 두고 자연스레 하나 되는 자리이다. 또한 건강과 후손을 염두에 둔 미래에의 구별이다. 그러나 그 구별은 최소한 배타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자는 처음부터 정태일 목사의 상에서, 이용신 사무장의 상에서 먹었고, 그리고 지금은 김영식 장로의 상에서 먹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정태일 목사에게서 규율을, 이용신 사무장에게서 초대를, 김영식 장로에게서 이해를 보았다. 또한 공동식사를 통해서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는다는 말을,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마6:25)’라는 말을 이해할만한 백그라운드를 가지게 된 것이 기억할만한 수확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밥’이 아니라 ‘공동식사’였다. 사실 무엇보다도 맛이 있었다. 참고로 저녁 식사는 맑은 닭육개장과 잡곡밥, 깻잎 무침과 깍두기였다.


식사를 마치고 자칭 사랑방공동체 F4와 함께 사진 찍기를 하며 놀다가 해가 완전히 저물 때쯤 다시 전교인이 모이는 교육관으로 따라 들어갔다. 찬양과 말씀, 기도와 교제로 이루어지는 코이노니아 순서였다.

▲사랑방 F4(왼쪽부터 과학동아 편집장 이충환 집사, 김병우 안수집사, 코이노니아 방송국 이덕행 집사, 이용신 안수집사)

그런데 참 사람살이라는 것은 어디서든 다 그렇고 그런 것인 것 같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연령별로 모여 앉는 게 아닌가. 물론 간단한 레크리에이션과 정태일 목사의 로마서 본문 설교가 끝난 후 정 목사의 안내에 의해 다시 소그룹을 지으면서 고루 분산되긴 했지만. ‘아. 이것이 목회자의 역할인가’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한편, 초등학생에 해당하는 꾸러기학교 학생들의 모임이 별도로 자연예배당에서 이뤄지고 있었기에 그곳에도 가봤다. 아이들이 원형으로 둘러 앉아 스스로 선출한 사회자의 감독 아래 자기들만의 규율을 만들고 있었다. 곁에서 지켜보며 지도하고 있는 선생에게 물었더니 지금 아이들이 공동체 훈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의 안쪽에 앉은 채 서기 역할을 하고 있는 학생이 쓰는 것을 보니, 어린이의 약속이라는 제목 하에 ‘욕하지 말자, 섞어 다니자, 선생님 말씀 잘 듣자...’ 등의 항목이 적혀 있었다. 어차피 아이들이 로마서 본문에 대한 강해를 듣는 일은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별도로 구별하여 공동체 훈련을 시키는 일은 본래의 취지를 살리는 현명한 교육방법인 것 같았다.

▲자연예배당에서 공동체훈련 중인 꾸러기학교 학생들 ▲어린이의 약속을 쓰고 있는 꾸러기학교 학생

 소그룹을 지을 때는 모든 연령을 포함하되, 설교와 같이 불가피한 연령별 제약이 발생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시에는 청중을 연령별로 다시 분할하여 해당 연령에 맞는 공동체 훈련을 받도록 하는 방법. ‘아, 그런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연령이 아니었다. 연령은 고질적인 문제상황 또는 한계상황이라기보다는 공동체 내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하고도 자연스러운 스펙트럼에 불과한 측면이고, 공동체 훈련, 이것이 관건이었다.

다시 교육관으로 돌아오니 설교가 끝나 찬양을 부르고 있었다. 정 목사는 설교 이후 찬양 인도를 하면서 공동체의 찬양 부르기는 다른 법이라 말하면서 하나 된 부르기를 강조했다. 정 목사는 “한 마음이 되어야 하고, 소리를 하나로, 호흡을 하나로, 허리를 펴고, 불러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반복해서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모인 성도들의 호흡이 잘 안 맞자, “리듬이 안 나네... 공동체의 찬양 부르기는 경쟁 원리로 하면 안 되는데... 그러면 여자 먼저 부르고 남자는 나중에 부르자. 그러고 나서 다 같이 부르자.”라고 다시 말했다.

정 목사는 그룹별 은혜 나누기와 기도 모임을 이끌면서도 줄곧 강대상에 서 있었다. 그는 각 그룹을 넓고 깊게 주시하며 적절히 가이드했다. 공동체를 이끄는 그의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그가 있기 때문에 공동체가 있는 것일까. 공동체가 있기 때문에 그가 있는 것일까. 그가 없다면 공동체는 어떻게 될까. 지난 번 방문 시 정 목사에게 동일한 취지의 질문을 했을 때 그는 “...모세․아론․훌, 베드로․야고보․요한. 기독교리더십은 팀웍(team work)이다. 한계가 극복될 수 있어야 하는 게 교회다. 우리는 팀웍을 이루면 한 사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그래서 팀웍이어야 한다. 처음부터 팀웍하려고 했는데 지금도 잘 안돼요. 가부장적 사고 때문에. 위에는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인들이 이해를 못해요...”라고 말했다. 기자는 그의 입상에서 엿보이는 꿋꿋한 심지에서 이 감추어진 고뇌를 읽어낼 수 있었다. 과연 이 문제는 집단 지도 체제를 갖추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그리고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면 자연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쉽지 않았다. 왜냐면 기자가 지금 보고 있는 일사불란한 장면은 팀웍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설교와 찬양 기도와 교제 전 순서를 인도하는 정태일 목사

 그래서 기자는 직접 기도와 교제 순서 중에 있는 은혜 나누기에 동참해서 은혜를 나누었다. 답은 정 목사의 맞은편에 있는 교인들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각 소그룹에는 방장(소그룹의 인도자)을 겸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교역자들이 한 명 이상씩 배치되어 소그룹을 미묘하게 조율하고 있었고, 개인마다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교인들의 은혜 나누기도 능숙한 진지함이 돋보였다. 물론 여기에도 규칙이 있었다. 먼저 말한 사람으로부터 오른쪽으로 진행되는 식이며, 피상적인 이야기는 피하고 내면을 말하는 것이 권장됐다.

