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정치ㆍ교회ㆍ여성 리더십에 대한 여성신학적 해석
-김애영 교수(한신대 신학과, 여신협 공동대표)
-2009년 11월 27일 한국여신학자협의회 제 23차 한국여성신학정립협의회에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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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ㆍ교회ㆍ여성 리더십에 대한 여성신학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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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시작하는 말: 우리의 주제에 관하여
여신협은 제23차 한국여성신학정립협의회의를 위하여 “정치ㆍ교회ㆍ여성 리더십”이라는 주제를 내걸었다. 그 중에서 나는 교회를 중심으로 여성신학적인 측면을 다루는 과제를 부여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정치에 관하여 한 사람이 논하고, 또 다른 한 사람이 교회 여성의 리더십에 대해 논하고 또 그렇게 나는 교회에 대하여 여성신학적으로 무엇인가를 논해야 하는지 어떤지를 놓고 한동안 고심하고 있었는데, 단순히 여성신학적인 교회론을 논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우리의 한국여성신학정립협의회의 취지와 동떨어진 일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나에게 부여된 과제를 조명하고자 할 때 정치와 여성 리더십과의 연관 속에서 교회의 문제를 다루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정치에 관심하는가? 이번 정립협의회 주제를 결정하기 위하여 모인 여신협 실행위원회에서 몇몇 위원들은 이명박 정부의 본질에 대한 물음과 더불어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 여신학자들을 포함하여 한국 교회여성들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를 고려하면서 적극적으로 ‘정치’라는 항목을 이번 정립협의회 주제의 한 축으로 설정할 것을 촉구하였다. 여기서 잠시 우리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해 보자.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10월에 ‘시민사회의 정치참여’를 선언한 시민ㆍ사회단체 연대기구인 ‘희망과 대안’이 결성되었으며, 친노ㆍ재야인사들이 꾸린 ‘민주통합시민행동’ 이 결성되었으며, 또한 진보개혁진영의 연대를 모색하는 노동ㆍ시민사회 진영의 연대체의 출범이 보도되었다. 70여 명의 노동·시민·종교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2010연대’(준비위)는 11월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2010년 지방선거를 둘러싸고 진보개혁진영의 논의가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각 정당이 자체 일정에 따라 지방선거 준비에 돌입하고 있다”며 “진보개혁진영의 단일후보를 만드는 일이 시급한 과제인 만큼, 이를 위한 논의의 틀을 제안하고 정책 단일화 등에 힘쓰려 한다”고 밝혔으며, 출범대회를 열고 본격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처럼 진보진영의 정치적 결집을 촉발하게 된 계기는 바로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지상주의를 표방하고 집권한 이명박 정부의 탄생이라는 보수 세력의 압도적 승리가 우리의 현재의 모든 일상적 삶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민주화 투쟁시기에 형성된 ‘민주 對 수구’의 정치적 지형이 약화되고, 경제 문제를 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對 반(反)자유주의’라는 정치 구도로 그 중심이 옮겨 가는 시점에서 진보를 표방하는 세력들은 그 어떤 사회적 힘에 근거해서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까를 놓고 힘겨운 씨름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어느 정도 판가름이 나기 때문에 ‘정치’라는 이슈가 2010년을 뜨겁게 달굴 것이다.
