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양방향적 전승이론으로 본 Q 연구의 전제의 문제점
발표 : 이상일 박사(총신대)(2009년 12월 11일 한국신약학회 제 4차 콜로키움에서 발표)
공관복음서 전승을 연구하면서 학자들은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세 가지 전제 위에서 복음서의 주요 주제들을 오랫동안 논의하였다. 즉, 예수 전승과 복음서 전승이 유대-팔레스타인 전승에서 헬레니스틱 전승으로, 구두 전승에서 기록 전승으로, 아람어 전승에서 헬라어 전승으로 단일 방향적으로 전승되었고, 그 반대 방향으로 전승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가정은 본문비평, 양식비평, 편집비평, 문학비평의 방법론을 사용할 때, 그리고 그러한 방법론을 사용하여 사복음서의 중요한 주제들, 공관복음서 문제, Q 연구, 역사적 예수 연구, 기독론의 발전과 관련된 논의에서 판단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1세기 팔레스타인의 유대교, 기록 양식, 그리고 언어 상황을 연구해 볼 때, 단일방향성 가설보다는 양방향성 가설이 보다 설득력이 있음을 논증할 것이다. 양방향성 이론을 통해서 볼 때, 단일방향성 이론 위에 세워진 Q 가설이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점들에 대한 비평을 하고자 한다. 한 가지 예로 Weiss에서부터 Tuckett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Q의 근거로 사용된 Nazara(마4:13, 눅4:16)가 Q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님을 제안할 것이다.
1. 예수 전승과 복음서 전승의 고대성과 진위의 판단 기준으로 사용하는 세 가지 전제들
복음서를 연구하면서 복음서 비평학자들은 확실하게 증명되지 않은 세 가지 가설들 위에서 복음서의 주요한 주제들에 대한 토론을 진행해왔다. 그것은 예수 전승과 복음서 전승의 방향성이 지리적으로는 유대-팔레스타인에서 헬레니스틱으로, 양식적으로는(modally) 구두전승에서 기록전승으로, 언어적으로는 아람어에서 헬라어로 단일방향적으로 전승되었고 그 반대 방향으로는 전승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1.1 지리적 단일방향성 가설
첫째, 지리적 단일방향성 가설이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유대-팔레스타인 출신으로 그 지역에서 사역을 하였다. 시간이 흘러, 예수 전승은 헬라화된 도시들로 전파되었고, 결국 복음서가 기록된 곳은 로마, 안디옥, 또는 알렉산드리아와 같은 헬라화된 도시들에서 기록되었다고 가정한다. 예수 전승이 유대-팔레스타인 전승에서 헬라 전승으로 단일 방향적으로 전승되었고 그 반대 방향으로 전달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복음서전승에서 헬라적 특징을 찾아내면 그것은 후대에 삽입된 전승이거나 진짜 예수 전승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표적인 주창자로는 양식사학파의 마르틴 디벨리우스(M. Dibelius)와 루돌프 불트만(R. Bultmann)이 있다. 디벨리우스는 복음서 전승 뒤에 있는 “purer forms”를 연구하였는데, 더 순수한 양식을 복음서에서 찾아내고자 노력하였다(From Tradition to Gospel). 그는 구두전승, 아람어 전승, 그리고 증인들의 증언(eyewitness testimony)을, 그 전승들의 쌍이 되는, 기록전승, 헬라어 전승, 그리고 증인들의 설교 (eyewitness Predigt)보다 이른 전승으로 구별하였고, 전자(구두, 아람어, 증언)에서 후자(기록, 헬라어, 설교)로 예수 전승이 단일방향성으로 전달되었다고 가정하였다. 그래서 전자에 해당하는 전승은 더 이르고, 더욱 원본적인 전승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는 양식단일방향성 (구두나 기록)이나 언어단일방향성(아람어나 헬라어)보다도 지리적 단일방향성인 증인들의 설교가 예수 전승의 고대성을 최종적으로 결정한다고 제안했다. 그러한 단일방향 가설에 근거해서 디벨리우스는 덧붙이기를 Q는 헬라어 전승이기 때문에 기록전승이었을 것으로 가정했다.
불트만은 양식비평의 목적을 기록전승 배후에 있는 구두전승의 양식(form)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양식적 단일방향성(구두에서 기록전승)이나 언어적 단일방향성(아람어전승에서 헬라어전승)은 지리적 단일방향성(유대-팔레스타인의 삶의 정황(Sitz im Leben)에서 헬레니스틱 삶의 정황)의 종속변수로 보았다. 즉, 구두전승이나 아람어전승이라 하더라도 헬레니스틱 공동체에서 시작된 것이면, 후대 전승으로 간주하면서 공관복음 전승사 (History of the Synoptic Tradition)을 재구했다. 따라서 양식비평가들은 세 가지 단일방향성 가설을 받아들였지만, 지리적 단일방향성을 예수전승과 복음서전승의 고대성을 판단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간주했다. 그 이유는 팔레스타인의 유대교와 디아스포라 유대교의 뚜렷한 대조와 팔레스타인에서 사용되던 아람어와 헬라도시에서 사용되던 헬라어의 대조 때문이었다. 양식비평가들은 그 세 가지 가설들 위에서 복음서의 주요한 논의들을 진행해왔다.
