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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삼위일체 하나님론의 참 뜻을 찾아서

[제3회 갈리리복음 성서학당. 일시: 2009. 9월 16일, 오후 7:00-8:30/장소: 삭개오작은교회]
오늘의 주제: 삼위일체 하나님론의 참 뜻을 찾아서
강의 : 김경재 교수(한신대 명예)

[1] 문제의식


  1. 모든 종교신앙의 성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종교가 ‘진리자체, 궁극적 실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로서 각종교의 특징이 드러난다. 기독교신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신관’(神觀) 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2. 기독교 신관의 특징은 ‘삼위일체론적 유일신론’이라는 것이다. 유일신관(唯一神觀, Monotheism)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등 소위 종교학적으로 말하는 ‘아브라함계 종교들’의 신관특징이다. 그 중에서 유독히 기독교만이 같은 유일신관이지만 ‘삼위일체론적 유일신관’(Trinitarian Monotheism)을 고백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3.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삼윌체론적 신관’의 의미를 일반인들은 물론이요, 기독교인들조차 쉽게 이해하지 못하며,  오해하거나 단지 형식적 교리신조로서 머물고 만다. 흔히 인간 예수를 신격화하는 호교론적 교리라고 오해하거나, 성부 하나님․성자 그리스도․성령보혜사로서 삼신예배적(三神禮拜的) 다신론적 이교신앙에 빠져들 위험을 초래한다. 

[2] 기본오해의 제거 필요성

  1.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삼위체신론)은 이해할 수 없는 모순적 교리를 만든, 후대 기독교교부들과 신학자들의 이론적 산물이어서 기독교의 핵심진리를 담지한다고 말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무시하거나 과거 전통의 유산정도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옳다는 오해.(칸트, 슈라이에르맛허)
  2. 삼위일체론은  신적계시에 근거한 교의적 비의(秘義)이기 때문에, 삼위일체론은 일반세계종교사에 나타난 자연계시와 뚜렷이 구별되는 특수계시를 통한 신적본질을 남김없이 다 밝혀준다는 정통신학자와 신도들의 과도한 확신.(마테오리치, 근본주의적 정통기독교신학)

  3. 위의 두가지 입장은, 극단적으로 상반된 견해이다. 전자에 따르면, 기독교신앙은 예수라는 종교적 천제의 윤리적 가르침을 따르는 좋은 의미에서의 휴매니즘적 기독교가 된다. 후자를 따르면, 기독교 이외의 모든 문화와 종교들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 직접 상관없는 이교적(異敎的), 우상적(偶像的) 종교들로 자리매김 된고만다. 그 결과 기독교는 타문화와종교에 대하여 전투적이고, 정복적이고, 독단독선적인 종교로서의 부정적 성격을 지니게된다.

  4. 중요한 점은, 삼위일체론적 하나님고백은 후대에 신학자들이 만들어낸 교리적 산물이 아니며, 동시에 보편적 인류 종교문화의 가치를 핍가하거나 무시하는 특정종파의 특권적 계시 진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예수의 십자가죽음과 부활현현 체험과 그들 가운데 생명적 역동성과 화해적 사랑 능력으로서 임재하는 (성령의) 영적현존을 체험하였다. 그러면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조상적부터  고백해온 유일신신앙의 빛 안에서, 그 두가지 깨달음의 체험(예수 생명체 안에서와 성령 안에서 체험)을,  후험적(後驗的)으로 정리 해석해 낸  결과가 삼위일체론적 유일신 신앙고백인 것이다(살아계신 하나님의 계시체험 해석).

[3] 삼위일체적 유일신신앙 고백이 형성되기 이전의 성경의 유일신론의 특징들

  1. 성서의 사람들이 경험한, 그래서 고백한 하나님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절대초월적 존재이며, 자유로운 주권적 존재이며, 그 거룩함과 신성의 깊이는 다 알수 없는 ‘신비한 거룩자’로서 이해한다. 창세기에 나타난 모세의 신체험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물을 때 “나는 곧 나이다”(창3:14). 하나님은 자기이름을 묻는 신성체험자들에게 ‘신의 이름’통보를 거절한다.(창32:29, 사사기 13:18). 고대사회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기능이 아니다. 그 이름은 본질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름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무엇인지 본질규정(definition)을 의미하며, 이름을 아는 자에 의한 대상의 통제와 사용과 지배가능성을 함의 한다.

