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 첫 글 Q의 문학양식사용에 대한 연구(A Study on the Literary Devices of Q)
발표 : 나요섭 목사(Rev. Yoseop Ra PH.D)(2009년 12월 11일한국신약학회 제 4회 콜로키움에서 발표)
출처 : 예수말씀연구소
예수 첫 글 Q는 최종적으로 네 단계의 편집을 거친 것으로 여겨지는데, 각 편집마다 문학적인 양식을 달리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편집단계마다 특성을 보여주는 것은 이미 사회상의 변화와 신학의 발전이라는 점에서도 살펴본 바 있다. 문학양식의 사용목적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화는 세 번째 편집단계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사회상의 변화나 신학의 발전에서도 보이는 바다. 이로써 부수적으로 주어지는 산물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범위는 Q안에서도 첫 두 편집단계에 한한다는 가정을 세우게 하는 것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편집단계는 예수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 이루어짐으로써 그 진정한 역사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아무튼 예수첫글 Q의 문학양식사용에 대한 연구 역시 세 번째 편집단계에서 문학양식의 변화를 통해 예수에 대한 신학적 작업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줄 것이다. 이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축복문을 비롯하여 선언문, 비유, 기적이야기, 설화체단화 등에 나타난 문학적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축복문
예수첫글 Q는 각 편집단계에서 서로 다른 축복문(the Beatitude) 양식을 사용한다. 이러한 차이를 통해 각 편집단계는 서로 다른 신학적 특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우선 각 편집단계에서 어떤 축복문이 사용되고 있는지 양식비평적 접근을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첫 번째 편집단계의 축복문을 살펴보자. Q1 6:20하-21은 ‘…한 자는 복이 있나니(makarioi hoi … hoti + 직설법)’의 양식을 보여준다.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은 이유절에 있어서도 직설법이 나타나고 축복을 받는 자의 신분에 대한 서술에서도 직설법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로써 축복의 대상자들은 그 당시 실제로 그러한 상황에 이미 처해 있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선포된 축복은 실제로 주어진 것으로 믿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기며 보상받음을 확신하는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들은 꼭 Q 공동체원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 어느 사람이라도 가난하고 울며 애통해 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축복선포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세 번째 편집단계에서 사용된 축복문은 형태를 달리 한다(6:22-23중). 세 번째 편집단계의 양식 곧 ‘ …할 때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makarioi este hotan + 가정법)’의 양식은 첫 번째 단계의 ‘hoti + 직설법’ 양식 대신 ‘hotan + 가정법’ 양식으로 바뀌었다. 둘째, 전자는 hoti 다음에 복의 내용으로서 보상을 소개하는데, 후자는 hotan 다음에 복을 받기 위한 조건을 소개한다. 이제 복은 어떤 기존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 아래 곧 사람의 아들로 인해 핍박을 받는 상황 아래 들어서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그 수혜자의 범위가 축소되었다. 셋째, 복의 내용이 이전 단계의 축복문에서는 구체적으로 소개되다가 6:22-23중반절에서는 보상에 대한 선언만이 나타난다. 이는 그 복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소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행하는 것에 따라 하늘에서의 보상이 결정된다는 가르침이 처음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위에서 제시된 차이점들은 당시 사회적 상황의 변화를 반영한다. 그들이 사람의 아들(人子)로 인하여 욕을 당하고 미움을 받는 상황이 벌어졌음을 반영한다. 이로 인해 그들과 외부의 유대인 사이에 구별이 생겼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별은 그들 가운데서도 사람의 아들로 인해 핍박을 받는 자들이 하늘의 복을 받을 자들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세 번째 편집단계는 또 다른 축복문 양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서는 ‘makarioi + 주어 + 형용사/관계대명사절'의 양식으로 나타난다(7:23; 10:23; 12:43). 위의 본문들을 보면 모두 예수를 중심으로 하여 복의 여부가 결정된다. 예수로 인해 실족하느냐 하지 아니하느냐 하는 문제가(7:23), 예수가 주는 계시를 보고 받느냐 그렇지 아니하냐 하는 문제가(10:23), 그리고 역시 종말에 심판하러 오는 자인 예수를 위해 준비되어 있느냐 준비되어 있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12:43) 서로 같은 양식을 사용하며 나타난다. 이렇게 예수를 중심으로 복의 결과가 결정된다는 가르침은 6:22-23중반절에 나타난 기준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이로써 Q는 세 번째 편집단계에서 예수를 중심으로 한 신학을 축복문에 반영시키고 있다.