1.2 양식적 단일방향성 가설
두 번째 전제는 예수 전승이 구두 전승에서 기록 전승으로 단일 방향적으로 전승되고 그 반대 방향으로 전승된 것은 아니었다고 가정하는 양식(mode)의 단일방향성 가설이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목격자들은 복음을 구두로만 선포하였다. 예수의 말과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구전되어서 헬라화되어 있던 도시까지 전달되었다. 그 후에 예수 전승은 복음서 저자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예수 전승은 기록된 문서로 남아있다. 그래서 예수 전승의 전승 방향이 구두 전승에서 기록 전승으로 단일 방향적으로 전승되었다고 가정해왔다.
크게 세 그룹에서 양식(mode)의 단일방향성에 집중하였다. 첫 번째 그룹은 스칸디나비아 학파(Scandinavian school)로 해럴드 리젠펠드(Harald Riesenfeld), 비거 게르하르드슨(Birger Gerhardsson)이 있다. 이들은 선생이신 예수에 초점을 맞추면서 랍비적 교육방식을 고려할 때, 예수전승은 구두전승으로 완벽하게 보존되었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장이 양식비평가들의 입장과 대치됨에도 불구하고, 구두전승에서 기록전승으로의 양식의 단일방향성은 동일하다. 두 번째 그룹은 최근의 구두성 이론(orality theory)를 신약학에 도입한 학자들이다. 워너 켈버(Werner Kelber)는 양식비평(form criticism)의 양식 방향성(modal directionality)에 대한 주장들이 목적론적이고 단선적이라고 비판한다. 즉, 구두 전승에서 기록 전승으로 일방향으로 전승되었고, 그 반대 방향으로 전승되었을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던 양식비평가들을 반박한 것이다. 그 대신에, 켈버는 주후 1세기 유대-팔레스타인과 로마의 주요 의사소통 수단은 문자성(literacy)이 아니라 구술성(orality)이며, 문자성(literacy)은 구술성의 보조적인 의사소통 수단이었다고 제시하였다. 그러나 구두전승과 기록전승을 대립관계로 보았다. 조안나 듀이(Joanna Dewey)는 그 둘을 상보적 관계로 봄으로써 켈버의 이론을 적당히 교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켈버와 같이 양식적 단일방향성 가설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마지막 그룹에 속하는 학자는 얼 엘리스(Earl Ellis)이다. 그는 예수 당시에도 몇몇 제자나 목격자들은 기록을 남겼다고 설득력있게 주장하면서 초기 기록을 부인했던 양식비평가들을 비판하였으나, 그도 여전히 기록전승이 구두전승의 최종점이라고 가정하였기에 양식의 단일방향성 가설을 벗어나지 못했다.
1.3 언어적 단일방향성 가설
세 번째 전제는 예수 전승이 아람어에서 헬라어로 단일 방향적으로 전승되었고 그 반대 방향으로 전승된 것은 아니라고 가정해왔다. 예수는 가르치거나 생활할 때 아람어를 사용했다. 그의 제자들도 아람어를 사용했다. 게다가 복음을 듣는 사람들도 아람어를 사용했다. 그 반면에, 우리는 헬라어로 기록된 복음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복음서 비평학자들은 예수 전승이 전달된 방향이 아람어 전승에서 헬라어 전승으로 단일방향적으로 전달되었고 그 반대는 아니라고 가정해왔다.
이러한 학설은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있다. 첫 번째는 모든 예수 전승이 예외없이 아람어에서 헬라어로 갔다는 주장과 몇몇 예외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단일언어모델(monolingualism: 팔레스타인은 아람어, 헬라 도시는 헬라어 사용)이나 최소주의이중언어모델(minimal bilingualism: 팔레스타인의 시골과 하부 계층은 아람어를 사용하고 도시와 상층 계층은 헬라어도 사용)이나, 양층언어모델(diglossia: 한 사회에서 둘 이상의 언어를 사용할 때, 하나의 언어를 상층언어 다른 하나를 하층언어로 분류) 중 하나에 근거하여 아람어 학파를 이끌었던 찰스 토리(Charles Torrey), 매튜 블랙(Matthew Black), 요아힘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 죠셉 피츠마이어(Joseph Fitzmyer; 최대주의이중언어주의자) 뿐만 아니라, 아주 많은 신약학자들은 예외없이 아람어에서 헬라어로 전승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헬라어 본문에서 보다 이르고 원본에 가까운 전승이라 할 수 있는 아람어적 흔적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반면에, 알렉산더 로버츠(Alexander Roberts), 오버리 아자일(Aubery Argyle), 나이젤 터너(Nigel Turner), 로버트 건드리(Robert Gundry), 스탠리 포터(Stanley Porter)와 같은 학자들은 헬라어를 할 수 있었던 예수가 몇몇 헬라어 화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 헬라어로 말했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서의 몇몇 구절들은 헬라어로된 예수의 입술 위의 말(ipsissima verba Jesu graeca)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고 제시하였다. 두 그룹 모두 헬라어 전승이라는 예외가 있든 그러한 예외가 없든 간에 헬라어 전승은 다른 언어로 번역됨없이 최종적이라고 간주했다.