현재 우리사회의 보수 세력들은 2005년 경 부터 ‘문화 전쟁’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소위 신우익 혹은 뉴 라이트(new right)로 분류되는 저들이 벌이는 문화 전쟁의 범위는 진보적 근현대 역사, 교육, 시민운동, 언론 매체 등에 대항해서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나는 시간상 그리고 지면상의 제약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 전쟁’의 그 모든 상황에 대해 일일이 나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 전쟁’에 대해 주목해 봄으로써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 전쟁’의 속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973년 R. 닉슨 정권 하에서 UN주재 대사를 역임했던 아버지 G. 부시가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범죄를 옹호하고 있을 때 그의 장남 부시는 텍사스 주 방위군 입대로 베트남 전쟁의 징집을 모면했다. 그들이 나중에 ‘부시 패밀리’를 이루고 미국 보수 정치의 핵심 권력을 이루게 되었다. 바로 그해에 그들을 중심으로 미국 사회를 총 보수 우익체제로 우경화하는데 있어서 총본산 노릇을 하게 된 우익 두뇌집단인 헤리티지 재단이 출범했다. 1960년대 이후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의 물결이 미국 기성체제를 뒤흔들게 되었다. 이 위기에 직면해서 미국의 기득권 계급에 의한 대반격이 시작되었다. 루이스 훨웰(Louis Falwell)의 1971년 문서는 “공산주의자, 신좌파, 혁명주의자들이 미국 정치 경제체제 전체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며 구체적으로 “대학, 성직자, 언론, 언론인, 지식인, 예술가, 과학자, 정치인 등” 거의 모든 여론 주도 그룹들을 쳐부수고 대항 세력을 양성하라고 촉구하였으며, 장기적인 계획과 전국 규모의 조직화, 교과서와 TV, 법조계 등에 대한 철저한 감시체계 확립을 요구하였다. L. 훨웰의 저 문서는 바로 보수 우익에 의해 벌어진 ‘문화 전쟁’, ‘이데올로기 성전’ (holy war) 포고였다. 이러한 보수우익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문화 전쟁의 엔진들은 수많은 두뇌집단들과 제리 훨웰(Jerry Falwell)의 도덕적 다수, 팻 로벗슨(Pat Robertson) 주도의 크리스천 연합 등 우익 기독교 조직들이며, 이 기구들에게 천문학적 자금을 제공한 것이 미국 재벌들이었다고 한다. 이 문화 전쟁이 바로 R. W. 레이건 대통령 시대의 1차 중흥기를 거쳐 30년만인 아들 부시 시대에 절정에 다다른 미국 보수우익 성전 승리의 비결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미국의 보수파에 맞서온 진보진영의 문화전쟁도 치열하게 전개되어왔다. 오마바 정부의 탄생은 80년대 이후 민주당이 공화당의 기업 마케팅 방식의 정치에 대한 부러움 속에서, 따라 배우기의 역사를 통해 민주당이 과학적 마케팅 정당으로 변신을 꾀하고 동시에 수많은 진보센터들의 두뇌집단을 활용하면서 장기적인 시야와 근본적 혁신의 자세를 취함으로써 이루어 진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2010년 지방선거와 총선ㆍ대선이 벌어지는 2012년까지의 정치일정을 둘러싸고 치열한 정치적 각축전이 전개될 것인데, 이는 궁극적으로 보수와 진보사이의 ‘문화 전쟁’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으며 이 땅에서 삶을 영위해 나가는 우리 모두는 이러한 정치적 구도로 부터 벗어나 초연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오늘의 주제는 “좌파축출, 잃어버린 10년 되찾기” 등의 기치를 내걸고 진행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들과 이에 맞서고자 하는 진보진영의 정치적 결집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우리가 당면한 우리 사회의 정치적 현안자체에 집중하기보다 페미니스트들이 세계ㆍ사회 그리고 교회와 신학의 전통과 역사 전체에 대한 비판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고 나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면서, 페미니스트들은 힘 혹은 권력의 불균형에 근거한 불의와 왜곡을 폭로함으로써, 교회와 사회에서 보다 더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지금 취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점에 있어서 가장 큰 공헌을 하였다는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Ⅱ. 몸 말
1. 정치신학으로서의 여성신학
우리가 내세운 정치ㆍ교회라는 표기 혹은 주제는, 일반적으로 “종교는 사적인 일이요 정치와 무관하다”라고 생각하는 경향과는 다른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소위 종교와 신학의 사사화(私事化)에 대한 비판은 정치와 사회에 대한 복음의 관련문제를 다룬 1960년 이래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J. 몰트만과 요하네스 B. 메츠가 주도한 새로운 ‘정치신학’(political theology)의 제일차적 사명이다. W. 크랙은 “정의롭고 자유로운 삶을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조성하려는 노력없이” 복음은 선포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복음의 선포는 결코 정치나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고 단언하였다. H. 