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 프란체스코회관서 열린 생명평화 대화마당에서 김경재 교수가 참석자들의 물음에 답하고 있다. ⓒ생명평화결사 제공 |
전쟁으로 얼룩진 분열과 갈등의 인류역사를 넘어 ‘생명과 평화’라는 인류의 새 시대를 만들자는 것이 전 지구인의 시대적 담론이자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이 때 우리는 어디를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6일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 회관에서는 ‘생명과 평화 길을 묻다’ 두번째 대화마당으로 한 평생 ‘생명과 평화’란 외길만 걸어 온 김경재 교수(한신대 명예)를 초청, 그에게 생명과 평화의 길을 묻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날 즉문즉설로 진행된 순서에서 김 교수는 종교와 종파를 떠나 물어오는 다양한 질문들에 그때 그때 뼈 있으면서도 재치있는 멘트들을 던지면서 청중들을 압도했다.
장공 김재준 목사와 신천옹 함석헌을 스승으로 둔 그는 생명과 평화를 우주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 노력했으며 고난이 없는 생명과 평화는 참이 아니라고 말했다. 다음은 청중들과 김교수가 나눈 질의응답을 요약 정리한 글.
- 뉴욕에 유대인들중 30% 가량이 주부디즘(주자학+불교)에 심취해 있다고 한다. 어떻게 보는가?
토인비가 이야기했듯이 그리스도교와 불교가 심층적으로 대화를 한 역사가 별로 없는데 지금이 그러한 시대다. 유대인, 그리스도인으로서 불교적 수행과 이상을 꿈꿀수 있는 것이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 같은 영성개발훈련이 인간성을 꽃 피운다.
문명사를 살펴보자. 유교 500년과 노장사상, 그리고 서양 19세기~20세기 사상들. 인도에선 대승불교가 꽃을 피우고 이런것들이 한국에서 만나서 아시아의 미래를 열었다. 문명사적인 예견의 길을 열게 된 한국. 한국 인구중 51%가 종교를 가진 사람들. 그들중에 98%가 불교, 개신교, 카톨릭의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한다.
유교를 청나라 말이후 역사적 박물관에나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이건 착각이다. 종교는 사람의 깊은 정신세계, 진리, 초월적차원, 치유, 완성, 인간의 독특한 사유, 형태를 만들어 가는 것 중요하다. 훌륭한 일이다. 우리나라 유교의 가치 그리고 세계관은 남·북사회 일상생활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 기독교가 1970~8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현재 촛불집회의 양상을 보면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한다. 어떻게 된것인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한국 기독교가 완전히 썩어 문드러졌다고 표현한 것은 극단적이다. 그리고 개독교라고 그런 말을 듣는 현실 가운데 목사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고 할 말이 없다. 이유가 뭔가? 1) 한국 개신교가 본래 예수의 가르침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듣는다. 135년전 한국은 개신교가 전체인구중에 10만도 못 되었다.
개화의 물결을 타고 오는 야소교에 당시 국민들은 자식을 보내는게 좋겠다라는 시대의 요청에 순응했다. 새로운 정신운동이 우리마을에 들어온다는게 환영할 일이었다. 개화기에 꽃을 피운 독립기미운동이나 한국사회속에서 희로애락을 같이 한 것이 개신교이다. 그때는 여기 저기 마을마다 할 것 없이 교회세우는데 찬성이요,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짓는 종교시설 확보를 반대하는 시대가 왔다. 개신교가 허장성세하고 있다. 2천년 교회 역사에서 우리시대처럼 예수의 복음이 능멸당하고 멸시당하고 천덕꾸러기가된 시대가 없었다. 종교지도자들 중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이 실질적으로 복음, 전도를 막고 있다. 평균수준이하의 도덕수준과 세속화, 명예, 권력욕, 독선, 독단적 행태‥ 이게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에 닥친 유혹이다.
이것은 종교형태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임으로서 생겨난 문제들. 야훼, 하나님, 여호와라는…. ‘김경재’라는 고유명사 같이 그 신을 믿어야 구원이라는 이것이 21세기 사회속에서 용납이 될 것인가? 우리들의 조상의 조상의 조상의 조상들은 어디에 갔나? 과거 기독교가 전해지지 않았던 역사를 가진 나라들, 민족들, 조상들은?
기독교가 새로워지려면, 현재 한국 그리스도교는 2천년전 갈릴리 민초, 민중들과 함께 어울렸던 예수의 가르침과 그 생애의 원초적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고타마 싯탈다는 깨달은자 부처이다. 고타마 싯탈다가 깨달음으로 고타마 붓다가 되었다. 예수도 예수에서 그리스도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다. 예수라는 그 분의 33년의 살이 능력자로, 구원자로, 그리스도라고 하는 전 생명을 내건 고백이 예수가 그리스도가 된 사건. 이것을 앞, 뒤 잃어버리고 신성만 강조하다보면 기독교가 경직되고…예수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생명의 분출, 평강이 가져다주는 능력은 그만큼 반감이 되는 것이다.
- 씨알 사상에선 생명, 평화사상을 어떻게 보는가?