따라서 예수 전승과 복음서 전승의 전승(transmission)은 유대-팔레스타인 전승에서 헬레니스틱 전승으로, 구두 전승에서 기록 전승으로, 그리고 아람어 전승에서 헬라어 전승으로 단일방향적이며(unidirectional), 목적론적이며(teleologically), 그리고 단선적이라고(unilinear) 간주해왔다.
이 세 가지 전제들은 서로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첫 번째 가정(유대-팔레스타인 전승에서 헬라 전승으로)과 두 번째 가정(구두 전승에서 기록 전승으로)은 세 번째 가정(아람어 전승에서 헬라어 전승으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유대-팔레스타인의 삶의 정황을 담은 유대-팔레스타인 전승과 헬라 도시들의 삶의 정황을 담은 헬라적 전승 사이에 차이점이 발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유대-팔레스타인에서는 아람어가 사용되었고, 헬라화된 도시들에서는 헬라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라고 가정한다. 또한 아람어는 기록 문학을 많이 남기지 않았고, 헬라어로 된 기록 문학은 많기 때문에 아람어 전승은 구두로만 전달되었고, 기록된 전승은 헬라어로 된 전승이라고 많은 학자들은 주장했다.
요약하자면, 예수 전승은 유대-팔레스타인에서 아람어로 된 구두 전승으로 시작하였다. 그 예수 전승이 유대-팔레스타인 지역 밖으로 전파되면서 약 40-70년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헬라화된 도시들에서 헬라어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비평학자들은 예수 전승이 유대-팔레스타인 전승에서 헬레니스틱 전승으로(지리적 단일 방향성), 구두 전승에서 기록 전승으로(양식적 단일 방향성), 그리고 아람어 전승에서 헬라어 전승으로(언어적 단일 방향성) 전파되었고, 그 반대 방향으로 전달된 것은 아니라고 가정해왔다.
1.4 세 가지 단일방향성 가설과 복음서 비평의 관계
대부분의 복음서 비평학자들은 이 세 가지 단일 방향성 가설을 복음서 연구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더군다나 이 세 가지 단일 방향성 전제들은 복음서와 관련된 주요한 주제들을 논의할 때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판단 기준으로 사용해왔다. 첫째, 앞의 세 가지 전승들 (유대-팔레스타인 전승, 구두 전승, 아람어 전승)은 뒤의 세 가지 전승들 (헬레니스틱 전승, 기록 전승, 헬라어 전승)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전승이다. 둘째, 앞의 세 가지 전승들은 뒤의 세 가지 전승들보다 원본에 가깝다. 셋째, 앞의 세 가지 전승들은 뒤의 세 가지 전승들보다 역사적 예수의 말과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깝다. 그래서 복음서 비평학자들은 이 세 가지 기준들, 즉 지리적, 양식적, 언어적 기준들을 사용하여 복음서의 기원과 형성과정을 설명하고자 노력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단일방향성 가설 위에서 예수 전승과 복음서 전승에서 보다 이른, 보다 원본적인, 보다 역사적 예수에 가까운 전승을 찾으려고 노력해왔다.
이러한 작업들은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비평 방법에서 사용되었다. 자료비평(source criticism)과 본문비평(textual criticism)의 경우, 자료들이나 사본들 중에서 유대적 색채가 있거나, 구술적 특징이 있거나, 아람어적 특징이 있는 자료나 사본은 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사본이며, 원본에 가까운 사본으로 간주했다. 양식비평(form criticism)과 편집비평(redaction criticism)의 경우, 디벨리우스와 불트만이 말하듯이, 그 목적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양식비평은 기록전승 뒤에 있는 구두전승을 찾는 작업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세 가지 단일방향성 가설을 가장 확신했었다. 공관복음서 문제(Synoptic Problem)에 대한 접근도 이와 유사하다. 세 복음서들 중에서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기록이 되었다고 간주한다. 이때 강력한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 단일 방향성 가설에 근거해있다. 즉, 마가복음이 다른 두 공관복음서들보다 구두적 특징이 강하고, 아람어 단어가 많고, 아람어 문법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예수 연구(Historical Jesus Research)도 마찬가지다. 유대적 색채가 있거나, 구술 특징을 보이거나, 아람어적 특징이 있을 경우, 역사적 예수의 진짜 말씀에 가까운 전승으로 다룬다.