골비처에 의하면, “신학과 국민경제, 설교와 정치는 불가분적으로 어우러져 있으며 정치는 설교를 해석하며 설교는 정치를 해석한다.” J. 몰트만은 이러한 정치신학과의 연관 속에서 발전해 온 여성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서술한다. 즉, 정치신학은 여성신학을 자신에게서 발원한 것으로 여기지 않지만, 여성신학은 자신을 하나의 ‘정치신학’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조직신학자요, 여성신학자이며 정치신학ㆍ해방신학에 관한 글들을 발표한 레베카 춉(Rebecca Chopp)은 “정치신학으로서의 여성신학”에 관하여 논하였다. 그이는 유럽과 북미에서 행해진 백인/제1세계 정치신학과 주변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로서의 여성신학과의 차이점과 유사성들을 논하고 있는데, 정치신학과 여성신학에 있어서 개인은 정치적 성향을, 즉 개인적 의식 혹은 주관성이 형성되는 사회에 대한 정치적 질서사이의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관계가 있음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물론 여성신학은 흑인신학, 남미 해방신학, 민중신학, 제3세계 신학들과 더불어 넓은 의미에서 해방신학들(liberation theologies)에 속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처음부터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기치를 내걸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나는 “정치ㆍ교회ㆍ여성 리더십”이라는 우리의 주제를 고려해서, 여성신학을 행한다 함(doing feminist theology)은 바로 여성신학이 우리의 삶과 유리된 학문적ㆍ지적 만족을 추구하는 아카데믹한 훈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신학의 실천적 장(場)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개혁 혹은 변혁을 강력히 촉구한다는 사실, 더 나아가 불의한 실제적인 우리 삶 전반에 대한 개혁과 변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정치신학으로서의 여성신학임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2. 교회 변혁을 촉구하는 여성신학
18-19세기의 여권운동과 20세기에 있어서의 여성해방운동은 오늘의 그리스도교 교회와 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스도교 페미니스트들이 추구하는 목적, 내용, 방법들이 모두 동일하지 않고 매우 다양하다고 해도, 페미니스트들은 교회에 있어서의 모든 수준에서의 여성들의 온전한 참여를 향한 노력을 기우린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교회에서의 여성들의 온전한 참여를 위한 노력”을 대표하는 운동들이 바로 여성안수 운동과 여성예배운동의 형태로 나타났다.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 이래로 여성해방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페미니스트들은 1970년대에는 그리스도교 내의 대표적인 여성해방 운동으로서 여성안수 혹은 가톨릭 여성성직 수임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여성들에게 안수하는 것은 원숭이나 소에게 안수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해 온 남성 지도자들의 편견에 맞서 항거해 온 여성해방운동의 덕택으로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 교파에 속한 여성들이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으나, 가톨릭 여성들의 성직 수임운동은 여성들이 예수와의 육체적 유사성 을 지니지 못한다는 이유로 즉,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여성사제의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자 가톨릭 여성들은 배타적인 성직체제하에서 성직을 얻으려는 미몽으로부터 깨어나기 시작하여 교회 건물이나 전통이 교회가 아니라 “우리 여성들 자신들이 바로 교회”라는 의미에서 여성-교회(Women-Church)운동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그리스도교 페미니스트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비롯한 하나님 칭호 혹은 하나님-언어(God-Language)와 연관된 포괄적 언어 혹은 양성평등적 언어 문제를 제기하면서 남성중심적 위계질서적 교회에 대한 비판과 항거의 일환으로 시작된 교회개혁운동으로서 여성해방적 예배 혹은 예전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여성안수 혹은 여성 성직 수임운동, 하나님-언어에 관한 탐구와 여성예배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온 그리스도교 페미니스트들은 ‘하나님 아버지’라는 호칭을 변경시키는 것을 포함하여 ‘언어 혁명’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리스도교의 언어사용에 있어서 남성배타적 언어에서부터 포괄적 언어사용이라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사회와 그리스도교 전반에 걸친 남성중심적인 배타적 언어 사용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사회 전반에 걸친 여남평등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언어의 변경만으로는 궁극적인 여남평등이라는 목표달성을 성취할 수 없다. 