반면에 네 번째 편집단계에 가서는 축복문 양식 자체가 달라진다. 예를 들면 eulogemenoi 라는 단어가 축복문에 사용된다(13:35). 이는 오실 예수에 대한 찬송의 형태로서 축복문이 나타난다. 축복하던 자가 축복의 대상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이로써 오실 예수에 대한 신앙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축복문의 양식이 서로 다르게 발전되었다. 이는 당시 복을 받을 조건에 대한 변화가 생겼음을 반영한다. 복을 선언하던 예수가 세 번째 편집단계에 이르러는 복을 받게 하는 어떤 통로 내지 기준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는 예수를 따르던 Q 공동체원들의 사회적 상황이 바뀌고 이에 대해 예수와 연관해 이해하여야 할 상황에 이르렀음을 반영한다. 이러한 관찰과 분석이 옳다면 이는 이미 전에 살펴본 Q 공동체 주변의 사회상과 신학적 변화에 따라 그 문학양식도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부수적으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진정성의 범위를 세 번째와 네 번째 편집단계의 본문들은 제외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릴 수 있게 한다.
2. 선언문
예수첫글 Q에서 자주 나오는 문학양식으로 선언문이 있다. 선언문은 주로 예수의 신분을 서술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는 Q의 편집초기부터 마지막 편집단계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양식이다. 이를 위해 제일 먼저 제시될 수 있는 것은 세례 요한에 관한 첫 번째 서술이다(3:7-8상, 9). 그는 자기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다가오는 무리를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일방적으로 꾸짖으면서 심판을 선언한다. 이러한 선언을 통해 세례 요한의 심판자적 역할을 전한다. 이는 세례 요한이 무리들의 의도를 지적하고 시정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온 사역자임을 전하려는 선언문이다.
두 번째 편집단계에서 처음으로 사용되는 선언문은 예수를 따르고자 했던 제자에 관한 이야기다(9:56-57). 어느 사람이 예수를 따르겠다고 나설 때, 예수는 자연의 현상을 예로 들면서 자신의 상황에 대하여 설명한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둥지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둘 곳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하늘과 땅의 짐승들이 처한 환경보다 더 열악한 자신의 상황을 드러낸다. 결국 예수를 따르겠다고 나서는 자에게 스스로 결정할 것을 제안한다. 이어서 제시될 수 있는 선언문은 바알제불논쟁이다(11:14-20). 이는 기적에 관한 서술을 포함한 선언문으로서 예수가 축귀기적을 행할 때 제기된 비판에 대해 답변을 주는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로써 비난자들에 대하여 반박을 하면서도 자신의 사역에 대해 변증한다. 이는 아직 동료 유대인들에 대한 적대심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더하여 표적에 대한 선언문이 소개된다(11:16, 29-30). 예수를 시험하려고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 대해 요나의 표적으로 답한다. 이는 그들의 의도를 꿰뚫고 계시는 예수가 자신의 생각을 제시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로써 예수의 선언은 시험을 이기는 최종적인 말씀으로 제시된다. 두 번째 편집단계에서는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대면이 그렇게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이는 유대인 사회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대화의 상황에서 단지 예수의 권위를 확인하고자 하는 수준이었지 배척하려는 수준은 아니었다.