2. 예수 전승과 복음서 전승의 양방향성 이론
그러나 복음서 비평학자들이 150년 가까이 전제로 가지고 있었던 세 가지 단일 방향성 가설들, 즉 예수 전승과 복음서 전승이 단일 방향적으로 전승되었다고 가정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양방향적으로 전승되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최근에 학계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세 가지 단일 방향성 가설들 중 첫 번째 가설(지리적 단일방향성)과 두 번째 가설(양식적 단일방향성)의 전제와 관련하여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2.1 지리적 단일방향성 가설 비평
지리적 단일 방향성 가설의 경우, 마르틴 헹엘(M. Hengel)은 1세기 팔레스타인 유대주의가 이미 그 전부터 헬라화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팔레스타인 유대주의와 디아스포라 유대주의를 구분할 수 없고, 그 대신에 헬라어를 말하는 팔레스타인 서부 지역의 디아스포라 유대주의와 아람어를 말하는 팔레스타인과 바벨론 지역의 유대주의로 구분해야 한다고 설득력있게 제안한다. 아쉽게도, 헹엘은 자신의 입장을 복음서의 전승사 연구까지 연결하여 해석하지 않고, 여전히 단일방향성 전제들에 머물러 있으면서 복음서와 관련된 주장들을 펼친다. 그러나 그의 주장, 팔레스타인 유대주의와 디아스포라 유대주의의 불구분성은 유대-팔레스타인 전승과 헬레니스틱 전승 사이의 구분을 희미하게 만든다. 즉, 복음서에서 헬레니즘으로 인한 헬레니스틱 전승의 특징을 찾아내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2.2 양식적 양방향성 이론
1990년 이후 지금까지 복음서 연구에서 가장 활발하게 토론되고 있는 이슈들 중의 하나는 두 번째 양식적(modal) 단일 방향성 가설과 관련이 있다. 켈버의 혁명적인 주장 이래로, 듀이와 리차드 호슬리(Richard Horsley)를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은 기록 전승이 구두 전승의 보조수단이었으며, 구두 전승의 보존을 위해 기록이라는 양식이었다는데 동의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 전승이 구두 전승에서 기록 전승으로 전달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록 전승이 다시 구두 전승으로 재구두화되어 양방향적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 양식적 양방향성과 관련하여 최근에 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다섯 가지 이론을 설명하겠다.
첫째, 대표적인 양식비평가임에도 헬무트 쾨스터(Helmut Koester)는 정경적인 복음서의 구두전승과 기록전승 사이의 양방향성은 인정하지 않지만, 클레멘트 2서는 양식적(modal) 양방향성은 인정한다. 본문비평 분야에서 데이빗 파커(David Parker)는 구두전승과 기록전승이 상호 영향을 통하여 구두전승이 쓰여지고 다시 쓰여지고, 기록전승이 읽혀지고 다시 읽혀졌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언어학적인 양방향성은 인정하지 않는다. 셋째, 스칸디나비안 학파 중 사무엘 빌스콕(Samuel Byrskog)은 예수전승(Jesus tradition)의 양식적 전승(modal transmission)을 양방향적으로 보았다. 그는 역사적 진리와 해석된 진리, 전승(tradition)과 전승(transmission), 복음서 기자의 현재와 예수에 대한 이야기의 과거, 그리고 구술성(orality)와 문자성(literacy)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제안한다. 그래서 기록전승은 규칙적으로 기독 공동체에서 재구두화(reoralization)되고 재기록화(redocumentation)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람어 전승이 헬라어 전승보다 초기 전승이라고 제안함으로써 언어적 양방향성은 부정한다. 넷째, 해리 갬블(Harry Gamble)은 예전적 사용을 통하여 기록전승은 다시 구술화되었고, 두 가지 전달 양식(communicative modes)은 배타적이라기보다는 보완적이었다고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그래함 스탠튼(Graham Stanton)과 리차드 보캄(Richard Bauckham)은 노트북이론(notebook theory)를 제시한다. 예수 사역 당시에 이미 기록전승이 존재했으며, 기록된 사복음서가 구두전승을 끝내지도 않았고, 최종적인 전승인 것은 아니라고 제시함으로써 양식적 양방향성에 동의한다.
