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가 22일 탈북 여성의 탈북 및 정착과정에 있어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2009년 4월부터 그해 12월까지 진행됐으며, 탈북 여성의 탈북 및 정착 과정과 관련한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실태파악을 목적으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관련 사례를 수집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이번 조사에는 △탈북 여성의 인권침해 실태를 공간별(북한, 제3국, 우리나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최근에 탈북해 국내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 여성 26명에 대한 구술생애사적 심층면접조사를 했으며 △2009년 8월 하나원 여성 교육생 248명에 대한 설문조사도 실시했다. 또 △중국 체류 중인 탈북 여성들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조·중 접경 지역 방문 및 현지 학자·전문가·사업가·병원 관계자 면담을 실시했으며 △국내 인권 전문가, 하나원 교육담당관, 심리상담사, 관계기관의 면담을 병행 진행했다.
인권위는 실태조사의 의의에 대해 "국내 최초로 탈북여성들의 인권침해 실태를 공간별(북한, 제 3국 체류국, 우리나라)로 나누어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이를 통해 탈북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의 사회적 구조와 당사자의 피해를 체계적·구조적으로 파악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고 했다.
또 "기존 실태조사와 달리 탈북여성들의 인권상황을 구술생애사적 관점에서 파악함으로써, 탈북여성들이 스스로의 삶에 대해 갖는 평가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인권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경제난으로 여성 착취, 폭력에 노출= 인권위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1990년대 경제난 이후 북한 여성은 국가의 모성보호 조치는 열악해졌고, 생계를 위해 경제활동에 내몰리고 이 과정에서 또다시 착취와 폭력에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3국 체류 중 기본 생존권 박탈 및 트라우마 심각= 또 탈북 여성들은 탈북 후 중국에 체류하는 동안 공안의 추격과 불법체류자의 지위를 악용하는 브로커 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타인을 경계하고 긴장하며 생활해야 했다. 아울러 현지인들이 꺼려하는 힘든 일을 장시간 하면서도 신분적 약점 때문에 저임금으로 일하거나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탈북자에 대한 멸시를 참아내는 과정에서 자아 정체성과 존중감을 부정하게 되는 경험을 한 사례도 있었다.
인권위는 특히 "아이를 두고 탈북한 경우 탈북 여성이 느끼는 죄책감, 성폭력, 매매혼과 인신매매 등을 경험했을 때의 정신적 상처는 심각한 수준으로, 이는 한국에 입국한 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육체적 질병으로 나타나고 있었다"고 밝혔다.
▲ 한국 정착 과정에서의 제도 미비, 일상에서의 차별과 배제= 이밖에도 탈북 여성들은 한국 입국 후에도 조사 과정에서의 낙인과 상처,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지원의 부재, 차별을 재생산하는 적응 교육, 길들이기 식의 정부 지원 제도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인권위는 "탈북 여성들이 자존감을 되찾고, 사회적 주체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 차원의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권위는 첫째,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는 탈북 여성들이 억압을 피해 또는 생존을 위해 북한을 탈출할 수 밖에 없었던 ‘국제적 난민’임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최소한, 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체포·송환 및 구금 상태에서 북한과 중국, 제3국이 비인간적 대우를 하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감시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둘째로 "한국정부는 탈북여성이 입국 후 국적을 획득하고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 전반을 인권적 관점에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탈북 여성이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도록 만드는 취업 장려금 제도를 비롯해 탈북여성들에게 심리적·정신적 압박을 가하는 지원 제도는 개선되어야 한다"고 했다.
셋째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입국하는 과정에서 탈북 여성들이 겪었을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강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했으며 마지막으로 " 탈북 여성들 스스로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탈북여성들 사이의 공동체를 형성시킬 필요가 있다"며 "이는 탈북 여성들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직면할 수 있는 각종 범죄 및 가부장적 가족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인권위는 전했다.
향후 인권위는 우리정부가 추진할 수 있는 중·장기적 북한인권 정책 및 로드맵과, 이에 기초한 실천계획(Action Plan) 수립을 추진할 예정이다. 특히 다자·양자·국제기구 등 행위자별 대북인권 정책 로드맵 그리고 북한주민, 탈북자, 국군포로·납북자, 이산가족문제 등 주요 이슈별로 발생할 수 있는 북한인권 문제들에 대한 정책 로드맵을 연구해 제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