세 번째 편집단계에 들어서면 선언문이 자주 나타난다. 이는 외부 유대인들에 대한 Q 공동체의 갈등을 표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먼저 예수가 이방인 백부장의 하인을 치료하는 사건을 서술하는 선언문을 제시할 수 있다(7:1-10). 이방인 백부장과 예수 사이의 대화는 예수를 주님으로 드러내면서 최종적인 결론으로 예수는 유대인들 가운데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보지 못했노라고 선언한다. 이 선언문에는 아직 예수에 대한 갈등 내지 대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매우 간접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세 번째 편집자는 그 단계에서 처음으로 사용되는 선언문인 7:1-10을 첫 번째와 두 번째 편집단계의 글에 속하는 본문들 사이에 끼어 넣으면서 그렇게 강한 대적의 분위기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로써 부드러운 전이를 보이려 한 것 같다.
이제 좀 더 강한 대적의 상황을 보여주는 선언문으로 세례 요한을 향해 반감을 나타내는 이야기가 제시된다(7:18-23). 이러한 사건은 Q 공동체원들이 예수와 세례 요한 사이에서 누구를 지도자로 따라야 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과 갈등을 한 것을 반영한다. 결국 그들은 예수에게로 기울어졌기에 세례 요한보다 더 훌륭한 자로서 선언문을 통해 드러낸다. 이로써 세 번째 편집단계는 예수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이루어져야 할 당위성을 변증한다. 결국 이 단계의 편집자는 유대인보다 이방인이 더 사랑과 믿음을 가졌음을 보인 후 Q 공동체 안에서도 세례 요한을 추종하는 사람들보다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더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전한다.
그러면서 세 번째 편집단계는 선언문을 좀 더 길게 만들어 가는 특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7:1-10 다음에 17:6을 덧붙였고, 7:18-23 다음에 7:24-27, 31-34을 연장된 선언으로 더하였다. 더욱이 세 번째 편집자는 두 번째 편집단계에 속한 선언문 다음에 선언을 연장시켜 확대된 선언문으로 만들었다. 예를 들면 Q2 11:14-20에 Q3 11:21-23과 11:24-26을 더하고 있다. 또한 Q2 11:16, 29-30에 Q3 11:31-32을 덧붙여 예수의 선언을 더욱 강화시킨다. 이로써 보통 있을 수 있었던 대화의 상황을 갈등과 대적의 상황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예수는 이 세대를 꾸짖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분으로 서술된다. 이로써 공동체 내부의 갈등상황이든 외부와의 대적의 상황이든 이에 맞서 예수의 신분과 역할을 더욱 강하게 한다.
네 번째 편집단계에 들어서면, 더욱 발전된 형태의 선언문이 소개된다. 먼저 언급할 것은 4:1-13에 서술된 시험설화이다. 이는 길게 발전된 선언문으로 여겨진다. 이는 세 개의 대화체 선언문이 하나의 큰 설화체 선언문을 이룬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이다. 하지만 이 본문에 대해서는 설화체에 가서 다루도록 하자. 이어 제시될 수 있는 것은 9:59-60이다. 이는 Q2 9:57-58에 연결되어 덧붙여진 선언문이다. 이러한 첨가 방식은 이미 세 번째 편집단계에서 그 빌미를 제공했다. 그러면서도 차이점은 세 번째 편집단계에서는 선언을 확대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네 번째 편집단계에서는 아예 선언문을 덧붙여 확대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예수의 주도적인 역할을 강화시킨다.
이상의 서술을 통해 살펴보았듯이 Q의 각 편집자들은 선언문을 빠짐없이 사용하였다. 이는 선언문이 가지는 영향력이 상당히 컸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선언문의 성격이 편집단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주지하여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 번째 편집단계에 나타난 선언문을 시작으로 해 점점 그 성격이 예수의 신분과 역할을 신학적으로 서술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는 우선 Q 공동체 안에 예수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고 주도권을 잡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또한 당시 Q 공동체 안이든 밖이든 예수에 대해 변호하여야 할 적대적인 사회상황이 존재했음을 반영한다. 이를 바탕으로 선언문이라는 문학양식이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어떤 상황보다는 예수를 신학화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었음을 보여준다. 예수는 Q 공동체 안에서 점점 더 신앙적 대상으로 격상되었던 것 같다.
