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9
하나님은 하시던 일을 엿샛날까지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이렛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으므로, 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의 일은 이러하였다. 주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실 때에, 주 하나님이 땅 위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갈 사람도 아직 없었으므로, 땅에는 나무가 없고, 들에는 풀 한 포기도 아직 돋아나지 않았다. 땅에서 물이 솟아서, 온 땅을 적셨다.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주 하나님이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을 일구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주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아멘.
베드로전서 5:8-11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 악마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닙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악마를 맞서 싸우십시오. 여러분도 아는 대로, 세상에 있는 여러분의 형제자매들도 다 같은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모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불러들이신 분께서, 잠시동안 고난을 받은 여러분을 친히 온전하게 하시고, 굳게 세워 주시고, 강하게 하시고, 기초를 튼튼하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권세가 영원히 하나님께 있기를 빕니다. 아멘.
마태복음서 6:31-34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 아멘.
아름다운 찬양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시고 사람을 만드시고 너무나 좋다고 선언한 날입니다. 창조의 날입니다. 창조의 날이 한참 지났습니다만 오늘도 새로운 창조를 맛보십시다. 여러 번 광고를 드리기도 했습니다만 WCC 총회가 유치되어서 저희들은 한껏 들떠 있습니다. 잠깐 가라앉히고 교회가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고 전파하는 교회가 어떻게 되었기에 오늘 여기까지 왔는지 살펴보고 오늘 말씀 생각하려고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드리기보다 짧은 시간에 꼭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나서 제자들을 곳곳에 파송해서 복음을 전파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생겼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의 제자도 아니면서 예수의 사도로 부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계선교 교회역사에 어느 누구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바울이라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만난 적도 없지만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는 데에 앞장 선 사람으로서 다메섹이라는 도시에 가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고꾸라져서 사울이었던 유대식 이름을 포기하고 바울이라는 로마식 이름을 택해서 전도를 시작합니다. 바울이 회심한 장소가 어디냐 하면 지금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입니다. 성경말씀에 보면 다메섹 도상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메섹이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 선교의 출발임이 틀림없습니다. 다메섹이 그런 장소입니다. 지금 위치는 시리아입니다.
사도바울은 회심을 하고, 당시 전 세계, 유럽을 지배하던 로마제국의 본거지인 로마에 가서 예수님을 전파하면 제국의 수도가 복음화되고 로마제국의 선교는 완성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로마까지 가고 싶어했습니다. 바울도 로마에 갔습니다. 선교를 했습니다. 예수의 말씀도 전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순교했습니다. 바울뿐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로마 제국의 중심, 세계의 중심 로마로 가면 로마가 구원받으면 전 제국이 구원받는다고 믿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뒤 로마의 황제 콘스탄틴이 300년이 지난 다음에야 로마제국의 국교를 기독교라고 선포합니다. 그것이 313년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로마제국의 국교가 기독교가 되면서 오늘과 같은 기독교 복음이 전파된 것은 사실입니다. 국교로 된 것이 옳은지 그른지 토론은 별도로 하기로 하고, 기독교가 그렇게 전파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왕으로 취임을 하고 로마제국의 국교를 기독교라 선포를 하고, 그리고나서 이 사람이 한 일 중에 하나가 수도를 이전하는 일이었습니다.
본래 로마제국의 수도는 로마입니다. 지금의 로마와 같습니다. 콘스탄틴으로서는 광대한 지역을 다 점령한 다음에 그 지역의 통치를 위해서 새로운 수도가 필요해서 동쪽에 수도 하나를 정했습니다. 수도를 정하면서 이름은 자기이름을 따서 콘스탄틴, 그 뒤에 도시라 이름하는 폴리스 두 개를 합해서 콘스탄티노플, 이것이 신 로마제국의 수도입니다. 이 수도의 본래 이름이 수도로 지정되기 전에 비잔티움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비잔티움이 없어지고 콘스탄티노플이 되었고 한참 역사가 지난 다음에 터키족들이 이슬람족들이 이 땅을 수복하고 나서 터키식 이름으로 바꿔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도시 이름이 이스탄불, 터키식 이름, 그전의 이름은 콘스탄티노플, 본래 이름은 비잔티움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받아서 하나의 교회였는데 로마제국의 통치는 황제가 아니라 교황이 했습니다. 교회가 잘 되면 제국이 잘 되고, 교회가 갈라지면 제국도 갈라집니다. 동서로마제국, 둘이 갈라질 때 교회가 갈라졌습니다. 어떻게 갈라졌냐 하면 서로마를 중심으로 서쪽이 한 쪽이 되고,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한 동쪽 로마제국이 갈라져서 교회이름이 달라졌습니다. 서로마제국의 교회이름을 로만 가톨릭, 지금의 천주교, 동로마제국이 속한 교회를 우리가 정통이다, 그래서 동방정교회, 전 세계 교회가 두 갈래입니다. 가톨릭이 있고, 동방정교회가 있고, 서로마 제국의 교회, 동로마 제국의 교회, 교회역사의 출발입니다.