또한 여성들이 남성영역으로 여겨져 온 목회직에 진출하게 되었다 해도, 남성들과 동일하고 온전한 목회직을 수행할 수 없게 만드는 제반 여건들에 대한 인식이 명확해 짐에 따라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이 성직 권력의 구조에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 권력을 변혁해야한다는 이른바 ‘성직계급주의의 제거’(R. 류터)를, 혹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의 탈성직화(E. S. 피오렌자)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에서 여성 예배들이 1960년대 말에 등장하기 시작했던 그 당시 교회들과 회당에서 거행되던 예배들이 단지 충분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참되지 않았다는, 바로 정의(justice)의 문제로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여성해방적 예배 혹은 예전 운동도 저러한 여성안수 운동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 페미니스트들은 단지 여성해방적 예배를 거행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처럼 1960년대 말 부터 1970년대를 풍미한 페미니즘의 제2의 물결의 시대에 그리스도교 페미니스트들은 교회변혁의 기치를 내걸고 여성안수운동과 여성해방적 예배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해 나갔으며, 그 결과 보수적인 몇몇 교파들과 가톨릭을 제외한 대다수의 교파들이 여성안수를 허용하였으며, 교회에서의 포괄적 언어 사용이 어느 정도 통용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1980년대 이래의 소위 페미니즘의 제3의 물결시대가 시작되면서 페미니즘 운동에 따라서 여성신학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모든 여자들은 동일한 여성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따라서 모든 여성들은 모든 남자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사회-체제라고 간주되어 온 바, 페미니즘의 제2의 물결의 핵심주제라 할 수 있는 가부장제 이론에 대한 수정이 가해지기에 이르렀다. 종래의 가부장제 이론이란 오직 성(sex/gender) 이분법이 가부장적 구조들에 있어서 기본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으로서,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 이론으로 무장하고 남자 억압자와 여자 피억압자라는 대결 구도로 사회를 파악하였다. 가부장제(patriarchy)라는 말이 문자적으로 아버지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며 일반적으로는 모든 여성들에 대한 모든 남성들의 지배를 단언하는 것으로 남자와 여자의 대결이라는 이원론적 의미에서 페미니스트 담론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1980년대를 통과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가부장제 이론이란 어떤 여자들이 어떤 남자들과 혹은 어떤 여자들을 지배하는 사회맥락들의 복합성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다는 통찰에 이르게 되었다. 즉, 이러한 통찰에 이르게 된 것은 가부장제 이론만으로는 성, 종족, 민족성, 나이, 성 정체성과 취향, 계급, 지역, 능력, 다른 억압적 관계들과 같이 매우 복잡다단하게 증식하면서 횡단하는 구조들의 지배 구조의 문제들, 복잡한 요인들의 상호작용들을 삭제해 버리고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다는 포스트모던적 인식에서 부터 획득된 것이다.
1980년 대 이래로 학문의 강조점이‘이론에로의 전환’에 두어지게 되었는데,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 학문 전반에 맹위를 떨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페미니스트들도 모든 여성들은 공통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이른바 모던적인 여성의 본질 혹은 여성의 경험이라는 통일된 동질적(homogeneous) 주체 개념에서 부터 포스트모던적인 다중적 상호 주체 개념에로의 인식의 변화를 겪으면서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이에 대한 분석과 대처 양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분화 혹은 분열이 일어났다. 이러한 차이의 정치 혹은 문화에 대한 강조가 극단에 이르자‘여성의 경험’이라는 그 어떤 공통 기반조차 부정하는‘차이와 다원성’의 문화 정치학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따라서‘페미니스트’혹은‘페미니즘’이라는 용어조차 성립되기 어려울 정도로 공통기반 자체에 대한 부정에 이르게 되면서, 심지어 의사소통마저도 불가능할 정도로 차이에 대한 강조가 지배적인 담론을 형성하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포스트모던적 인식에로의 변화는 서구 기득권 세력에 의한 억압과 지배의 구조와 강고함에 대한 정교한 분석을 제공해 주었다. 어쨌든 1980년대의 제3의 페미니즘의 물결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리스도교 페미니스트들은 일종의 거대담론에 해당하는 여성안수운동과 여성해방적 예배운동과 같은 대대적인 운동보다는 이른바 미세담론에 몰두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양상 때문에 바로 여성신학의 쇠퇴처럼 나타나며, 따라서 사람들로 하여금 여성신학이란 것도 역시 일종의 신학적 유행에 지나지 않느냐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이 점에 대하여 나는 결론부분에서 다시 한번 논할 것이다.