3. 비유
비유양식 역시 Q의 편집이 진행되면서 그 양태를 달리한다. 아주 간단한 형태의 비유가 초기 편집에서 발견된다. 그러다가 편집이 진행될수록 더 발전된 상태로 나타난다. 초기 편집단계에서는 은유적인 형태가 자주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3:9). 여기서 나무는 사람을 지칭한다. 반면에 도끼는 그 사람을 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심판의 도구가 되고 불은 최종적인 심판의 도구가 된다. 열매를 맺느냐 하는 것은 심판의 기준으로서 하나님의 심판 자리에 설 때 변호할만한 선한 일을 하였는가를 뜻한다. 이 은유는 종말론적 심판을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은 6:43-44에서도 사용된다. 이로써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위의 서술을 바탕으로 볼 때 6:43-44은 원래 3:9에 대한 후속적인 서술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두 본문을 연속해 읽을 때 열매는 도덕적 의도나 행동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구절들은 첫 번째 편집단계에서 은유는 실물을 사용하면서 일반적인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을 설명하는데 사용됨을 보여준다.
은유적인 비유의 사용은 두 번째 편집단계에서 좀 다른 성격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는 사람의 어떤 상태를 서술하기 위해 은유가 직접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먼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둘 곳이 없다는 은유가 소개된다(9:58). 더 나가서 생선을 달라고 하는 아들에게 뱀을 줄 아비가 없으며, 알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줄 아비가 없다고 서술한다(11:11-13). 이러한 은유의 사용은 참새를 등장시키면서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점에서 계속된다(12:6-7). 이러한 은유는 12:22-31에서 더 긴 형태로 나타난다. 먼저 공중의 까마귀와 들의 백합화를 예로 들면서 하나님이 사람을 더 중하게 여기심을 보이려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Q 공동체원들을 입히시며 보살피는 하나님의 성품을 전한다. 위의 은유는 식물과 동물을 모두 사용하면서 짝을 이루고 있다. 또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은유도 사용한다. 등불을 등경 위에 놓음을 소개하면서 이와 같이 사람의 몸의 등불은 눈이라고 소개한다(11:33-34).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을 전한다. 여기서 등불은 사람의 통찰력이나 도덕적 결단을 의미한다. 눈은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능력 자체를 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은유의 사용은 좀 더 진일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의 예를 통해 볼 때 두 번째 편집자는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환경에서 뿐만 아니라 Q 공동체원들의 실제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관심이 창조물 가운데 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으로부터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람으로, 또한 사람의 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으로부터 사람 그 자체와 또한 선택된 자로의 이동을 보여준다.
세 번째 편집단계는 은유를 비롯하여 좀 더 발전된 양식의 비유를 사용한다. 우선, 세 번째 편집자는 일부 본문을 이전 편집단계의 몸글에 삽입하면서 은유를 먼저 사용한다. 예를 들면, 추수할 것은 많지만 일할 일군이 적으니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많이 보내주기를 구하는 은유가 먼저 사용된다(10:2).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명령을 내리는 분이 바로 예수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은유는 귀신의 후속처리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도 나타난다(11:21-22; 11:24-26). 어느 사람에게서 쫓겨나간 귀신이 갈 곳을 찾지 못한 경우 다시 그 사람에게 와보니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어 자기의 친구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오는 경우를 설명한다. 이때 그 사람은 집으로 표현되고 그 사람의 상황이 더욱 나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독특한 점이라 한다면, 어떤 사람의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초월적 존재인 귀신이 연관되어 사용된다는 것이다. 또한 어두운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데서 들리고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될 것이라는 은유가 나타난다(12:2-3). 이는 아무리 몰래 말한다 할지라도 그 말들은 만천하에 알려질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은유의 사용은 첫 번째와 두 번째 편집단계에서 사용된 것의 연장으로 보여진다. 차이점이라 한다면 좀 더 사람 내지 초월적 존재에게 더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이야기양식의 비유가 세 번째 편집단계의 몸글에서 이제 사용되기 시작한다. 이는 일련의 연속적인 연관성 속에 나타나는데, 종이 주인에게 대하는 문제를 예로 들며 또한 청지기가 종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주인에 의해 어떤 보상이 주어질 것인지를 예로 든다(12:35-38, 42-46). 여기서 주인은 당연히 예수를 의미한다. 마지막 때에 집주인이 종들을 알지 못하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이다(13:25-27). 다시 말하면 Q 공동체원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배척을 당할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예수의 명령에 대한 순종 여부에 의해 결정이 날 것이다. 이로써 비유가 예수의 신분과 역할에 대한 교훈을 전하는 수단으로 사용됨을 보여준다.