  2. 성서의 사람들이  경험한 하나님은 단순한 전적타자(全的他者)로서 초월적 시공간세계에 거주하는 분이 아니다. 스스로 피조세계와 ‘관계성’을 가지면서 ‘창조와 구원사건을 통해서’ 현실한 복판에 내주하면서 초월하는 존재양식을 취한다. 자기를 내어주며,  말걸어 오시며, 부르시며, 응답하시며, 새로움으로 유인하시며, 징계하시고 치유하신다. 신적초월성 체험은 매우 역설적이어서, 내가 내 자신에게 가까이 있는 것보다도 내게 더 가까이 계신분으로 고백된다.(시편 139:1-18)

  3. 아직 삼위일체론적 유일신관이 교리로서 확정되기이전츼 초대교회시절, 유대교와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을 가장 충실하게 물려 받은 사도바울은 이렇게 아테네 아레오바고 법정에서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행17:27-28). 그리고 결정적으로 목회서신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도 한분이시라. 곧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6)

[4] 처음 예수제자공동체가 역사적 예수 안에서와 성령체험 가운데서 고백하게 된 것

  1. 18세기 이후, 근현대 성서비평학적 연구방법이 학계에 도입된 이후,  신약성경의 4개복음서가 ‘역사적 인물 예수’에 의해 직접 집필된 자기진술의 전기(傳記)도 아니고, 초대교회 특정 학자군들이 가급적 객관적 엄밀성과 정확성을 지켜가면서 역사적 예수의 삶을 ‘재현’에 내놓으려는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다. 즉 4개복음서는 초대교회 신앙공동체가 그들이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야)이다’라고 고백한 신앙고백적 ‘예수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는 역사적 예수님의 입으로 말씀하시는 서술형식 속에도 이미 초대신앙공동체의 ‘신앙고백의 입김’이 서려있다.

  2. 혹자는 ‘역사적 예수연구’ 라는 성서비평학적 연구결과를 보고서, 성경 특히 복음서 안에서 진실한 예수님의 실존적 모습이나 말씀교훈이나 행위를 찾기 어렵다고 속단하는 극단적 학자들도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모든   역사적 보도나 서술행위에서 순수객관적 ‘사실자체’의 복원이란 불가능하다. 전하는자의 이해와 해석이 들어감으로서 전달이 가능한 것이다. 현대 신학계의 건전한 성서학자들은 복음서의 ‘자료적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갈리리지역과 이스라엘 시공간 속에서 역사적 예수라는 인물이 행한 말씀과 병고치는 이적과  하나님나라 선포의 실체를, 우리의 신앙에 필요충분할 만큼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3. 복음서가 전하는 대로,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에 장남으로서 태어나서, 30년간 농사짓고 목수로서 노동하며, 나사렛과 갈릴리에서 생활했던 한 유대인 남자로서 사람이요,   독실하고 경건한 유일신 신앙을 가진 분이었다. 예수의 철저한 유일신 신앙이 그의 모든 혁명적 복음사건의 뿌리와 근거가 된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께 영광만을 돌리기 위해 산 사람이었다. 그의 철저한 하나님과의 ‘뜻의 일치, 하나님 뜻에 순명’은  너무 철저해서 “아버지가 내 안에 있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자다‘라고까지 말씀했다(요 14:9, 8:29, 10:33-38). 그러나, 그 분은 생애 한번도,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 나를 예배하고 섬기라고 참람한 말을 한적 없다. 예수는 자기 자신의 모든  인간실존적 조건 안에서 철저하게 살면서도, 자기자신을 철저하게 비우고 낮춤으로서, 이스라엘인들이 하나님이라고 부른 ’신비자 거룩하신 이‘를  투명하게 계시하였다. 예수는 그의 존재 그 자체가 ‘말씀’이었다.

  4. 역사적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죽은 이후, 그들 가운데 적지않는 숫자가 부활한 예수의 현현을 체험했다(고전 15:1-10). 그리고, 특히 마가다락방에서 성령강림 체험을 하고난후, 그들은 역사적 예수의 생명체가 보이셨던 그 신비의 정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 인간예수를 신격화한 것이 기독교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으로 훈련된 사도들과 초대신도공동체가 그런 참람한 신성모독죄를 짓기 어려운 것이다.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바울이 고백한대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었다”(롬1:3-4)고 설교했다.

  5. 다시말하면, 역사적 예수를 영웅시하거나 신성시한 것이 아니라, 그 의 생명체 안에서 빛나고 불탔던 진리의 말씀, 생명을 살리고 더 풍성하게하는 영, 무한한 사랑과 진리의 빛, 정의로움과 거룩함의 열정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품 속에 계시던 독생자의 육화”(요1:14)라고 고백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의 ‘그리스도성’은 그의 ‘인성’과  현실태(現實態)에서는 분리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서양신학에서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이원론적으로 분리하여 떼어 놓을 수 있다고 보는  발상법은, 학문세계에서는 필요할는지 모르나 형이상학적 관념론이다. 살아있는 생동하는 신앙세계를 찾는 신도들에게는 ‘역사적예수 vs. 케류그마 그리스도론’이라는 이분법이 매우 추상적으로 혹은 공허하게 들린다.