따라서 최근에 많은 학자들이 “상호영향”, “재구두화”, “재기록화”, “두 가지 양식의 보완적 성격”, “노트북 이론” 등은 예수전승이 전달될 때의 양식(mode)이 구두전승에서 기록전승으로만 간 단일방향적인 것이 아니라, 양방향적임을 시사한다. 양식적 단일방향 가설 위에서 어떤 학자들은 마가복음우선설과 Q가설을 제안하면서 마가복음의 비문학적인 특징들이나 구두적인 특징들을 다른 두 공관복음서의 문학적인 특징들과 대조시킴으로써 마가복음을 다른 두 공관복음서와 구두전승 사이에 위치시키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구술성이 반드시 이른 전승/복음서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구두전승의 기록전승에 대한 시간적 우선성을 지지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예수가 사역할 당시에 예수의 제자들과 목격자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쓸 수 있었다. 따라서 기록 전승이 구두 전승과 시기적으로 거의 비슷하게 출발했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둘째, 양식 비평가들은 복음서가 바로 기록되지 않고 몇 십 년 지나서 기록된 이유가 예수 공동체가 종말론적인 공동체였기 때문에 기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다가 종말이 지연되고 목격자들이 세상을 떠나기 시작하자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당시의 또 다른 종말론적 공동체였던 쿰란 공동체가 방대한 문서를 남겼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목격자들이 기록 전승을 남기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복음서의 기록 연대가 반드시 뒤로 가야할 필요는 없다. 셋째, 그 당시 랍비들이 토라를 완벽하게 암송했듯이, 제자들이나 목격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 전승을 거의 완벽하게 암송했을 가능성이 높다. 기록된 복음서도 구두전승의 보조적인 수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넷째, 복음서를 기록한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는 예배에서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 전승과 복음서 전승은 초기 기독교 모임에서 읽혀졌을 것이다. 그래서 기록 전승은 다시 구두 전승으로 바뀌었고 구두전승은 다시 기록전승에 영향을 미쳤다. 마지막으로, 그 당시의 기록은 읽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의 많은 문학들이 기록물임에도 구술적인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구술적인 특징이 반드시 기록 전승보다 앞선 것은 아니다. 따라서 마가복음 우선설과 Q가설의 근거 중의 하나인 구술성의 시간적 우선성은 근거가 없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최근 이십여년 동안 많은 비평학자들이 양식적 단일 방향성보다는 양방향성에 대해서 고려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양식적 양방향성을 예수 전승과 복음서 전승이 어떻게 전달되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토론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예수 전승과 복음서 전승을 다룰 때에 구두 전승이 항상 보다 이른, 보다 원본에 가까운, 보다 역사적 예수에 가까운 전승이라는 전제는 폐기되어야 하고, 그러한 전제에 입각하여 그 동안 진행해 왔던 본문 비평, 공관복음서 문제, 그리고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주장들도 재고되어야 한다.
2.3 언어적 양방향성 이론
세 번째 전제인 언어적 단일 방향성 가설, 즉 아람어 전승에서 헬라어 전승으로 단일 방향으로 전달되었다는 가설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앞의 두 단일 방향성 가설의 근거를 제공한다. 둘째는 언어적 단일 방향성 가설에 대해서는 복음서학자들이 도전한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거의 법칙으로 통하는 가설이다.
그러나 1세기 유대-팔레스타인과 근동 지역은 대부분의 지역이 단일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이중언어(bilingualism)를 사용했다. 1세기 유대-팔레스타인 지역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아람어와 헬라어를 사용하는 이중언어 지역이 되었다. 첫째는 지역에 의한 이중언어다. 과거 어느 지역이 이중언어를 사용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i) 묘비의 언어가 중요하다. 당사자들의 묘비언어의 선택은 의미심장하다. 묘비언어는 죽은 사람이나 죽은 사람의 가족의 진정한 마음이 담겨 있다. 그래서 1세기 유대-팔레스타인에서 묘비가 어떤 언어로 쓰여졌느냐 하는 것은 그 당시의 언어를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고고학적인 연구에 따르면, 놀랍게도 당시의 묘비 중 과반수 이상의 묘비가 헬라어로 기록되었고 나머지는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ii) 당시 생활상을 반영하는 계약서, 세금, 인구조사와 같은 내용을 담은 파피루스가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거나 헬라어나 아람어 두 언어로 기록된 것이 많았다. 놀라운 것은 시골 지역에서도 헬라어로 기록된 것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골에서도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iii) 인구지리학적으로 볼 때도, 헬라어가 1세기 유대-팔레스타인 지역에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헬라어를 사용하는 도시가 유다-팔레스타인에 흩어져 있어서 유대-팔레스타인에 사는 사람이라면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수가 만난 사람들 중에도 헬라어를 사용했을 만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두 번째는 개인적인 특징에 의한 이중언어이다. 여기에는 여섯 가지 원인이 있다; 군사적 침략과 그에 따른 식민지화, 타 지역으로의 이주와 인구 유입, 민족적 자각에 의한 모국어 보존,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부모나 지역의 영향, 이중언어를 가르치는 공교육, 이중언어가 필요한 직업이다. 이러한 조건들로 인해서 1세기 유대-팔레스타인 지역은 아람어와 헬라어를 같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도시든 시골이든 어떤 직업군에서든지 아주 많이 있었다.