세 번째 편집단계가 보여주는 또 다른 특징은 직유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두 건축자의 비유를 들 수 있다(6:47-49). 이 비유는 ‘…과 같다(homoios estin)’는 구절을 지닌다. 이러한 구절이 지혜로운 건축자와 어리석은 건축자에게 한 번씩 사용되면서 모두 두 번 사용된다. 그러면서 예수가 가르친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와 지키지 않는 자 사이의 대조를 제시한다. 결국 예수는 신탁을 전하는 자로서 자신을 드러내면서 신적인 인물로 암시한다. 여기서 직유양식과 더불어 예수에 신분에 대한 승귀가 함께 나타난다는 점이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이어 직유를 위한 양식이 계속 도입된다. 이를 위해 ‘…을 무엇으로 비유할까?(homoiōsō)’ 하는 양식이 나타나고(7:31) 또한 ‘…과 같도다(homoioi)’라는 표현이 사용된다(7:32). 이러한 양식은 대적자를 비판하기 위해 사용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세례 요한과 특히 예수에 대한 자세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결정날 것을 암시한다. 이로써 예수의 신분과 역할을 드러내는 데 직유가 사용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서술을 위해 비유가 처음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겨자씨 비유와 누룩의 비유는 ‘…에 비할까?’와 ‘…과 같다’라는 비유양식을 사용한다(13:18-21). 이 세대에 대한 비판을 하기 위해 사용된 이러한 양식이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기 위해 다시 사용됨이 매우 흥미롭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과는 대조되어야 할 공간임을 드러내기 위한 것 같다.
이상의 서술은 세 번째 편집단계에서 사용된 비유들을 잘 보여주었다. 여기에는 은유가 사용되면서도 그 길이가 점점 더 길어졌음을 볼 수 있다. 더욱이 직유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특이한 사항은 비유양식이 도입되면서 이야기양식의 직유가 점점 더 발달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유양식은 점점 더 체계를 잡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은유든 직유든 어떤 형태의 비유든 Q 공동체원들의 상황을 직접 사람들이 행하거나 당하는 상황에 연계해서 예수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 가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초월적 공간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연관성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신학적 작업이 세 번째 편집단계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단계인 네 번째 편집단계는 위에서 제시된 은유와 직유를 사용하면서도 좀 더 이야기체인 비유 형태를 발전시킨다. 다시 말하면, 이전 편집단계에서 사용된 모든 비유양식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먼저 제시할 수 있는 본문은 직유형태의 글이다(10:3). 이는 예수가 전도자들을 보내면서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 같다는 표현을 통해 나타난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죽음을 예상하며 나가는 절박함이 여기에 담겨져 있다. 또한 은유형태의 소금비유를 들 수 있다(14:34-35). 소금은 좋은 것이나 짜게 하는 맛을 잃어버리면 밖에 던져지고 발에 밟히게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는 다른 성품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종말에 있을 심판이라는 주제를 보여준다. 이어서 긴 이야기 형태의 비유로 만찬의 비유를 들 수 있다(14:16-24). 또한 잃은 양의 비유도 여기에 속한다(15:4-6). 이와 같은 양식이 므나의 비유에도 나타난다(19:12-26). 이들은 잘 발달된 이야기 양식으로서 비유양식에 속한다. 이처럼 비유도 선언문의 경우와 같이 네 번째 편집단계의 긴 이야기양식으로 발전되었다. 하지만 종말론적 심판에 대한 관심을 계속 유지되고 있음을 위의 이야기 양식의 세 개의 비유들은 보여준다. 그 심판자는 예수를 의미한다. 이로써 이야기 양식의 비유는 Q 공동체원들이 행할 행동을 구체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그들의 생활 가운데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사용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이상의 서술은 비유의 발전과정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아주 짧은 양식의 은유를 사용하다가 편집이 진행되면서 세 번째 편집단계에 이르러 점점 더 긴 이야기 형태의 비유로 발전되었다. 은유 혹은 간결한 직유는 의미를 더욱 강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의미를 구체화 하면서도 특정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이는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간결하고도 상징적인 방법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한다. 