수백년 지나오다가 루터라는 사람이 서로마제국의 한 복판에서 나와서 로만 가톨릭을 개혁해야겠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개신교입니다. 동로마제국의 동방정교회에서는 종교개혁도 없었고 한 번도 동구라파를 중심으로 북아프리카까지 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단 어려운 점은 동로마 제국의 교회인 정교회가 열심히 하다가 그 지역에 있는 세력을 떨친 이슬람과 부딪힙니다. 이슬람이 결국 승리해서 동로마제국 지역에 있는 동방정교회를 핍박하고 그 핍박이 끝났더니 공산권이 되어서 공산주의의 핍박을 받고 오늘날까지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는 굉장히 많습니다. 천주교, 동방정교회, 개신교, 비슷할 것입니다.
정교회 사람들은 우리가 교회의 원조이다. 틀림없습니다. 우리 개신교보고 하는 말이, 너희는 서쪽 로마제국의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왔으므로 서자다. 이런 의식이 있을 겁니다. 하나님 보시기에야 어떻게 나왔던 자신한테 충실한 게 좋은거죠. 동로마 제국이라고 생각한 것이 문명사적으로는 비잔틴 이름을 따서 비잔틴 문화권이고, 서로마 제국은 라틴말을 썼기 때문에 라틴 문화권, 우리는 라틴 문화권에서 나왔고, 이런 이야기는 역사의 상식입니다.
이번에 총회가 열렸는데 한국교회는 저 끝에 있는 나라, 힘든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총회를 유치하겠다고 신청했고, 처음 사도 선교를 시작한 다메섹 교회가 총회를 유치하겠다고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기독교의 원조 지역에 가서 총회를 할 것이냐, 120년 밖에 안 된 조그만 동쪽 나라에 가서 할 것이냐. 논란입니다. 신학적으로는 그렇습니다. 10년 전에 브라질한테 진 일이 있습니다. 신학적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서구 교회와 미국 교회와 정교회가 똘똘 뭉쳐서 총무는 물론이고 총회장소도 시리아다. 가서 본래 지역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펼쳐보자.
더구나 제가 조금 암시했습니다만 시리아는 독재국가입니다. 이슬람이 90입니다. 종교 신자가 5밖에 안 됩니다. 어렵습니다. 가서 도웁시다. 정교회와 우리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화를 통해서 평화를 이룹시다. 중동이 어렵지 않습니까. 도웁시다. 충분한 논리적 근거가 있습니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고, 제가 이번에 책임을 진 사람으로서 다 긍정을 하지만 세계교회는 뿌리를 찾는 운동도 중요하지만 21세기의 미래의 모습을 창출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 작지만 새로 펼친 미래로 가자. 뿌리로 가자. 미래로 가자. 두 시간 정도 설명을 하고, 나머지 세 시간 정도 청문회를 하면서 고통도 당했고 그러나 마지막 투표과정에서 저희가 이기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첫날 총무선거는 졌습니다. 진 그대로 총회 장소까지 연결되었습니다. 투표한 성향이. 그래서 오늘 괴롭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투표는 먼 미래에 있는 일주일 후였기에, 내일인데,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 괴로움은 오늘로 끝내라. 내일의 총회장소문제는 내일 걱정해라. 왜 오늘의 괴로움을, 실패를 내일까지 연장하려고 하느냐, 하는 말씀이 저한테 부딪혀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는 다 끝내셨고 사람은 유럽사람 뽑아주었고, 내일 있을 총회 장소는 우리한테 주시겠죠. 아전인수죠.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싶었고요.