1세기 유대-팔레스타인의 이중언어적인 상황은 예수 전승의 전달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예수가 아람어를 사용하여 말씀을 가르치신 후,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 아람어를 할 줄 알지만 헬라어를 더 잘 하는 사람들은 예수 전승을 당일에 다른 사람에게 바로 헬라어로 전달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다. 복음서 비평학자들은 유대-팔레스타인의 예수 전승이 수 십 년 후에 안디옥에서 번역이 되었다는 안디옥 번역이론을 제안하거나(불트만), 예수의 죽음 후에 예루살렘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예수 전승들만 번역되었다는 초대교회 번역이론을 제안함으로써(헹엘), 복음서 내의 예수 전승의 신뢰성이 시간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복음서에서 아람어 전승을 찾아내어 보다 이른, 보다 원본에 가까운, 보다 역사적 예수에 가까운 전승을 얻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1세기 유대-팔레스타인이 이중언어 지역이었다는 사실은 모든 아람어 전승이 보다 이른, 보다 원본에 가까운, 보다 역사적 예수에 가까운 전승인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예수께서 아람어로 말씀하신 것은 경우에 따라서 거의 동시에 또는 하루 이틀 사이에 헬라어로 번역되어 전파되었다(갈릴리 번역이론). 이중 언어 상황 속에서 그 헬라어 전승은 아람어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다시 아람어로 재번역이 되었다. 아람어 전승과 헬라어 전승이 이중언어 상황 하에서 단일방향적이라기 보다는 양방향적으로 번역이 이루어졌다. 아람어 전승이 원래 예수에게서 나온 아람어 전승인지 아니면 아람어 전승에서 번역된 헬라어 전승이 다시 아람어로 번역된 그 아람어 전승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아람어 전승이 반드시 시간적 우선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3. 양방향성 이론에 따른 복음서의 기원과 Q가설
복음서 비평학이 도입된 이래 복음서 비평학자들은 복음서의 기원과 관련하여 세 가지 단일 방향성 가설에 기초하여 논의를 진행해왔다. 자료비평, 본문비평, 양식비평, 편집비평과 같은 방법들을 사용하여 그 세 가지 단일 방향성 전제 위에서 복음서를 비평하였다. 단일 방향성 가설에 근거한 논의는 비평학자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하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서에서 유대적 색채, 구술적 특징, 아람어적 특징을 찾아내고자 노력하였으며, 그 예수 전승들이 보다 이른, 보다 원본에 가까운, 보다 역사적 예수에 가까운 전승이고, 나머지는 예수께서 하신 진정한 말씀도 아니고 예수의 목격자들의 진정한 증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아주 오랜 시간을 소모했다. 그러나 복음서 연구와 관련하여 우리는 양방향성 가설이 단일 방향성 가설보다도 더욱 있음직한 가설임을 살펴보았다. 뿐만 아니라, 그 세 가지 단일 방향성 가설에 근거하여 사용하고 있는 예수 전승과 복음서 전승을 비평하는 세 가지 기준들도 재검토해야 함을 필자는 제시하였다.
양방향설 가설에서 복음서의 전승사적 기원을 볼 때, 예수전승은 제자들이나 목격자들에 의해서 예수께서 사역하시던 당시부터 구두전승과 기록전승으로 있었다. 그 후에도 구두 예수 전승은 기록 예수 전승이 되었고, 기록 예수 전승은 제자들이나 목격자들이 예수 전승을 갈릴리와 유대에서 전파할 때 그리고 그 이후 예배를 통하여 다시 구두 예수 전승이 되었다. 언어적 전승의 측면에서 볼 때, 아람어나 헬라어로 된 예수 전승은 오랜 후에 타 지역에서 번역된 것이 아니라, 거의 동시에 갈릴리에서부터 번역되고 재번역되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예수전승과 복음서 전승의 양방향성에 대한 연구는 마가복음 우선설과 Q 가설이 단일방향성 가설 위에 근거해 있음을 보여준다. 먼저, Q 가설은 발견되거나 교부들에 의해 목격된 것이 아니라, 마태와 누가의 문헌적 관련성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에 의해서 부수적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문서만을 가지고 공관복음서 문제의 문헌적 관련성을 설명하려면, Q가설보다는 Farrar의 Q없는 마가복음 우선설이 더 강점이 있다. 왜냐하면 Q가설과 같은 다른 가설을 하나 더 추가하지 않고도 기존 문헌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 Q는 양식적 단일방향성 가설 위에서 기록전승에만 집착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주후 1세기의 의사전달 양식은 기록성보다는 구술성이 더 우선적이었고, 지배적인 의사전달 수단이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최근의 많은 학자들이 복음서를 구술성의 입장에서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Q가설은 스칸디나비아 학파의 주장처럼 Q가 존재했다면 구두전승이었을 가능성이나, Q가 재구두화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특히, 제임스 던(James Dunn 2005)의 경우 Q1을 구두전승으로 보기도 한다. 현재 Q연구는 양식적 양방향성에 대한 연구도 고려해야 한다.