그러다가 세 번째 편집단계에 이르러 점점 더 긴 이야기체의 비유로 바뀌면서 비유와 연관된 상황이 일반적인 것에서 점점 더 특수한 것으로 바뀌었다. 다시 말하면, 공동체의 상황을 반영하면서 앞으로 있을 하나님의 사건과 연관해 신비함에 대해 더 서술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비유를 통한 그 서술을 대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편집단계에서 비유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사람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서술하다가 세 번째 편집단계에서는 예수를 중심으로 해서 서술의 대상이 바뀌고 있다. 이는 예수에 대한 관심집중과 더불어 그에 대한 신학적 설명이 필요하게 된 Q 공동체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직유를 통해 간접적이면서도 약간의 신비를 더하는 양상이 발전되었음이 그 특징으로 나타난다.
4. 기적이야기
기적은 종교적 활동에 있어 떨어질 수 없는 요소이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하나님이 보낸 사람의 징표로 여겼다. 이에 관한 이야기가 Q 안에서 어떻게 발전되는지를 살펴보자.
첫 번째 편집단계는 기적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두 번째 편집단계에서는 기적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은 바알제불 논쟁이다(11:14-20). 불트만은 이 본문이 전형적인 논쟁사화로서의 성격을 보이면서도 선언문 양식에 기적이야기 양식이 결합된 것으로 본다. 이 사건을 통해 중요한 점을 집고 넘어가야 하는데, 이는 당시 보편적인 기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 혹은 Q 공동체만이 귀신을 내어 쫓는 기적을 행하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Q 공동체는 표적을 원하는 때마다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는 주저했다. 이는 두 번째 편집단계에서 원래 바알제불논쟁 바로 다음에 있었던 본문에서 잘 나타난다(11:16, 29-30). 이는 기적의 형태로 나타나는 표적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 볼 때 Q 공동체는 기적이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기적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음을 반영한다. 이는 기적을 당시 유대인들이 표적으로 여겼던 점을 반영한다.
기적에 대한 관심은 세 번째 편집단계에서 더욱 강해진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예수께서 백부장의 하인을 치료하는 기적이야기를 들 수 있다(7:1-10). 여기서 기적을 행하는데 있어 예수에 대한 순종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드러난다. 이어지는 본문 역시 기적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데, 사람이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지면 뽕나무로 하여금 뽑혀 바다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17:6). 이 본문은 물론 그러한 기적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기적에 대한 언급은 고라신과 벳새다에서 행한 능력들에 대한 언급을 통해서도 반영된다(10:12-14). 여기서 복수형태를 사용함은 권능으로 여겨지는 기적들이 많이 행해졌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인 것 같다. 그것이 어떤 기적들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지만, Q의 세 번째 편집단계가 기적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점 역시 예수를 중심으로 해서 기적이야기가 구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기적을 통해 자비를 베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신분을 드러내는데 초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반하여 네 번째 편집단계에 들어서는 기적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 하나님은 돌들로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도 있다고 한다(3:8중-하).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돌을 가지고 사람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제 기적에 대한 그러한 가정에서 지나 오히려 거부현상까지 나타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은 예수의 시험사건이다(4:1-13). 이는 이 단계에 이르러 기적에 대한 관심이 Q 공동체 안에서 거의 없어졌음을 의미한다. 아마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라는 요구를 받을 때마다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은 당시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겠는가?
