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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이슬람과 기독교, 교리적 차이

 

(한국복음주의협의회 10월 발제문)
이슬람과 기독교, 교리적 차이

김영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초대원장)





머리말

 

이슬람은 2001년 911테러 사건과 더불어 21세기 시작을 테러와의 전쟁으로 장식함으로써 세계역사에 등장했다. 이제 이슬람은 더 이상 먼 중동의 종교만이 아니다. 오늘 한국에서도 중동 이슬람 국가와의 교역증진으로 이슬람의 각종 선교와 문화들이 우리 사회에 들어오고 있다. 서울대를 비롯하여 한국 대학가에 이슬람의 선교가 들어와 있고, 우리 산업계에 이슬람 노동자들이 대거 들어오고 있다. 이제 이슬람을 보다 제대로 아는 것이 한국교회가 이슬람의 세계 선교 전략에 대비하는 일이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교리적 차이를 논하는 데 있어서 신관, 중보자관, 성령관, 종교관, 구원론, 종말론에서의 차이를 밝히고자 한다.

 

1. 신관의 차이

 

1) 달신과 열조의 신

 

아브라함이 떠나온 갈대아 우르 지역은 난나(Nanna)라는 달신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일반적으로 태양은 남신이고, 달신은 여신이지만 아라비아에서 달신은 남신이었다. 이슬람교는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아랍 지역의 달신인 석신숭배에서 유래하였다. 알라신은 중동사람들이 섬겼던 부족신들 내지 지역신들에서 유래하였다. 알라는 “메카의 카바 신전 안에 있던 360개 우상들 중의 하나였던 쿠라이쉬 종족신이다. 마호메트가 속한 쿠라이쉬 부족은 달신을 섬겼다. 그러므로 알라신은 여호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단지 이 석신(石神)이 나중에 단일신론으로 발전한 과정에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할 길이 없다. 이슬람의 세계관은 기독교 세계관과 다르다. 그것은 신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신관은 단일신관이며, 그 기원은 아라비아 지역의 달신이다. 이에 반해서 기독교의 신관은 삼위일체 신관이며, 그 기원은 아브라함과 열조의 신앙이다.

 

2) 단일 신 과 삼위일체 신

 

이슬람 신앙고백은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한다. 창조자를 신의 아들이나 신의 영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알라와 그의 모든 천사들의 적(敵)에 해당하는 것이다(Sura 2:97-98; 5:73). 이슬람은 오직 단일하고, 유일한 신(der eine und einzige Gott)을 믿는다. 마호메트(무함마드)은 삼위일체 신, 하나님의 세 위격의 통일(Einheit Gottes aus drei Personen)을 다음같이 부정한다:“셋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런 말을 그치라. 그것이 너희에게 더 좋을 것이다”(Sura 4:171). 이슬람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알라가 인간인 마리아와 성(性)관계를 통해 예수를 낳았다는 것은 천벌을 받을 신성모독으로 여긴다. 이슬람에 의하면 알라는 항상 하나이고 둘이나 셋일 수가 없다. 무슬림은 알라를 인간으로부터 완전히 멀리 떨어진 초월적 존재로서 표상하기 때문에 알라를 아버지로서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아버지가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초월적 존재인 알라에 대한 모독으로 여긴다

 

3) 군주적 신과 사랑의 신

 

이러한 무슬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법을 인격적으로 순종하는 기독교인과는 다르다. 무슬림은 알라에 대하여 율법적인 관계를 가지나 기독교인은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격적인 관계를 가진다. 이슬람은 알라에 대한 완전한 믿음과 절대복종을 말하나, 패역하는 인간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독생자를 주시는 하나님의 대속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 이슬람은 예수를 단지 “알라의 선지자”“창조된 말씀” 내지 “인간적으로 활동하는 알라의 창조된 영”으로 격하시켜 버리고 있다.

 

2. 중보자관의 차이(예수와 마호메트)

 

1) 이슬람에는 중보자가 없다;

 

이슬람교는 중보자가 없다. 그러나 기독교는 중보자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보자이다. 그런데 종말론에는 이슬람교는 마호메트가 내세에 중보자의 기능을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요 선지자에 불과한 마호메트가 어떠한 근거로 중보자의 역할을 하는지 명료하지 않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배의 피로 그의 생명을 우리를 위하여 쏟으셨으므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실 수 있다.

 

2) 허물많은 인간 마호메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이슬람과 기독교의 차이는 그 종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무함마드)과 예수의 차이다. 마호메트는 10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실수와 허물이 너무나 많고 그 행위에 모순이 많은 인간이었다. 이에 반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실수와 허물이 없으며 우리를 위해 대속자가 되신 구세주이다. 마호메트는 무슬림에게 이슬람이라는 법을 주었으나 예수는 구세주로서 그의 몸과 인격을 대속제물로 우리에게 주셨다. 마호메트는 원수를 증오하고 보복하고 살해하려고 가르치나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보복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고 가르친다. 여기서 우리는 이슬람의 윤리보다 차원 높은 기독교의 윤리의 우월성을 발견한다.