셋째, 다음 장에서 보겠지만, Q 가설은 마태와 누가의 창작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누가가 Nazara,라는 철자를 문학 양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볼 때, 다른 공관복음서 저자들이 공통 자료를 두고 그대로 베껴썼다고 보는 것은 저자로서의 창작 능력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복음서 저자들을 창작 능력이 있는 저자로 보지 않는 양식비평이나 편집비평의 태생적 한계가 Q가설에는 있다.
넷째, 2000년 이후 Q연구는 Q를 복음서로 규정하고 서사성을 연구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태와 누가의 공통자료(qs)가 문헌으로서의 Q의 전체집합을 대변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하다. 마태와 누가가 마가복음을 많이 참고했음에도 마가복음의 부분집합만을 가지고 있듯이, 마태와 누가가 Q를 참고했다 하더라도 Q의 전체를 다 사용했는지 증명하는 것은 힘들다. 마태와 누가가 Q의 부분만을 가지고 있다면, Q를 독립된 복음서로 본다든지 Q의 서사구조를 찾는 작업은 문제가 있다.
4. Nazara,와 공관복음서 문제
나사렛의 철자의 이형은 학계에서 100년 이상 주목을 받아왔고, 공관복음서 문제와 관련하여 아직도 활발하게 토론되고 있다. 나사렛의 철자들 중 “나자라”에 대하여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4.1 고유명사의 음역은 이형을 자주 나타난다
1세기 유대-팔레스타인은 언어접촉으로 인하여 고유명사들의 음역이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음역이 많은 이형들(variants)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어의 이형(variant)과 관련하여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 하나는 정자적 접근(orthographical approach, 또는 랑그의 연구, 언어능력, 글자문법)이고, 다른 하나는 변이적 접근(variational approach, 또는 빠롤의 연구, 언어수행, 소리문법)이다. 전자는 어떤 스펠링이 옳은 것인지를 구별하여 하나를 선택하는 것인 반면에, 후자는 이형의 음성학적 또는 음운론적 규칙성을 발견하게 될 경우, 모든 이형을 정자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정자적 접근에 근거하여 신약학자들은 아주 오랫동안 훼손된 철자들(corrupt spellings) 가운데 옳은 철자(correct spelling)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음역은 변이적 접근이 옳다. 음역의 이형이 발생하는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근원언어(source language)와 목표언어(target language) 간의 음성체계(phonetic system)가 다르기 때문에 음역이 일대일 함수가 안 될 경우가 많이 있어서 이형이 발생한다. 둘째, 음운표시(phonological representation) 과정에서 음운규칙(phonological rule)에 따라 영향을 받아 이형이 발생한다. 셋째, 통시적 음성변화(sound change)에 의해 이형이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공시적 이형인 방언에 의해 이형이 발생한다.
4.2 Nazare,q의 이형 Nazara,에 대한 두 가지 학설
나사렛은 공관복음서에 9번(Mt2:23, 4:13, 21:11, Mk1:9, Lk1:26, 2:4, 39, 51, 4:16) 나오며, 그 단어는 음역될 때 6개의 이형(Nazara,, Nazara,t, Nazara,q, Nazare,d, Nazare,t, Nazare,q)으로 나타난다. 학자들은 나사렛 철자의 이형에 대해서 백년 이상 공관복음서 문제와 관련하여 토론해왔다. 나사라의 기원과 관련하여 두 그룹이 있다. 첫 번째 그룹은 마4:13과 눅4:16에 나오는 Nazara,가 Q에서 유래했다고 가정한다. 왜냐하면 Nazara,가 그 병행구절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이다. 베른하르트 바이스(B. Weiss)는 1876년에 논증하기를, Nazara, 철자가 Q에서 왔다고 주창하였다. 최근에 크리스토퍼 터킷(C. Tuckett)은 강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기를, Nazara,를 마태와 누가가 공통으로 언급한다는 것은 Q 자료가 존재한다는 가장 강력한 논증이라고 했다. 다른 학자들은 주장하기를, Q와 관련없다고 논증한다. 하인리히 홀쯔만 (Heinrich Holtzmann)은 제안하기를, 그 철자는 마태의 편집에 의해서 탄생했다고 했다. 최근에 마이클 굴드(Michael Goulder)는 마태가 Nazara,를 2:23과 4:13에서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마태는 예수가 나사렛에서 살았던 것에 대해서 성경 어디에서도 그러한 예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그 철자를 만들었다고 제안한다.