이상의 서술을 통해 볼 때 기적에 대한 Q 공동체의 관심은 처음에는 컸던 것으로 여겨진다. 우선 문학적 양식면에서 이야기양식으로 상당히 발전된 서술양식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각 편집단계마다 기적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변화하면서 세 번째 편집단계에서 가장 컸다. 축복문이나 선언문 그리고 비유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수를 중심으로 그의 신분과 역할을 설명하는 방향으로 흘렀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기적이야기 역시 예수를 신학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기적은 실제로 그리 자주 일어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5. 설화체 단화
설화체 단화(pericope)는 나름대로의 구성을 가지고 있는 독립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는 배경과 인물 그리고 사건이 함께 어우러진 하나의 이야기를 형성한다. 이를 통해 직접적인 교훈과 더불어 나름대로 의도된 교훈을 또한 전할 수 있다.
첫 번째 편집단계에서는 설화체 단화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두 번째 편집단계는 좀 더 발전된 형태의 설화체 단화를 보여준다. 물론 짧은 형태의 선언문 양식의 단화도 자주 사용되지만, 바알제불논쟁과도 같은 긴 단화가 나타나기도 한다(11:14-20). 여기에는 한 번의 대화가 오간 것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점에서 바알제불논쟁은 복잡한 구성을 가진 설화체 단화로 여겨진다. 이러한 점에서 두 번째 편집단계는 첫 번째 편집단계보다 좀 더 발전된 단화를 보여준다.
세 번째 편집단계에서 설화체 단화는 더욱 발전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먼저 백부장의 하인을 치료하는 이야기를 제시할 수 있다(7:1-10). 여기서는 두 번의 대화가 오고 가면서 예수를 이방인도 순종하여야 하는 주님으로 드러낸다. 이에 더하여 세례 요한이 예수를 의심하는 사건을 소개할 수 있다(7:18-23). 이 역시 세례 요한이 옥에 갇혀 있다는 배경과, 그의 제자들을 포함한 등장인물, 그리고 예수께 그의 신분에 대하여 여쭙고 대답을 듣는 사건이 소개된다. 이 과정에서 두 번의 대화가 서술된다. 그리고 나서 세례 요한에 대하여 백성들과 의견을 나누는 사건을 소개한다(7:24-27). 이러한 일련의 서술을 통해 예수의 신분을 드러내는 이야기 양식을 보여준다. 세 번째 편집단계는 대화의 모습을 더욱 발전시킨다. 위 사건 모두 두 번의 대화가 오간 것으로 서술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면서 다른 문학양식의 경우처럼 이 편집단계에서 설화체 단화도 예수의 신분과 역할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이로써 설화체 단화 역시 세 번째 편집자에 의해 예수를 신학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잘 발전된 설화체 단화는 네 번째 편집단계에서 나타난다. 이는 예수의 시험사건에 대한 것으로 광야와 성전 그리고 산이라는 다양한 배경과, 예수와 마귀 그리고 성령 등의 등장인물과 금식을 비롯한 세 번의 시험 그리고 마귀의 떠남이라는 다양한 사건이 서술된다(4:1-13). 더욱이 세 번의 시험은 마귀의 요구와 예수의 대답이라는 대화체를 사용한다. 또한 만찬의 비유도 역시 단화를 이루기에 충분하다(14:16-24). 여기에는 어떤 사람이 손님을 위해 잔치를 배설했다는 배경이 시작으로 해서 주인이 사람들을 초청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자기의 종들을 보내어 초청한다. 이때 세 명의 종들이 세 종류의 초청대상자에게 가서 주인의 초청을 전하는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그 초청을 거절하기에 길에 나가 만나는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오라는 주인의 명령이 사건으로 나타난다. 이에 많은 등장인물이 소개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이 본문이 한 단화로서의 기본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더하여 달란트/므나의 비유도 설화체 단화에 분류될 수 있다(19:12-26). 이 단화에도 주인이 종을 불러 돈을 나누어주고 장사를 하라는 배경이 나타난다. 이어 이들은 나가서 나름대로 열심히 장사를 했다는 사건이 소개되고 마지막에 주인과 종 사이의 회계하는 장면이 세 번에 걸친 대화를 통해 소개된다. 여기에 주인과 세 종들이 등장인물로 나타남을 본다.