  6.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라고 고백했던 요한 복음 한 구절을 헬라철학적 사변의 결과물로서가 아니라, 생생한 산 신앙체험의 고백으로서 ‘아멘’ 하고 동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그리스도교의 시작이 있으며, 그 고백의 후험적 해명이론이 삼위일체론의 동기가 되는 것이다. 다시말하거니와, 그리스도교는 주후 1-33년동안 땅위를 걸으셨던 ‘인간이된 신’을 믿는 류(類)의 고대사회에 흔했던 구원신화적  종교가 아니다. 예수 생명안에 드러났던 그 말씀, 진리, 정의, 사랑, 용서, 희망, 믿음이 곧 ‘하나님의 현존’이며 ‘신성’이며, 예수를 ‘성자그리스도’가 되도록 한 실체라고 믿는 믿음인 것이다.

  7. 성령체험을 통해서도, 초대그리스도공동체는 , 무슨 초능력이라거나 대모귀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체험이 있는 곳에 그들이 조상적부터 고백했던 ‘유일하신 하나님의 현존’임을 느꼈고,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가르치고 행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하고, 실천하도록 지혜와 깨달음과 새로움의 능력을 주시는 영적 그리스도의  임재를 느낀 것이다. 성질이 전혀다른 세가지 신적 존재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 체험인 것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하나님 신앙 안에서 성령체험자는 역사적 예수가 지상에서 행하신 그 일, 곧 ‘하나님나라의 앞당김’, 생명․평화․정의․사랑․화해․자기비움을 실천해야 옳다.

  8.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삼위일체론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적 관계가  태양 자체(광원)․태양 빛(광선)․ 태양 에너지(광열)처럼   ‘한 실체  세 위격’(one ousia, una substantia  tria hypostasis )' 혹은 ‘한 본질 세 존재양태’라는 표현을 하게되었다( 터뚤리안).  피조세계의 물리적 자연현상과  창조주의 신적 생명현상을 존재유비 안에서 말하는 것은 부적당하지만  , 광선(성자로고스)은 핵융합반응으로 무한 충일한 광원(성부하나님)을 우리에게 알려준다면, 광열(성령보혜사)은 만물을 육성하고 생명으로 키우고 새롭게 변형시킨다. 삼위일체론의 기본공식은 “ 하나의 신적 본질이 세 위격 안에 있다”는 것이다.

[5]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고백을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


  1.  하나님은 살아계신 주(主)로서, 오늘도 삶의 한복판에서 창조주로서, 구원주로서, 속량주로서 일하고 계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저 멀리 하늘나라 천국에 좌정하고 계시면서, 우리가 사후에 만나뵐 군주처럼 이해해서는 않된다.  그렇게 생각할 때, 세계현실은 하나님 없는  세속화된 세계가 되고 하나님은 세계현실 없는  고독한 천계의 군주적 신이 되고 만다.


  2.  기독자는 하나님이 모든 인류의 성자와 성인들 존재 안에서 ‘로고스’로서 현존하고 말씀하시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신성의 본질이 가장 분명하고 왜곡됨 없이 드러났음을 인지고백하는 사람들이다. 인간의 내면성에 깃든 로고스와 신성을 발현하여 곧바로 하나님자신과 일치하려는 ‘비매개적 시도’는 모든 세계종교 신비주의의 본질이다. 그러나, 기독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학적 인간학의 본질적 실현이며 구체적 범례라고 본다. 다시말하면, 실존적 기독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생명의 렌즈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안다. 기독자의 신비주의는 ‘그리스도안의 신비주의’(Mysticism in Jesus Christ) 형태를 띈다. 예수의 생명이 참 사람 됨의 구체적 범례(範例)라고 한다면, 기독자는 예수의 생명을 닮는 것이 자기의 실현이 된다.  


  3.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을 고백하는 기독자는 과거 존재했던  ‘역사적 예수’ 안에 나타난 진리와 말씀과 구원의과거 사실에 메어있지 않고, ‘과거’를 ‘오늘’에 현재화시키는 성령을 고백한다. 예수는 말씀하신다: “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안에, 내가 너희안에 있는 거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0-21). 결론적으로 말하면,  삼위일체 하나님론의 참 뜻은, 예수 그리스도 총괄적 계명인 ‘이웃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신비롭게도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현존)를   교리로서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체험한다는 진리를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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