하나의 철자를 두고 두 그룹의 학자들은 전혀 다른 제안을 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치하는 것은 Nazara,가 셈어적인 철자이기 때문에 좀 더 이른 또는 원래 철자일 것이라고 가정한다. 언어적 단일방향성 가설에 그 두 그룹이 다 근거해있기 때문에 셈어적인 철자가 비셈어적인 철자보다 좀 더 원래 철자에 가깝다고 간주하고 그 위에 Q가설이나 마태 창작설을 주장하고 있다.
4.3 변이적 접근에 따른 음성학/음운론적 분석
이 Nazara,라는 이형은 세 가지 음성학적/음운론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i) 여섯 개의 철자 중에 어느 철자가 옳은 철자인가? 많은 학자들은 Nazara,가 원래 셈어 철자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ii) Nazwrai/oj는 Nazara,에서 파생된 Nazarhno,j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모음 w와 a가 다르기 때문이다. (iii) c는 주로 s로 음역되지 z로 되지는 않는다. 이에 대한 해결책 중의 하나는 Nazwrai/oj가 기독교 전에 있었던 나자린 분파와 관련있다는 학설이다. 그러나 변이형적 접근으로 볼 때, 두 단어는 세 가지 이유 때문에 같은 단어의 이형으로 보아야 한다. (i) w와 a는 r의 이차조음(secondary articulation)에 의한 [원순성]의 적용에 따라 발생하는 이형이다. (ii) 치간 마찰음(intervocalic sibilant) c는 z나 s로 음역된다. 부분동화(partial assimilation)의 결과의 차이이다. 다른 다섯 개의 모음 이형이나 자음 이형(Nazara,q, Nazara,t, Nazare,d, Nazare,t, Nazare,q)은 모음 사이의 상호변환(interchange)나 자음의 동일한 조음위치(place of articulation; d/t/q)에 의해서 충분히 설명된다. (iii) Nazara,와 Nazare,q 둘 다 셈어적인 철자이므로 Nazara,가 Nazare,q보다 더 초기의 철자인 것은 아니다. 사실, -ah와 -eth 둘 다 히브리어 여성형 어미로 사용된다. 예를 들면, 지명으로는 tr:Þb.D"(/Dabirwq와 tp;êr>c"å/Sa,refqa가 있고, 지명으로는 tm;îf.B'/Basemmaq와 tn:©s.a'(/Asenneq가 있다. 이것은 나사렛의 셈어적 지명이 hrcn와 trcn 둘 다였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따라서 Nazwrai/oj와 Nazarhno,j 둘 다 동일하게 나사렛 사람을 뜻할 뿐만 아니라, Nazara,만 고대성을 뜻하는 셈어 철자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4.4 이중언어적 접근에 따른 언어변환에 따른 설명
굴드는 터킷을 비판하면서 마태가 “드문 철자(rare spelling)”인 Nazara,를 사용하는 것은 Gaba,/Gaba,q/Gabaa,/Gabaa,q와 ~Rama,/~Rama,q에서 볼 수 있듯이 충분히 Nazara, 를 창작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굴드가 마태의 창작력을 제시했듯이, 똑같은 기준을 누가의 창작력에도 적용할 수 있다. 누가는 언어변환에 아주 민감하고 고유명사의 음역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헨리 캐더버리(Henry Cadbury)와 키쓰 엘리엇(Keith Elliott)은 누가가 다른 자료들을 보고 베꼈을 가능성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창작했을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누가의 글쓰는 능력과 언어변환에 대한 예민함을 볼 때, 누가는 발음상의 차이를 가지고 문학 장치로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사렛 이야기는 누가-행전에서 이방인 선교를 시작하는 전환점이 된다. 누가복음에서는 Nazare,q이 다섯 번(Lk1:26,2:4,39,51,4:16) 등장한다. 네 번은 사본 상에 철자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눅4:16에만 이형들(Nazara,: a B* (D) X (33) pc e samss; Nazare,t: K 565. 1424 pm; Nazare,q: G Y f13 pm; Nazara,t: A Q 0102 pc)들이 등장한다는 것은 누가 자신이 처음부터 다른 철자를 쓴 것으로 보인다. 그 전에는Nazare,q을 사용하다가 이방인 선교의 전환점에서 다른 셈어 철자인 Nazara,를 사용함으로써 독자들의 주의를 끌고자 한다. 이러한 의도적인 전환을 하는 문학장치를 사회언어학에서는 언어코드전환(codeswiching)이라고 한다. 누가는 많은 언어코드 전환장치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Nazara,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