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발전됨으로써 좀 더 예수는 종말에 심판하실 분이라는 신분을 드러내려고 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네 번째 편집단계에 속한 이야기들 가운데 특이한 점은 위의 단화들이 공통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먼저 같은 사건을 세 번씩 반복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예수의 시험이 그러했고, 종들을 통한 이웃 사람들의 초대가 그러했고, 또한 종들이 나와 주인에게 회계하는 장면이 그러했다. 이는 네 번째 편집자는 숫자 ‘삼’을 상당히 선호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로써 네 번째 편집단계는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같다. 이러한 점은 히브리 랍비들이 사용하는 교육방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악한 세력을 심판하는 분으로서 그 신분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볼 때 Q의 마지막 손길은 아마도 당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서기관의 손길을 통해 그 비유들이 작성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상의 서술을 통해 볼 때 Q는 편집이 진행되면 될수록 점점 더 발전된 설화체 단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맨 처음에는 세례 요한과 예수의 선언적이고 교훈적인 말씀을 위주로 구성하더니 편집이 진행될수록 대화체가 섞인 이야기체가 사용되었다. 두 번째 편집단계에서는 한 번의 대화가 오가는 정도로 이야기를 발전시켜 가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서술한다. 중요한 변화는 세 번째 편집단계에 이르러서 이루어졌다. 이는 Q의 설화체 단화가 점점 더 예수의 신분을 드러내는데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문학양식에서도 보았던 바와 같이 예수에 대해 신학적 해석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두 번의 대화가 주를 이루는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결국 네 번째 편집단계에 이르러 설화체 단화는 세 번의 대화까지 발전되면서 더욱 예수 중심으로 구성되고 그에 대한 전기를 서술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이 역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전하려는 의도 가운데 그러한 변화를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설화체 단화도 첫 두 편집단계는 역사적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서술하는 반면, 나중 두 편집단계는 예수에 대한 신학적 작업을 한 것으로 드러난다.
6. 소결론
Q는 다양한 문학양식을 각 편집단계에서 사용하면서 나름대로의 특성을 보여준다. 여러 문학양식들 가운데 축복문, 비유, 선언문, 기적이야기, 그리고 설화체 단화 등을 살펴보았는데, 이 양식들은 Q의 편집단계에 맞추어 나름대로 다양한 사용을 보여주었다. 우선 각 편집단계에 나타나는 양식의 변화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세 번째 편집단계에서 그 표현대상이 변화한다. 이는 예수의 신분을 드러내는데 문학양식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첫 번째와 두 번째 편집단계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나 예수가 이 세상에서의 종교적 교훈에 대해 가르친 것을 모아 객관적으로 전하는데 중점을 두었는데, 세 번째와 네 번째 편집단계는 그 문학양식을 사용하여 예수가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하면서 좀 더 초월적이고 종말론적인 인물로 묘사하는데 사용했다는 것이다.
위의 결과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자료와 정보에 대한 범위를 결정지어 준다. 역사적 예수의 모습은 첫 번째와 두 번째 편집단계에서 찾을 수 있고, 그 이후 세 번째와 네 번째 편집단계에서는 Q 공동체에 의해 그들의 상황을 반영하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예수 곧 신학적으로 해석된 모습을 서술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학양식의 발전과정도 이미 앞서 언급한 사회상이 변화와 신학의 발전과 맥을 같이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