그런데 조건이 있습디다. 내일 무언가를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약속이 있지만 조건 하나는, 네 욕심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면 그 나라와 그 의는 내일의 나라요, 내일의 의인데 그 일을 반드시 만들어주마. 우리 모두의 기도제목이고, 저의 기도제목이었습니다. 하나님, 2003년이 우리의 미래인데 2003년에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의를 한국이라는 작은 땅덩이에서 전 세계 교회가 만들게 해 주옵소서. 저는 이렇게 된 것이 그 모든 바람의 응답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또 아전인수 한 것입니다. 정교회도 기도했고, 가톨릭도 기도했는데 다 기도했는데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하나님께서 알아서 응답주시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의 괴로움을 넘어서 내일은 내일의 주인이 결정할텐데 내일의 주인인 하나님이 자기의 나라와 의를 펼칠 수 있는 곳을 선택하여 주신다. 저는 그렇게 믿고 당선된 것이 기뻤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러면 한국이 하나님의 나라고, 하나님의 의입니까? 저는 이것도 물음표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믿고 그렇게 기도했고, 하나님이 알아서 주셨는데 우리가 그 나라를 그 의를 실현하는데 실패하면 하나님은 또 한 번 괴로워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프셔야 합니다. 약속을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안 들어주면 하나님이 또 한 번 아픕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한날 겪는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걸로 족하고 내일은 걱정말라고 했더니, 내일을 주었더니 내일이 다시 괴로운 한 날이 되는 역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뻐하십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먼저 세우는데 앞장 설 수 있으면 우리 WCC 총회가 좋을 겁니다. 총회는 믿는 자들이 다 모여서 함께 일하자는 겁니다. 물론 이런 얘기 말고도 한국에 오면 그렇게 찌들리며 가난했던 나라가 어떻게 배부른 나라로 일어섰는지, 남북이 갈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화해를 이루었는지, 다른 국가는 종교 전쟁을 하는데 한국은 어떻게 종교끼리 전쟁하지 않으면서 복음이 전파되는지, 한국에 오면 자유스럽게 뭐든지 할 수 있다는데 시련은 어렵다는데, 정치적, 문화적, 역사적 상황도 고려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뿌리찾기 운동도 중요한데 그보다 더 우선적으로 미래를 여는 장을 한국에서 좀 맛봅시다. 기쁨과 축복이기도 하지만 과제를 안고 왔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보면서 한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 내일 걱정은 내일이 알아서 할 것이다. 주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찾으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은 말로써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신 말씀을 몸으로 생각으로 전 인격으로 실천해 보였습니다. 십자가가 뭡니까? 십자가 앞에서 드리는 예배, 십자가를 목걸이로 달고 다니는 신앙표시, 십자가는 뭐냐면, 모든 세계와 인간이 겪은 죄악과 아픔과 악과 이 모든 것이 합해서 죽음의 화신이 십자가입니다. 예수가 죽었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죽었습니다. 모든 세계와 모든 인간의 괴로움이 십자가에 응축되었습니다. 십자가는 한날의 괴로움, 역사의 죽음, 인간의 죽음, 한날의 괴로움이라는 말 속에 포함된 모든 창조세계의 죽음,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한날의 괴로움 속에 담긴 실존적인 죽음과 역사의 죽음과 도덕의 죽음과 모든 죽음이 십자가에 있는데 십자가만 보고 울기만 하고 있을 거냐. 십자가의 목적은 죽음에 대해서 곡하라, 그 뜻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에서 우리가 꿈꾸는 미래가 솟아난다. 그 미래는 사람이 만든 십자가에 죽은 자가 만든 게 아니라 전혀 예상치 않은 하나님이 만든 미래다. 한 날의 괴로움은 십자가로 족하자. 내일을 희망하는 자들아, 내일을 만들자. 하나님이 만든다. 하나님을 십자가 속에서 모든 세계와 인간과 여러분을 위한 미래를 기획하고 창출해 내셨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부활이라 이름합니다.
우리와 우리 역사는 십자가에 함께 죽습니다. 한날의 괴로움이라는 표현 속에 담긴 인간의 죽음이, 역사의 죽음이 십자가에 달려있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은 죽음을 넘어서 하나님을 고백하는 자들이 꿈꾸는 미래, 새로운 생명, 영생, 부활, 이것을 하나님이 만들어내십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것, 하나님께 맡겨라. 그리고 오늘 십자가에서 회개하고 사죄함 받고 새로운 생명을 약속받아라. 하나님은 십자가 속에서 부활하고 잉태를 만드셨습니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인간적인 실존, 매일매일의 삶 속에, 역사적 과정 속에, 세계의 흐름 속에, 정신사와 물질문명 속에 항상 십자가가 있습니다. 거기서 달게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활을 꿈꾸고 맛보아야 합니다. 저는 그래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질곡 속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내일 있을 부활의 역사가 현실로 등장하길 바랍니다. 내일은 그런 시간이고, 내일의 장소는 그런 장소입니다. 내일은 시간이기도 하고, 장소이기도 하고, 우리 삶의 영역입니다. 이분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깨어 기도하십시오. 깨어있으면 십자가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부활을 맛봅니다.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복된 말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