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 여년이란 세월을 넘어 예수가 현대교회에 왔다고 가정해 보자. 현대교회의 거울 속에 비친 자화상을 보고는 뒤돌아 서지는 않을까? 각종 교리와 신학적 도그마로 덧칠된 얼굴을 보고는 내 얼굴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예수는 평신도였다. 통속적으로 랍비라고 불리기는 했지만, 정식 랍비도 아닌 그는 ‘무자격’ 평민의 신분으로 서민들의 무리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하나님 나라의 법을 가르쳤다. 어떤 철학적 사색이나 이론을 강요하지 않았고, 신학을 설파하는 법도 없었다.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
27일 광명의 집 숙소에서 만난 이장식 박사(한신대 명예교수)는 예수는 평신도였고, 초대교회 예수 운동을 이끈 무리들 역시 평신도들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예수는 율법 학교에서 전문적으로 율법을 공부한 적이 없었다. 말 그대로 평민 신분이었다. 제자들 중에도 제대로 된 학식있는 자들이 없었다. 학식있는 이들도 더러 있었으나 그들은 예수 운동을 밖에서만 관망 했지 그 무리에 깊이 참여하지는 않았다. 유대인 니고데모와 같은 이들 말이다.
이 박사는 “예수는 깊은 철학적 사색이나 혹은 깊은 종교적 신비 이런 것으로 교훈을 하지 않았다”며 “서민들의 소박한 일상생활에서 진리를 발견했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또 "정치적인 분야에 엘리트를 키워내려 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실제로 예수의 제자들 중에는 열심당원 무리도 있었으나 이 박사의 말대로 예수의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특정 정치, 철학의 이데올로기에 갇힌 하나님 나라 운동이 아나라, 철저히 서민 중심의, 생활 속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었던 것이다.
초대교회가 평신도의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교회였음도 이를 뒷받침 해준다. 학문이 없는 예수의 제자. 즉, 사도들이 이끄는 교회. 그들은 평신도의 신분으로 서민들을 가르치고, 일깨웠다. 교회사에 있어 평신도의 역할이 이토록 중요했던 것이다.
평신도의 역할은 교회의 선교 확장에 있어 더욱 두드러진다.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받던 무리들이 책임 목회자 야고보의 순교를 계기로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간 것. 말 그대로 평신도들이 교회 선교 현장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들 평신도들의 선교 열정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팔레스타인 지방의 한 이름 모를 종교로 전락될 수도 있었다.
본지는 내달부터 한신대 명예교수 이장식 박사와 함께 평신도 예수로 시작해 평신도들이 중심이 된 초대교회사 그리고 각 시대별로 평신도들의 신앙 생활에 큰 도움이 될 만한 교회사 이야기들을 차례로 연재한다. 역사가 E.H 카는 말한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이장식 박사의 ‘쉽게 풀어쓴 교회사 이야기’를 통해 신앙 생활을 함에 있어 과거와 대화하고, 오늘과 내일에 큰 교훈을 얻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한신대를 졸업한 이장식 박사는 뉴욕 유니언신학교 신학석사, 아퀴나스 신학대학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일대학교 신학부 연구 교수, 한신대 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