 

3) 이슬람교는 역사적 예수의 세 가지 중요사실을 왜곡

 

첫째, 예수는 신이 아니라 성스러운 예언자라는 것이다. 이슬람교는 예수를 마호메트와 같은 예언자의 반열에 두나, 마호메트는 28명의 예언자들(아담, 노아, 모세, 예수 등) 가운데 “최종의 예언자”라고 주장한다.

둘째,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코란은 다음같이 말한다: "하나님이 마리아 아들을 메시야라 칭하니 그들은 분명 불신자들이라“(Sura 5, 72).

셋째,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슬람교가 말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자는 예수가 아니라 다른 사람(유다)이었다는 사실은 영지주의자들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3. 성령관의 차이

 

마호메트(무함마드)은 40세가 되던 610년 라마단 시기에 당시의 종교적 유행에 따라 메카(Mecca)에서 5km 떨어진 광야에 있는 히라산 동굴에 들어가 기도하였다. 그때 그는 동굴 안에서 시끄러운 종소리와 같은 굉음의 환청(幻聽)을 경험하고 한 영을 보게 되었다. 그는 술취한 사람처럼 바닥에 쓰러져 진땀을 흘리고 낙타새끼 같이 부르짖었다. 마호메트(무함마드)은 처음에는 이 방문자를 신령(神靈, Jinn)으로 생각했다. 마호메트(무함마드)에게 내린 신령이란 당시 유행했고 아랍인들이 이미 토속적으로 섬겨왔던 강신술(spiritism)나 주물숭배(fetishism)의 영이었다.

 

마호메트의 초기 계시에 있어서는 계시자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고 다만 "무명(無名)의 영“(Jinn)이라 칭하고 있다. 마호메트(무함마드)은 622년 하지라 이후에 이 무명의 영을 구약 성경의 ”가브리엘“과 동일시하고 있다. 이것은 마호메트가 메디아에서 만난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의 영향을 받았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마호메트(무함마드)은 자기에게 계시를 가져다 준 가브리엘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천사였으며 그 천사를 보낸 자는 아라비아의 지고신(至高神), 알라라고 칭함으로써 외형상은 유대교적 모습을 지니고 있다.

 

4. 율법종교와 은혜종교

 

이슬람은 마호메트의 코란(꾸란) 이외 모세의 율법서, 다윗의 시편, 예수의 복음서를 경전으로 받아 들인다. 그럼으로써 이슬람은 유대교및 기독교를 모방하고 있으며 유대교와 기독교와의 공통점이 많은 종교이다. 그러나 이슬람은 사리아(sharia, 법) 아래 있는 율법종교이며 은혜에 기초한 종교가 아니다. 이슬람이란 알라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고 알라의 명령에 따라서 행동함을 말한다. 무슬림은 이슬람 교리를 순종하는 사람을 말한다.

 

5. 자력구원론: 선행을 통한 보상 - 십자가의 대속 부정

 

코란(꾸란)에 의하면 알라의 심판대에서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대리가 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Sura 6:154). 코란은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거룩한 자에게 용서를 간구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코란은 대속과 속죄를 위한 희생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이것은 코란의 신관에서 나온다. 알라는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중보자나 피의 희생이나 어린 양이나 대속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무슬림은 스스로 옳게 여기고 그들의 의를 스스로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행만이 그들의 악행을 제거해준다(Sura 11:114). 무슬림은 율법적인 요구를 완성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한다(Sura 29:9). 이슬람은 알라와 그의 선지자에 대한 신앙고백 조차도 선행으로 간주한다. 의인의 신앙을 모른다.

 

6. 종말론의 차이: 낙원과 천국의 차이

 

코란에 의하면 이슬람 낙원은 황금으로 가득 차 있으며, 눈을 아래로 깔고 커다란 눈을 가진 아리따운 순결한 여성들로 가득차 있다(Sura 37:49-50). 청순한 아내를 얻어 가정을 이루고 성 생활을 한다(Sura 44:51-55, 52:20, 55:72-76, 56:28-37 ). 그러나 자녀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다. 이것은 낙원이 쾌락의 극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슬람의 종말론은 기독교의 종말론을 왜곡하고 있으며, 신약성경의 종말 메시지에 모순되고 있다. 이슬람의 낙원은 순결한 처녀와 소년들과 결혼하는 물리적 행복을 말하고 있으나, 기독교의 천국은 장가가거나 시집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열락하고 하나님과 합일하는 신령한 지복이다.

 

맺는말

 

교리적인 면에서 비교해 보면 기독교와 이슬람은 전혀 다른 종교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같은 하나님(여호와와 하나님)을 두고 있으나, 이슬람과 기독교는 전혀 다른 신(알라와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다. 중보자관, 성령관, 구원관, 종말관도 다르다. 기독교와 이슬람, 양자의 대화와 협력은 다름을 인정하는 각 종교의 고유한 정체성의 기반 위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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