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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원]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리는 마음

글 : 신종원(서울 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작성일 : 2010년 3월 5일
출처 : 서울 YMCA



 

스페인의 산타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다. 800km나 되는 거리에 전체를 걸으려면 한달 이상 40일 정도의 시간을 내야한다는 산티아고. 지금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한달도 좋고 두달도 좋고, 왕복도 좋고, 중간까지 가다 말아도 상관없고, 그저 걷는 것, 걸으면서 인생을 돌아봐도 좋고 주위에 동행이 있으면 더 좋고, 명상도 하고 하늘보고 쉬었다 걷는 산티아고 길, 지금처럼 쫒기듯 사는 바쁜 세상에 천천히 이 길을 걷는 상상만으로도 충전이 될 법하고 또 부럽다.


이 느림의 미학, 천천히 걸으면서 세상과 사람과 자연과 대화하는 여행이 바쁨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코스마다 7~8시간씩 천천히 걸으며 자연과 바람, 대지의 기운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제주 올레길도 그렇고, 지역마다 그곳의 생태와 환경, 역사와 문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길들이 속속 소개되고 있어 다행이다. 오늘은 이 유적지에 가서 사진 찍고 내일은 어디로 빨리 이동해 하나라도 더 봐야 한다고 재촉하는 관광이 아닌, 몸으로 마음으로 걷는 여행이 있어 즐겁다.


아메리칸 인디언을 짐꾼으로 썼던 개척자들이 일정에 쫓겨 말과 짐꾼들을 바쁘게 몰아 이동을 하고 있었다. 빨리 움직이던 인디언들이 갑자기 정지해 재촉해도 앞으로 전진하기를 거부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저 뒤에 우리 영혼이 못 좇아오고 있어서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또 자신들의 부족이 있는 마을에 연기가 나고 변고가 있는 듯해 큰 걱정으로 급하게 말을 몰아 마을로 돌아가던 인디언들이 갑자기 서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한다. 왜냐 물으니 역시 '영혼이 따라오도록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사람이며 대표적인 기독교계 인사인 신석구 목사, 조선 독립을 위한 3·1운동 참여를 제의받고 '나는 내 몸을 하나님께 맡겼으니 하나님이 좋다하시면 하겠다. 4~5일간 생각할 여유를 달라'고 했다 한다. 그는 매일 기도를 통해 2가지 문제에 대해 응답을 구하고자 했다. 기독교 목사로서 정치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을까 하는 것과 천도교와 불교 등 다른 종교와 함께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을까 하는 것이었다.


기도하던 중 1919년 2월 27일 새벽에 "4천년 강토를 네 대에 와서 잃은 것이 죄(罪)인데 찾을 기회에 찾아보려고 힘쓰지 않으면 더욱 큰 죄가 아니냐"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또 그는 '내가 독립을 위해 죽으면 밀알을 뿌리는 것처럼 수많은 내 친구들의 심중(心中)에 민족정신을 심는 것이고, 그게 안되면 내 자식 삼남매에게라도 심는 것이니 이것이면 족하다'고 했다. 그는 기도하며 숙고하면서 늦게 가담했지만 자신의 독립운동 참여를 열매를 따는 일이 아니라 씨앗을 뿌리는 일로 여겼다. 그는 수차례 옥고를 치루면서도 끝까지 일제에 굴복하지 않았고 영혼과 몸이 일치하는 신앙인의 모범을 보였다.


항상 바쁘고 분주한 한국사회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 다이나믹 코리아를 외치며 빨리 움직이는 한국사회의 역동성을 내세우고 경제 침체를 가장 빨리 극복했다 자랑한다. 교육은 조기교육과 조기유학, 선행학습으로 유아시절부터 빨리 움직여야 이길 수 있다고 가르친다. 길거리의 눈에 거슬리게 크고 조악한 원색의 간판들도 금방 본전을 뽑아내 보려는 상술을 드러내고 있다. 서둘러 파헤치다보니 고운 모래와 물길을 흙탕물에 묻히게 만드는 4대강 사업이 그렇고, 수년간의 숙의(熟議)를 덮고 서둘러 조속한 결론을 이끌어내고 싶은 욕심에 파열음만 더 커지는 세종시 논란이 더욱 그렇다. 숙고와 숙의, 성찰이 없는 사회에서, 모든 일들에 빠르게 움직여 금방 열매를 따고 싶은 욕심만이 앞선다.


세월과 함께 익고 삭혀져 장맛을 내는 것처럼,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리는 인디언의 마음을 살피고 또 신석구 목사처럼 씨를 뿌리는 마음가짐으로 숙의하고 익히면 안될 일이 없다. 우리 사회의 갈등으로 작용하는 많은 숙제들이 그러하고, 4대강이든 세종시든 마찬가지다.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려 함께 가는 사회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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