▲기도와 교제 순서에 동참하는 모습

소그룹에서 인도자를 자처하지 않는 교역자들의 겸손과 강단에서 전체를 조율하는 목회자의 목소리 사이에서 성도들은 차분히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도들은 공동체에 대한 견해를 내놓으며 그 당위성이나 이해, 비전 등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서 경험한 실존적 고민들을 털어놓았다. 그 나눔 속에는 진지함이 있었다. 한 사람이 말하면 어른으로부터 학생(멋쟁이학교 학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진지하게 경청했고, 말하는 이에게는 자기의 삶에 대한 나름의 해석이 있었다. 그것이 공동체에서 받은 훈련의 성과이건, 공동체가 제공한 성장의 산물이건 그 진지함이 퍼져가는 모습은 능숙함,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은 자격이 아니라 세월에서 우러나는 모습이었기에 내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이 나눔의 모습은 유추되거나 해석된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기억', 즉 '새로운 기억'이 될 것이었다.


기자는 문제의식을 품을 수는 있었지만, 실제로 확인해 볼 수 있는 것들은 여기까지였다. 본격적인 공동생활 속에서라야 그 실체(實體)를 알 수 있는 문제이기도 했거니와, 기자는 섭리는 완성(完成)이 아니라 모색(摸索) 속에서 역사한다고 결론지으며 골똘하게 생각하던 데서 빠져나왔다. 분명한 것은, 기자는 오늘 공동체의 여러 가지 모습을 봤다는 사실이다.


그룹별 기도까지 마치니 11시가 넘어 있었다. 모든 순서를 마치고 정해진 숙소로 흩어질 때 여집사 한 분이 “베리타스 기자님이시죠?”라고 아는 체를 하시며 숙소와 안부를 물어 왔다. 점심 식사 직후 이용신 사무장이 숙소로 이효성 부목사가 묵고 있는 3번 방을 소개해주어서 거기서 묵을 것이라고 말하자 “아~ 그 유명한 3번 방?”이라며, 내일 자기가 있는 그루터기 공동체로 초대할 테니 점심 식사 후 한 번 방문할 것을 권유했다. 차마 성함을 여쭙지는 못했지만 미소가 아름다운 친절함이 기억에 남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만 자는 하숙집마냥 드나드는 집에서는 가족들과 안부는커녕 말하는 것조차 하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집 밖에서 잠들기 전 이렇게 친절하게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
 

▲저녁시간 코이노니아를 마친 뒤

사실 점심 이후 뿐 아니라 저녁 이후에도 숙소를 물으며 안부를 걱정해 주는 교인들이 많았다. 그런데 3번 방이라고 말하면 모두 3번 방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으며 무언가 별세계를 연상하는 듯한 반응들을 보였다. 이효성 목사를 따라 교육관 2층에 마련된 여러 개의 숙소 중 3번 방을 들어가니 그 이유를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거긴 남자들의 세계였다. 뭐랄까... 자연 상태 그대로랄까. 꾸밈없는 세계랄까... 그러나 필자는 이 명성 자자한 방에서 이효성 목사에게 한 번도 안 입고 아껴놓은 축구복을 얻어 입고 뽀글이와 컵라면까지 얻어먹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모래알마저 그득한 그 ‘자연스러운’ 방바닥에 남자 향기가 가득한 이불을 깔고 자면서도 왠지 모르게 편안했다. 새벽 잠결에 “누구에요? 누구?” 이런 말들이 수시로 귓가에 맴돌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효성 부목사를 비롯하여 남자 교역자들이 머물고 있는 3번 방

뒷말이나 나쁜 소문 같은 것은 들어보기 힘들었다. 기자가 본 것은 소문이 아니라 관심이었다. 이 어지럽혀진 방에 대해서도 다들 관심을 가질뿐더러 애정 가득한 시선을 보내주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며 ‘타인’이 아니라 ‘우리’라는 것의 모양새를 새삼 엿볼 수 있었다. 오늘 하루 줄곧 필자가 받은 인상 중 가장 뚜렷한 것은 사랑방 공동체가 일구어낸 이 ‘우리’라는 실체의 아우라(Aura)였다. 우리, 다시 말해, ‘공동체’의 모두가 서로에게, 그리고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기자에게조차 공동체의 일원인 것 처럼 너무나 따뜻한 관심을 보여줬다. 만나는 아이들마다 처음 보는 기자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단언컨대 그것은 가부장적인 교육의 산물이 아니었다. 어른들도 만나는 사람마다 가벼운 목례와 관심 어린 말들을 건넸다. 외국인들도 스스럼없이 교역자 무리 뿐 아니라 성도의 무리에 섞여 있었다. 공동체라고 해서 그들만의 세상을 추구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아니, 그 반대였다. 세상을 공동체에 넣는 식이라고 할까. 또 비유컨대 간이 적당했다고나 할까(사해와 갈릴리호의 맛을 비교해보면 알리라). 돌이켜보면, 기자는 보이는 공동체의 다양한 모습들을 접하며 보이지 않는 공동체를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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