3. 교회와 여성 리더십
그리스도교 페미니스트들이 전개해온 여성해방운동은 바로 여성들에게 온전한 참여를 허용하지 않는 잘못된 남성중심적 교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나는 리더십에 대해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의 리더십 이론은 학문적으로 중요한 연구대상과 요인이 되었으며, 학자들은 리더십에 대한 여러 다양한 정의들을 내리고 있다고 한다. 지도자의 목표란 그를 따르는 공동체 혹은 그룹의 회원들을 지배하는 것도 아니며 회원들의 능력을 삭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즉,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여하는 리더십이 참된 리더십이다. 리더십이라는 말이 학계에서 일반적인 언어가 된 것은 신약성서의 교회 지도자에 대한 이해가 중심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여기서 사도 바울은 촉진의 목표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람들이 전 공동체의 사역을 촉진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지도자’와 ‘따르는 자’ 사이의 구분이 엄격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리더십이 혼자 일할 수 있는 바, 임명받은 한 사람의 특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팀(team) 형태의 지도자 개념이 오늘날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이렇게 공유된 리더십은 지도자의 여러 가지 다양한 은사들의 사용을 육성함으로써 공동체에 유익을 준다는 점이다. 타자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타자들에게 능력을 부여하는 리더십(Leadership as Empowering Others)이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으로써 페미니스트들은 권력관계의, 그리고 권력의 기본적인 개념 자체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였다. 권력 혹은 능력(power)이란 더 이상 타자를 통제하는 것으로만 인식될 수 없고, 오히려 타자에게 힘을 부여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교 교회에 있어서의 리더십의 문제를 여성신학적 전망에서 부터 조명해 보자. 신약학을 전공한 여성신학자로서 E. S. 피오렌자는 예수 운동, 초기 크리스천 선교운동, 바울신학 탐구에 집중함으로써 초기 크리스천 역사에로 여성들의 이야기를 회복하려는 시도와 이 역사를 여성들과 남성들의 역사로 재주장하는 그런 초기 크리스천 역사를 재구성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는 예수 운동과 원시 그리스도교에는 지금의 가부장적 그리스도교와는 다른 대안적 전통이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즉 예수를 따랐던 여성들은 “평등의 제자직” 형태를 취했으며 초기 크리스천 공동체의 리더십 행사에 있어서 여성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여성의 리더십을 허용하지 않았던 유대 전통과의 결별을 의미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가부장적 구조들을 따랐던 헬라 문화권과 비교해 볼 때에도 파격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다시 등장한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적 태도, 그리고 “자유의 제거”(clearing of freedom) 등에 의해 교회의 구조가 남성들에 의해 독점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편 교회사를 전공한 여성신학자 R. 류터는 그리스도교의 기원들에 까지 소급하여 19세기 말 까지의 교회사 1900여 년 간을 추적하면서 그리스도교 역사도처에서 일어나는바 교회의 근본적인 두 모델, 즉 영으로 충만한 공동체와 역사적 제도로서의 교회 사이의 계속된 긴장과 갈등을 추적하였다. 가부장적 교회전통과 신학이 여성들의 성직을 엄격히 차단해 왔으나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평등주의와 포괄주의적 전통은 결코 소멸하지 않고 그리스도교 역사에 면면히 이어져 왔다고 한다. 즉 영지주의, 몬타니즘, 중세의 영성파, 종교개혁 후기의 좌파적 종파운동들, 19세기 미국의 성령운동들은 역사적 제도로서의 교회와는 달리 여성들에게 성직을 허용하는 요소들을 보유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류터는 카리스마적 은총에 의거해서 여성들에게 리더십을 부여한 이 운동들조차도 하나의 제도들로 정착될 때마다 다시금 여성의 참여를 배제하는 이른바 해방의 약속과 배반의 역사를 거듭거듭 보여 왔다는 사실을 탐구해 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듯이 교회는 여성들에게 온전한 참여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이 되며 될 수록 여성들은 더욱 더 교회가기가 어렵다는 말이 이미 오래전에 서구 페미니스트들로부터 터져 나왔다. 