사부 김재준 목사, 함석헌 선생의 사상영향을 나는 받았다.다들 안 읽어본 사람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꼭 읽어보기 바란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씨알사상’은 종교를 자라나게 하는 하나의 나무라고 이야기 한다. 종교는 궁궐이 아니다. 살아가는 나무, 살아있는 나무와 같다.
함석헌 선생님은 생명의 2가지 원리를 이렇게 이야기 했다.
첫째로 스스로 함이다.
처음 태어나서 한 3년은 케어를 받아야하고 이후 성인으로서 스스로 책임과 결단을 감수해야 하는것. 예로 포도나 토마토, 고추, 모종을 할때는 처음엔 다 지탱해줘야 하지만 그것이 결국엔 스스로 서야한다. 생명은 스스로 서야 산다는 것이다.
둘째로 고난은 생명의 제 2원리라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 곳엔 고난이 동반되는 것.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영인디아라는 젊은 날 주간지 편집, 발행을 할때다. 어느 날 신문에 7가지 사회악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7가지 악중 첫번째가 자기희생과 고난을 피하고 외면하면서 종교를 갖는 것. 고난없는 종교는 사회악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생명, 평화, 운동을 해 나갈때는 고난, 고통을 돌파해 나가는 것. 혁파해 나가는 것이 종교라고 할 수 있다.
- 개인 신앙의 실존적 고백을 듣고 싶다
유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할 때 출가하는 심정으로 개종했다.크리스천의 고백이라는 것이 이렇다. 내가 선택해서 가는 길이었지만, 더 큰 세계의 이끌림, 섭리가 있었다. 바울도 그랬다. 바울도 죽을고생을 죽도록 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그러나 종교는 그런 것이 아니다. 고난을 통해 바울은 역설의 진리를 이야기 한 것이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을 했다. 우리가 정말 신을,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이런저런 고민한다.
그런데 세상을 살 때 생명을 위해, 보다 더 가치있는 것을 위해 살자면서 명상을 하고 …우주공간속의 지구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내 삶을 지금도 명상을 통해서 꾸려간다. “영원히 부셔지지 않는 진리, 뭔가 있을 것”이라는 고민도 해보고, 인간 한계로 나타난 죽음을 찾아 병원(영안실)을 뒤지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섭리가 성령속에서 이뤄지는 일임을 감지하게 되었다. 귀천의 시는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난 지구가 좋다. “돌아오리라 돌아오리라…”그렇게 시를 쓰고 싶다. 지구의 생명들의 어우러짐이 너무나 아름답다. 지구엔 아름다운, 신비로운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왜 돌아가나, 돌아오지…하늘나라 가 보면 이 지구보다 더 아름다울까?
인간의 자연 파괴는 종교를 떠나서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 종교를 떠나서…생태계 파괴는 특정종교가 원인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호세아서 써진 100년후 붓다 탄생했는데, 호세아서에 보면 이미 그때 선민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계약관계뿐 아니라 산천초목, 만물도 하나님과 계약관계임을 이야기 한다. 인간도 생태계의 그물망중에 하나, 그물코 속에 인간. 이것을 보고 인간이 내가 생태계 속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 호모 사피엔스다.
하나님은 대모귀신이 아니다. 이런 이해는 잘못 된 것이다. 대자연, 우주를 이야기 할 때 물리적인 세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 포함해서 전체 살아있는 대우주의 운행, 지탱, 전개 끊임없는 생명이 출현하는 그것을 말하는 것.
에베소서 4장 6절을 보면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신 한분 뿐일 뿐. 만유위에 계시고 만유통하여 일하시고 만유에 계시도다. 자연, 만유에 계시면서도 하나 안에서 계시고 46억만년 대 자연에 함께 일해오신 하나님. 진화론적 창조주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다.
- 한국 교회 제사장적인 목사와 예언자적인 목사의 행태에 대해 말해달라.
모든 종교에 특성이 있다. 다 훌륭하다. 조화를 이뤄야 한다. 개신교 목사의 역할은 아니 모든 종교인의 역할은 세상을 정화시켜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정책의 결과를 보면 잘 먹고 잘 살자다. 이런 세상 가운데 진정한 평화가 자리잡도록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모든 종교인들과 개신교의 목사들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 성경의 창조론을 어떻게 생각하나.
창조신앙은 과학이 아니다. 어떻게 인간이 만들어 졌는가가 아니라 왜 만들어졌는가를 묻는 것이 창조신앙. 과학교과서가 아니라는 얘기다. 창조신앙은 영적진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성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가막힌 책이다. 2600년전 쓰여진 이야기. 영감이 가득하고 기록자들의 놀라운 기록이 들어있는 책이다.
- 윤회를 믿는가?
“정신, 나, 내속의 나, 어떤 실체가 있어서 내 몸둥아리를 집 삼아서 산다”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생명은 해석안되는 사건들이 많다.
업 사상, 이것은 믿는다. 정신,사회,영적 생명이 죽었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차후 영향력을 가지고 시공간을 초월해서 지구라는 생명 하나의 생명(혹은 온생명)에 동참한다는 사실. 지구에는 생명나무가 자라고 있다. 내가 죽고나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적 생명체로서 도움을 주고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 이것을 난 믿는다.
내 이성이 허락하는 한 내 생명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전체적으로 같이 살아 갈 것이다. 이성적 생각에서 이것까진 믿는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