하나님의 몸된 교회가 교회답지 못함으로써 믿는 자들로 하여금 좌절과 분노를 경험하게 할 때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는 받아들일 수 있으나 교회는 받아들일 수 없다” (Jesus Yes, Church No)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크리스천이면서 동시에 페미니스트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직면해서 그 양립가능성을 주장하고 인정하는 페미니스트들은 교회를 양성평등적인 참된 교회로 개혁하거나 혹은 수정할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교회에 머물러 있는 개혁적 혹은 수정파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반면에 처음부터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적 위계질서로 꽉 짜여진 교회에 대한 그 어떤 희망조차 기대하지 않은 여성들은 교회도 싫지만 예수도 싫다는 것이다.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고 그렇게 폴 쥬엣(Paul Jewett)이 아무리 주장한다 해도, 메리 데일리 (Mary Daly)가 외쳤듯이,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 그게 우리 여성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항변하면서 교회에 남아 교회를 개혁하려고 노력해 보았자 핵심에서 부터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적 교회는 치유 불가능하기 때문에 교회에 남아있는 것은 단지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여겨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 버린 급진적 페미니스트들도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Ⅲ. 마치는 말: 교회와 사회 변혁을 통한 여성해방의 길을 향하여
1980년 4월 20일에 창립된 한국여신학자협의회는 내년 2010년이면 창립 30주년을 맞이한다. 나는 학교 일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하여 발제하는 일을 처음부터 고사했으나 얼떨결에 오늘의 발제를 떠맡고 글을 쓰다가 그 많은 창립회원들을 비롯하여 한국에서 여성신학을 전개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동고동락하던 회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우리의 여성신학은 이제 그 소임을 다 했는가? 한국교회를 향해 외쳐온 우리의 주장과 요구는 어느 정도의 메아리를 불러 일으켰는가? 하는 등등의 여러 가지 상념에 젖었다. 또한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끊임없이 한국여성신학정립회의를 개최하면서, 창립당시에 내세웠던바, “한국 교회와 사회의 민주화ㆍ남녀평등ㆍ민족통일”이라는 방향설정을 확고히 하고 이에 상응하는 이론작업과 그 실천에 매진해 왔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페미니스트들의 세력과 운동은 초창기의 역동성을 상실하였고 그 드높던 외침은 더욱 더 잦아들고 있는 세계적인 흐름을 반영하듯이, 많은 회원들이 떠나 버린 여신협을 이끌어 나가고 지탱하기도 힘겨운 현실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다. 여신협의 회원으로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자매들과 혹은 여신협과의 관계가 그리 돈독하지 않았던 사람들 조차도 한국에서 여성신학의 씨를 뿌리고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는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여신협이 지닌 위치와 그 공헌을 결코 간단히 처리해 버리지 못할 것이다. 여신협의 존재가치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으면서 막연히 새로운 형태의 여성신학운동이 전개되어야 하지 않는가를 말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그러한 소리도 우리 귀에 점점 더 크게 들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여신협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적어도 변혁되어야 할 그리스도 교회는 너무도 철옹성처럼 굳건한데 비하여, 우리가 추구했던 평등하고 우애에 넘치는 교회와 사회에 있어서 여남평등공동체의 실현이란 아직도 요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깃발을 내릴 수 없다.
한국여성신학에 관여하고 이를 발전시킨 수많은 여성신학자들은 현재 여성신학의 퇴조의 분위기를 몸으로 실감하고 있으나, 관점의 변화와 다양성에서 부터 나타나는 변화들을 감지하고 또한 이러한 새로운 긍정적인 변화를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사실도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 즉 한국 여성신학자들은 초기의 여성해방운동 시기에 비하여 보다 더 다양해진 기관들과 삶의 다양한 현장들에서 여성해방운동과 신학을 구현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여신협에 관여하던 아니하던 간에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앞에 수행해야 할 많은 과제가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정녕 즐거워해야 할 것이다.
여성해방운동과 여성신학이 어느 정도 한국사회에서 대중화 되고 보편화되고 동시에 여성신학의 전문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오늘의 시점에서 보자면, 여성운동가들과 신학자들은 초기의 역동성에 비하여 여성운동과 여성신학의 확산보다는 쇠퇴에 대한 우려를 감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단지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 서구 여성운동ㆍ여성학ㆍ여성신학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것은 어느 면에서는 과거의 흑인해방운동, 여성해방운동,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사회변혁 세력들이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사회와 국가 체제로 순응ㆍ통합되고, 따라서 그 운동의 주도자ㆍ명망가들이 우익으로의 전환에 따른 반사이익을 획득하면서 나타난 바, 1980년대 이래의 약 20여 년 동안에 걸쳐 나타난 변혁운동의 전반적인 쇠퇴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즉 지난 수십여 년 동안 서구 여성운동과 신학의 주도자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발전을 성취하여 교수직을 비롯한 전문직에 진출함으로써 여남평등이라는 성취를 이루어내었다. 그러나 남성 독점적인 전문직 혹은 학문세계에 진출한 페미니스트들은 남성들과의 힘겨운 경쟁과 생존을 위한 투쟁에 몰두하면서 점차 여성해방운동이 지녔던 초기의 역동성을 상실하기에 이르게 되었는데, 때 마침 1980년대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 까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담론이 학문의 담론을 거의 주도하다시피 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또한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차이와 다양성의 문화 정치학이라는 용어로 요약될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에 의하여 여성해방운동과 신학은 극단적 분열 양상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미 언급했듯이 억압의 지배체제가 단순히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체제로만 파악될 수 없는 여러 조건들을 고려해야만 한다는 포스트모던적 통찰에 의해 새로운 시야가 열렸다는 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페미니즘에 대해 커다란 반감은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해도, 종래의 전통적인 현모양처형의 온순한 여성상을 못내 아쉬워하는, 그러면서 ‘요즘 여자들’에 대해 그리 달가운 마음을 지니지 못하는 남자들은 요즘은 오히려 여성상위 시대가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벨 훅스(bell hooks)의 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즉, 페미니즘이란 반(反) 남성주의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임을” 널리 알리는데 있다. 여성과 남성은 사회통제 수단으로서의 폭력행사라면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건 간에 그 모두 (전쟁, 여자에 대한 남자의 폭력, 어린이에 대한 어른의 폭력, 십대 폭력, 인종폭력 기타 등등) 것에 대하여 반대해야 한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한 페미니스트의 노력은 마땅히 모든 종류의 폭력을 종식시키는 운동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과거로부터 배우고, 페미니즘의 원칙이 우리의 공적ㆍ사적 삶의 모든 국면을 포괄하는 미래를 위하여 일해야 한다. 즉, 정의를 사랑하는 삶을, 평화로운 삶을 영위 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일해야 한다. 이렇게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이제까지의 여신협의 성과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위하여 우리는 그동안 여신협이 천착해 온 주제들, 실천들과 내용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에서 점검함으로써 다시 한번 한국교회를 비롯한 그리스도교 전반으로 하여금 그리스도교를 그리스도교이도록, 교회를 교회이도록 변혁을 촉구하는 여성신학자들의 임무를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과제는 우리가 그리스도교에 몸담고 있는 한,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귀중한 일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변혁을 촉구해 온 페미니스트들은 남자 신학도들과 함께 신학교육을 받고, 안수를 받고 목회자가 되었으며, 또한 남성 신학자들과 함께 신학교수직에 진출하기도 하였다. 또한 페미니스트들의 소망대로 남성배타적 언어를 포괄적 언어로 변경하는 일도 어느 정도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성과들만으로 결코 여성이 남성들과 동등한 지위와 역할 확보를 통해 온전한 참여를 이루었다고 느끼지 못한다. 사회 혹은 세계 전반에 걸친 변혁이 수반되지 않는 단지 교회 개혁 혹은 변혁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아직도 매우 부족하지만 지금까지의 교회가 페미니스트들이 요구한 그 어떤 변화를 수용했다면 바로 사회가 그렇게 변화되어 왔기 때문에 일어난 변화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교회의 변혁을 촉구해 온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로 부터 교회와 사회에서 남성들과 동일한 리더십을, 따라서 여성들이 부여받은 은사를 박탈당해 온 역사와 현실을 줄기차게 고발해 왔다는 점이다. 이러한 리더십의 문제가 바로 정치적인 권력의 문제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이제 여성들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권력의 문제를 페미니스트적인 전망에서 부터 새롭게 재규정해야 할 것인데, 그것은 바로 인자가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바로 올바른 리더십이 무엇인가를 말해 준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섬김의 리더십을 한국사회와 교회의 리더십으로, 따라서 파트너십으로 정착시키는 작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한국 그리스도교 페미니스트들은 한국 교회 변혁운동의 차원에서 ‘성직계급의 제거’ 혹은 ‘교회의 탈성직화’를 촉진시키는 일이 바로 한국의 현실 정치에서 고질적인, 군림하는 권력체제의 해체를 촉진할 수 있으며, 이러한 희망을 가지고 우리는 담대하게 여성해방의 길을 즐겁게 노래하며 서로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걸어 나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